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체험하고 지각하고 생각하는 능력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불멸의 영혼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논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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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은 스스로 이름(셈, shem)을 떨치기를 원했지만, 야훼께서는 이름이 ‘이름‘인 사람을 사용하셔서 아브람을 낳게끔 계획하시고, 아브람의 이름을 위대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 P129

바벨 도성 사건은 장차 이스라엘이 겪을 문제를 간략하게 그려 준다. - P132

집단 전체가 개인이나 다른 집단을 착취하고 압제하며 하나님과 동떨어진 안전을 추구하려는 열망으로 똘똘 뭉칠 때 하나님께서는 직접 관여하셔서 알맞게 조정하고 시정하신다. - P132

창세기 기사에서는 하나님을 공급하시는 존재로 묘사하며, 하나님의 공급 덕분에 인류는 생존을 위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음식이 넉넉하게 공급되고 인류가 자기들이 경작하는 동산(흙)으로, 그 동산을 위해 지어졌기에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종(種)의번식의 큰 이유가 되지 않는다. - P142

창세기가 묘사하는 동산에서는 식량이 창조주 하나님과 협력하여 일(예를 들어 동산을 가꾸는 일)을 하는 데서 나오며, 번식은 일부일처 관계를 통해서만 일어나서 여자와 남자는 그 관계에 적합하게 지음받았다. - P143

다시 말해 여자와 남자의 적합성(fittedness)은 동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서로에게도 해당되고, 그 적합성이 이들의 결혼 관계의 길을 닦는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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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psychology’이라는 말 자체가 ‘영혼’과 ‘정신’이라는 뜻을 둘 다 지니는 고대 그리스어 프시케psyche에서 파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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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엔 책과 내가 아무런 매개 없이 만날 때 책이 가장 빛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을 만나는 설렘도 그때 가장 컸지 싶고.

비스듬히 뉜 연필의 심이 종이 위를 슥슥슥 지나간다.
이혜경, 『저녁이 깊다』, 문학과지성사, 2014.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코바야시 타끼지, 서은혜 옮김, 『게 가공선』, 창비, 2012.

"아저씨 감옥에서 나왔죠?"
최제훈, 『나비잠』, 문학과지성사, 2013.

지옥地獄과 감옥監獄 모두 한자로는 옥 옥獄 자를 쓴다. 죄인을 가두는 곳이라는 뜻이란다. 그런데 천국은 나라 국國 자를 쓴다. 한쪽은 감옥이고 다른 쪽은 나라인 셈이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찰스 디킨스, 이은정 옮김, 『두 도시 이야기』, 펭귄클래식 코리아, 2012.

우리 시대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다.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이인규 옮김, 『채털리 부인의 연인』, 민음사, 2003.

어느 시대나 다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누구에겐 최고의 시절이 누구에겐 최악의 시절이 되고, 누군가에겐 지혜의 시대가 누군가에겐 어리석음의 시대가 되기도 하지만, 공통적인 건 모든 시대가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라는 것

왜냐하면 ‘우리 시대’이니까. 다른 이가 아닌 나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시간들. 생각이 다르고 취향이 다른 여러 사람이 동시대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그 엄청난 모순을 버텨 내야 하는 시간들이니까.

첫눈에 반해 버렸다.
조지프 헬러, 안정효 옮김, 『캐치-22』, 민음사, 2008.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송병선 옮김, 『콜레라 시대의 사랑』, 민음사, 2004.

위험에 대한 경고는 언제나 실제로 닥쳐오는 위험보다 많지만 막상 위험이 닥칠 때는 어떤 경고도 없는 법이었다.
편혜영, 『재와 빨강』, 창비, 2010.

인간에게 언제 재앙이 닥쳐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레엄 그린, 안흥규 옮김, 『제3의 사나이』, 문예출판사, 2006.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맞는 위험 같은 건 없다. 경고란 단지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는 신호일 뿐 대처 방안은 아니니까.

그리고 모든 위험은 다 다른 재앙으로 나타나거나 적어도 다른 재앙을 불러일으키니 세상에 똑같은 위험도 없다.

게다가 위험은 시작되는 순간 더 이상 위험이 아니니 설령 그 위험에서 빠져나왔다고 해도 겪었노라고 말할 수 없고.

삶과 닮았다. 위험 말이다. 경고와 재앙으로 둘러싸인 채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 도사리고 있는 듯하지만 실은 어느 곳에나 있고 어떤 형태로든 이어지니까. 위험과 삶, 아니 위험한 삶.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신경숙, 『외딴방』, 문학동네, 1999.

우리가 살아온 현실은 언제나 반은 <허구>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오시이 마모루, 『야수들의 밤』, 황상훈 옮김, 황금가지, 2002.

