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쯤이면 자기 시간을 오롯에 살아낼 수 있을까? 하루를 여원에 잇댈 때이다. 하나님이 품고 계신 역사의 꿈을 우리의 꿈으로 수용할 때 우리는 영원의 한 부분이 된다. 영생이란 시간의 무한한 연장이 아니라 질적으로 변화된 시간 경험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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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철학은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말했던 ‘환대의 윤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때 데리다가 말하는 환대(hospitality)는 초대와는 전혀 다릅니다.

초대가 내게 필요한 사람과 나와 친한 사람을 계획적으로 ‘준비된 상태‘에서 맞이하는 것이라면, 환대는 전혀 예상치 못한 낯선 사람의 방문을 기꺼이 아무 준비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반 일리치가 실천한 우정은 특정한 얼굴이 떠오르는 ‘친한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낯선 사람‘을 향해 작동하는 커다란 사랑(charity)을 향해 완전히 열려 있는 마음입니다.

이기심은 자아를 방어하기 위한 강력한 심리적 무기이지만, 때로는 자아의 확장을 가로막는 강력한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정의란 누군가가 규정하고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 다시 창조해야 하는 열린 개념‘임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의감의 밑바탕에는 항상 타인을 향한 사랑, 나 자신을 향한 믿음,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한 무한한 사랑이 깔려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자아‘를 놓는 순간, 내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놓아 버리는 순간에 다른 존재와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집니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의 교감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때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합니다.

내 아픔과 상처와 슬픔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픔, 당신의 상처, 그들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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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결핍을 채워 줄 수 있는 대상은 ‘바깥’에서만 구하지 말고 우리 마음속에서 찾을 때 고독은 고통이 아니라 구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슬픔이지만, 고독은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느낄 수 있는 ‘혼자 있음’의 자각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혼자 있음을 자각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어떤 소문과 세파 속에서도 남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나가 아닌 ‘진정 내가 원하는 나’의 삶을 살 수 있는 자유인입니다.

강한 것들이 자신의 힘으로 약한 자를 찍어 누르려 한다면, 약한 것들은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유연하게 험난한 세계의 광풍을 견딥니다.

강한 자들이 자신의 힘을 과시함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확장하려 한다면, 약한 자들은 자신이 가진 힘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작은 힘으로 지켜 나갈 수 있는 소중한 세상’의 아름다움을 직조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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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립니다. 슬픔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왠지 촌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지요.

슬픔 따윈 절대로 내색하지 않는 냉정한 사람이 세련된 인간으로 평가받는 분위기에 저는 아직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슬픔은 숨겨야 할 금기가 아니라 인생의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라 믿기 때문입니다. 슬픔을 절제하는 것과 슬픔 자체로부터 도피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여기저기서 힐링 열풍이 거센 요즘, 이 요란한 힐링 열풍에는 뭔가 불편한 광기가 스며 있습니다. 그 불편함의 정체는 뭘까요?

아픔에 대한 성급한 알레르기 반응이 아닐까요? 아픈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듯한 조바심, 아픔은 무조건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 믿는 조급증, 아픔의 의미를 곱씹어 보기도 전에 아픔을 무차별적으로 퇴치하려는 성급한 통제의 욕망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통증은 공포를 자아내지만 분명 우리에게 어떤 절박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 통증의 메시지를 우선 가만히 들어 보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위기에 처했을 때야 비로소 명징하게 깨닫습니다. 어떤 영광도 인기도 명예도 재산도 지금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만큼 소중하지는 않다는 것을.

바꾸기 어려운 외부의 상황에만 비난의 화살을 돌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나 자신의 실천을 모색하는 것.

이렇듯 나로부터 시작되는 자발적 윤리가 구원의 희망이 됩니다. 나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에 신경 쓰느라 진정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을 등한시하는 문화는 결코 서로의 다름을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지요.

때로는 슬픔 속으로 온몸을 던져 슬픔과 사투를 벌여 마침내 슬픔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발견해야 합니다.

정의는 어느 날 갑자기 이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의와의 끊임없는 결투를 통해서만 정의로움의 감각은 단단히 담금질 됩니다.

정의감은 정의와는 다릅니다. 정의감이 있어도 정의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불의에 타협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말지요.

정의감을 간직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때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만큼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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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아무리 바쁜 날에도 결코 멈출 수 없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시험도 없고 자격증을 딸 일도 없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믿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나를 지켜 주는 내 안의 수호천사는 교과서에도 안 나오고 문제집에도 없는, 그렇게 평생 답이 없는 인문학이라는 화두를 짊어지고 세상 모든 것과 목마른 대화를 꿈꾸는 ‘공부하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저를 매순간 지켜 주고 채찍질하고 때로는 어깨를 토닥여 주기에, 나는 아직도 ‘나 자신으로 가는 길‘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나 자신으로 가는 길이 바로 저 멀리 뒤돌아 앉은 당신을 향해 가는 길임을, 저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나에게 공부란 주어진 아픔을 견디는 수동적인 무기가 아니라 현실에 맞서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무기입니다.

저는 공부할 권리를 지킴으로써 끝내 행복할 권리를, 더 깊이 세상을 사랑할 권리를 되찾았습니다.

공부란 나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이 차가운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랑하는 길이었습니다.

현실을 바꾸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당신의 상상을 바꾸면 됩니다. 당신의 생각, 의식, 감정을 바꾸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당신의 무의식과 대화해야 합니다.

밤에 꾸는 꿈, 낮에 꾸는 백일몽, 억눌린 모든 감정,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모든 상처들과 대화를 시작해 봅니다.

난 안 될 거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억누르는 나쁜 상상과 싸워야 합니다.

무의식은 의식을 향해 지금의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답을 알려 줄 것입니다. 무의식은 ‘내가 아는 나‘보다 훨씬 총명하고 지혜롭고 관대하니까요.

『신데렐라』는 내게 없는 보물이나 생명수를 찾아 멀리 떠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잿더미에 파묻혀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던 나의 진짜 운명을 되찾는 이야기입니다.

역경을 딛고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멋진 꿈을 되찾는 동화 속의 주인공들은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아직은 끝이 아니라고. 당신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만이 진짜 끝이라고. 그 끝을 선택하는 결정권은 오직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헥토로의 용기는 자꾸만 내 삶은 무엇인가, 내 용기는 왜 이토록 작고 보잘것없는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타인의 삶에 영감을 주는 용기인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따라 하기 어려운 용기임과 동시에 우리가 진심으로 배우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용기입니다.

헥토르의 용기는 무엇을 갖거나 정복하기 위한 용기가 아니라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한 용기‘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용기를 냄으로써 명예나 체면이나 지위나 영토를 얻을 수 잇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용기를 냄으로써 그저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을 지키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용기입니다.

헥토르의 용기는 신들도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용기,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눈부신 용기입니다.

강한 자가 자신의 힘을 굳건하게 믿고 내는 용기가 아니라, 약한 자가 자신이 가진 줄도 몰랐던 숨은 힘을 모두 끌어내 마침내 스스로 최후까지 사랑의 불길로 타오르는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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