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함을 모르는 ‘지혜‘는 다른 이들을 훈육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힘‘은 자기의 의지를 타자들에게 강제하고픈 욕망으로 이어지고, ‘재산‘은 과시적인 소비의 욕망을 부추긴다.
자랑하는 마음의 뿌리에는 열등감이 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의 칭찬이나 인정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지혜와 힘와 재산은 그들이 중요한 사람임을 입증해주는 전리품이나 마찬가지이다.
반면 내면이 충실한 이들은 굳이 다른 이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적으로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프랑스 사상가인 르네 지라르는 인간의 욕망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매개되어 있다고 말했다.
무엇을 가지고 싶다, 무엇을 하고 싶다,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말할 때 그 마음의 뿌리에는 그것을 이미 누리고 있는 이들에 대한 선망의 감정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망의 감정이 지배할 때 우리는 부자유 속에 살 수밖에 없다.
믿음의 사람들은 세인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삶을 모방하지 않는다.
그들이 모방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예레미야는 우리가 삶을 통해 경험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긍휼, 공평, 공의라는 세 단어로 요약하고 있다.
긍휼은 몸으로 표현되는 사랑 혹은 사랑으로 가득 찬 친절함이고, 공평은 회복적 정의를 가리킨다.
공의는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견결한 태도이다.
하나님은 엄중하신 동시에 부드럽고, 상처 입은 세상과 사람을 치유하고 회복시키시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신다.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은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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