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에 솔제니친은 노벨 문학상을 탔지만 스웨덴으로 가서 상을 받도록 허가받지 못했으며, 그 자신 또한 금지령을 어기고 멋대로 국경을 넘을 만큼 무모하지 않았다

1973년, 솔제니친은 『수용소 군도』라는 연작을 서구에서 출판했다. 이 책은 모두 1,800쪽에 이르는 3권의 장편으로 솔제니친의 대표작이다.

『수용소 군도』의 출판 이후, 솔제니친은 반역죄로 기소됐고 곧이어 국경 밖으로 추방되어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폭력을 남용해 국민을 지배하는 정부에는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 사람의 작가, 한 사람의 지식인에게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 토양을 떠나는 일은 고통스러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정치 환경의 변화로 솔제니친은 1990년에 러시아 시민권을 다시 획득했다. 1994년, 솔제니친은 미국에서 러시아로 돌아갔고, 과거 금서였던 그의 작품들은 드디어 러시아에서 간행되었다

솔제니친의 극단적 시각은 그에게 영광과 모멸을 절반씩 떠안겼다.

우리가 삶에서 전심전력으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진리는 우리에게서 떠나갈 것이다.

솔제니친은 희망도 없고 기댈 데도 없는 수감자의 감정, 수감자가 강제 노동 집단 수용소에서 느끼는 가장 큰 괴로움을 세밀하게 써냈다.

솔제니친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하버드의 교훈은 진리입니다. 삶에서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추구하지 않으면, 진리는 결국 떠나 버리고 말지요. 그 사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진리는 오해받기 쉬우며 아주 이따금씩만 즐거운 것입니다. 진리는 종종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지요. 오늘 제 연설에서 여러분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있었다면, 그 모두가 적이 아닌 친구의 진심에서 우러난 것임을 기억해 주십시오."

솔제니친은 다른 모델을 완전히 초월한 하나의 모델은 없으며 하나의 모델을 바꾸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종종 폭력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수많은 각도에서 완벽한 하나의 모델을 받아들이는 것은 동시에 이런 모델의 수많은 결점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첫째, 국가의 팽창과 사회의 번영에 뒤따르는 것은 종종 도덕과 용기의 추락이다.

특히 정치적으로 권력을 잡은 이들, 경제적으로 이득을 보는 이들, 학문적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이미 절대 권력을 장악했기에, 또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기득권을 보호하고자 하기에 정의와 공리, 이해와 동정 따위를 쉽게 망각한다.

국가는 종종 패권주의나 침략자, 테러리스트 앞에서 약해지며, 위협할 필요가 있는 후진국이나 약소민족 앞에서 제멋대로 굴거나 무도해지곤 한다

사회 엘리트인 지식인은 자주 권위 앞에서 침묵하며 지식 권력이 없는 약자에게나 목청을 높인다

둘째, 서구의 정치 및 경제 이념은 ‘정부가 시민을 위해 봉사한다.’라는 것이다.

시민은 마땅히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무한한 기회와 공간을 보장받아야 한다.

행복과 재산이 등호로 표시될 때, 끝없는 탐욕이 가져오는 것은 부정한 수단과 생명까지 담보로 삼는 극한의 경쟁이다.

셋째, 서구의 법치 정신이 가져온 ‘합법적이기만 하면 무엇이든 해도 좋다’라는 원칙이 있다.

법률만 있고 그 밖의 다른 규정이나 원칙이 결여된 국가에서는 여기저기 함정이 있다.

넷째, 제한이 없는 자유는 무책임한 자유와 파괴적인 자유를 포함한다.

솔제니친은 절대 권력의 사회 제도 아래 성장하면서 박해를 받았고 결국 추방당해 유랑하는 삶을 살았지만, 서구 사회에 정착한 지 몇 년이 채 되기도 전에 이 사회에도 수많은 결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당시 서구의 사회 모델이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수는 없으며 서로 다른 국가와 지역에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오늘날에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는 사실의 부정적인 일면을 지적하는 소극적인 결론일 뿐이다.

