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에 대한 새로운 설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내용‘과 ‘방식‘에 관한 기본 틀을 구성하고 제공하는 데 환경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감정과 신체는 양방향으로 영향을 주며 특정 감정과 관련된 신체나 얼굴 부위의 위치는 해당 감정을 유발한다.

집은 피난처 이상의 기능을 제공하며 온 가족 구성원을 물리적, 심리적으로 한자리에 모아준다. 힘든 하루를 보내거나 긴 여행을 마친 뒤 우리는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

활동 무대로서 집이 유도하는 활동과 정신 작용은 광범위하면서도 한정적이다. 집은 조망을 멈추고 쉴 수 있는 피난처이자 질서 정연하고 자유와 사생활을 보장하며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는 다른 어느 장소보다 집에서 더 많은 자율성을 누린다. 집에서는 환경에 대한 통제력도 강해진다.

좋든 나쁘든 건물과 도시 경관, 조경은 우리의 삶과 우리 자신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인간이 장소를 경험하는 방식에 관해 우리가 알게 된 내용을 반영해 풍성한 환경을 디자인하고 건축하면 인간 역량 개발을 증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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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첫 부분을 ‘구약‘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이전까지 세상 창조와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선의를 증언하는 기록들의 모음입니다. ‘구약‘은 ‘낡은‘이 아닌 ‘기원‘을 의미합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는 사람 스스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결정하길 원하는 마음에 대한 비유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선한 것을 깨닫고 그것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막지 않으십니다.

"계약"은 성경에서 핵심 주제입니다(창세 15장; 탈출 19장; 예레 31장과 예수님의 계약).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르 14,24) 이는 하느님이 지속적으로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고 우리와의 관계를 원한다는 표현입니다.

"축복"은 아브라함에게 큰 선물이자 계약입니다.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다른 이들을 위해 열매를 맺을 것이고 또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렇듯 그에게 "이름"을, 곧 명예를 부여합니다. 인간적인 명예욕과는 대조적입니다(창세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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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역동적이고 복잡한 것입니다. 죽어간다는 개념부터가 그렇죠. 죽어간다는 것은 삶의 한 부분입니다. 죽음은 사실 그다음 일이죠.

사실 죽음은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그건 언제나 다른 사람의 죽음일 뿐, 단 한번도 당신의 죽음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당신은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확실한 사실을 보지 않고 회피해 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죽어간다는 사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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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환경은 마치 완공됭 그대로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거짓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통계에 따르면 건축 환경은 끊임없이 보수와 재개발, 확장을 거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건축하고, 살아가는 환경은 우리는 물론 자녀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의 생리적, 심리적 욕구에 부합하려면 도시와 건물이 수면이나 식사 같은 기본적인 필요를 만족시키는 수준을 넘어 사회적 관계를 확장시키고 공동체 소속감을 길러줘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알면 알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좋은 건축 디자인은 일반적인 건물에 예술을 덧붙인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 욕구와 권리를 보장하는 데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지리적으로 특색 있는 장소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체의 성격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간의 사회적 상호관계의 특성이나 건물과 부지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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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써야 한다. 들으면 전해야 한다. 공부도, 학습도, 지성도 최종심급은 글쓰기다. 다른 무엇일 수 없다.

읽기가 타자의 언어와 접속하는 것이라면 쓰기는 그 접속에서 창조적 변용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접속과 변용은 연결이면서 또 도약이다. 남이 걷는 길이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워도 내가 걷는 단 한 걸음과는 비교할 수 없다.

필요한 건 재능이 아니라 질문이다. 삶에 대한 질문, 사람에 대한 궁금증, 사물에 대한 호기심, 무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 앎의 도약이 주는 환희 등등. 이것은 모든 이에게 가능하다.

그리고 그 질문과 호기심과 앎의 욕구는 결국 언어의 회로, 문자의 체계를 따라 움직인다. 문제는 질문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마주친다는 게 거창한 문제의식이나 목표설정이 필요한 게 아니고, 정말 느닷없이, 우연히, 주어진 시공간적인 조건 안에서 자기의 의식, 무의식을 포함한 어떤 내적인 힘이 한 권의 책과 마주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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