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습다는 게 대체 뭡니까? 사람이 우습거나 우습게 보이는 게 어디 그리 드문 일인가요? 더구나 요즘은 재능 있는 사람들이 거의 하나같이 자신이 우습게 보일까봐 끔찍이도 전전긍긍하는데, 바로 그 때문에 불행한 겁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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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해석학은 해석 공동체의 주어진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 P19

세계 신약 학계에서 이슈가 되는 주제들도 실은 어떤 구체적인 역사적, 시대적 ‘상황들‘ 속에서 형성되는 것임을 기억한다면, 과연 지역 교회로서 한국 교회가 풀어야 하는 신학적, 신앙적, 교회적 차원의 문제는 무엇이며, 또한 그런 문제들에 대한 성서적 ‘응답‘을 어떻게 나름대로 찾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 역시, 한국 교회에 속한 성서학자의 마땅한 책임일 수밖에 없다. - P19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 속에서 눈에 두드러지지 않을 수 없는 ‘조직‘ 혹은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 P19

사실 바울서신들은 ‘선교적‘ 서신이라 할 수 있다. 논증이 많이 필요하지만, 바울서신들은 대체로 유대교와의 대립과 설득의 과정 속에서 종말의 새 백성인 교회의 정초(定礎)를 놓는 단계에서 기록된 문서들이다. - P21

공동서신이 바울의 복음을 잘못 이해한 자들을 전적으로 겨냥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바울의 이신칭의의 복음에 따라 기초를 세우고 그 위에 서기 시작한 교회들이 ‘세상 속에 자리 잡아 가는‘ 과정에서 매우 유익하게 사용되었던 서신들이었을 수 있다. - P21

당시 역사적 예수에 대한 목격저(eye-witness)이었던 사도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는 시점에서 ‘미루어진 종말론‘(delay of the Parousia)은 교회적으로 매우 큰 문제가 되었을 상황도 한몫했을 것이다. - P21

공동서신의 정경화 과정에서 새로 발견된 바에 따르면, 공동서신 7개의 책들은 오히려 바울서신과 다른 전통에 서 있는 가르침을 교회에 줌으로써, "바울서신들이 제공하는 것과 균형을 맞추며, 또한 사도적 증언들에 대한 더 폭넓은 기록들을 제공하기 위해 함께 묶여진 것"이라고 한다. - P28

공동서신은 애초부터 바울서신의 신학과 충돌되도록 의도된 것이 아니었으며, 공동서신의 신학은 하나의 통합된 신학으로, 초대 교회 안에서 바울 신학과는 또 다른 중대한 전통과 유산을 대표한다는 주장이다. - P28

공동서신의 맨 처음은 야고보서의 ‘인내‘에 대한 격려로 시작해서, 유다서의 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21절)고 한 것과도 짝을 이룬다. - P31

공동서신의 책들이 그 안에서 배열된 순차를 눈여겨보면, 야고보를 필두로, 베드로, 그리고 요한이 순서대로 나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야고보, 베드로, 요한, 이 셋이 모두 예루살렘 교회를 대표하는 위대한 사도들이었다는 사실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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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는 인간성의 불가사의함이 기묘한 방식으로 돌출되는 모습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이는데 거기에는 무언가 심히 우려스러운 것, 불안한 것이 있다. - P12

모든 사건이 평범한 잿빛 일상 속에서 벌어진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그렇기때문에 잿빛 일상의 베일 뒤에 감춰져 있는 인간 본성,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설고 어두운 인간 본성의 얼굴이 더 위협적이고, 더더욱 진실하다. - P13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방금 전까지는 똑바로 잘 걷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휘청하면서, 달리는 기차 바퀴 속으로 빨려 들어갈것 같은 아찔함을 느낀다. - P14

도스토옙스키 작품 속의 인물들과 만나는 느낌도 이와 비슷하다. 그들은 마치 환상 속의 인물들처럼 낯설고 거대한 모습으로, 그러나 기묘하리만큼 친근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다. - P14

마치 우리의 분신分身처럼 똑같은 방향으로 밀착해서 걷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혼란에 빠져 자기 걸음을 걸을 수 없게 된다. - P14

우리는 그 인물들과 절대로 얽히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들의 삶에 나타난 수수께끼 속에서 내 삶의 수수께끼가 나를 응시한다. - P14

뭐라 말할 수 없는 강렬함으로 뚫어질 듯 마주본다.
당황한 우리는 묻게 된다. 지금 우리는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
물론 우리는 묻기 전에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만난 것은 바로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인간과 만났다. - P14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 전체에 끔찍한 위기가 닥쳐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 위기는 구원의 가능성을 가득 머금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이런 음성이 들려온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 P22

도스토옙스키는 우리에게 완결된 하나의 답이나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의 해법은 거대한 해체 속에 있다. - P23

그의 대답은 질문, 곧 인간 존재에 대한치열한 질문, 오직 하나의 질문이다. 그러나 그 질문에 자신을 내맡길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그 질문이야말로 한 아름의 대답이라는 사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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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서 야기되는 상황적합성이란 바울이 자신의 다양한 청중들이 직면하는 여러 모양의 상황 안에서, 적절하게 기능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복음의 통일성에 따라 구체적인 적용을 요구하는 것이다. - P13