서로 다른 역사, 지리, 문화 배경에서 서로 다른 국가와 사회는 서로 다른 정치, 경제, 문화 모델을 따르지만 그 가운데는 공통의 최대 공약수가 있다. 바로 인성이다

공감하고 연민하는 마음, 꺾이지 않고 숙이지 않는 용기, 속박을 받지 않는 독립 정신, 물질을 초월하는 정신적 만족의 추구, 널리 보고 멀리 보는 시각.

이는 어떤 정치, 경제, 사회 모델에서든 반드시 붙들고 유지해야 하는 최대 공약수이다.

인성의 진리와 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시공간의 환경으로 제약을 받거나 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표준화는 말로 들으면 간단하지만 실행하자면 복잡한 문제다.

중국의 유가 경전 가운데 사서오경四書五經이 있는데, 사서는 공자의 제자들이 편찬한 『논어』와 맹자가 쓴 『맹자』, 증자가 쓴 『대학』과 자사가 쓴 『중용』이며, 오경은 『시경』, 『서경』, 『예기』, 『주역』, 『춘추』다.

좁은 의미로 ‘효’는 부모의 말에 따르는 것이고, 넒은 의미에서는 부모의 가르침을 귀담아듣고 이를 실행하려고 힘쓰는 것이다.

「제의」에서는 ‘효’의 도리가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동해에 두어 널리 미치도록 표준으로 삼고, 서해에 두어 널리 미치도록 표준으로 삼고, 남해에 두어 널리 미치도록 표준으로 삼고, 북해에 두어 널리 미치도록 표준으로 삼는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사해에 두어 널리 미치도록 표준으로 삼는다"放諸四海而皆準라는 말의 출처다.

‘사해의 표준으로 삼다’라는 말이 중요하다. 이 말은 시공간의 환경 변화에 따르지 않는 진리와 원칙, 예를 들어 평화, 박애, 성실, 선량 등을 형용한다. 그러나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은 이 말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결론은 미터란 일종의 공인된 표준이라는 사실이다.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라 빛의 속도 또한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건강한 사람의 체온은 섭씨 36.8도이고 화씨 98.24도이다.

특히 과학이 발전할수록 필요한 정밀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표준화는 더 중요해진다.

사용자와 제조자의 관점에서 보면 표준화는 무척 중요하다.

왜 휴대전화 제조사는 휴대전화 충전기에 사용하는 커넥터를 표준화하지 않을까? 한 가지 해석은 휴대전화 시장이 여전히 전쟁터라 제각기 적과 싸우기 바빠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 소통할 여유나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제조자의 입장에서 표준화는 더욱 중요한 과제다. 세계가 점점 더 작고 평평해질수록 작업은 세분된다.

그러나 표준화는 말한다고 곧바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표준을 선택하고 적용하려 할 때, 누구에게 결정 권한이 주어지는가? 특히 세계화의 시대인 오늘날에는 "수레의 폭을 같이"하는 명령을 내릴 절대 권력 기구가 존재하기 어렵다.

표준의 선택에는 유서 깊은 전통과의 투쟁이 뒤따른다. 이미 오래된 표준을 고치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표준의 선택에는 정치적인 고려가 포함된다. 정치는 국력을 보여 주는 지표다.

표준을 바꾸는 일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바다가 바다인 까닭은 크고 작은 하천을 받아들여 마침내 큰 바다로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학기술의 표준화를 이야기하거나 사회의 공통 이념을 세우고자 할 때는 바다처럼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포용해야 한다.

공학의 입장에서 보면, 표준화의 편리와 효율은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이루기는 어렵다. 역사와 전통에 기초해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고 익숙해진 어떤 표준은 굳이 다른 표준으로 바꿀 필요도 없고 쉽게 바꿀 수도 없다.

단일한 표준과 규격은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개방되고 진보한 환경에서 서로 다른 여러 표준과 규격이 상호 경쟁하고 충돌하면서 발전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양 극단의 중간에는 두 가지 중요한 기술 개념이 있다. 하나는 ‘공용’interoperable이고 다른 하나는 ‘호환’compatible이다.

