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무기력해 보인다.

거짓과 악의와 추함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땅 속에 묻힌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고, 짓눌렸던 선함은 반드시 솟아오를 것이고, 외면당하고 있던 아름다움이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물들이게 될 날은 반드시 온다.

힘을 내자.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상속받은 사람답게 절망의 땅에 희망을 파종하자.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부활의 증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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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알아야 할 점은 이것이다.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 그에 따른 권력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법을 취해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보통 나를 최대한 멋있게 보여주어 내 아이디어를 가지고 상대를 흘리려고 한다.

우리는 지나간 업적을 한껏 부풀리고 내가 대단한 것을 갖고 있다고 약속한다.

정직이 최선이라고 믿으며 상대에게 호의를 부탁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모든 관심이 우리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그런 믿음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지금처럼 자기 몰두가 점점 더 심해지는 세상에서 이런 전략은 상대방의 관심이 더 내부로 향하게 만들고, 나의 관심사가 아니라 그들의 관심사에 더 집중하게 만들 뿐이다.

존슨의 스토리가 보여주듯이 영향력과 권력을 얻는 최선의 방법은 정반대로 가는 것이다. 관심의 초점을 상대에게 넘겨줘라. 상대가 이야기하게 만들어라. 이 쇼에서 상대방이 스타가 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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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시편」은 기원전 1세기의 일부 유대인들이 하스몬 왕가의 통치와 로마인들의 도래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겼지만, 그들의 제사장들과 통치자들이 토라를 저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동료 유대인들 가운데 있는 악인들이 로마인들의 손에 고통당하는 것은 정당한 심판이라고 받아들이면서도 거룩한 도성과 성전이 폼페이우스에게 짓밟혔다는 사실에 애통해했다.

이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물려받은 성스러운 전통에서 위로를 얻었다.

또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과, 세계를 하나님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시온 전승에서 희망을 찾았다.

그들에게 다윗의 자손 메시아의 도래는 이스라엘에 주신 신성한 약속의 성취이자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그들을 박해하는 자들의 멸망을 뜻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다윗 당시의 영광을 회복하는 날을 꿈꾸며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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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 공동체는 분파 즉 동시대의 종교적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종교 권력을 확보한 기득권 세력에 맞서는 집단이었다.

쿰란의 사람들은 사해 변방을 찾아 은둔하면서 주의 재림을 대망했다.

그들은 그 땅의 죄를 씻는 대속의 제물을 드리고 종파의 창시자인 의의 교사와 공동체의 운영자들인 사독 계보 제사장들의 성경 해석에 따라 토라에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주의 길을 예비했다.

쿰란의 제사장적 성격은 사독 계보의 제사장들이 주도한 계층구조는 물론 속죄와 정결을 강조한 그들의 신학과 제의 제도에 뚜렷이 드러난다.

쿰란 종파의 묵시적 세계관은 임박한 마지막 전투에 대한 기대, 자신들의 종과 창시자에게 비의적 계시가 주어졌다는 믿음, 그리고 명확히 구별된 선과 악의 투쟁이 지상의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초자연적 세계에 관한 상세한 믿음 등으로 표현된다.

사해사본의 발전과 해석은 일각의 예언처럼 기독교에 타격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사해사본을 통해 공개된 풍부한 정보들은 기독교의 이해를 위한 비교연구는 물론 기원전 2세기 중엽부터 기원후 1세기에 이르는 기간의 유대교를 조명하는 풍부한 광맥을 제공했다.

사실 복음서가 그리는 예수가 당시 유대인들이 가진 메시아의 "임무 내역"과 너무나 동떨어진 존재였다는 점에서 당대의 유대인들이 그를 메시아로 믿지 않은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게다가 초기 교회가 점점 비유대화되고 토라의 영향력에서 멀어지면서 유대인들의 회심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토라를 거역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초기 교회는 대다수 유대인이 이 문제를 자신들과 달리 바라본다는 사실 자체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방법이 성경으로부터 증거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주요 전략 중 또 다른 하나는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유대인과 그 지도자들이 저열한 동기에서 예수에 맞서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위선자들로,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음흉한 모략가들로 그려졌고, 저잣거리의 유대인들은 조작에 쉽게 넘어가는 무지한 자들이자 악한 지도자들과 마귀들의 도구로 전략했다.

