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최우선 동기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게 아니었다. 비록 이것이 하나의 최종 결과인 것은 분명하더라도 말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생각하신다. 우리가 듣기에는 지독하게 이기적이다. 그러나 전혀 이기적이지 않다.

자신의 세상이 자신을 찬양하길 원하실 때 하나님은 자아를 북돋우려 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방식으로 만물을 회복하려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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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번역하는 번역가가 되어야 비로소 만인에게 통하는 문장을 쓸 수 있다. 쓸 수 없는 사람은 번역에 대한 인식과 기술이 부족한 것이다.

잘 모르는 것이 있다면 쓰자. 자신의 말로 번역하자. 그러면 분명 자기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글이 이상한 게 아니라 각 문장의 연결 방식이나 전개 방식이 이상할 때 그 주장은 지리멸렬한 글이 되고 리듬감 있게 읽히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실의 묘사라고 하면 숫자나 과학적 데이터를 넣는 것만으로 끝내 버리기 쉽다. 그러나 진정한 리얼리티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 속에서 굴러다니는 ‘귀찮은 세부 사항’을 묘사하면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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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희생자들은 자기 몸의 감각에 익숙해지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회복될 수 없다. 깜짝 놀란 상태로 산다는 건 늘 경계 태세에 있는 몸으로 살아간다는 걸 의미한다.

안전한 기분, 편안함, 통제력을 강렬하게 느끼는 것은 자기 조절과 자기 위로, 자기 스스로를 보살피는 능력의 기반이 된다.

확고한 애착 관계가 형성되고 자기 관리 능력을 갖추게 되면, 평생 동안 건강한 대처 능력을 발휘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내적 통제 소재‘가 구축된다.

조화를 이룬다는 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소리와 움직임을 통해 공명한다는 뜻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요리하고 청소하고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는 감각의 리듬 속에 바로 그 소리와 움직임이 들어가 있다.

나는 트라우마 치료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환자가 살아남기 위해 몰두했던 노력을 경외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았다. 그 노력이 환자들로 하여금 학대의 기억으로부터 견디게 해주고, 회복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영혼까지 고통받는 그 숱한 밤들을 견디게 한다.

사회적인 지지 기반은 선택적인 요소가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그리고 이 사실이 모든 예방과 치료의 기본 골격이 되어야 한다.

언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자기를 인식하려면 기억을 하나의 일관되고 완전한 형태로 체계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식을 담당하는 뇌와 자기의 체계가 형성된 신체를 원활하게 이어 주는 연결고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트라우마를 겪으면 바로 이 연결고리가 손상되는 경우가 많다. 이 구조가 수선된 후에, 기초공사가 다 끝난 뒤에, 즉 그 아무도 아닌 것 같던 존재가 ‘누군가‘가 된 뒤에야 비로소 트라우마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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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1 1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십자가 형벌‘은 로마인이 선호했던 처형 수단이었을 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었다. 로마의 관습에서 십자가 형벌은 치욕을 의미했다. 십자가 형벌은 죄인을 철저하게 버리는 최후 수단이었고 특별히 제국의 권력과 권한을 보여 주는 악랄한 수단이었다.

예수의 고난이 구약 성경 특히 이사야 53장을 해석하는 길을 연다면 그 후에 이어지는 예수의 이야기는 교회를 해석하는 길도 열어 주는 것이다.

고난을 겪는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예수의 이야기에 참여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 자체가 구약 성경의 이야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세가지-성경, 예수, 교회의 제자도-는 함께 엮여서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는 이야기가 된다.

예수는 예언자의 숙명과 그리스도의 사명을 연결시키면서, 영광을 받기 전에 고난을 받아야만 하는 종말론적 왕이 올 것을 구약 성경이 예고했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관점에서 십자가의 치욕은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명백한 반증이었으나 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런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예수는 굴욕 당하시고 영광 받으심으로 구원의 성격을 예증하셨고, ‘굴욕적인 상황‘에 처한 굶주린 자, 타락한 자, 소외된 자들에게 구원의 길을 여셨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음은 굴욕과 자기 영광이라는 두 가지 삶의 양식을 두고 신성과 인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싸움에서 중앙의 자리를 차지했다.

메시아는 모세가 그랬듯이 자신이 제국의 폭정과 억압에서 민족을 해방할 참된 해방자임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입증해야 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십자가의 겉모습은 ‘복음‘이 아니라 부조리라고 말한다. 십자가의 메시지는 인습과 고정관념, 믿음, 행동을 뒤엎기 때문에 거대한 규모의 세계관 변화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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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신이여, 나를 구하소서"하고 소리치는 이름 없는 희생자의 피맺힌 절규와 아무 상관이 없다면, 우리는 감히 이렇게 선포할 수도 없고 선포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형언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에게 선포할 수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는 선포되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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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람 2020-03-13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둘러보다가 우연히 보게되었는데, 평신도가 읽어도 괜찮을 책일지 궁금하네요

모찌모찌 2020-03-14 06:48   좋아요 0 | URL
네~ 고난주간 설교문을 모아둔것이라서 평신도가 읽어도 좋을듯합니다^^

이 책도 좋고, 쉽고 얇은 책으로는 새라 코클리의 ‘십자가’(비아)도 무척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