어디 우리가 쓰는 글과 우리가 살아온 현실만 그럴까. 따지고 보면 우리 자신 또한 반은 허구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닌가.

나는 누군가가 제멋대로 상상하고 오해하고 믿어 버린 바로 그 존재일 뿐만 아니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니까 하며 답답해하는 나 자신이 제멋대로 상상하고 오해하고 믿어 버린 바로 그 존재이기도 하니까.

우리는 종종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채로 살아가야 하는 서글픈 삶을 한탄하지만, 어쩌면 우리 스스로를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건 바로 우리 자신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이러저러한 사람’이라는 허구 속에 갇힌 채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기 때문.

무지개 너머에서 전화가 왔다.
윤후명, 『이별의 노래』, 문학사상사, 1995.

세상 사람들이 천국에서 걸려 온 첫 번째 전화를 받던 날, 테스 래퍼티는 차 상자의 비닐 포장을 뜯고 있었다.
미치 앨봄, 『천국에서 온 첫 번째 전화』, 윤정숙 옮김, 아르테, 2014.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밀란 쿤데라, 이재룡 옮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2009.

이것은 사랑에 관한 책이다.
게리 슈테인가르트, 김승옥 옮김, 『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 민음사, 2007.

바람이 사나운 개처럼 컹컹 짖어 댔다.
이승우, 『그곳이 어디든』, 현대문학, 2007.

바람이 대지를 밟고 우우 달려온다.
윤정모, 『그들의 오후』, 창비, 1998.

우리는 사육제의 바람에 실려 왔다.
조앤 해리스, 김경식 옮김, 『초콜릿』, 열린책들, 2004.

초겨울에 남풍이 불어서 흑산행 돛배는 출항하지 못했다.
김훈, 『흑산』, 학고재, 2011.

봄 병풍의 그림은 중천에 걸려 있는 흐릿한 달, 동풍에 흔들리는 강변의 갈대, 그리고 걸식하는 법사法師다.
마루야마 겐지, 한성례 옮김, 『달에 울다』, 자음과모음, 2009.

바람이 분다. 순간 깨닫는다. 바람은 부는 순간 이미 떠나고 없다는 것을. 정체를 알 수 없을 때까지만 내 곁에 머물 뿐, 아, 바람이구나 하고 느낄 때면 이미 바람은 내 곁을 떠나고 없다. 그래서, 바람이다.

처음이란 균형을 맞추는 데 가장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하는 시간이다.
프랭크 허버트, 김승욱 옮김, 『듄』, 황금가지, 2001.

그녀는 무수한 산들이 겹쳐진 산골 좁다란 오솔길 어귀에 숨어 사는 귀신이다.
리앙, 김태성 옮김, 『눈에 보이는 귀신』, 문학동네, 2011.

넓은 무도회장은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반가운 모습의 유령들로 가득했다.
시드니 셀던, 김시내 옮김, 『게임의 여왕』, 문학수첩, 2011.

오페라의 유령은 실제로 존재했다.
가스통 르루, 홍성영 옮김, 『오페라의 유령』, 펭귄클래식 코리아, 2008.

나는 인생의 가장 내밀한 진실을 비빔국수를 통해 배웠다.
정세랑, 『이만큼 가까이』, 창비, 2014.

꿀벌 이야기에서 꿀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사람 이야기에선 돈이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커트 보네거트, 김한영 옮김,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 문학동네, 2010.

팔 수 있는 물건들은 모두 팔아 치웠다.
천명관, 『고령화 가족』, 문학동네, 2010.

가난, 곧 돈이 없어 겪는 궁핍의 본질은 몸과 마음 모두 돈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돈을 받지 않고 개인적으로 식사를 대접하는 사람이 아니라, 돈만 내면 모두 환영하는 대중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간주해야 하오.
헨리 필딩, 김일영 옮김,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 문학과지성사, 2012.

안녕하세요, 서점에서 뒤적거리며 서 계시는 독자 여러분!
요나스 하센 케미리, 홍재웅 옮김, 『몬테코어』, 민음사, 2012.

별일 아니려니 했다.
파트릭 모디아노, 권수연 옮김,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문학동네, 2016.

지금 글을 쓰기 시작하지 않는다면 나는 미쳐 버리고 말 것이다.
유르겐 도미안, 홍성광 옮김, 『태양이 사라지던 날』, 시공사, 2010.

하긴 단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고,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없는 때가 있으니까.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문학동네, 2013.

이것은, 아마도 살인에 관한
긴 보고서가 될 것이다.
박범신,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문예중앙, 2011.

나는 다시 상주가 되었다.
이서정,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파란미디어, 2013.

하긴 ‘다시’야말로 우리네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부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다시’ 사는 사람들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는 사람들.

