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친절한 사람을 만난 것은 모모에게는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긴 모모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마을 사람들 역시 모모를 만난 것이 커다란 행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모모는 그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전에 그 아이 없이 어떻게 지낼 수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꼬마 모모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주는 재주였다.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줄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모모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잔뜩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누구한테 먼저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모모는 이 세상 모든 것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언젠가 다른 인생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 이제부터 시간을 아끼리라. 이 결심은, 끝이 갈고리처럼 굽은 가시처럼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단단히 박혔다.

아무도 자신의 삶이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점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 그것은 아이들 몫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아이들을 위해서도 시간을 낼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다.

"아무도 아저씨를 사랑하지 않죠?"
회색 신사는 움찔하더니 갑자기 약간 기가 꺽인 듯 보였다.

영업사원은 갑자기 말을 멈추고 모모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치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어떤 것과 싸우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팔다리에서 무서운 냉기가 사라졌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점점 또렷해졌다. 모모는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 회색 신사의 진짜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모는 누구의 마음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두 사람에게서 똑같은 거리만큼 떨어진, 석조 무대의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모모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많은 일들은 해결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개, 고양이, 귀뚜라미, 두꺼비, 심지어는 빗줄기와 나뭇가지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그들은 각각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모모에게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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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란 행동이나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에 거주하는 감정적 관념이다. 특히 열등감과 깊은 관련이 있고 희로애락의 감정과도 연관되어 있다. 일부 예외가 있지만 콤플렉스는 대부분 극복되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결과와 상관없이 콤플렉스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할 때, 삶의 의미가 생긴다.

현대사회는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주문한다. 당연하듯 다양한 역할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고 불안할 때가 많다. 이를 사회학 용어로 ‘역할갈등role conflict‘‘이라 한다. 역할갈등이란 개인이 다수에게 상반된 역할을 요구받았을 때 겪는 혼란을 의미한다.

틀린 답이라도 자기 논리가 명확한 선수들은 슬럼프 상태에서 쉽게 빠져나온다. 자신의 어떤 생각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출생의 미국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정체성에 대해 자신의 자신됨과 독특함에 대한 자각적 의식, 인생의 지속성에 대한 무의식적 욕구, 그리고 사회와 집단의 영향 속에서 뿌리내리고 환경의 도전을 극복하는 데서 오는 자신감 등이 포함된 ‘다차원적 개념‘이라고 정의했다.

정체성은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목표,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원초적 에너지를 제공하는 정서적 모체다.

선수들이 주요 원인에 접금하지 못하는 건 몰라서가 아니라 그 원인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평소보다 더 불안하고 긴장될 수 있으니 아는 것만이라도 실수하지 말고 잘 풀자‘라며 자기 앞에 놓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그래야 지나친 부담감을 덜 수 있고 아울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이나 팀은 경기 결과, 즉 술어부에만 집중한 채 성급한 결론을 내린다. 때문에 술어부에 집중하는 선수들이나 팀은 답보 상태에 빠지기 쉽다. 패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다음 경기에 임하기 때문이다.

성급한 결론은 과정을 은폐한다. 과정이 은폐되면 실패 요인을 제거하고 성공으로 가는 핵심 요인을 놓칠 수 있다.

슬럼프를 극복할 때도 단계적으로 해결해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때 주어부를 중시하는 사람은 문제의 원인을 밝히는 일부터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해결해나가지만 술어부를 중시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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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즐거움 - 청소년에서 성인 독자까지 고전 독서를 시작하는 이들을 위한 가장 완벽한 지침서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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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고전 읽기를 추천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오랜 시간 여러 사람들에게 읽혀졌다는 것,

그 자체 하나만으로도 

그 책이 가진 힘과 영향력을 알 수 있다.


고전 읽기가 좋은 것은 알겠지만,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할지

많은 고민이 된다.


고전을 소개하는 다양한 책이 있지만, 

이 책은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안내해준다.  