공용은 인터페이스를 통해 서로 다른 규격 시스템을 같이 운용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호환은 서로 다른 규격을 포괄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바다는 모든 강을 아울러 크고 넓어진다."라는 옛말이 떠오른다. 바다가 바다인 이유는 수많은 크고 작은 시내와 강을 받아들이고 아우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표준화 그리고 공용과 호환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면 이 옛말이 생각난다. 사회 공동 이념의 수립과 공동 목표의 추구를 이야기하며, 다름을 통해 같음으로 나아가면서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고자 할 때면 언제나 이 옛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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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에 급격한 산업화를 이룬 유럽 국가들과 미국은 민주주의 체계를 세우고자 노력했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난 뒤 사회정의와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헌법이 개정되었다.

자유주의 전통(좌파가 아닌 자유방임주의)은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적 자유주의와 애덤 스미스의 경제적 자유주의 속에서 출현했다

데이비드 흄은 경험주의적 지식의 문제뿐 아니라 정치철학에도 흥미를 보였고 특히 재화와 용역의 거래에 관심이 많았다

『국부론』 이후로 도덕철학은 한층 과학적으로 경제학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거래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 이익을 가져다준다. 따라서 스미스는 자유 시장에서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해 인간이 ‘타고난 자유’를 즐길 권한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옹호했다.

자유와 권위 사이의 균형을 잡고자 하는 ‘전통 자유주의’는 정부가 시민의 자유에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벤담의 사상은 19세기 사회 개혁에 영향을 미쳤으며 후에 영국의 사회주의 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과학과 매우 흡사한 방식으로 벤담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의 미적분학’을 통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옳고 그름을 측정한다.’ 그는 같은 원칙을 정치에도 적용해 ‘모두가 한 사람에게 의지하면 아무도 한 사람 이상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행동의 타당성은 쾌락이나 고통이 어느 정도 생겨났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 사상은 유럽 도덕 사상에 영향을 미친, 행동의 동기와 도덕적 ‘정언명령’을 토대로 한 임마누엘 칸트의 도덕철학 체계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벌린은 소극적인 자유와 적극적인 자유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적극적인 자유에는 위험이 따른다고 보았다

적극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개인은 폭군이 될 수 있는데 프랑스혁명 이후 로베스피에르가 대표적이다.

존 스튜어트 밀과 우정을 나누고 후에 결혼을 한 철학자 헤리엇 테일러는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수호하는 데 큰 발판을 마련했다.

프랑스와 영국 철학자들이 계몽주의 시대를 독식하는 동안 1780년대부터 철학은 독일어권에서 더욱 번성하기 시작했다.

임마누엘 칸트는 독일 철학 시대의 출발점을 연 위대한 독일 철학자다.

정반대인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관점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칸트는 ‘선험적 관념론’이라는 형이상학을 제안했다

선험적 관념론은 우리가 감각을 통해 세상을 경험할 때 동시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작업이다.

그의 사상은 셸링, 피히테, 쇼펜하우어, 헤겔 등에게 영감을 주었고 이들은 각각 자신만의 관념론을 발전시켰다

관념론은 또한 포이어바흐와 마르크스 같은 철학자들이 헤겔의 사상을 채택해 유물론적 관점에 대한 논쟁을 벌이게 만들기도 했다

이는 또한 종교에 대한 비판과 의구심을 증폭시켰으며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유명한 선언에 영향을 주어 무신론 철학을 촉발하기도 했다.

말년까지 합리주의자 위치를 고수한 임마누엘 칸트는 스스로 흄의 저서를 읽고 ‘독단’에서 깨어났다고 주장했다. 또한 과학의 진보에도 영향을 받아 경험에 기인해 얻은 증거의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우리가 감각을 활용해 세상에 대해 알아 가는 동안 경험 이전에 타고난 이해의 척도인 ‘범주’가 그 정의를 내린다는 것이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우리가 이해하고 추론하는 부분의 한계를 찾으려고 했다. 우리는 육체적 경험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가 경험할 수 없음에도 현실에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칸트는 물자체와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을 분류했다. 물자체인 세상은 우리의 경험과 이해를 넘어 존재하기에 선험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감각을 통해 인식하고 이해하는 현상의 세계도 있기 때문에 두 가지 모두 경험적으로 실재하고 현상적, 선험적 이상이다.

