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란 실제로 우리 모두의 영혼과 우리의 풍습을 그려낸다. 즉 지적 과장에 힘입어 진실에서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부분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서로 다른 각자의 본래 정신 상태에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책을 읽는 방식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그중에서는 매우 즐거우면서도 실망스럽고 동시에 확신하기 어려운 방식도 있다. 쉽게 믿으면 안 되지만, 결국에는 꽤나 교훈적인 그 방식은 바로 정신에 관한 연구다. 사람과 사람의 영혼까지 함께 연구하는 독서 방식인데, 이 방식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독자로 상정하기 때문이다.
고전 작품의 독자는 당대에 적대적이지 않으면서도 낯선 상태로 머무를 수 있다. 이때 독자의 낯섦은 적대를 넘어 모든 세대를 아우르고야 마는 지경에 다다른다. 어떠한 유행도 그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며 그 자신 또한 유행이 있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리는 좋은 희곡을 읽어야 한다. 좋은 희곡을 읽는 데에는 매우 특별한, 정말이지 매우 특별한 독서 방법이 있다. 작품을 읽으려면 우선 해당 작품이 극장에서 자주 상영된 것이어야 한다. 작품을 읽으면서 동시에 작품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작품을 눈으로 본다는 것은 우리가 극장에서 맞닥뜨리는 창의성을 좇는다는 말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작업이다.
배우들의 움직임과 태도가 잘 드러나도록 하고 사건을 다시 구성하기 위해서다. 그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읽어서도 안 되며 사실 읽으려야 읽을 수도 없다
좌우지간 우선 보라. 보는 습관을 들이자. 본다는 것은 좋은 연극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 살아 숨 쉬는 작품과 생명이 없는 작품을 판가름하는 기준이다. 전자는 볼 수 있고, 후자는 그럴 수 없다. 좋은 극작가가 작품을 봐 가면서 집필하듯이, 좋은 독자는 작품을 눈앞에 세워 두고서 읽어 내려간다.
희곡을 읽으면서 얻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있다. 다른 어떤 작품보다 희곡을 읽을 때 크게 와 닿는 기쁨으로, 그것은 서로 다른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다양한 문체를 관찰하는 즐거움이다.
극작가를 읽을 때의 또 다른 즐거움은 바로 사상적 측면에서 무엇이 작가의 것이고 무엇이 등장인물들의 것인지를 가리는 일이다. 이러한 탐구는 깊은 몰입과 열정이 필요하며, 그때에도 우리는 거의 근접할 수 있을 뿐 결코 완전에 다다르지 못함을 감지한다.
성찰의 즐거움, 우리가 극작가를 읽으며 얻는 이 활력 넘치는 즐거움은 작가 자신이 작품에 무엇을 담으려 했는지를 알아보는 데 있다. 우리는 또한 이러한 탐구가 매우 어려울뿐더러 착각에 빠질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안다. 그러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위험마저도 탐구를 이어 나갈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시인이란 서사시인, 애가시인, 서정시인을 말한다. 이들을 읽는 방식은 웅변의 달인이거나, 산문이라도 운율 때문에 음악이 되는 부류의 산문시인과는 어느 정도 차이를 두어야 한다. 처음에는 매우 낮게 읽고 그다음에는 소리 높여 읽어야 한다. 시인의 생각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소리를 낮춰 읽어야 하는데, 대개 소리 높여 읽으면 본인의 습관 때문에 본래의 반도 잘 헤아리지 못한다. 그 후에 소리를 높여 읽는 까닭은 귀로 듣고 운율과 음성적 균형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한 것이며, 이때 의미는 이미 파악한 상태이므로 우리 정신은 그것을 놓치는 법이 없다.
소리 높여 읽으면 리듬이 스며들기에 글을 한 편의 음악처럼 써 내리는 작가가 지닌 의미를 온전하게 채워 넣게 된다. 리듬이란 본디 의미 자체로, 어떻게 보면 생각에 앞서는 것이다.
위대한 산문 작가도 그렇겠지만 시인은, 단번에 모든 아름다움을 선사하지 않을뿐더러 그가 줄 수 있는 즐거움을 모두 한 번에 주지도 못한다. 우리는 시인과 함께 천천히 음미해야 할 것이다. 화가를 대하는 것처럼 구성을, 소묘를, 색채를, 사람의 형체와 그 외관을, 물을, 하늘을 공부해야 한다. 총체적 인상은 이러한 모든 각각의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 녹아났을 때야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책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읽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단순히 작품이 좋은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작품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잘 이해할 수 있다.
독서의 주적이란 바로 자기애나 소심함, 몰입이나 비판적 정신이다
자기애,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에 생긴 질투심은 책을 읽거나 읽는 도중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권태로워야만 굳이 자신을 희생해 가며 책을 펼치는 굴욕을 맛본다. 책에 담긴 생각에 자족하고, 다른 것들과 매한가지로 이 생각 또한 가치 있으리라 여기게 된다. 독서란 권태로움이 자기애를 물리치고 승리를 거머쥐는 행위다.
