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트 부인은 한국 개신교의 놀라운 성장의 원인을 한국인의 내면에 자리 잡은 유일신론으로 보았다.

한국인이 그런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다면 결코 일본의 물질주의나 다신교인 신도(神道)에 만족할 수 없었다.

한국인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한국의 역사와 언어와 영성에 밀착되기를 원했다.

기독교의 하나님 신앙은 일본의 군국주의와 물질주의에 맞선 한국의 민족주의와 영성주의에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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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함을 걱정할 것 없다. 오히려 성령께서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은총의 세계 안에 머물고 있는한 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선‘으로 귀결된다고 고백한다.

실패의 쓰라림도, 고난의 아픔도 구원이라는 보화를 빚는데 사용된다.

세상에 버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쭈뼛거리며 살 것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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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인생에서 통제할 수 있는 W의 개수에 따라, 돈은 실질적인 가치 면에서 몇 배로 늘어날 수 있다.

무엇What을 하고, 언제When 하고, 어디Where에서 하고, 누구with Whom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말이다. 나는 이것을 가리켜 ‘자유 증폭 승수freedom multipier‘라 부르겠다.

이를 우리의 기준으로 놓고 볼 때, 일주일에 80시간 일하고 1년에 50만 달러를 버는 기업 금융 전문가는 그보다 4분의 1만큼 일하면서 4만 달러를 벌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뉴리치 직장인보다 덜 ‘센‘ 사람이다.

그 돈을 이용해 누리는 라이프스타일을 볼 때, 후자가 가진 4만 달러가 전자의 50만 달러보다 더 가치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택의 권리,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힘이다.

‘언젠가‘라는 말은 당신이 꿈만 꾸다가 생을 마감하게 할 병이다. 찬반양론 리스트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또한 나쁘기는 마찬가지이다. 당신에게 어떤 일이 중요하고, ‘결국‘에는 그 일을 원한다면 지금 바로 시작하라. 단, 중간에 방향을 수정하도록!

갑옷의 모든 틈새를 고치려고 하는 대신 강점을 강화하는 게 훨씬 더 수지맞고 재미있다.

강점을 활용해 성과를 몇 배로 올릴 것이냐, 아니면 아무리 노력해 봐야 그저 그런 수준의 약점을 고쳐 나갈 것이냐 사이의 선택이다.

약점을 고치려고 애쓰느니, 당신이 가진 최고의 무기를 더 잘 활용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라.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은 한가한 시간을 과도하게 확보하는 데 있지 않다. 이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은 자유 시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데 관심을 두는 것이다.

당신이 물어야 할 것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나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나를 흥분시키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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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가치를 뒤집어 전복적인 미적 충격을 주는 데 예술의 목적이 있다면, 공예의 목적은 기존의 가치를 받아들여 더 쓸모 있고 아름답게 만들려는 데 있다.

책은 주인의 손보다 책장에 더 오래 머문다. 책을 사랑한다면서 책장을 소홀히 대하는 것을 나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침대와 의자만은 멋과 품격을 떠나 무조건 기능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만남, 단 한 번의 행동, 단 한 번의 선택이 인생을 바꾸는 경우를 종종 본다. 혁명적인 변화가 아니더라도 삶의 기류를 살짝 틀어 순항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다. 물건에서는 의자가 그렇다. 서재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혹은 서재가 마련된 사람이라면 ‘의자‘라는 새로운 선택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읽기를 강요당하는 ‘고전‘들은 우리의 생각만큼 변화를 주도할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이 고전의 위치를 점하게 되기까지의 과정도 여러모로 의심스럽지만, 프랑스 혁명과 계몽주의 서적들의 연관성에서 보듯이 나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고전이 아니라 대중소설, 잡지, 만화책처럼 일상적이고 직접적인 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우리는 책이나 영화를 비롯한 문화와 일상의 여러 경험이 우리 자신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모른다.

개별적인 분석과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인 작용 관계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 그것도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과 ‘고전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한‘ 책들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근거 없는 희망에 가깝다.

서재는 단지 책을 보관하거나 읽는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조선 선비들의 사랑방에서 보듯이 서재는 공부와 수양, 휴식과 취미활동, 그리고 교류가 이루어지는 복합적인 공간이다.

무엇보다 한 개인이 자신과 마주하며 스스로 성장하는 모든 행위를 도모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서재는 크기에 상관없으나 기본적으로 사적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거실과 같은 공용 공간에 배치된 서재는 도서관에 가까울 뿐 서재가 될 수 없다.

거재의 가구 배치는 사랑방을 참조하면 유용하며,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주로 머무를 책상과 메인 책장은 멀리 떨어뜨릴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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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쟁은 한문 용어 대 한글 용어의 대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울의 교회연합 정신을 가진 보다 포용적인 집단과 평양에 중심을 둔 개신교의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극단적 개신교‘ 집단 간의 갈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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