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인문학은 철학이라는 큰 나무에서 뻗어 나온 두 갈래 줄기로서 서로 무관한 독립체가 아니라 ‘네 속에 내가, 내 속에 네가 있는’ 융합체이다.

‘용공’容共이라는 두 글자로 마르크스사상을 일축하는 것은 단순화의 오류를 피할 수 없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집단 수용소의 죄수에서 조국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대문호가 되기까지, 솔제니친의 일생은 정치 환경의 비정과 무도, 갈등과 모순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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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책임을 지닌 학자 계급이 출현했고 그중에서도 노자는 사회와 정치 조직의 토대가 되는 종합적인 도덕철학을 제안했다. 이 세계관은 곧 도교로 알려졌다.

노자는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은 상호 보완하는 상태로 구성된다고 믿었다.

빛과 어둠, 밤과 낮, 삶과 죽음 등 각각은 순환하는 주기에서 서로 발생하며 영원한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도를 행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충동을 억제하고 직관적이고 신중하게 행동하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단순하고 유유자적한 삶인 ‘무위’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

노자가 도덕철학의 근간을 형성했다면 공자는 안정적이고 이상적인 정치 체계를 구축하는데 더 큰 노력을 쏟았다.

그는 정부가 덕과 선행을 토대로 해야 한다고 믿었지만 당대 관습과는 달리 도덕적 선함은 신이 준 것이 아니며 어떤 특정한 사회 계층으로 제약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덕은 배양할 수 있으며 그 모범을 보이는 것이 통치 계급의 역할이라 말했다.

통치자는 자애로워야 하고 그 국민은 충성심을 보여야 한다. 공자는 이 상호 간의 신념을 다른 관계에도 확장해 정이 많은 부모와 순종하는 자녀, 남편과 아내, 형제자매, 친구와 동료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했다.

인간관계에서 상호 존중 모델에 대한 생각은 공자 도덕철학의 중심이다, 공자는 또한 타인에 대한 우리의 행동을 정의할 때 상호주의를 지침으로 세웠다.

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탄생과 재탄생의 주기에서 벗어나는 해탈이며 신에게 헌신하거나 업보를 깨닫고 법dharma을 통해 적절한 행동을 취해야 얻을 수 있다.

팔정도(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진正精進, 정정正定)를 따르면 만족한 인생을 살고 윤회의 주기에서 벗어나 열반에 도달할 수 있다.

교회의 교리는 중세 유럽 철학을 주도했다. 기독교는 특히 초창기에 철학적 추론보다는 신념과 권위에 더 비중을 두었다.

교회는 실질적으로 학문을 독점했지만 일부 기독교 사상가들은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리스철학 요소를 도입했다

로마제국 말기부터 15세기에 이르기까지 두드러진 기독교 철학이 발전했고 아우구스티누스를 시작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러 철학이 집대성되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에 인본주의 관점이 다시 대두되면서 교회 권위자들, 특히 교황직이 위태로워졌다. 과학적 발견이 종교적 핵심인 믿음과 모순되고 인쇄의 발달로 교회는 더 이상 정보를 통제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룬다고 믿었다. 기독교는 믿음을, 철학은 추론을 따르지만 종교와 이성은 양립할 수 있고 상호 보완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가 신학 체계에 합리적인 토대를 제공하려면 중심 믿음에 모순되지 않는 플라톤 철학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제시했다.

중세 기독교에서 반복되는 쟁점은 하느님의 존재를 철학적, 이성적으로 입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최초의 기독교 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역설에 대해 신이 우리에게 선과 악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고 반박했다

신은 모든 것의 창조주이지만 악을 창조한 것은 아니며 악은 결핍, 즉 합리적 인간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으면서 생겨난 선의 결함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에 철학의 자리가 생겨났다는 것은 곧 보에티우스의 작품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입증한 셈이다.

스콜라철학은 신학을 가르치고 그 내용을 변증법적 추론으로 면밀히 살폈다.

스콜라철학은 철학 사상을 기독교와 통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기독교 교육과 신학의 뚜렷한 기풍으로 남아 있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인본주의 사상으로 대체되었다.

아벨라르는 공통적인 특질이 특정한 상황에 내재한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받아들여 보편은 실체가 아닌 개념으로 우리의 생각 속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개념론으로 알려진 그의 철학은 처음에는 반대에 부딪혔지만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사상을 기독교 교리로 융합하는 운동을 이끌었다.