독서에서 적이란 인생 그 자체다. 삶은 책을 읽기에 알맞지 않다. 인생이 관조나 성찰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야심, 사랑, 탐욕, 증오, 개중에서도 특히 정치적 증오, 질투, 경쟁, 각각의 분쟁, 이 모든 것이 삶을 뒤흔들고 폭력적으로 만들며, 미지의 무언가를 읽을 생각에서 멀어지게 한다.
늦깎이 독자는 위험하다. 일련의 환멸을 맛볼 각오를 해야 하며 언제나 이미 온기가 날아가 차갑게 식은 상태에 있는 저자를 읽게 된다.
비판이란 계속해서 정신을 운동시켜 주는 행위다. 이는 우리 정신에게 무엇이 거짓이고 취약하며 형편없고 조악한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거짓이고 취약하고 형편없고 조악한 것들과 그 덕분에 알게 될 진짜고 아름다운 것들에, 그리고 비판하는 연습 없이는 얻지 못할 한없이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비판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은 시시하거나 어중간한 수준의 만족이 주는 진솔함을 포기한다. 따라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 어떤 것도 이보다 정확하거나 확실하지 못하리라. 언제나 처음에는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감해야만 우리는 작품에 들어갈 수 있다.
우선 단단히 무장한 독자가 돼야 한다. 이해하고자 할 때는 올바른 방법으로 자신의 무장을 해제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다시 갑옷을 입을 수 있어야 하며, 최종적으로 비판적 검토 아래, 작품이 지닌 진실과 아름다움에 애당초 토론이 불필요했음이 입증됐을 때 다시 자신의 갑옷을 내려놔야 한다.
믿음, 비판, 감탄. 이렇게 세 단계가 있는데, 실제로는 동일한 것으로 독자와 작가는 누구는 온전한 감탄에, 누구든지 진실이나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면 각각의 단계를 연이어 건너야만 한다.
자기애, 잡다한 정열, 소심함, 불만족한 정신. 이런 것들은 독서의 주적으로, 언제나 우리 안에서 비롯된다. 그 수가 많음을, 상당히 흉물스러운 것임을 우리는 보았다. 서글픈 노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독서의 주적에 맞서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책은 우리에게 남을 마지막 친구이며, 우리를 속이지도, 우리의 늙음을 나무라지도 않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는 교조적으로, 즉 원칙에 따라 판단하지 말아야 하며, 마찬가지로 인상적으로, 즉 본인이 느낀 감정에 따라 판단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가 역사가로서의 자기 역할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돼 버린다는 것은 분명하다.
근본이 되는 것, 몇몇 특징이나 세부 관찰을 제외하면 선생의 의무가 될 행동은 정성을 다해 감독하고, 통고하고, 밝혀내어 학생을 칭찬해 주는 것으로, 학교 과제는 언제나 반영의 산물이다. 아이로 하여금 잘 정리하여 기술하고 분명한 태도를 보이도록 하면 된다. 이미 제법 생각할 줄 알고 어느 정도 문체를 만들었더라도 언제나 앞선 것에 근거하여 아이들의 과제를 판단해야 한다. 개성이나 독창성은 조금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읽기는 감미롭다. 그리고 거듭하여 읽기는 가끔 더더욱 감미롭다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데서 오는 기쁨은 정신 깊숙이 어떤 불씨를, 상상력을 부추기는 어떤 열기를 불러일으킨다.
미세한 차이를 드러내는 문체를 즐기기 위해 다시 읽는다.
우리는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자기를 저 자신과 비교하기 위하여 다시 읽는다.
우리는 다시 읽으면서 예전의 자기 자신과 비교하며 부침浮沈을 기록한다. 자기 감각에서는 침몰일 수 있겠다. 그러나 득실로 따져 볼 때 우리의 종합적, 비판적 지성에서는 얻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지적, 정신적 차원에서 우리 인생의 굴곡을 그려 본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어떤 작가를 다시 읽든지 간에, 더 많이 느끼든 더 적게 느끼든, 더 잘 이해하든 매우 잘 이해하든 심지어 덜 이해하든, 그 모든 것은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일부며 그 원인 또한 우리의 삶에 있다. 따라서 다시 읽는다는 것은 다시 살아간다는 것이다.
독서에서 받은 인상들을 비교하면서 우리는 자신을 소재로 한 자서전을 매우 잘 쓸 수 있게 될 것이며, 그때 그 책의 제목은 재독再讀이라 붙일 수 있겠다. 재독은 자신의 기억을 읽는 행위로, 굳이 그 기억을 글로 쓰는 노고를 들이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그야말로 매우 큰 장점이리라.
있다. 천천히 생각해야 하며, 천천히 읽어야 한다. 생각할 때는 신중함을 기해 너무 빨리 자기 생각을 개진하지 말 것이며, 끊임없이 자신에게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읽을 때는 신중함을 기해 작가에게 줄곧 반박해야 하나, 한편으로는 우선 개진되는 작가의 생각에 자신을 내던지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토론을 위해 되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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