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것으로 ‘동경’憧憬이 있습니다. 이 둘을 혼동하면 인생은 나쁜 의미에서 복잡해집니다.
꿈은 자애自愛에서 나오고 동경은 자기혐오에서 나옵니다.
‘행복’을 손에 넣으려고 하면 혼이 동경하고 만다.
자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자기 바깥에 있는 생각이나 말을 찾아서 혼이 비트적비트적 나가는 것이 동경입니다
동경은 당신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조작당하기 쉬운 위험한 상태에 있음을 보여 주는 신호입니다.
뭔가를 강하게 동경한다면 자기혐오에 속박되어 있다는 뜻이다.
‘나는 나쁜 아이다’라는 믿음을 강요당하는 것이 자기혐오다.
자기혐오는 타인(부모와 교사 등)에게서 강요당한 것이다.
‘나는 나쁘지 않다’면서 자신을 타이르고 자기혐오를 억제하는 것은 역효과를 낸다.
자기혐오라는 녀석은 매우 강해서 약간의 자기암시로는 통제할 수 없습니다. 자기암시를 걸어도 효과가 없는 상황이 일어나 그것 자체가 의기소침해지는 원인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역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자신이 왜 자신을 싫어하는지 그 원인을 잘 생각하라.
자기혐오는 자기 감각을 부정하기 때문에 어떤 감각이 작동하지 않게 되고 맹점이 된다.
자기혐오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친구에게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친구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혐오를 극복할 수 있다.
당신을 조작하고 이용하는 사람은 당신의 자기혐오를 이용한다.
당신이 자기혐오를 극복하려고 할 때 격노해서 방해하는 사람은 당신을 이용하는 사람이다.
자기혐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친구와 함께 용기가 필요하다.
그 태도를 고치면 자기혐오는 흔적도 없이 산산이 흩어져 사라진다.
자기혐오를 극복하고 자신을 사랑하면 성장한다.
자기혐오야말로 파괴와 파멸과 실패와 불안과 공포의 원인이다.
겉으로 보이는 자신을 위해 무엇이든지 하는 자는 이기주의자 혹은 이타주의자가 된다.
이기주의자는 겉으로 보이는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획득하느라 바빠 세간의 평판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다.
이타주의자는 겉으로 보이는 자신의 세간의 평판을 획득하느라 바빠 물질적 이익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다
변변치 못한 자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자신의 세간의 평판을 획득하는 데도 물질적 이익을 획득하는 데도 실패한 사람이다.
잘난 체하는 사람은 자신의 변변치 않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변변치 못한 자다.
자신이 하는 노력이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자신이 하는 노력이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실은 이것이 가장 어려운 점이기도 합니다. 성장하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노력한다고 무조건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미 있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의미 있는 노력이란 그 결과로 성장할 수 있는 노력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종종 인간은 자기혐오에 빠지고 휘둘려서, 자신이 하는 것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면 기뻐하고 의미를 느끼면 겁에 질립니다. 이렇게 되면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쓸데없는 노력을 쌓아서 필요 없는 것을 손에 넣고 기쁜 척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침울해져서 절망만 합니다.
나이를 먹어 신체도 정신도 약해졌다고 해도 당신이 만약 자신의 아이와 깊은 관계를 만들어 친구가 된다면 아이가 친구를 만들고 아이가 아이를 낳음으로써 자신을 지원해 주는 네트워크가 자동으로 강화됩니다. 이 또한 사는 힘을 키워 주는 것이기 때문에 성장에 해당합니다.
순전히 변변치 못한 자 또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실재하지 않습니다. 실재하는 것은 이기주의자와 이타주의자와 변변치 못한 자가 섞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변변치 못한 자는 이기주의자와 이타주의자와 달리 위장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혐오에 휘둘리는 자기 자신에게 그대로 휘둘리기 때문에 해악은 적습니다.
자기혐오 세계는 실로 무서운 곳입니다. 그 세계가 이 세상을 덮고 있다는 것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자기혐오에 휘둘리는 한 그것을 달래든 뒤집든 아무리 어떻게 해 본들 변변치 않은 결과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자기혐오에 휘둘리는 사람은 자신의 ‘평가’를 높이는 데 혈안이 됩니다.
만약 당신이 용기도 있고 친구도 있어서 자기혐오를 극복하는 길을 한 걸음 내디뎠다고 합시다. 그 순간 당신은 자기혐오에서 빠져나오게 됩니다. 자기혐오는 ‘태도’이므로 그 태도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면 결국 더 이상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에 싸움은 끝입니다.
만약 당신이 한 걸음 내디디려고 했을 때 두려운 상황에 맞닥뜨리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입니다.
자기혐오의 극복이란 자기 인생의 역사, 인생의 기반 자체에 대한 물음이니까요. 인생에 대한 태도는 유소년기부터 적응해 온 생활환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자기혐오 또한 태도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빠져나오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주위에 형성된 생활환경을 변혁하는 것이 됩니다.
당신의 자기혐오를 전제로 당신의 인간관계가 형성된 이상 이 문제에 착수하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믿고 있던 사람이 당신에게 격노해서 말도 안 되는 공격을 가할 수도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이 격노하거나 한탄하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당신은 두려움에 떨게 되겠지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자기혐오의 원인은 반드시 맹점에 들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궁리해도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기 혼자서 자기혐오의 원인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자기혐오라는 녀석은 맹점을 만들어 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자신의 감각을 부정하는 것이 자기혐오의 전제이기 때문에 어떤 감각을 작동하지 않도록 해 맹점을 만듭니다.
뭔가를 제대로 성취하고 싶으면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물론 연습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자기혐오를 어떻게든 처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다’ 하는 상황에서 반드시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자기혐오를 품고 있으면 자신의 감각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나쁜 아이’가 기쁘다고 느끼는 것은 나쁜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나쁜 아이다’라는 감정이 아이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결과가 아닐까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감정은 일단 사로잡히면 배경음악처럼 늘 울립니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서 뭔가를 제대로 했을 때 칭찬받으면 그 순간만 이 배경음악이 들리지 않을 뿐입니다.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되어 ‘나쁜 아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강요된 믿음(나는 나쁜 아이다)은 어린 시절에 생깁니다. 인간은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세계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절에 자신의 감정이 받아들여진 경험이 적고 반대로 그 감정을 거절당하는 경험이 쌓이면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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