안셀무스는 우리에게 가장 완벽한 존재를 상상해 보라고 요구한다. 그런 존재가 실재하지 않는다면 그 존재는 가장 완벽할 수 없고 존재하는 완벽한 것보다 열등할 것이다. 따라서 가장 완벽한 존재는 반드시 존재하며 안셀무스의 말을 빌자면 ‘그건 바로 신이고 그보다 더 위대한 존재는 있을 수 없다.’

이후 등장한 철학자들 중 토마스 아퀴나스와 임마누엘 칸트는 이 논쟁이 하느님의 본질에 대한 사상을 드러내고 있지만 실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 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중세 기독교 철학자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요 업적은 상당히 모순적으로 보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통합하고 이들을 기독교 교리로 결속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 것이다.

기독교 철학자들은 도덕철학을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용도로 활용했지만 이를 정치철학에 적용할 때, 인간이 만든 법이 신의 법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를 두고 의구심을 가졌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을 통해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세속적인 사회와 신의 왕국을 플라톤의 세계와 이데아의 관계와 비슷한 방식으로 비교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법이 신의 영원한 법과 분리되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신의 법의 일부인 인간의 행동, 도덕, 덕을 토대로 한 자연법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자연법에서 중요한 부분은 ‘정당한 전쟁’에 대한 개념이다. 기독교(와 많은 다른 종교들)는 평화주의를 주장하지만 정치적으로 가끔 전쟁이 필요하다.

보편적인 용례에서 ‘윤리’란 우리 행동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방법을 지칭한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엄격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을 채택했지만 우주의 문제에 대한 그의 관점은 교회의 가르침에 모순된다고 보았다. 피에르 아벨라르는 자신의 개념론(우주는 마음속에만 존재한다는 사상)에 입각해 실재론(우주는 실재하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상)에 도전한 최초의 철학자다

둔스 스코투스와 오컴과 같은 13세기 철학자들은 이 논쟁을 더 발전시켜 우주는 실제 세상의 사물의 특성을 언급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오컴은 이성적인 논쟁의 토대로 관찰과 경험적 증거를 활용해야 한다고 믿었고 이것이 후에 ‘과학적인 방법’이 되었다.

오컴은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원칙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무언가를 설명하는 두 가지 대안이 있다면 모든 것이 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단순한 설명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적, 경험주의적 철학은 중세 시대 말에 이르러서야 점차 기독교에 통합되었다. 문제가 된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접근 방식인데, 감각을 증거로 활용하고 논리적인 추론에 기대는 방식이 너무 세속적이라 신비로운 종교적 요소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 는 개인에 중점을 둔 인본주의에 동조해 개인과 신의 관계가 가톨릭 교리보다 더 상관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독교 교리에서 강조하는 단순함의 가치, 순수함, 겸손함은 인간의 근본적인 특성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철학에서 논의하는 지식은 그리스도가 몸소 보여 주는 ‘훌륭한 삶’으로 가는 장애가 되며 종교적 신념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인본주의 사상은 처음에는 르네상스라는 문화와 예술 운동으로 구현되었지만 과학과 철학에도 비옥한 토대를 제공해 근대 철학과 과학의 시초가 된 18세기 ‘이성의 시대’를 열게 해 주었다.

이슬람교는 당대 기독교와는 달리 학문을 권장했고 종교와 이성적인 질의가 나란히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

과학과 철학, 신학 교육까지 받은 박식한 이슬람 철학자들은 그리스 문헌(대다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들)을 보존하고 번역했고 인도의 과학과 수학적인 업적도 받아들였다. 그래서 기독교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천문학, 의학, 수학, 연금술과 같은 분야가 발전했다. 두드러진 이슬람 ‘철학파’가 생겨났고 주요 인물인 아비센나와 아베로에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이슬람교의 신학에 접목했다.

아비센나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공부했지만 플라톤의 사상을 비롯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별도로 무형의 범주가 존재한다는 이원론의 영향도 받았다. 그는 이원론적 사상을 더욱 발전시켰고 신체와 정신에 반응하는 우리의 감각과 이성도 마찬가지로 분리된다고 주장했다.

