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TC 맥아더 신약주석 : 야고보서 MNTC 맥아더 신약주석
존 맥아더 지음, 송동민 옮김 / 아바서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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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의 땀과 시간, 열정. 그 결실로 단행본 한 권이 출간된다. 시리즈를 연속으로 출간하는 것은 더욱 힘겹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최고 난이도가 바로 시리즈 주석. 그 첫걸음을 시작한다. 더군다나 야고보서. 앎과 삶의 괴리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이때에 적실한 선택이 아닐까? 교회 됨과 그리스도인 됨이 모호해지고 희미해져 있는 이 시점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성경은 아닐까?


주석의 스펙트럼은 워낙 다양하여 평가가 쉽지 않다. 자신의 신학이 추구하는 목표나 서 있는 자리에 따라 평가는 상이하다. 주석의 난이도 또한 객관적이지 못하다. 독자의 지적 수준이나 그동안 배웠던 학문의 성격에 따라 이해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지적 수준이 높을지라도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신학적 용어가 많다면 독해가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거칠게 평가해보자면 이 주석 시리즈는 학문적이기보다는 평이한 설명과 해석, 언어학적이거나 비평적이라기보다는 적용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 이미지는 한 편 한 편의 강해설교를 듣는 듯하다. 이미 맥아더 성경주석(단권)을 통해 입증된 간결하고 명료한 해석, 평신도의 눈높이에 맞춘 쉬운 문체가 눈에 띈다. 저자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시리즈 서문에서 밝히듯) 이 주석은 '성경을 설명하고 적용하려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저자는 한 구절의 해석을 위해 구약과 신약에서의 다양한 구절을 인용한다. 가령 야고보서 1장 4절의 해석은 욥기에서 엘리바스의 선포와 시편에서 다윗의 기도를 인용한다. 또한 필요하다면 원어의 명료한 뜻을 밝힌다. 여기서 더 나아가 빌립보서, 갈라디아서, 베드로전서, 히브리서, 창세기, 로마서, 요한복음 등을 자유자재로 인용한다. 짧은 한 구절의 해석에 매우 다양한 성경말씀이 다채롭게 사용된다. 


또 하나의 특이점은 다른 주석과는 다르게 신학자가 아닌 사람들의 글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대부분의 주석들은 그 분야에서 최고의 학자들의 의견들을 나열한다. 이후에 자신이 수용하는 점과 비판하는 점을 밝힌다. 하지만 이 주석은 설교 시에 설교자들이 인용하듯 독자들이 더욱 풍부하게 그 말씀을 경험하고 적용할 수 있는 방편을 선택한다. 가령 인도 선교사 에이미 카마이클(Amy Camichael, 1867-1951)의 시나, 19세기 초반 뉴욕에서 사역했던 복음주의 목회자 가디너 스프링(Gardiner Spring, 1785-1873)을 말씀을 인용하는 식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비교하여 살펴보자. 맥아더 신약 주석과는 다른 목적을 가진 NIGTC(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와의 비교다. NIGTC는 역사비평과 언어학적 석의에 근거하여 본문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제공한다. 


야고보서 말씀 중에서 흔히 아는 1장 22절 말씀이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이를 맥아더 신약 주석에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수용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우리가 그 진리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아무 유익이 없다. 오히려 그 말씀을 접한 이들에게 이 일은 추가적인 심판의 원인이 될 뿐이다. 복종하는 태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꼭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모든 참된 신자들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영적인 조건이며 신자 됨을 드러내는 공통적인 표지이다. 참된 영적인 생명의 요체는 순간적으로 동의나 헌신의 감정을 느끼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성경에 꾸준히 순종하는 삶에 있다(118)."


이를 NIGTC에서는 

The temptation in 1:22 is to assume that James is explicating the previous section: “When I say receive the word, I mean do the word, not just listen to it.” This may in fact be the case , but one should not put too much stress on the use of δέ. 

... 

Be doers of the word,” says James. The imperative γίνεσθε regularly substitutes for ἔστε  and so the verse has a continuous force with a charitable assumption (“continue being”) rather than the ingressive “become” which γίνεσθε might be thought to imply(96). 


접속사 δέ의 사용법에 대하여서 말하고 있다. 다음 문단은 더욱 그러하다. 명령형 γίνεσθε가 ἔστε 대신에 자주 사용됨을 말한다. 이렇듯 원어의 문법적 해석을 한다. 