칸트는 자신의 이론을 ‘선험적 관념론’이라고 불렀다. 과학이 현상 세계를 발견하는 동안 경험과 별개인 실체가 항상 우리의 이해 너머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칸트는 ‘선험적 관념론’을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를 포함한 종합적인 철학 체계로 발전시켰다

칸트 도덕철학의 초석이 된 것은 이성적인 존재로서 우리는 타고난 선과 악의 개념을 지니며, 자유의지가 도덕적 선택을 하게 만든다는 믿음에 있다.

칸트는 전통을 깨고 도덕성이 결과가 아니라 의도나 동기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언가의 옳고 그름을 정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보편적으로 타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칸트의 관념론은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의 철학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칸트 추종자였던 피히테는 물자체에 대한 개념을 거부했고 외부의 현실은 지각이 창조한 것이라는 완전한 관념론 체계를 제시했다.

피히테는 도덕 자체가 생성한 현실은 근본적으로 도덕적인 특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독일 관념론의 시대는 예술에서 낭만주의 운동이 성장한 시기와 우연히 맞아떨어진다. 자연에 대한 매료와 감정을 강조하는 낭만주의는 과학적인 합리주의와 산업화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지만 루소의 자연 상태와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관점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독일 낭만주의 예술가, 작가, 지식인 무리 중에서 프리드리히 셸링은 자연을 기반으로 한 철학을 발전시켰다.

셸링에게 인간의 창의성은 자연의 발전이 정점에 올랐다는 것을 지각함을 대변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칸트를 엄청나게 존경했고 현상과 물자체에 대한 그의 사상을 열정적으로 흡수했다.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8년)를 통해 그는 이 사상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두 가지 별개의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세계에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세상은 외부의 표상과 내부의 의지로 경험하는 것이다.

칸트와 마찬가지로 게오르크 헤겔은 철학 ‘체계’를 발전시켰지만 칸트의 사상을 토대로 하면서도 그 사상 속에서 근본적인 오류라고 생각한 부분을 고쳤다.

헤겔은 추상적인 사물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을 부정하고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의식 속에 구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헤겔에게 존재는 인식 주체 속 하나의 완전체이며 그 대상인 외부 세계와 동일하다.

헤겔이 지칭하는 정신은 우리의 직관과 자각을 포함해 비물질적인 현실을 아우른다.

헤겔은 또한 경험의 토대는 독보적이며 변하지 않는다는 칸트의 ‘범주’에 대한 생각을 거부했다. 대신 그는 우리를 구성하는 의식 자체를 믿었고 이는 진화 과정의 일부로 변한다고 보았다.

현실을 역사적 과정이라고 설명하면서, 헤겔은 정신이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현실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 내재된 체계가 있다는 사상을 발전시켰다

모든 생각에는 모순이 담겨 있고 두 반대되는 생각 사이의 대립 관계가 새로운 생각이 출현하면서 해소된다는 것이다.

합은 정이나 반보다 더 풍부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사건의 역사적인 추이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자각을 포함하는 정신이 그 자체로서 더 낫고 진정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헤겔은 하나의 현실이 존재하며 이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가 인식하는 현상은 우리 자신의 생각과 의식이라 할지라도 정신의 한 부분에 불과하며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시간이 흐르면서 지속적으로 발달한다.

결과적으로 시대별로 각각의 다른 정신인 시대정신이 존재하며 우리의 사고와 의식 방식도 이 특정한 발달 단계에 있다.

헤겔에게 상당한 영향을 받았지만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는 완전히 반대되는 철학을 발전시켰다. 관념론자 헤겔이 현실은 궁극적으로 무형이라고 믿는 반면 포이어바흐는 유물론자로 비물질적인 범주의 존재를 부정했다.

헤겔이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완전한 정신’인 신에게 투영한다고 말하는 반면 포이어바흐는 한층 더 나아가 실제로 우리는 이상을 투영할 가상의 존재를 만들고 이를 ‘신’이라고 부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학은 단지 인류학이며 신의 지시를 따르고자 애쓸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진정한 미덕의 원천을 탐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포이어바흐의 도덕철학은 신의 덕보다는 인간을 근본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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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론의 특징들이 입혀진 서판은 가장 기발한 문학적 양식 중하나를 보여주는 데, 이것은 과거에 하나님으로부터 전해졌다고 여겨지는 메시지인 예언들을 해석하거나 혹은 다시 쓰고, 보다 정확히 설명하거나, 신지영 수정하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 P161