새 원장이 부임해 온 날 밤, 섬에서는 두 사람의 탈출 사고가 있었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문학과지성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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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삶에 공감하려면 ‘내 삶’이라는 기반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글을 제대로 읽어 내려면 ‘내 문장’이라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내 문장’은 바로 ‘내 삶’을 표현한 것이어야 하고. 이게 바로 글쓰기와 글 읽기의 시작점 아니겠는가.

규칙과 기술을 익히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문장을 읽거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런저런 기법을 익힌다고 해서 내 손끝에서 나만의 문장이 저절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글이 첫눈에 말끔하게 해독되는 것도 아니듯이.

첫 문장으로 돌아가 보는 건 어떨까. 삶의 첫 문장이든 글쓰기의 첫 문장이든. 우선은 소설의 첫 문장을 통해 내 글쓰기의 첫 문장으로 돌아가 볼 수 있다면, 더불어 내 삶의 첫 문장까지 다시 살펴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언제부터인지 내 안에서 더 이상 그런 마음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다음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도 않을뿐더러 기대감도 사라졌다. 소설책을 봐도 재미가 없고 삶은 그야말로 균일한 시간이 째깍째깍 흐르는 시계 같아져서 드라마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실망하기만 한 건 아니다. 어쩌면 이야기나 삶의 다른 면을 보게 되었는지도 모르니까.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고 기대할 것도 없을 때 이야기는 이제까지와 다른 면을 드러내 보이고, 삶 또한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인과관계의 틀에서 벗어나 마치 꿈속처럼 제각각의 세계를 펼쳐 보일 수도 있으니까.

이젠 소설책을 읽을 때든 삶의 모퉁이에서 다음 장면을 앞두고 있을 때든 내가 궁금해하는 다음은, 다음의 내가 어떤 나일지뿐이다. 다음 이야기에서 내가 어떤 느낌을 갖게 될지, 또는 삶의 다음 장면에서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지……. 그게 궁금할 뿐이다. 다음의 나.

상대가 내게 누구냐고 묻지 않고 뭐냐고 물을 때, 대답하기 난감하다. 아니, 난감하다기보다 곤혹스럽다. 뭐냐는 물음 앞엔 대개 ‘정체’가 붙기 때문.

이럴 땐 저 두 문장처럼 고양이든 침대든 정확하고 분명한 술어가 간절해진다. 언제 어디서든 또 누구에게든 주저 없이 분명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존재.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존재. 그런 존재가 마냥 부러워진달까.

하지만 어쩌랴. 내 정체를 규정하는 건, 내 안에 존재하면서, 나는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헷갈리게 만드는, 바로 그 ‘분명하지 않은 요소들’인걸.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레프 톨스토이, 박형규 옮김, 『안나 카레니나』, 문학동네, 2010.

죽음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비카스 스와루프, 조영학 옮김, 『6인의 용의자』, 문학동네, 2009.

뭐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삶도 죽음도. 물론 그사이에서 겪는 행복과 불행의 모습도 다르고, 그 행불행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다 제각각이다.

같지 않아야 마땅하다. 우린 모두 서로 다른 사람이니까. 이 자명한 사실을 왜 자꾸만 부정하려는 건지.

말만 해도 그렇다. 같아야 한다는 강박이 얼마나 지독했으면 같지 않은 걸 ‘같잖다’라고 표현했을까.

무섭다. 말도 무섭고 그 말에 담긴 사람들의 욕망도 무섭고.

아무도 나와 같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털끝만큼도 같지 않기를…….

이곳 사람들은 나를 안다.
이창래, 정영목 옮김, 『척하는 삶』, 알에이치코리아, 2014.

나는 이곳이 어딘지 모른다.
최수철, 『매미』, 문학과지성사, 2000.

자기들끼리도 "난 걔가 그런 놈인 줄은 상상도 못했다야" 하고 말할 때가 잦은 걸 보면 서로 잘 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닌 것 같고, "세상 참 말세다" 하고 탄식 아닌 탄식을 종종 내뱉는 걸 보면 이곳에 대해서도 역시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를 비롯해 이곳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곳이 어딘지도 잘 모르고 서로에 대해서도 역시 잘 모르는 것이다

다행이다. 이곳이 어디고 저들이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과연 이런 멋진 꿈을 꿔도
되는 거냐 싶은 꿈을 꿨다.
박상, 『말이 되냐』, 새파란상상, 2010.

무서운 꿈을 꾸었다.
에쿠니 가오리, 김난주 옮김, 『냉정과 열정 사이』, 소담출판사, 2000.

무언가 결정을 내리기에 일요일 오후는 나쁜 시간이다.
프란세스코 미랄례스·카레 산토스, 권상미 옮김, 『일요일의 카페』, 문학동네, 2014.

