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산다는 건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의미.

원하지 않은 때에 바란 적 없는 방식으로 상대가 불쑥 내 영역에 들어오는 게 일상이다.

그런데 그때 자신의 것을 내어주면 알게 된다. 사는 건 어떤 지점을 향해 바삐 달려가는 게 아니라 매 순간을 사는 것임을.

함께일 때 좀 돌아가게 될지언정 혼자라면 가보지 못할 세상에 닿기도 하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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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생존하는 데는 중요한 감정일지 몰라도, 진실을 대면하기에는 방해가 되는 감정입니다.

분노나 슬픔 등 다른 부정적인 감정에 비해 사람들이 유독 감추고 싶어 하는 감정이기도 하고요.

페미니즘 교육은 그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표준이 아닌 약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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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민들과 더불어 그들에게 합류한 무리가 구별되었다는 것은 공동체의 경계선을 강조했다.

그런 경계선은 누가 유월절을 경축할 자격이 있는지를 따지는 방식의 제의적 순수성으로 표현되었다.

공동체를 적절히 규정하는 것은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자신들의 고유한 경계선을 분명히 갖지 못한 집단은 주변의 더 큰 문화세력 안으로 흡수되어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곤 했다.

하나님은 순수한 예배를 요구하셨고 그것을 더럽히는 자를 처벌하셨다.

포로기가 지나면서 제사장들의 가르침과 페르시아 법령이 왕정의 권위를 대치했고, 이제 율법은 성전으로부터 독립된 책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제 서기관들은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율법책을 펴들고 낭송한 후 제사장들이 싫어할 방식으로 해석을 내릴 수 있게 되었으니, 이스라엘 왕정의 부재로 인해 성전의 내부적 힘이 증가할 바로 그 시기에 다른 편에서는 토라의 해석에 바탕을 둔 새로운 권력의 중심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런 새로운 상황은 후대에 바리새파 운동과 예수 운동을 위한 길을 터주었다.

기원전 175년에 셀레우코스의 왕좌에 오른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그리스 문화를 유대에 강제하고 유대인의 종교를 금하는 치명적 실책을 저지른다.

유대인들은 이미 수백 년간 외세의 지배를 견뎌냈지만, 이것만큼은 너무 지나친 일이었다.

토라를 불법화하는 것은 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짓밟고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박탈하는 행위였다.

유대인들은 훗날 마카비로 불리게 되는 한 제사장 가문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이후 수십 년간 계속된 전쟁에서 유대인들은 먼저 종교적 자유를 얻은 다음 정치적 독립을 이루고 마침내 국가를 되찾게 된다.

그러나 그 이후에 들이닥친 정복자는 너무나 강했다. 기원전 63년에 로마가 예루살렘을 정복함으로써 유대인의 독립은 종국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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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을 택하든 아쉬움은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걸까. 만일 그러하다면 때마다의 아쉬움에 마음을 오래 내어주지 않아도, 흘깃 쳐다보고는 내버려두어도 괜찮을 것이다.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상황을 인지하고 감응하기에 상대는 내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나아가 과민 반응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입장에 지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하라리.

엄밀히 말해 내가 이렇게 느끼는 데에 다른 사람의 동의나 허락은 필요치 않다.

내 감정은 타당성을 가리려 들거나 가치 판단을 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슬프구나, 속상하구나, 기분이 나쁘면 기분이 나쁜 거다.

슬프면 슬퍼하고, 속상하면 속상해하고, 기분이 나쁘면 기분 나빠하면 된다. 쉬운 일이다. 그런데 때로 쉬운 일이 가장 어렵다.

여러 특성을 지닌 이대로가 나이고 그게 내 개성임을. 사는 동안 단점이라 여기는 특성을 모조리 고쳐 완전무결한 사람이라도 되어야 하는 게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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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었든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항상 비교의 작업이다.

우리가 자신과 타자 간의 비교를 멈출 때, 모든 것이 자명해 보이는 폐쇄된 시스템 안에서 움직일 때, 우리와 다른 사고 및 생활방식에 자신을 개방하지 않거나 최소한 그것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 우리는 곧바로 무지의 심연으로 떨어질 것이다.

아울러 비교의 대상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 자체를 바꾸기를 꺼릴 때 우리는 건전하고 통찰력 있는 비교작업을 수행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기독교와 유대교 혹은 다른 종교간의 비교가 열매를 맺으려면 비교하는 사항들을 모두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제2성전의 건립은 이스라엘 역사와 사회 그리고 종교에서 새로운 시작이었다.

제2성전기의 시작과 더불어 이스라엘은 바로 직전의 기간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로마인들이 기원후 70년에 제2성전을 파괴했을 때, 이스라엘은 다시 한번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성전의 상실만이 아닌, 유대인의 삶과 사회의 모든 영역에 심오한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이었다.

제2이사야가 기대한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넘어서는 보편적 구원이었는데,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을 본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야말로 참된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관념은 제2이사야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주제인 유일실론과 맞닿아 있다. 제2이사야의 유일신론은 명쾌하고 강력하다. 그것은 제2성전기와 그 이후의 신학을 지배하는 명제 즉 세상에는 단 한 분 하나님, 창조주이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그분만이 계신다는 사상을 강조한다.

언약 관계에서 하나님의 역할과 관련하여 헤세드(hesed)와 에메트(emet)라는 두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헤세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을 말한다.

"한결같은 사랑"이나 "친절한 인애"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이 개념은 이스라엘이 언약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유익을 나타낸다.

에메트는 "신실함"을 말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이 약속한 것을 이루시는 분임을 표현한다.

따라서 언약 관계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의지할 수 있다. 하나님은 끝까지 신실하고 믿음직한 분이시다.

족장들이 만난 하나님은 "엘 샤다이"(El Shaddai)나 "엘 엘룐"(El Elyon)과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졌다(예. 창 14:20; 17:1; 35:11).

이것은 그들이 각 족장의 시대마다 부족의 신을 섬기다가 족장들의 시대가 다 흘러간 후에야 그 신들이 한 하나님 야웨의 현현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뜻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족장들의 이야기는 본래 독립된 전승들이었다가 후대에 유일하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한 가문의 세대들을 연결하는 내러티브로 합쳐진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자기 이해 및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진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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