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는 처음부터 ‘경‘經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어의 궁극적인 신뢰성과 고정된 정의의 가능성에 대한 의심, 절대적이고 불변적인 진리와 규칙의 부인, 성인의 마음속에 의미와 권위를 위치지우기, 더 넓은 진리를 시사하는 듯한 구체적인 명제들로 이루어진 ‘지혜의 덩어리‘였을 뿐이다. 여기에 주석이 덧붙어야 비로소 그것은 경이 된다. 이는 바로 "경전과 주석의 상호의존"이다.

정치 사상이라는 텍스트는 정치적 시공간이라는 콘텍스트에서 만들어지며, 이는 거의 일대일로 대응한다. 이를 좀더 포괄적으로 말한다면 삶의 조건의 변화에 정치적인 것의 개념(또는 제일 원리)의 변화가 대응한다는 것이며, 이를 세부적인 질문으로 다시 만든다면 ‘정치적 공간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시민-참여자의 열정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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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에게 진실을 보는 눈은 없단다. 그들이 가진 것은 눈앞에 보이는 걸 보는 눈이지.

그리고 진실을 보는 눈을 가진 현명한 사람들도 대개 주변인들의 반응을 좇아 눈에 보이는 것을 믿게 된단다.

그러니 사람들이 결국 알아줄 것이라느니, 세상이 결국 모든 것을 풀어줄 것이라느니 하는 환상을 품지 말거라.

비록 너의 잘못이 없더라도 사람들의 비난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면, 그게 잘못인 거야.

그렇기에 네가 스스로 그 오해를 풀어야 한단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문제를 풀어야 해.

나대지 말거라. 자신의 흥과 욕망에 도취되어 불타는 그에게 모든 사람의 관심이 향하게 내버려두거라.

그저 머지않아 날아올 비수가 그에게 향하는 것을 바라보거라. 그리고 너는 그냥 네가 뜻한 바를 소리 없이 이루거라.

삶의 짐이 없어질 것이라는 꿈을 버리거라. 그건 헛된 기대이니까. 짐의 무게가 그나마 적게 느껴질 때, 흐르는 땀을 닦거라. 또 다시 짐이 무거워질테니까.

상대에 대한 배려는 문제 대부분을 해결한단다.

누군가와 문제가 생겼다면, 네가 그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지 않았는지 돌아보거라.

네가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다면 이에 대한 사과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해결된단다.

네가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았더라도, 상대에게 배려하며 문제에 다가선다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다른 사람들에게 모질게 대하지 말거라. 둥글둥글하게 웃으며 지내는 거야.

어차피 같은 세대로 태어나서 힘든 세상 살아가는 또 다른 사람일 뿐이거든.

미리 마음에 벽을 쌓지 말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거라. 시간이 지나면서 너와 잘 맞으면 좀 더 다가서고, 너와 잘 맞지 않으면 그때 멀리해도 늦지 않아.

쓸데없는 노력은 하지 마라. 네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인내하며 해라.

독화살을 맞은 와중에 독화살을 어디서, 누가, 왜 쏘았는지 생각하고 있다가는 죽기 딱 좋다.

독화살을 맞았을 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독화살을 먼저 뽑아내고, 치료하는 거야. 이것이 어리석음과 현명함의 차이란다.

문제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참을 줄 알아야 해.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자에 대한 복수는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단다.

모르는데 아는 척하지 말거라. 가난한데 부자인 척하지 말거라. 매사에 척하지 말거라.

척하는 행동은 거짓일 뿐 아니라, 너 자신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힌단다. 순간의 만족과 안도를 줄진 몰라도, 다가오는 자존심에 대한 상처에 앞서 찾아온 사탕발림일 뿐이지.

너의 부족함과 너 자신과 남을 속인 행동은 네 자존심에 큰 생채기를 낼 거야.

너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줘라. 너는 아빠의 아들이고,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빠에게 너는 가장 진귀한 보석이다.

착하게 사는 것은 좋다. 착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은 좋지. 하지만 호구가 되지는 말거라. 만만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돼.

그러니 천칭을 바로 잡거라. 남에게 인정받기를 어느 정도 포기하거라. 일부러 사서 욕을 먹을 때도 필요해. 그 외의 방법은 없단다.