일요일 오후에 우리는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에 머물기 때문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두말할 필요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일요일 오후는 어쩐지 세속적인 세상과는 동떨어진 시간처럼 여겨지니까.

당연히 무언가를 결정하는 일은 그 ‘성스러운 일’에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시계가 멎었어요.
이윤기, 『뿌리와 날개』, 현대문학, 1998.

세탁기가 고장 났다.
김희진, 『옷의 시간들』, 자음과모음, 2011.

뭔가 고장이 났을 때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생각하게 되는 건 마치 삶이 멈춰 선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 때문이리라. 고장이 난 것이 기계가 아니라 내 삶이고 나라는 생각. 내 삶과 나는 설계도도 없고 작동 원리도 알 수 없으니 허둥댈 수밖에.

그래서일까. 소설의 첫 문장에서 뭔가 고장이 났다는 표현을 만나면 대개 누군가의 삶이 고장 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냄새가 먼저였다.
구효서, 『동주』, 자음과모음, 2011.

냄새는 악어빌딩 어디에나
스며 있었다.
김중혁,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문학과지성사, 2014.

이 냄새다.
하성란, 『A』, 자음과모음, 2010.

중불에 달구어진 설탕 냄새가 난다.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창비, 2009.

따뜻한 날들이면 우리 집 벽에서 부드러운 우유 냄새가 올라온다.
메이어 샬레브, 박찬원 옮김, 『네 번의 식사』, 시공사, 2013.

평생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면 무엇을 챙겨 가야 할까?
라이오넬 슈라이버, 박아람 옮김, 『내 아내에 대하여』, 알에이치코리아, 2013.

나는 허름한 배낭에 MP3와 소설책 한 권을 넣고 집을 떠났다.
장은진,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문학동네, 2009.

돌아갈 수는 없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 이나경 옮김, 『라스트 런어웨이』, 아르테, 2014.

침묵하면 불편해지고, 말을 하면 우스워져, 에드가가 말했다.
헤르타 뮐러, 박경희 옮김, 『마음짐승』, 문학동네, 2010.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 모르겠다.
은희경, 『그것은 꿈이었을까』, 현대문학, 1999.

쓸데없이 이런저런 말 하지 않고 침묵에 잠기고 싶은데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면 불편해서 그게 잘 안 된다. 소심해서 상대를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쪽이 먼저 입을 열게 마련인지라 굳이 할 필요도 없는 말을 늘어놓게 되고 결국 내 꼴이 우스워지는 걸 감수할 수밖에 없다. 늘 그렇다.

자연스레, 침묵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말하고 싶을 때 선뜻 나서서 말할 수 있는 것도 권력이고 능력이지만, 침묵하고 싶을 때 눈치 보지 않고 침묵할 수 있는 것도 권력이고 능력이라는 걸 매번 절감한달까.

내가 체포되어 경찰에 끌려오다니, 정말이지 내 생애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일지, 『진술』, 문학과지성사, 2000.

"이대로 가라앉을 수만 있다면……."
레지 드 사 모레이라, 이희정 옮김, 『책방 주인』, 예담, 2014.

나쁜 생각이 들어서 당신을 보러 왔어요.
니나 부라위, 기영인 옮김, 『나쁜 생각들』, 뿔, 2011.

모르는 척하는 게 차라리 나은 것들. 가령 연극무대 뒤의 어수선함 같은. 혹은 배우들의 사생활. 대가들의 서툴기 그지없는 초기작. 어린 시절의 치기 어린 행동. 상대에게 가닿지 못하고 허공을 맴도는 시선. 남몰래 품은 나쁜 생각들. 세상이 ‘이면’裏面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

몰라도 된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알아도 굳이 아는 척하지 않는 게 서로에게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아는 척하는 사람에겐 도대체 무엇을 안다는 것이냐고 되묻고 싶은. 걱정하지 말라고, 당신들을 해치지 않는다고 말해 주고 싶은.

그런 것들. 세상이 ‘이면’이라고 부르는. 그 가운데 내 몫이 된. 내가 원해서라기보다 어쩌다 내 몫이 되어 버린. 나쁜 생각들. 집요하게 이어지는 그것들. 자신의 삶을 온통 단 한 뼘의 기억 속에 가두고 그 안에서만 끊임없이 맴도는 치매 환자처럼, 나로 하여금 하루 종일 그 안을 맴돌게 만드는. 한 뼘의 생각

책은 나와 누군가를 매개하기도 하고 내 삶의 어느 날을 의미 있는 날로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내게 다른 책을 소개해 주기도 한다.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책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거나 바꾸고, 책을 통해 다른 책을 소개받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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