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부분의 목회사역이 지금 이곳에서의 순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 P77

지금 이곳에서의 순종은 가정과 동네와 직장에서 사랑을 길러 내는 일로 나타나고, 성경을 지금 이곳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텍스트로 여기는 일로 뒷받침되지.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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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독특성 중 하나는 소위 다른 전문가들보다 업무에서 훨씬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이지. - P31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은 어느정도 하나님을 신뢰하거나 예수님을 따를 때의 느낌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많이(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하게 되었다. - P31

교회가 우리에게 안수하여 맡긴 목사직이라는 위치에서, 우리는 잘 알지못하는 어떤 것을 증언해야 하고 구원과 섭리의 신비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 P31

우리가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상의 현실은, 예배든 가족이든 우리가 통제할 수 없고 관리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 P34

목사라는 용어를 내가 임의로 정의한 독단적 의미로 쓰고 싶지는 않다만, 일반적으로 목사는 두 세계 모두에서 편안해지는 법을 배우는 양서류라는 생각이 든다. - P36

성경 세계와 현대 세계에서도, 사람들이 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 거주하는 다양한 ‘세계들‘에서도 말이다. - P36

목사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 중 하나는(설교와 기도와 가르침, 하나님께 신실함과 예수님을 따름이라는 기초가 자리를 잡고 나서 말이다) 사람들을 존엄하게 대하는 것이 아닐까. - P40

그 행동 자체가 가난한 세계와 부유한 세계, 거부의 세계와 용납의 세계, 고난의 세계와 번영의 세계, 실패의 세계와 성취의 세계를 잇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해내는 것 같다. - P40

우리는 공동체나 전도나 선교를 위한 전략이 아니라 훨씬 더 근본적인 것 곧 세례와 하나님 형상과 영혼에 대한 전략을 짠다. - P40

목사직은 이렇듯 하나님 나라의 맥락과 어휘를 갖춘 채 인격적이고 상대를 존중하고 환영하고 존엄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상대할 수 있는 독특한 직책이란다. - P40

내가 볼 때 목회와 교회생활을 너무나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두루 퍼져 우리 삶을 지배하는 소비지상주의인 것 같다. - P49

우리가 소개받고 받아들인 복음은 삼위일체로 규정된다. - P49

공동체로 계시는 하나님, 인격적 관계 안에 계시는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신격 안에서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시고 우리와도 그렇게 관계하신다. - P49

우리가 예배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은 관계와 반응이 살아 움직이는 상상력을 형성하고 고유한 영혼들이 모인 공동체를 조성하는 데 너무나 결정적이고 기초적이며 큰 영향을 미친단다. - P54

그 영혼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은 과제나 필요가 아니라 결국 사랑-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우리를 위해 서로에게 행하시는 가장 친밀하고 인격적인 역사-이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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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 P264

공감은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는 감정적 교류다. - P264

공감은 둘 다 자유로워지고 홀가분해지는 황금분할 지점을 찾는 과정이다. - P264

누구도 희생하지 않아야 제대로 된 공감이다. - P264

잘 모를 때는 아는 척 끄떡끄떡하지 말고 더 물어야 한다. - P264

이해되지 않는 걸 수용하고 공감하려 애쓰는 건 공감에 대한 강박이지 공감이 아니다. 에너지 소모만 엄청나다. 그렇게 계속 버티기는 어렵다. 본인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무슨 수로 공감하나. - P264

공감은 내 생각, 내 마음도 있지만 상대의 생각과 마음도 있다는 전제하에 시작한다. - P267

상대방이 깊숙이 있는 자기 마음을 꺼내기 전엔 그의 생각과 마음을 나는 알 수 없다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고 공감의 바탕이다. - P267

상대방의 감정과 똑같이 느끼는 것이 공감인가. 공감을 잘한다는건 상대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상태까지 가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 P268

공감은 똑같이 느끼는 상태가 아니라 상대가 가지는 감정이나 느낌이 그럴 수 있겠다고 기꺼이 수용되고 이해되는 상태다. - P268

그 상태가 되면 상대방 감정결에 바짝 다가가서 그 느낌을 더 잘 알고 끄덕이게 된다. - P268

상대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상관없다. - P268

허벅지에 큰 상처를 입어 출혈이 심하면 지혈을 하기 위해 허벅지 윗부분을 끈으로 꽉 동여매야 한다. 그런 순간엔 아무도 너무 조이면 아프니까 살살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P293

과다 출혈로 인한 응급 상황에서의 압박은 평시의 스킨십과는 달라야 한다. - P293

공감이란 나와 너 사이에 일어나는 교류지만, 계몽은 너는 없고 나만 있는 상태에서 나오는 일방적인 언어다. - P294

나는 모든 걸 알고 있고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들이다. 그래서 계몽과 훈계의 본질은 폭력이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렇다. - P294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듣고,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듣다 보면 사람도 상황도 스스로 전모를 드러낸다. - P294

그랬구나. 그런데 그건 어떤 마음에서 그런 건데. 네 마음은 어땠는데? 핑퐁게임 하듯 주고받는 동안 둘의 마음이 서서히 주파수가 맞아간다. - P294