만일 우리가 사복음서에만 의존해 제2성전기 유대교를 파악한다면 틀림없이 매우 흉한 모습이 그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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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할 사항이 있다. 누구나 그렇듯 당신도 스스로 이성적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성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능력이 아니다.이성은 훈련과 연습을 통해 습득하는 능력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당신의 생각과 의사 결정에 침투하는 감정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자문하는 연습을 하라.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고 분한 마음이 드는가? 관심을 얻고 싶은 이 끝없는 갈증은 대체 어디서 오는가?

일반적으로 말해서 애초에 우리가 길을 잘못 들게 되는, 그래서 잘못된 결정이나 오판을 저지르게 되는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우리의 뿌리 깊은 ‘비이성적 성향‘이다. 이는 우리 마음에서 정확히 감정이 지배하는 부분 말이다. 이 성향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맹점 같은 것이랄까.

진보나 기술이 우리의 본성을 바꿔놓지는 않았다. 기술과 진보는 그저 감정의 형태와 그에 따른 비이성적 행동의 유형을 바꿔놓았을 뿐이다.

우리의 사고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약한 감정은 우리 자신의 충동에서 나온다. 예컨대 즐겁고 편안한 생각을 하고 싶은 욕구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특정한 순간에 찾아와 폭발적으로 고조되는 강한 감정은 보통 외부의 무언가에 의해 촉발된다.

‘건강한 자기도취자‘가 되기 위해 변신을 시작해야 한다. 건강한 자기도취자는 더 강인하고 회복력 있는 자아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늘 눈금의 가장 높은 곳 근처에 머문다. 이들은 상처를 입거나 모욕을 당해도 남들보다 빨리 회복한다.

남들의 인정도 별로 필요하지 않다. 살면서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한계가 있고 단점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런 단점을 웃어넘길 수 있으며 모욕적인 말도 굳이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큰 그림에서 볼 때 여러모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들의 자기애는 더 현실적이고 온전하다. 이렇게 내면이 단단하기 때문에 이들은 더 쉽게, 더 자주 외부로 관심을 돌린다.

공감은 단순한 마음의 상태가 아니다. 공감은 타인과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식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내가 정말로 남들을 이해하고 있다고 늘 생각하며 지내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남들을 순식간에 판단해 어느 한 유형에 집어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세는 오히려 내가 아주 무지하며 타고난 나의 편향 때문에 사람을 부정확하게 판단할 거라고 가정하는 태도다.

우리 주변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에 맞는 가면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 가면을 현실로 오인한다.

사람을 보자마자 판단하는 태도를 이제는 그만 포기하라. 마음을 열고 사람을 새로운 시선에서 보라.

무언가가 있고 없고는 우리에게 원초적 차원에서 영향을 준다.

무언가가 너무 많으면 숨이 막히고, 약간 모자라면 관심이 간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소유하고 싶은 끊임없는 욕망은 인간만이 가진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 욕망의 대상은 우리의 판타지에 투영된다. 당신 주위에 약간의 미스터리를 만들어내라.

사람들이 당신이 다시 오길 바라고 당신을 소유하고 싶도록 ‘전략적 부재‘를 이용하라.

상대의 삶에서 가장 부족한 것, 그가 가지면 안 되는 것을 그의 눈 앞에 들고 흔들어라. 그러면 상대는 미친 듯이 그것을 갈망할 것이다.

언제나 옆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는 법이다. 당신이 처한 환경, 당신의 운명을 적극 끌어 안아 당신 안의 약점을 극복하라.

사람들을 평가할 때는 시야의 넓고 좁음을 기준으로 삼아라.

자기 행동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생각 없는 반응을 내놓는 데 그치는 사람과는 엮이지 마라.

그런 사람은 당신에게도 그런 기운을 전염시킨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사건들을 좌우하는 더 큰 흐름을 주시하라.

장기적 목표를 시야에서 놓치지 마라. 시각을 넓히면 그 어떤 목표든 이룰 수 있는 인내심과 명료한 관점이 생길 것이다.

우리는 현재로부터 ‘거리‘를 두고, 문제의 근원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상황의 전체 맥락을 더 ‘넓게‘ 바라보고, 미래를 더 ‘길게‘ 내다보아야 한다. 우리가 한 행동의 결과와 나의 장기적 우선순위까지 고려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현재를 즐기고 지나가는 기쁨을 만끽하라. 당신은 수도승이 아니다.

현재의 흐름과 단절되지 말고, 삶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인식하라. 그러나 장기적 목표에 도달하고 역경을 극복하는 것에서 더 큰 기쁨을 끌어내라. 이렇게 시간과 더 큰 관계를 맺는 것은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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