세상에는 미친 인간이 정말 많단다. 그리고 미치진 않았어도 어리석은 사람이 정말 많지. 또한 어리석진 않아도 참되지 못한 사람이 정말 많고.

세상 사람 대부분은 미치거나 어리석거나 참되지 못한 이들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을 만나도 놀라거나 당혹해하지 마라.

마음이 쉬고 싶어 하는데, 억지로 일하지 말거라. 마음이 놀고 싶어 하는데, 억지로 공부하지 말거라.

계속 억눌린 마음은 언젠가 터져버리게 마련이다. 그때가 되면 너 자신의 자존심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생기고, 삶을 바라보는 너의 눈이 흐릿해지며, 삶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이 그 길을 잃어버리게 된단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너의 마음을 달래고, 감싸 안고, 어루만지거라. 세상에서 네가 가장 사랑해줘야 할 사람은 너 자신이다.

사소한 기쁨들을 만들어라. 너의 인생이 그것들로 가득 찰 때까지 사소한 기쁨들을 만들어라.

당황하지 말거라. 조바심을 내지 말거라. 침착함과 이성을 잃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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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가 가르치는 것은, 아버지의 신비는 아들을 통해서 역사적으로 계시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통한 이런 계시는 오직 성령을 통해서 인간이 인식할 수 잇다는 것입니다.

성서는 이른바 세 개의 신적인 위격을 서로 나란히 옆에 놓는 것nebeneinander이 아니라, 오히려 차례차례 연달아hintereinander 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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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에는, 책을 읽고 있는 자신과 그러한 자신을 바라보는 스스로를 분리하는, 이른바 ‘자아의 분열‘을 가끔씩 시도해야만 한다.

책에 지나치게 몰두하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체와 부분을 동시에 취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 사실 ‘동시에‘ 하는 일은 어렵다.

몰두해서 책을 읽은 다음에 한 걸음 물러서서 전체를 훑어보면서, 읽을 때는 몰두했지만 다시 살펴보니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한 부분들을 검토하면서 전체적 조망을 갖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책 읽는 힘이 늘어나는 것은 책‘만‘ 많이 읽는다고 해서 가능하지 않다.

책 읽는 자신이 책 이외의 것에서 쌓아 올린 경험도 중요하다. 인간사에 대한 깊은 고뇌와 통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험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만 책 읽는 힘을 기르기 위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꼭 해야 하는 것은, 읽은 것을 정리하고 글로 써 보고 여러 사람 앞에서든 단 한 사람 앞에서든 자신이 읽은 바를 말해 보는 것이다.

또한 책 읽는 힘이 늘어났음을 확인해 보는 방법 중의 하나는 예전에 읽었던 책을 예전과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다시 읽어 보는 것이다.

고전으로 알려진 책들은 그 안에 많은 해석의 여지와 이야기가 들어 있으므로 ‘다시 읽기‘를 통해 책 읽는 자신의 현재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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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언제나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사실에 근접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언제나 해석되어야만 이야기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석은 상상과 생각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이지요.

상상, 해석, 재현, 변화는 제가 여러분에게 뉴스를 이해하는 주요한 열쇠말로 제안하는 것입니다.

뉴스는 사실을 재현하지만 온전히 재현하지 못하기에 해석되어야 하고, 모두가 비슷하게 각자의 뉴스 해석을 공유할 것이라고 상상되어야 합니다.

뉴스는 우리 사회를 그리는 주요한 상수이며, 우리 사회를 변화하는 주요한 변수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권력을 더 많이 가진 이들이 언론, 법, 미디어, 교육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할 수 있는 수단을 더 많이 가지거나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됩니다. 여론이 되고 그에 맞추어 현실이 구성되며 변화합니다.

이데올로기는 사회를 바꾸고, 바뀐 사회는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하는 되먹임이 발생하지요.

이 와중에 사회적 약자의 이익과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눈 밖에 나거나, 우리의 현실 속에서 살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경우 사회적 약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다른 집단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현실과 마주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고요.

강북에 살며 강남을 동경하거나, 여성이면서도 남성에 의존하는 여성을 당연시하고, 노동자이면서도 다른 노동자의 파억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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