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으므로 반드시 학습을 해야 한다.

인간은 여타의 생물과는 다르게, 학습한 것을 혼자만의 것으로 간직하지 않고 공동체 활동을 통해 나누며 그것을 세대를 이어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도구가 사용되는데, 문자로 이루어진(더러는 이미지가 포함된) 책은 가장 널리 이용되는 매체이다. 그런 까닭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저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행위라 할 수 있다.

책읽기의 본래 목적은 지식을 얻는 것이다. ‘지식을 얻는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 머리 속에 지식을 입력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책의 내용이나 저자의 논지가 자신의 생각 속으로 들어와 자신의 것처럼 구사되고 활용될 수 있다는 것, 즉 자기화하는 것까지 의미한다.

책읽기를 자기화할 수 있게 잘 읽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내 대답은 이렇다. 자신이 읽은 책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것을 전제하고 읽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은 후 책을 그대로 들여다보면서 설명을 할 수는 없으니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할 텐데, 이것은 서평 쓰기로 이어진다.

서평을 쓰고 난 후에는 자신이 쓴 서평을 자신이 다시 읽음으로써, 적어도 그렇게 쓴 것만큼은 자기화할 수 있다.

인류의 생존에 필요한 지적인 책읽기가 한 개인에게는 자신의 생명을 빠르게 소진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식 탐구의 궁극 목적인 진리-그런 것이 있다면-에 이르는 가장 명시적인 방법은 지속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책읽기 뿐이다.

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인간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책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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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말하는 신은 역사 안으로 침투하여 들어오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또한 철학의 신은 자신을 나Ich로서 지칭하시며, 그리고 이런 나로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너Du로서 존재하는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사유를 통해 형성된 신은 인간의 사유를 통해 도출된 하나의 사유대상일 뿐이지요.

이는 지식을 위한 운동이며, 인간의 자발적인 행위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운동과 자발성이 여기서는 인간이 전적으로 고안해낸 정신의 일부이지, 결코 하나님의 일부에 속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지닌 사유능력을 통해서 도달하게 되는 하나님은 전혀 우리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하나님은 인간이 지닌 사유의 능력 밖에서 자신의 고유한 자발성과 운동을 통해서 인간이 지닌 사유 능력의 범위를 깨뜨리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상이 만들어낸 신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오히려 고안된 신일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고결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을 거룩한 하나님으로 인정하여야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성서의 하나님은 다스리는 하나님이며, 또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다른 존재에게 자신의 영광이 돌아가도록 두지 않으시며, 오직 당신 한 분만이 영광 받기를 원하십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성서의 주요 동기Haupmotiv가 바로 하나님의 다스림Herrschaft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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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속의 시간‘을 살고 있지만, 아름다움을 향한 역사의 걸음은 느리기 이를 데 없다.

많은 이들이 현실에 절망한다. 하지만 인간의 소명은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지금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다.

가능성을 따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시작이다. 심고 물 주는 것은 우리의 몫이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작은 시작을 부끄러워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건재하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신다면 대체 주저할 것이 무엇이랴.

세상에는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교회와 죽은 교회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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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전달, 즉 생각과 감정을 효과적이면서도 황홀하게 전달하는 일이야말로 문장이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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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힘은 갑자기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느끼는 안도감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아무 조건 없이 걱정해주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위로의 본질은 누군가 내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내면의 에너지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임을.

책을 읽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자유, 그것은 스스로 한 세계를 창조해낼 수 있는 최고의 창조성을 오직 문장의 힘만으로도 이루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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