11·12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받아들인 아비센나의 신플라톤주의가 이슬람의 주요 철학이 되었지만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알가잘리와 같은 강경파 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쿠란에 반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의 이의 제기는 역설적으로 이슬람 철학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본주의는 이후 철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지만 마키아벨리와 교회 개혁론자들 같은 정치철학자들을 제외하고는 당시 철학보다는 과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마키아벨리는 개인의 도덕성과 통치자와 국가의 편의를 구분하면서 이상적인 정치 사회를 이론화하는 일은 성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통치자는 필요할 경우 항상 폭력과 속임수를 활용해 비도덕적으로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얻어야 할 결과를 생각하는 것이 실행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뼛속까지 공화주의자였고, 『군주론』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을 빌자면 ‘사람이 할 일이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닌 것’을 풍자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속 정치적 현실주의에 내포된 메시지 중 하나는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이다. 이 말은 정치철학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도덕철학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의도나 목적보다는 결과로서 행동의 도덕성을 판단하게 해 주었다

르네상스 시대 인본주의에서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동은 더 이상 종교적 권위에 따르는 것이 아니며 선과 악에 대한 사상도 기독교 교리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극단적이지 않다.

유럽 사상 속에 이슬람의 ‘황금시대’가 남긴 유산 가운데 일부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관찰, 분석, 분류 방식을 토대로 한 풍부한 과학 연구로 특히 의학과 연금술 같은 분야의 실험에 있어서는 두드러진 이슬람 전통을 보여 준다.

베이컨은 관찰의 과정, 즉 자료를 축적하고 분석하며 가설을 세우고 중요한 실험을 통해 이를 확인하는 방식을 옹호했다. 일련의 사례에서 일반적인 규칙을 도출하는 추론 과정은 근대 과학적 실천의 토대를 형성했으며 증거를 강조하는 베이컨의 방식은 또한 영국의 경험주의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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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물들의 특성과 분파들의 다양성 이면에는 서력 전환기에 예언자에 대한 불분명한 정의가 어쨌든 유대인 집단들에 따라다소간 정확한 정의가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 P87

계시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생각에 따라, 아마도 여러 유대인 집단이 서력 전환기에 예언자나 예언서라는 호칭을 확장했을 것이다. 따라서 예언과 묵시론 사이에 견고한 경계를 발견할 수 없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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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인간의 욕망을 종교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통해 발달했다

신이 세상에 끼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컸지만 그리스 사회가 발달하면서 인간 세계와 한층 동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되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종교를 자신들의 사상과 무관한 것으로 보았지만 도덕철학이 출현하면서 신의 영향력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금 부상했다.

추상적인 개념에 있어서 플라톤은 넓은 범주에서 생각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꼼꼼하고 실용적으로 접근했다.

플라톤의 사상은 세상에 대한 생각을 토대로 하며, 아리스토텔레스는 한층 세속적인 부분에 집중했다.

자연 세계를 연구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정반대 방식으로 우리가 지식을 얻는 과정에 대한 이론을 성립했다. 그는 동물과 식물에 대해 알게 된 것이 관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출발한다고 결론지었다.

처음으로 논리학에 대해 공식적인 연구를 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전제, 소전제, 결론으로 구성되는 삼단논법을 발전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타고난 실용적인 경향과 자연과 자연과학에 대한 흥미를 지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만큼 도덕철학에만 헌신하지 않았다. 주변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는 과정을 살피면서 그는 존재를 구성하는 본질에 의문을 가졌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모두 자신의 이론을 정치철학으로 발전시키며 가장 이상적인 사회를 조직하는 법을 탐구했다.

플라톤의 공화국은 일종의 권위주의 도시국가로 이데아론의 미덕을 갖춰 검증을 받은 특별한 철학자 겸 왕이 나라를 통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에 한층 체계적으로 접근했다. 그는 가능한 정부 형태를 분석하고 ‘누가 통치하는가?’(한 개인인가 아니면 선별된 일부 혹은 다수인가?), ‘누구를 대변하는가?’(본인들 혹은 국가?)의 척도에 따라 분류했다.

그는 국가의 진정한 구성 형태를 군주정, 귀족정, 혼합정(혹은 입헌제)으로 식별했다

이들은 모두 공익을 위해 통치하지만 비정상적이 되면 참주정, 과두정, 민주정으로 바뀐다.

선택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혼합정이 가장 이상적인 국가 형태이며 변형된 양식 중에는 민주정이 제일 낫다고 보았다.

