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가치를 뒤집어 전복적인 미적 충격을 주는 데 예술의 목적이 있다면, 공예의 목적은 기존의 가치를 받아들여 더 쓸모 있고 아름답게 만들려는 데 있다.
책은 주인의 손보다 책장에 더 오래 머문다. 책을 사랑한다면서 책장을 소홀히 대하는 것을 나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침대와 의자만은 멋과 품격을 떠나 무조건 기능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만남, 단 한 번의 행동, 단 한 번의 선택이 인생을 바꾸는 경우를 종종 본다. 혁명적인 변화가 아니더라도 삶의 기류를 살짝 틀어 순항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다. 물건에서는 의자가 그렇다. 서재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혹은 서재가 마련된 사람이라면 ‘의자‘라는 새로운 선택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읽기를 강요당하는 ‘고전‘들은 우리의 생각만큼 변화를 주도할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이 고전의 위치를 점하게 되기까지의 과정도 여러모로 의심스럽지만, 프랑스 혁명과 계몽주의 서적들의 연관성에서 보듯이 나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고전이 아니라 대중소설, 잡지, 만화책처럼 일상적이고 직접적인 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우리는 책이나 영화를 비롯한 문화와 일상의 여러 경험이 우리 자신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모른다.
개별적인 분석과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인 작용 관계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 그것도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과 ‘고전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한‘ 책들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근거 없는 희망에 가깝다.
서재는 단지 책을 보관하거나 읽는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조선 선비들의 사랑방에서 보듯이 서재는 공부와 수양, 휴식과 취미활동, 그리고 교류가 이루어지는 복합적인 공간이다.
무엇보다 한 개인이 자신과 마주하며 스스로 성장하는 모든 행위를 도모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서재는 크기에 상관없으나 기본적으로 사적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거실과 같은 공용 공간에 배치된 서재는 도서관에 가까울 뿐 서재가 될 수 없다.
거재의 가구 배치는 사랑방을 참조하면 유용하며,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주로 머무를 책상과 메인 책장은 멀리 떨어뜨릴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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