특히 고전을 어떻게 '혼자' 읽을 수 있는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다양한 장르의 풍부한 도서목록은 

이 책의 묘미다. 

단순히 목록만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각 책을 요약하고 분석했다. 


그 점에서 이 책은 고전을 독파하고 싶은 독자라면,

필히 구매하여 소장하여야 할 책이다.


각 장르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한 부분도,

이 책이 가진 큰 장점이다. 


역사를 나열하면서 철학적인 흐름을 알 수 있지만,

다소 아쉬움이 있다면,

철학을 따로 다루어주었다면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아쉬움은 

동양 고전은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영복의 강의담론』을 함께 읽는다면,

동서양의 고전을 함께 아우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매우 유용하고, 깊이가 있으며, 쉽고, 친절하다.


고전적인 혼자 공부하기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사실적인 정보를 머릿 속에 ‘쑤셔 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을 정신 구조 속에 섞어 넣고 구체화하기 바란다. 내적인 삶에 비추어 사실들의 의미를 성찰해 보자. - P47

이해를 위한 첫 걸음은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며, 내용을 파악하는 가장 오래되고 신뢰할 만한 방식은 자신의 말로 재서술해 보는 것이다. 내용에 정통하려면 요약해야 한다. - P47

고전을 혼자 공부할 때에는, 사상을 이해하고 평가한 다음 반응을 보여야 한다. 각자의 독서 일기에 독서 내용을 요약하여 기록해야 한다. 독서를 통한 생각들을 이해하는 도구가 바로 이것이다. 사실에 정통하는 것이 고전 교육의 첫 단계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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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는다온 2020-03-04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는데 ....
모찌모찌님의 리뷰를 읽고 바로 책 구매하러갑니다 ^^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모찌모찌 2020-03-04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움이 되셨다니 제가 감사합니다^^
 

한 번에 하나의 목록에만 집중한다. 고전을 혼자 공부하는 동안에는, 독일의 신학자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가 젊은 시절 탐닉했던 독서법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그는 만년에, 광범위하고 인상적이지만 체계 없이 게걸스레 책들을 집어삼키는 독서는 "이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의 혼돈 같은" 정신만을 남겨 놓을 뿐이라고 표현했다.

정신적 삶에 관한 고차원적인 언어는 어떤 점에서, 자기 계발을 위한 실용적인 계획에 특권을 넘겨줘야 한다.

문법과 글쓰기, 논리와 분석, 추론에 정통하려면 이것들이 살아 나갈 여분의 정신적 공간을 깍아 내는 일을 해야 한다.

고전을 혼자 공부하는 것의 첫 번째 과제는 플라톤식 독서가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를 활동이 아닌 사상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줄 20분의 자투리 시간을 찾아내는 일이다.

지식 추구는 다른 윤리를 지향한다. 본격적인 독자는 엄청난 정보량을 가능한 한 신속하게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다면적이고 손끝을 빠져나가는 생각 몇 가지를 이해하려고 한다. 지향하는 이상향이 다른 곳에 속도 윤리를 이식해서는 안 된다.

독서 일기를 쓸 때는 세 단계의 과정을 따라야 한다. 마음에 와 닿는 특정 어구와 문장, 문단들을 적는다. 그리고 독서를 마쳤을 때 다시 돌아가서 무엇을 얻었는지 간략하게 요약한다.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반발 지점과 질문, 생각을 적는다.

고전적인 혼자 공부하기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사실적인 정보를 머릿 속에 ‘쑤셔 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을 정신 구조 속에 섞어 넣고 구체화하기 바란다. 내적인 삶에 비추어 사실들의 의미를 성찰해 보자.

이해를 위한 첫 걸음은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며, 내용을 파악하는 가장 오래되고 신뢰할 만한 방식은 자신의 말로 재서술해 보는 것이다. 내용에 정통하려면 요약해야 한다.