소크라테스는 덕으로서 윤리와 중용의 의미를 명확히 정의해 꼭 필요한 자질을 알고자 노력했다

중용적 사고는 초기 그리스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고대 이카루스의 신화에서 보듯 ‘무엇이든 과도하지 않게’ 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중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서 특히 중요한 요소다. 그는 덕의 범주를 극단적으로 ‘좋고’, ‘나쁘고’로 나눈 것이 아니라 중용이라고 불리는 최적화된 중간 범주를 두었다

아름다움은 소크라테스와 제자들이 정의하고자 애쓴 유일한 덕이 아니다. 그는 꽤 단순해 보이는 물음을 던졌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미학이 시작되었다. 덕으로서 보자면 아름다움 그 자체보다는 개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을 인식하는 편이 더 수월하다.

회의론은 극단적인 형태의 상대주의이며 철학적 논쟁의 타당성을 가장 순수하게 부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론은 20세기 논리를 토대로 한 철학과 과학철학에 특히 큰 영향을 미쳤다.

학파의 창시자 에피쿠로스는 ‘훌륭한 삶’을 행복과 만족의 추구로 보았다. 그는 삶의 목표를 마음의 평화,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특히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잡았다.

에피쿠로스주의는 인체를 포함해 모든 것들이 쪼개질 수 없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다.

에피쿠로스주의는 후에 기독교와 이슬람 철학에 밀려났지만 그 원칙의 상당수가 현대 과학과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에서 다시 등장했다.

계몽주의가 도래하기 전까지 철학자들 대다수가 감각과 이성은 별개로 신체와 정신에 각기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은 세상에 대한 타고난 지식이 과거 존재의 기억이기에 영혼의 불멸을 입증한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우리가 감각을 통해 얻은 지식은 신체가 수명을 다하면서 사라지지만 사고를 지배하는 영혼은 신체가 없이도 존재할 수 있고 물리적인 형태가 아니기에 부패할 수 없으므로 불멸이라 주장했다

불멸의 영혼에 대한 믿음은 대다수의 종교에서 핵심 사상을 이루며 동양철학의 시금석이 되었다.

철학의 마지막 학파는 고대 그리스에서 출현한 스토아 학파로 키니코스 학파가 제안한 단순함의 덕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사상에서 발전한 사상이다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 키티온의 제논〔엘레아의 제논과 혼동하지 말 것〕은 자연이 유일한 실체이며 우리는 그 일부이므로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활용해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파괴적인 감정을 절제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학에 그리 열정적이지 않았던 로마인들은 스토아주의가 그들 문화의 윤리와 잘 맞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의 사상가들이 받아들였다. 스토아는 로마제국의 보편적인 철학으로 성장했다.

위대한 동양철학자들은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들과 대략적으로 같은 시대에 존재했지만 도덕을 강조한 그들은 아테네 철학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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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로운 의미의 미끄러짐을 생각해 볼 수 있을 터인데, 실제로 아포칼립티크(apocalyptique)라는 형용사는 19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작가이자 역사가인 에드가 퀴네(Edgar Quinet)의 표현에 따라 재앙을 통한 세계의 종말과 관련한 근대적 의미를 얻게 된다. - P34

하지만 신적인 계시로부터 궁극적인 재앙으로 향한 (의미상의) 전이는 프랑스어에서 최근의 사용법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 P34

고대로부터 두가지 개념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는 점에 비출 때, 이러한 의미의 진화를 짐작할 수 있는 흔적이 발견된다. - P34

계시록에서 밧모섬의 요한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드러내지만, 메시지의 내용은 가까운 장래에 도래할 가장 고통스러운 파국들을 고지하는 것이다. - P34

1세기 말엽 이후로, 하나님의 계시와 임박한 세계의 종말이 연결됐다는 점이다. - P34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심지어 고대에 있어서도 의미의 미끄러짐이 아니며, 오히려 정해진 기록의 양식(계시)과 담겨진 메시지(세계의 심판)의 단순한동화(同化, assimilation)이다. - P34

그러니까 아포칼립스라는 용어는 처음부터 불분명함(ambiguite)을 묵인했던 것이다. - P35

‘어떻게 계시에서 재앙으로 옮겨가는가?‘ 위의 질문에 우리는 최초의 문제의 몇 가지 측면을 밝히기 위해 다니엘에 등장하는 네 짐승에 대한 환상을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 P45

