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거 말고. 너 자신이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했니?‘ ‘물론이지!‘ ‘그럼 됐지, 뭘 더 바라?‘ 과연 그렇다. 나는 서툴과 상처 많고 결핍투성이지만 내 일을 사랑한다. 그걸로 되었다.
두려움을 고백하는 일,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는 일은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최고의 지성을 갖춘 이에게만 허락되는 눈부신 축복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 사이에는 얼마나 커다란 차이가 이겠는가. 그 어떤 무시무시한 장애물도, 지금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인생을 걸고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인간의 의지를 가로막을 수는 없다.
크고 작은 문제를 잔뜩 짊어지고도 우리는 매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문제가 많다는 것은 내가 감당하고 이겨내고 싸워내야 할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도하게 심리학 용어로 우리 삶을 해석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작은 문제를 큰 문제로 고착화해버리는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심리학은 만능해결사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비춰보는 유용한 프리즘으로 작용해야 한다.
심리학적 분석에 매번 휘둘리기보다는 심리학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힌트를 얻으면 된다.
상처 자체는 그 사람을 빛내지 못한다. 상처를 뛰어넘으려 불굴의 노력을 쏟아부을 때 눈부신 용기와 고결함의 가치가 빛을 발한다.
트라우마가 빛을 발할 때는 오직 우리가 트라우마로부터 치유되려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순간들이다.
우리가 숨기고 싶은 모든 불쾌한 감정은 내면의 그림자로 가라앉는다. 에고와 그림자의 관계는, 마치 빛과 그림자의 관계와 닮아서, 에고가 뛰어난 연기를 펼칠 때마다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고 어두워진다.
우리에겐 줄기찬 방어보다 더 지혜로운 에너지, 즉 내 삶을 내가 가꾸고, 그 어떤 외부의 공격도 내 힘으로 막아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이 분명 꿈틀거리고 있다. ‘더 이상 방어만 하지 않겠어. 이제 내 의지와 열망의 부름대로 살아가야지‘라고 결심하는 순간, 진정한 희열이 찾아온다.
세상은 경제적 차원뿐 아니라 마음의 차원에서도 지극히 불공평한 것일까. 이제 좀 자신을 덜 사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 사람들은 지나친 자기애로 온 세상을 자기 것처럼 주무르고, 이제 좀 자신을 마음껏 사랑해도 좋을 사람들이 스스로를 할퀴고 비하하며 자기혐오에 빠진다.
이런 마음의 빈익빈부익부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진정한 자기와의 대면이 어렵기 때문이다.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대면하려 하지 않고, 자기를 비하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지니고 있는 빛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심리학을 공부하며 깨달은 점은 내 안의 빛뿐만 아니라 그림자도 편애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내 안의 빛과 그림자를 차별 없이 보듬어내는 것, 그리하여 내 바람직한 측면뿐 아니라 부끄러운 측면까지 전체성으로 보듬는 것이 진정한 성숙이다. 자신의 가장 증오스러운 측면도, 자신의 가장 멋진 부분도 나 자체는 아님을, 매 순간의 선택과 실천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나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깨닫는 마음챙김이 대면confrontation이다.
대면은 상처의 빛과 그림자 모두를 차별 없이 끌어안아, 마침내 더 크고 깊은 나로 나아가는 진정한 용기다.
절단의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나무의 열매와 꽃이 더욱 아름답고 튼실하게 성장할 수 있기 위해서 가지치기는 꼭 필요한 성장통이다.
상처를 꿋꿋하게 이겨내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얼까. 단지 불굴의 의지만은 아니다. 상처를 극복하는 내면의 힘은 자신도 모르는 면역력처럼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천천히 단련되어온 회복탄력성이다.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일상 속의 길은 뭘까. 나는 그것이 타인의 시선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내면의 희열, 즉 블리스Bliss를 가꾸는 일상 속의 작은 실천이라고 믿는다. 블리스는 시간의 흐름을 잊게 만드는 모든 기쁨이다. 시간뿐 아니라 슬픔과 번민, 세상조차 잊게 만드는 내적 희열이 바로 블리스다.
블리스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마음의 내적 자원inner resource이다. 일상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블리스가 있는가 하면, 작가의 글쓰기가 화가의 그림 그리기처럼 인생을 걸어야 비로소 절실하게 만날 수 있는 블리스도 있다. 두 가지 모두 우리 인생에 필요한 내적 자원이다.
‘지킬 박사의 페르소나(눈에 보이는 성격)‘와 ‘하이드의 그림자(보이지 않는 콤플렉스와 사악함)‘ 문제는 극소수의 특별한 환자들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집단무의식에 드리운 어둠이다. 인간은 누구나 한계 상황에 부딪힐 때 자신도 모르게 섬뜩한 하이드의 본성을 드러낼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우리 안의 하이드, 우리 안의 그림자와 어떻게 화해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개인의 내면에 도사린 그림자가 폭력이나 범죄로 폭발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까. 나는 그 대안을 그림자를 보살피는 삶에서 찾는다.
그림자를 보살피는 법, 즉 자기 자신의 마음을 샅샅이 되돌아보며 도사린 상처와 그늘을 찾아내는 방법은 매우 느린 길이다. 그러나 개개인의 폭력성과 숨은 그림자와 대면하는 법을 훈련하면 분노가 우리 자신을 집어삼켜 초래하는 비극을 분명히 예방할 수 있다.
평소에 어떤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지, 어떤 사람을 보면 분노의 방아쇠가 당겨지는지, 어떤 상황에서 습관처럼 온몸이 떨리고 혈압이 오르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자신의 그림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한계 상황에 닥쳤을 때 훨씬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여기서 승화가 중요하다. 분노를 유발하는 사건에 더 큰 분노로 화답하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키므로, 우리는 다른 배출구를 찾아야 한다.
분노를 다른 감정으로 해소하거나 창조나 예술의 에너지로 승화시킬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당신의 분노가 거의 포화 상태에 다다른 감정의 물통에 떨어질 마지막 물방울이 되는 순간, 감정의 물통은 쏟아져버린다.
당신의 쓰라린 그림자마저도 다정한 친구로 만드는 슬기로움, 그 마음속에 진정한 치유의 에너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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