마음의 번뇌와 갈등, 고통, 어떤 조갈증, 허기 같은 건 지병처럼 가져야가 하는 것이었다. 하기야 아프면 고쳐가면서 쓰는 게 몸이라고 하는데 마음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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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작은 추억에 인색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추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뜻밖의 밤길에서 만나 다정한 길동무가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추억은 과거로의 여행이 아닙니다. 같은 추억이라도 늘 새롭게 만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변화는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기술을 익히고 언어와 사고를 바꾼다고 해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바뀜으로써 변호가 완성됩니다. 이것은 개인의 변화가 개인을 단위로 완성될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변화는 옆 사람만큼의 변화밖에 이룰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위악이 약자의 의상衣裳이라고 한다면, 위선은 강자의 의상입니다. 의상은 의상이되 위장僞裝입니다. 겉으로 드러내는 것일 뿐 그 본질이 아닙니다.

인식은 그것이 어떤 것에 대한 인식이든 가장 밑바탕에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인식의 근본입니다.

여행은 떠나고 만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종착지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변화된 자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여행만 여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 하루 하루가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통과 변화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 형식입니다. 부단히 만나고, 부단히 소통하고, 부단히 변화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품성을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단연 ‘양심적인 사람’입니다. 양심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인간학일 뿐 아니라 그 시대와 그 사회를 아울러 포용하는 세계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 절망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입니다.

‘자기의 이유’,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자기(自己) 이유(理由)’를 줄이면 ‘자유(自由)’가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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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행복은 빛을 유혹하지.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즐겁다고 생각해. 반면 불행은 멀리 숨어 있지. 그래서 우리는 불행이 없다고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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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인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독창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정치적 글쓰기에도 예술성이 중요합니다. 예술성은 문장의 아름다움과 아울러 독창적인 논리의 미학을 요구합니다. 그런 글을 쓰려면 생각과 감정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 놓아야 해요. 고정관념과 도그마에 갇히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글을 쓸 수 없거든요.

예술은 자유를 먹고 피어납니다. 돈과 권력만 사람의 생각과 감각을 얽어매는 게 아닙니다. 고정관념과 이념의 교조에 생각과 감정이 묶이면 글이 진부해집니다.

표현이 과격하다고해서 악플이 되는 것 역시 아닙니다. 일정한 근거와 논리를 갖추고 있다면 표현이 거칠어도 정상적인 의사표시로 인정해야 합니다. ‘악플도 존중해야 한다‘고 할 때의 악플이 바로 그런 댓글입니다.

자기소개서는 자기 자신보다는 그것을 읽을 사람이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여길 만한 사실을 중심으로 정해진 분량만큼만 써야 합니다.

글로 타인의 공감을 일으키려면 쓰는 사람이 독자에게 감정을 이입해야 합니다. 자신이 쓴 글을 타인의 눈으로 살펴보면서 읽는 이가 쉽고 명확하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것이죠.

독자가 공감하는 글을 쓰고 싶으면 남이 쓴 글에 공감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남의 글에 감정 이입하면서 독자의 감정 이입을 유도하는 방법을 체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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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통일統一을 ‘通一‘이라고 쓰기도 합니다. 평화 정착, 교류 협력만 확실하게 다져나간다면 통일統一 과업의 90%가 달성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평화 정착, 교류 협력, 그리고 차이와 다양성의 승인이 바로 통일通一입니다.

인간관계는 사회의 본질입니다. 사회에 대한 정의가 많지만,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근대사회, 자본주의 사회, 상품사회의 인간관계는 대단히 왜소합니다. 인간관계가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모든 고전은 과거와 현재가 넘나드는 곳입니다. 실제와 상상력, 현실과 이상이 넘나드는 역동적 공간이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당당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관대한 사람과 반대로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비굴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오만한 사람입니다.

연대는 위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추종이고 영합일 뿐입니다. 연대는 물처럼 낮은 곳과 하는 것입니다. 잠들지 않는 강물이 되어 바다에 이르는 것입니다. 바다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끝으로 당부하고 싶은 것은 연대는 전략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라는 사실입니다. 산다는 것은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만남이 연대입니다. 관계론의 실천적 버전이 연대입니다.

사람의 정체성은 노동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노동‘이란 표현이 어색하다면 ‘삶‘이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가 영위하는 삶에 의해서 자기가 형성되고 표현됩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소비와 소유와 패션이 그 사람의 유력한 표지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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