이에 따라 요한계시록보다 훨씬 앞선 시기인 기원전 2세기 중엽에 이 계시(apocalypse)라는 용어의 첫 번째 의미, 곧 신적인 계시라는 의미로, 계시라는 문학적 장르를 사용하는 유대교 문헌이 있음을 알게 된다. - P45

신적인 계시와 선언된 파국 사이의 내밀한 연결은별다른 무리 없이 알아볼 수 있다. - P45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비판하기 위해 괴물들의 이미지를 활용한 것은 어떤 이유인가? - P45

아마도 다니엘 집단 저자의 목적은 우선 청자 혹은 독자에게 충격을 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 P45

우리는 괴물들의 이미지가 무(無)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신화적 모티프나 혹은 더 오래된 성경적 모티프를 차용하거나 다시 읽어낸 것임을 알게 됐다. - P45

저자 집단(Le milieu redacteur)은 그들이 발전시키고자 하는 목적의 정당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기존에 동료들 사이에 정립된 종교적 신앙들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 P45

가나안 신화나 혹은 더 광범위하게 고대 근동의 문화에서 끌어온 인유들이 발견되며, 또 이 종교적 모티프들은 새롭고도 정당한 메시지를 전달할 목적으로 해석됐다. - P45

관건은 종교 권력들을 비판하고 무엇보다 심판이 다가옴을 알리는 것이었다. 즉 각각의 왕국이 보인 행위에 근거를 둔 심판이다. - P45

심판하는 신(dieu)은 개별 왕국의 신 또는 신들이 아니라, 천상의 왕궁 가운데 좌정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Dieu)으로 이는 근동 지역 신화에서 가져온 또 다른 이미지다. - P45

다니엘의 저자 집단은 이런 방식으로 이스라엘 하나님의 위엄 있는 왕국이 섬기는 신들에 대한 우위를 확언한다. - P46

이 집단은 또한 오늘의 승리자들이 심판의 날에는 그저 내일의 패배자들이 될 뿐이라고 고지한다. - P46

왕국들 중 가장 악한 왕국인 셀레우코스 왕국과 이 왕국의 가장 해로운 앞잡이인 안티오코스 4세는 어떤 벌을 받게 됨에 상관없이 멸절될 것이다. - P46

고대의 세계에서 흔히 그렇듯, 정치적인 주장은 종교적인 표현과 분리될 수 없다. - P46

괴물성(monstruosite)은 정치·종교적 측면에서 환상의 기록자들의 강력한 원한의 감정을 보여준다. - P46

우리는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의 묵시적 본문(텍스트)들이 그 기록 당시에 당면하게 된 정치적 - 종교적 문제들을 반영하는 메아리로 이해됨을 받아들인다. - P46

그저 장래에 대한 환영에 그치기보다, 그러한 텍스트들은 오히려 현재의 문제들에 뿌리를 내린 기록인 것이다. - P46

다른 한편으로, 계시들은 독자 혹은 청자를 교육하는 역할을 한다. - P46

그들이 믿음의 차원에 놓일 경우, 저자 집단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 짜여지고 그분의 가르침과 권능에 따라 인도된 유대 역사의 이미지를 환상 속에 부여한다. - P46

고대 세계에서 이러한 동물들이 등장하는 환상을 읽거나 듣는 자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권능에 관한, 즉 기원전 2세기 중엽에 유대의 정치적 과오들과 완전히 괴리적인 권능에 관한 교훈을 받아들이게 된다. - P46

또한, 이미지의 힘이 겨냥하는 것은 여러 사건들로 인해 의심이올 때 하나님의 권능과 우위에 대한 믿음에 있어 유대인들을 설득하거나 혹은 확고히 굳히는 것이다. - P46

저자 집단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환상을 정당화하는 일이며, 대중(公衆)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역사의 전개에 따른 실제적인 결과다. - P47

따라서 계시들은 정치·종교적인 저의와 무관한 순수한 계시들이 아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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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16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6쪽의 글. 정치와 종교. 이 두 가지는 참 어려운 문제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려 있어서 만인을 만족시킬 수 없을 듯해서요.

모찌모찌 2020-09-16 15:42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ㅠ 종종 대화의 장벽을 느낍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