바울의 통일성 중심은 종말론적인 주형鑄型과 형식뿐 아니라 앞으로의 방향성에 의해서도 나타나는데, 이것이 그의 사고에 추진력을 부여한다. - P15

그의 박동치는 사상의 기질은 현재의 모든 유사함이나 모호함이 영원한 평화의 기쁨으로 돌아서는 그 순간까지 도무지 쉬지 않았다. 그 순간은 하나님의 승리가 도래하는 절정의 순간이다. - P15

바울의 희망 신학은 그의 ‘하나님중심’ 사상의 중요성에 방점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의 완성으로서 그리스도-사건Christ-event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과 승리가 실현되는 것으로 막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롬 5:1-10; 8:17-39; 고전 15:1-58) - P16

신론theo-logy을 선호하는 바람에 기독론christo-logy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게 될지언정, 우리는 묵시 사상과 ‘하나님중심주의’ 간의 필연적인 연결을 의식해야만 한다. - P16

바울 사상의 하나님중심적 측면은 우리 세계에 공존하는 유대교 및 다른 비기독교와 기독교 사이의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특히 성서신학의 새로운 이해에 큰 영향을 미친다. - P17

오늘날 ‘성서적인 신학’에 관한 책들이 거의 사라졌지만, 신·구약의 분리된 신학은 계속해서 번성하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 P17

구약의 하나님중심주의가 역점을 두는 강조점들이 바울과 같은 신약성서 저자가 역점을 두는 비슷한 강조점들과 결탁할 때, 신·구약 양자의 계약은 희망의 범주, 즉 "모든 육체가 주의 영광을 보는" (사 40:5) "새 하늘과 새 땅" (사 65:17)에서의 소망으로 양도된다는 이 중요성은 성서신학의 쐐기가 될 수 있다. - P17

죄와 죽음의 이 연대는 세계를 무시하는 개인주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 행위를 통한 ‘새 창조’의 연대에 의해 대체된다." - P18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현세적인’ 연대감과 체휼함, 그리고 하나님 세계에 대한 책임 있는 청지기직으로써 하나님의 다가오는 승리에 자신들의 소망을 구현하는 소명을 받은 것이다. - P18

바울의 묵시적 신학은 구원과 윤리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개념을 다시 생각하도록 우리에게 도전한다. - P18

하나님의 다가오는 통치에 관한 보편적 범주는 세계를 위한 교회의 급진적 개념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그분의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우주적인 구원 계획에 동반자가 될 때 한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다. - P18

‘고통-내-연대’는 불의의 고난에 대항하는 대담한 투쟁뿐 아니라 죽음의 고통 가운데서 침묵의 희망으로 또한 나타난다. - P19

바울의 복음에 따르면 이 ‘고통-내-연대’는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고난의 짐을 덜어주는 희망이, 그 희망의 지평 반대편에서 일어나 그분을 위한 승리의 시간에, 그분의 기쁜 임재로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 P19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우주적 희망은 모든 이기심과 행복의 사유화뿐 아니라 우리 세계에서 일어나는 죽음의 기가 막힌 현실에 대해 부정하거나 억압하거나, 혹은 정신을 고양하는 모든 형태에 저항할 수 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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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여, 기도드리는 것을 잊지 말라. 매번 그대의 기도 속에서, 만약 그 기도가 참된 것이라면, 반드시 새로운 감정이 솟아나리니, 그대가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이 그 속에 들어 있어 그대에게 새로이 기운을 북돋워줄 것이며, 그리하여 그대는 기도가 교육임을 깨닫게 되리라. - P82

형제들이여, 사람들의 죄를 두려워 말고 인간이 죄악에 빠져 있을 때도 그를 사랑할지니, 이것이야말로 이미 하느님의 사랑에 가까운 것이며, 지상의 사랑 가운데 으뜸이기 때문이로다. - P83

하느님의 모든 창조물을, 그 전체를, 모래알 하나하나까지를 사랑하라. - P83

작은 잎사귀 하나 하나, 하느님의 햇살 한줄기 한줄기를 모두 사랑하라. - P83

동물을 사랑하고 식물을 사랑하고 모든 사물을 사랑하라. - P83

모든 사물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물들 속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깨닫게 될 것이다. - P83

형제들이여, 사랑은 스승과도 같은 것이지만 그것을 획득하는 법을 알아야 하나니, 왜냐하면 사랑은 획득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오랜 노력과 긴 시간을 통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며, 그저 우연한 한순간 동안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 P84

자신을 진심으로 모든 것과 모든 사람에 대해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순간 그대는 곧바로 그것이 실제로도 그러하며 바로 그대 자신이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대해 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 P86

자신의 나태함과 자신의 무력함을 사람들 탓으로 돌리면, 결국엔 사탄의 오만함에 가담하여 하느님께 불평을 늘어놓게 될 것이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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