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지람 한 마디 없이 예수님은 제자들을 식구로 맞아들이신다.

옳고 그름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비판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마음이 무너진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를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해주는 타인의 지지와 사랑이다.

받아들여짐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자기 안의 상처를 보석으로 가꿀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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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모찌모찌 > 현대역사적예수 연구에 대한 훌륭한 입문서!

벌써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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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그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혈통으로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유대인이었으며 자기 민족의 성스러운 전통에 깊이 경도된 사람이었다.

예수가 동시대의 다른 유대인들과 빚었던 갈등은 "예수 대 유대교"의 구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갈등은 제2성전기 유대교 내에서 한 유대인이 동시대인들과 때로 의견이 일치하고 때로 불일치하는 상호작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런 갈등이 예수를 동시대 유대인들과 구분하는 차이점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를 유대인답게 하는 양자 간의 유사성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제2성전기 유대교는 그 신조와 행습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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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의 폭정에 맞서 유대인들은 총독에게, 때로 그보다 상위에 있던 시리아의 집정관대행에게, 심지어 황제에게도 항의를 표시했고, 칼리굴라의 법령으로 인한 위기가 닥쳤을 때는 사실상 농노 총파업을 시행했다.

기원후 1세기의 굵직한 사건들을 살펴보면 불의, 항의, 억압, 항쟁이라는 사중 패턴을 감지할 수 있다.

불의가 악화되면서 평화롭던 항의가 폭력을 수반하며 격해지고, 항의가 거세지면 억압도 격해졌다.

마침내 플로루스 치하에서 억압이 극에 달했을 때, 백성들은 로마 통치를 전적으로 부인하고 본격적 항쟁에 들어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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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숨을 통해 제자들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희망의 사람이 되었다.

이제 그들이 할 일은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사는 것이다.

복음을 전파하고, 연약한 사람들의 힘이 되어주고, 갈등하던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사명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때로는 우리의 호의가 싸늘한 거부에 부딪힐 때도 있고, 선한 노력에 결실이 없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돌이켜 희망의 샘이 되신 예수님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새겨진 상처를 보아야 한다.

그 상처에 접속될 때 우리는 절망의 덫에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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