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비하심이 그분의 가장 기본적인 성품이며, 생명을 구하고 존속시키는 행위에서 풍성하게 흘러 넘친다는 가장 근본적인 사실로부터 일련의 중요한 단언들이 나타난다.

또 주님이 금송아지 사건의 여파 직후에 스스로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성실‘이라는 속성을 부여하신 점도 중요하다(출 32장).

사람이 거부할 때조차 하나님은 변함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비는 사람의 행동이나 다짐에 따라 변하지 않으며 사람의 계산에 좌우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행동은 성품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불의한 자에게도 자비를 베푸신다(욘 4:2, 11, 눅 6:35-36 참고).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일이고, 하나님만이 구원의 유일한 근원이시며,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목적은 그리스도의 구속 역사라는 자비로운 사건에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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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주님은 그 도성 안에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온순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남길 것"(스바냐 3:12)이라고 약속하신다.

그들에게도 시련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마음을 하늘에 두고 사는 이들에게 시련은 더 큰 희망의 단초가 되기도 하는 법.

심판의 불길을 통과하는 동안 그들은 세상의 헛된 것들에 미혹되지 않고, 오만에 빠지지 않는 단련된 인격을 얻게 된다.

믿음의 사람들은 시련의 불꽃 속에서도 노래하고 즐거이 외쳐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힘없이 팔을 내려뜨리고 있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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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죽음을 통해 이 세상에서 희생당한 이들과 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께 버림받고 울부짖는 예수의 울부짖음은 이 세상에서 고통당한 무고한 희생자들의 울부짖음일 뿐만 아니라 그들을 고문하고 고통 속에 죽게 한 자들의 울부짖음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이 꺼림칙한 광경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그는 십자가가 그토록 과격한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무고한 자들이 당한 고통만이 아니라 고통을 가한 자들의 사악함까지 십자가에서 담당하셨다는 사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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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지극한 시대에는 희미해 보이는 빛조차 소중한 법이다. 작은 차이 때문에 피차 갈라서는 순간 고통은 영속화된다. 작은 차이는 남겨두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지혜와 여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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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큰 그림 - 하나님 나라 이야기로 읽는 성경
본 로버츠 지음, 전의우 옮김 / 성서유니온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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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을 때마다 늘 아쉽다. 


성경 전체를 큰 이야기(narrative)로,

'하나님 나라'의 큰 관점 안에서,

쉽게 접근하도록 도와주는 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하나님 나라'에 관련된 책은 많다. 

('하나님 나라'에 관련된 도서 정리를 정리해보았다. =>https://blog.naver.com/mojung01/220655213340


성경의 매우 핵심적인 주제임에도 

그 가치에 비해 관심은 적은 듯하다.


성경을 하나의 관점으로 본다는 것이 무리이지만,

그럼에도 그중에서 꼭 필요한 관점은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한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접근하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개념과 의미를 통전적으로 다루며, 

성경의 전체 맥락에서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운동하며 변화하는지를 다루면 어떨까?


여유가 된다면 꼭 그런 책을 적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우연하게 만난 책이다. 


원서의 제목을 보니 "God's Big Picture"로

이미 규장에서 『하나님 나라 관점으로 성경 꿰뚫기』라는 제목으로 

2007년에 출간되었던 책이다.  


이 책 생각보다 좋다. 

아. 어느 정도 기대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누린다는 뜻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나라를 회복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의 아들 예수를 통해 그 약속이 성취되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27)."


성경통독 전에 꼭 읽어봐야 하고.

교회 다니는 분이라면 무조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곳곳에 사소한 아쉬움이 있지만.

그 아쉬움도 '대략적인 설명', '신학적 깊이' 등과 같은 것인데 분량의 한계로 어쩔 수 없는듯하다.


아. 그래도 때로는 깜짝 놀랄만한 신학적 진술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것을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영혼과 육체 모두를 포함한다. 성경의 큰 그림을 보면 성경은 우리를 창조에서 새 창조로 이어지는 여정으로 인도할 것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셨고, 마지막에는 만물을 속량 하실 것이다(35)."


이 정도의 개념만 알더라도 

구원의 개념과 영역이 완전히 달라질 텐데.


이런 대목들도 적용거리가 풍부하다.

"하나님의 최우선 동기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게 아니었다. 비록 이것이 하나의 최종 결과인 것은 분명하더라도 말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생각하신다. 우리가 듣기에는 지독하게 이기적이다. 그러나 전혀 이기적이지 않다. 자신의 세상이 자신을 찬양하길 원하실 때 하나님은 자아를 북돋우려 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방식으로 만물을 회복하려 하신다(58)." 


아무튼,

이 책은 교회의 필독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입문서. 기본서. 


그래서 한 번은 꼭 읽어보면 좋겠다.

그리고 이해가 안 되면 다시 읽고.

성경을 통독하며 함께 읽어도 좋을듯하다.

"하나님은 창조 일을 마치고 안식하신다. 어떤 일을 완벽하게 끝내면 더는 할 일이 없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자신과 함께 일곱째 날을 살고 자신의 ‘안식‘을 공유하며 자신의 완전한 창조 세계를 누리길 원하신다 - P39

요한이 본 도시가 하나님의 임재에 초점을 맞췄던 성전의 지성소처럼 완벽한 정육면체라는 것은 놀랍다. 지성소는 작은 공간이었고, 대제사장 한 사람만 그것도 매년 한 번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도시 전체가 지성소다. 도시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각각 1만 2천 스타디아인 정육면체다(21:16). 다시 말해, 약4천 제곱킬로미터로 요한 당시 알려진 세계 전체의 넓이다. 핵심은 분명하다. 새 창조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집중되는 특별한 곳이 없고, 그분을 만나기 위해 찾아가야 하는 거룩한 건물이 없을 것이다. 전체가 성전이다. 이런 까닭에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21:22).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더 이상 거리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분을 완전하게 알 것이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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