묵시론은 더이상 전통적인 지혜(지식, sagesse)를 뒤집어 놓기를 망설이지 않는데, [이 종래의 지혜는] 땅 위에서 장수하는 삶을 부여하는 선과 죽음이라는 귀결을 야기시키는 악에 대해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 P161

묵시론은 또한 삶과 죽음 그리고 선과 악의 관계의 관하여 인류에게 새로운 전망을 부여 하기도 한다. - P161

종말의 때에 있을 심판은 사람들 각자를 고양시킬 기다림의 지평이 되어, 선(善) 곧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가르침에 부합하는 행동양식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 P161

시 문학은 또한 땅위에 현존하는 악의 존재를 설명할 길을 모색한다. - P161

묵시 문학은 창조로부터 하나님이 의도한 천체와 자연의 질서가 있음을 확언하지만, 현재의 시간에 땅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악은 세계의 질서를 손상시킨다. - P161

묵시적인 기록들은 어떻게 이 질서가 재정립되고 심지어 피조세계가 새롭게 되는지 이야기한다. - P162

이러한 의미에 따라 자기 행동을 완수하는 자들, 즉 정의로운 자들은 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보상을 얻게 될 것이다. - P162

요컨대, 묵시론(l‘ apocalyptique)은 묵시서들(apoc-alypses) 간의 세세한 내용에서는 편차가 있을지라도 하나의 진정한 사유의 체계다. - P162

신적인 비밀의 계시는 새로운 이상들을 정당화하는데 있어 중심적인 근거가 된다. - P162

새로운 이야기들은 기록 되고 이후 유대교에서 또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 풍부한 문헌들을 생산 해낸다. - P162

사본들에 관한 연구들은 텍스트들이 서로 다른 다양한 시대에 기록되었고, 구절의 제거나 추가가 있었으며, 여러 상이한 사본들이서로 조화를 이루거나 혹은 이러한 사본들 간의 경쟁에서 [서로 다른] 구절들이 나온 것임을 보여준다. - P163

[요컨대] 어떤 복잡한 편집의과정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최종적 형태의 사본으로 알려진 텍스트는 오랜 역사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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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과 권위에 대한 편견이 덜한 로크는 정부가 자율적 자유를 보호하고 시민들이 독재나 비효율적인 정부를 타도할 권리를 제공받는 조건으로 통치자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한층 평등주의적인 체계를 제시했다.

문명사회가 권리나 자유가 아닌 개인의 자산을 보호하려 하고 제약과 공정하지 못한 법이 불평등을 키웠다는 것이다.

계몽주의의 첫 번째 혁명은 군주제가 폐지되고 권력이 의회로 넘어간 영국에서 발생했다.

사회계약론에 매료되어 변화의 필요성을 설명했으며 미국에서는 영국인 토머스 페인이 철학을 정치 행동주의로 바꿔 놓았다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은 모두 계몽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아 ‘삶, 자유, 행복의 추구’라는 상호 유사한 정치적 목표를 내걸었다.

이성의 시대 혹은 계몽주의로 알려진 17세기와 18세기에는 종교나 관습적인 지혜를 받아들이기보다는 과학적 추론을 통한 지식이 발달했다. 이런 분위기는 유럽 대다수의 지역에서 합리주의라는 철학 사조로 등장했다

데카르트의 분명한 접근 방식은 수학적 방법을 철학적 물음에 접목시켜 철학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르네 데카르트는 형이상학과 인식론적 문제를 수학적 입증을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는 의심스러운 모든 것들을 배제한 다음 분명한 진실과 수학적 이치 등 확실한 것부터 세워 나갔다.

많은 고대 철학자들이 인체 속 독립적인 ‘영혼psyche’의 존재를 믿었고 대부분의 종교 역시 불멸의 영혼이라는 범주를 지니고 있지만 이를 체계적인 방식으로 드러낸 인물은 데카르트가 처음이었다.

데카르트의 관점에서 동물은 단순히 물리적 세상의 한 부분으로 그 법칙에 따르며 기계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 따라서 동물의 행동을 자의식이나 정신적인 행동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러한 견해는 동물과 비슷하게 행동하지만 마음이 없는 기발한 로봇이 등장하면서 더욱 설득력이 높아졌다.