소리가 정확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공감 혹은 공명이다. - P295

누군가의 속마음을 들을 땐 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 P295

충조평판의 다른 말은 ‘바른말‘이다. - P295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이다. - P295

나는 욕설에 찔려 넘어진 사람보다 바른말에 찔려 쓰러진 사람을 과장해서 한 만 배쯤은 더 많이 봤다. 사실이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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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본적 정체성은 리더(이끄는 자)가 아니라 팔로워(따르는 자)이다. - P25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끌라는 말씀 대신 따르라는 초대장을 주신다. - P25

팔로워십이 리더십보다 앞서고 보다 포괄적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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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한 사람에게 어떻게 공감할 수 있나. - P161

본인에게 그걸 알려주지 않으면 계속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겠는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 P161

내 공감을 포갤 곳은 그의 생각과 행동이 아니라 그의 마음, 즉 감정이다. - P161

존재의 느낌이나 감정이 공감 과녁의 마지막 중심점이다. - P161

친구를 때린 아이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때 아이의 마음을 알면 마음에는 금방 공감할 수 있다. 그것이 공감이다. - P161

자기 마음이 공감을 받으면 아이는 자기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빠르게 인정한다. - P161

엄마와 아이의 관계에 어떤 불편함이나 부작용을 남기지 않은 채 (오히려 관계가 더 깊고 신뢰로워진다) 아이는 모든 상황을 흔쾌히 수긍한다. 걱정할 것이 사실 없다. - P161

어떤 이의 생각, 판단, 행동이 아무리 잘못됐어도 그의 마음에 대해 누군가 묻고 궁금해한다면 복잡하게 꼬인 상황이 놀랄 만큼 쉽게 풀린다. - P161

자기 마음이 공감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기가 감당해야 할 몫이나 대가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기꺼이 진다. - P162

자기 마음이 온전히 수용되었다는 느낌 때문이다. 억울함이 풀려서다. - P162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항상 옳다‘는 명제는 언제나 옳다. - P162

모든 인간은 상황에 따라 움직이고 적응하는 독립적이고 개별적 존재다. - P184

그 사실을 믿으면 함께 울며 고통을 나누면서도 서로의 경계를 인정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갈 힘과 근원이 된다. - P184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들이 지닌 경계를 인식해야만 모두가 각각 위엄 있는 개별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 P184

누군가에게 공감자가 되려는 사람은 동시에 자신의 상처도 공감받을 수 있어야 한다. - P187

공감하는 일의 전제는 공감받는 일이다. - P187

자전하며 동시에 공전하는 지구처럼 공감은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는 동시에 자기도 주목받고 공감받는 행위다. - P187

타인을 구심점으로 오롯이 집중하지만 동시에 자기 중심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아야 가능하다. - P187

경계가 무너지면 많은 것을 희생하고도 오히려 비난과 공격을 더 받게 된다. - P196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 관계가 기쁨과 즐거움이거나 배움과 성숙, 성찰의 기회일 때다. 그것이 관계의 본질이다. - P203

끊임없는 자기학대와 자기혐오로 채워진 관계에서 배움과 성숙은 불가능하다. 자기 학대와 자기혐오가 커질 수밖에 없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끊어야 한다. - P203

감정은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의 이분법으로 판단할 대상이 아니다. - P218

감정은 한 존재의 지금 상태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바로미터다. - P218

내 뺨을 스치는 바람 한줄기마다 고유한 이름과 성질을 붙이고 규정지을 수 없듯 끊임없이 움직이는 감정은 내 존재의 상태를 시시각각으로 반영하는 신호다. - P218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모든 감정은 옳다. - P218

모든 감정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 P218

표피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 감정을 긍정적, 부정적으로 가르는 시각은 한 존재의 핵심에 다가가는 일, 누군가에게 깊이 공감하는 일을 막는 큰 걸림돌이 된다. - P219

일상적으로 잘 먹어야 음식 앞에서 품위를 유지한다. - P223

충족된 욕구는 더 이상 욕구가 아니므로 충분히 사랑받은 사람은 그 욕구에 휘둘리지 않고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 - P223

사람은 옳은 말로 인해 도움을 받지 않는다. - P239

자기모순을 안고 씨름하며 그것을 깨닫는 과정에서 이해와 공감을 받는 경험을 한 사람이 갖게 되는 여유와 너그러움, 공감력 그 자체가 스스로를 돕고 결국 자기를 구한다. - P239

공감이란 제대로 된 관계와 소통의 다른 이름이다. - P247

공감이란 한 존재의 개별성에 깊이 눈을 포개는 일, 상대방의 마음, 느낌의 차원까지 들어가 그를 만나고 내 마음을 포개는 일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도 내 마음, 내 느낌을 꺼내서 그와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일이다. - P247

누군가를 이상화하는 건 상대방을 슈퍼 울트라 갑으로 밀어올리는 동시에 자신은 한없이 미미하고 하찮은 존재로 구겨버리는 일이다. - P255

떠받들려지는 사람이나 떠받드는 사람 모두에게 ‘자기‘를 박탈한다. 모두가 ‘자기‘에 치명상을 입는다. - P255

공감은 들어주는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의 외형적 무엇에 압도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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