고전을 혼자 공부할 때에는, 사상을 이해하고 평가한 다음 반응을 보여야 한다. 각자의 독서 일기에 독서 내용을 요약하여 기록해야 한다. 독서를 통한 생각들을 이해하는 도구가 바로 이것이다. 사실에 정통하는 것이 고전 교육의 첫 단계다.

자서전은 글쓴이에게 자신의 인생에 생기를 불어넣고, 과거 사건으로 돌아가 의미를 읽어 내고, 무의미했던 것에 형태와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

처음으로 역사는 존재가 아니라 생성의 문제가 되었다. 국가의 모습을 그대로 단순히 묘사하기보다는 발전해 나가는 방식을 설명하려는 시도 말이다.

생성이라는 단어는 진보, 마지막 지점을 향해 가는 운동의 의미를 담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가들은 기독교도 역사가들이 정리한 선형적 시간의 토대를 철저히 파괴했다.

대신 그들은 벽을 조금 무너뜨리고 옛 주춧돌 위에 땜질하는 식으로 건물을 세웠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덜 현실화된 시간에서 좀 더 완벽한 현실로 나아가는 선형적 진보라는 기독교적 시간 감각은, 생명이 원시 상태에서 진보된 상태로 시간에 따라 진화한다는 후대 학자들의 제안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희곡을 읽는 이유는 스스로 연출가가 되어서 희곡을 마음속으로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는 역사처럼 과거의 한 면모를 연대순으로 기록할 수 있고, 소설 기능을 흉내 내서 한 인물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자서전처럼 시는 시인 자신의 자아 형성 과정을 드러낼 수도 있으며, 희곡처럼 관객에게 어떤 장면을 상상하는 데 참여하기를 요구하면서 화자들 사이를 오가며 대화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는 역사나 자서전이나 소설이 아니다. 시는 운문으로 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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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인 개념이 모양을 갖추면 때로 모어조차 변용해냅니다. 지적 창조와 모어의 풍요로움은 이어져 있습니다.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역동적인 과정입니다. 도구를 사용하는 일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설명을 잘하는 자가들의 공통점은 먼 곳에서 거시적으로 조감하듯 내려다보는가 싶으면, 갑자기 미시적으로 현미경적인 거리까지 카메라의 눈을 들이대는 등 초점 거리의 줌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점입니다.

마음을 다해 이야기하는 것! ‘마음을 다하는‘ 태도야말로 독자를 향한 경의의 표시인 동시에 언어가 지닌 창조성의 실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가 지닌 창조성은 독자에게 간청하는 강도와 비례합니다. 얼마나 절실하게 독자에게 언어가 전해지기를 바라는지, 그 바람의 강도가 언어 표현의 창조를 추동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다양한 언어가 폭주하며 겹쳐지면서 화음을 이루는 글을 쓰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든 그렇게 단순한 인격이 아닙니다. 강점도 있고 약점도 있지요.

언어는 발화하는 장소에 타자의 수가 많이 있으면 많이 있을수록 언어적으로 활발하게 기능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한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내면의 ‘바보의 벽‘, 우리 내면의 ‘평범함의 경계선‘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글을 쓰는 일은 고역일 따름입니다.

이른바 ‘만인을 향한 메시지‘는 실은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는 메시지입니다.

외국어는 자기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자기를 외부로 밀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부를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배우는 것입니다.

생생한 언어를 습득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자신의 외부에 있는 타자에 동기화하는 것, 그것을 통해 기존의 자아를 일단 해체하고 좀 더 복잡하고 정교한 자아로 재편성하는 것, 이런 과정이야말로 생명의 자연에 적합합니다.

따라서 일부러 이익을 이끌어내려고 하지 않아도 인간은 자연스레 타자의 언어에 가상적으로 동일화하고 타자에 동기화하려고 합니다.

언어적 모험은 정형을 충분히 내면화한 인간에게만 허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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