하나의 예시를 일반화하는 것은 잘못된 추정이다.

상식적으로 모든 인류〔와 심지어 동물까지〕는 내가 가진 의식과 비슷한 종류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다고 믿을 만큼 충분한 근거는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같은 물질로 이루어졌고 우주나 자연도 그렇기에 신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로크는 우리가 경험하는 객관적이고 측정 가능한 사물의 ‘주요 특성’과 주관적인 ‘부차적인 특징’을 설명한 반면 버클리는 우리가 실질적으로 전혀 경험을 할 수 없으며 오로지 그 특성만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과관계와 세상에 관한 지식의 확실성에 의구심을 품은 흄은 근대 과학의 방법론에 도전했다. 그는 항상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그 일이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귀납의 문제’는 20세기 칼 포퍼가 해결책을 제시할 때까지 철학자들 사이에서 난제로 남아 있었다. 흄은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확실함이 아니라 희망적인 가능성을 다루어야 하며, 관습이 우리를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흥미롭게 표현했다.

영국 경험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은 상식에 호소하는 점이다. 이 간단 명료한 추론의 전통은 불필요한 문제와 추상적인 부분을 배제하는 오컴의 방식과 프랜시스 베이컨의 증거를 토대로 한 방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상식(세상에 대한 우리 경험의 일부)은 우리에게 경험에 모순되어 발생한 기적은 거짓이거나 감각이 잘못 인식한 결과에 가깝다고 알려 준다.

흄은 주변 세상을 살필 때 이성에 의존할 모든 부분을 효과적으로 없애 버렸다.

흄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관습이 이끌도록 내버려 두며 상식으로 보이는 ‘완화된 회의주의’를 옹호했다. 동시에 그는 우리가 이성이 아닌 ‘열정’이라고 부르는 감정과 직관에 이끌려 일반적으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흄의 말을 빌리자면 이성은 열정의 노예이다. 우리는 가끔 잘못된 판단을 하지만 모든 것을 감안할 때 꼭 필요한 욕구를 부정하기보다는 열정을 만족시키는 편을 택한다. 잘못된 판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의사 결정에서 이성의 작용에 대한 흄의 회의주의는 그의 관점을 도덕철학으로 한층 발전시켰다.

그는 대다수의 도덕철학자들이 저술을 할 때 객관적인 설명에서 주관적인 설명으로 갑자기 넘어간다고 언급했다.

에이어의 정의주의emotivism는 도덕적 제의는 객관적인 진술처럼 보여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주관적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실증주의의 대표 학자는 오귀스트 콩트이며 그는 형이상학적인 예측은 철학에서 더 이상 역할을 하지 못하고 과학적 질의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증주의는 과학과 철학 사이에서 점차 세력을 늘려 나갔고 콩트는 과학에 토대를 두고 그 방법론을 다양하게 적용하는 철학의 한 분과인 근대 과학철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실증주의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지식만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오귀스트 콩트에 따르면 이는 비단 자연과학뿐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결정하는 원칙에도 적용된다.

콩트는 물리적 세상이 물리적 법칙을 따르듯 사회 역시 눈에 보이는 법칙에 따라 운영되며 주관적인 자기 성찰이나 직관을 통해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과학적 연구에 의해 사회적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콩트는 또한 인류학, 경제학, 정치학을 포함한 사회과학 분야의 토대를 정립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진화론이 철학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무엇보다도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 자연 세계의 발전 과정에서 등장했다는 관념을 도출한 것이다.

다윈은 기독교인으로 자랐지만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면서 점점 급진적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유지했다. 아이작 뉴턴처럼 그도 신이 우주를 창조하고 자연선택과 같은 법칙을 만들었다고 믿었지만 그 이후로 더는 개입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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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과 인문학은 철학이라는 큰 나무에서 뻗어 나온 두 갈래 줄기로서 서로 무관한 독립체가 아니라 ‘네 속에 내가, 내 속에 네가 있는’ 융합체이다.

‘용공’容共이라는 두 글자로 마르크스사상을 일축하는 것은 단순화의 오류를 피할 수 없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집단 수용소의 죄수에서 조국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대문호가 되기까지, 솔제니친의 일생은 정치 환경의 비정과 무도, 갈등과 모순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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