다양한 주석이 있고, 그 주석들은 저마다의 목적이 있다. 대상이 다르고 목표가 다르다. 맥아더 신약 주석은 본문을 한 구절씩 분석하고 해석하는 주석이 아니라, 본문 자체와 그 본문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와 적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좀 더 심도 깊은 강해서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을 통독하면서 함께 읽어나가도 좋을 것 같고, 설교를 준비하는 목회자들에게 유용한 통찰을 줄 수 있는 주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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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 개념의 근본적 성격[언약 개념이 유대교 신학의 근본이라는 점]이 랍비 문헌에서 "언약"이라는 용어가 상당히 희소하게 등장하는 이유를 크게 설명해준다는 것을 대담하게 말해보았다. - P342

사해 사본은 언약을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직접 언급하는데, 이는 에세네파 자체가 그들이 참 언약을(혹은 언약에 관한 참된 해석을) 갖고 있다는 자신의 확신을 존립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요, 이 언약에 들어오고 머물려면 지켜야 하는 특별한 요구사항들을 규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 P342

에스라4서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문헌에서는 이 자비가 엄격한 보응이라는 주제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주제-와 나란히 자리해있는 주제다. - P343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합당한 몫을 갚아주신다고 말하는 진술들은 하나님의 정당하심을 강조하는 데 이바지하며, 죄인과 의신 모두에게 그들의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심어주는 데 이바지한다. - P343

하나님은 변덕스럽지 않으시다. 하나님은 순종을 벌하지 않고 범죄에 보상하시지 않는다. - P343

언약적 율법주의의 "패턴" 혹은 "구조"는 이렇다. (1)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으며, (2) 율법을 주셨다. - P345

율법은 (3) 이 선택을 유지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4) 순종해야 한다는 요구를 암시한다. - P345

(5) 하나님은 순종에 보상하시고 범죄를 처벌하신다. - P345

(6) 율법은 속죄 수단을 제공하며, 속죄는 결국 (7) 언약 관계 유지 혹은 언약 관계 재수립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 P345

(8) 순종과 속죄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언약 안에 남아있게 된 모든 이는 장차 구원받을 그룹에 속해 있다. - P345

첫 번째 요점과 마지막 요점에 관한 중요한 해석이 선택, 나아가 결국 구원은 인간이 이룩하는 일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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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우리는 희년서가 아주 엄격한 율법주의를 표명하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끊임없이 호소하는 모습을 보며, 저자가 하나님을 당신 백성에게 늘 자비로우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본다. - P308

우리는 쿰란 문헌이 인간을, 심지어 선택받은 자도, 인간의 연약함에 참여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죄 안에" 있다고 여기면서도 인간의 연약함 자체를 정죄하지는 않았음을 보았다. - P337

대다수 범죄를 속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했으며, 선택받은 자들을 "죄 안에" 있어도 "타락한[버림받은, lost]" 자로 여기지 않았다. - P337

하지만 에스라4서는 죄를 피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이 영벌로 이어진다고 본다. - P337

에스라4서 저자와 현존 문헌에서 나타나는 유대교의 나머지 견해를 구분해주는 것이 인간의 곤경을 바라보는 이런 비관론이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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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 문헌은 사람이 어떤 방법을 통해 자신이 선택받은 자임을 증명하는지, 무슨일을 하면 선택받은 자라는 지위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지, 어떤 이는 선택받는데 또 어떤 이는 받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묻는 문제들을 상세히 다루었지만, 에녹1서는 랍비 문헌만큼 상세히 다루지 않는다. - P298

하지만 "우리에 찬동하느냐 아니면 반대하느냐에 강조점을 둔 것은 둘이 비슷하다. - P298

의인은 하나님과 전통에 충성하지만(의인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을 "택한다"는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94.4). - P298

악한 배교자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파멸시킨다. - P298

결국 우리는 우리가 랍비 문헌에서 발견했던 것과 아주 똑같은 종교 패턴을 묵시 문헌의 틀 안에서도 발견하는 것 같다. - P298

일부 부분(개인의 범죄와 속죄)이 빠져있는 이유는 문헌의 본질 그리고 충성과 불충성이라는 문제를 다루는 규모 때문이다. - P298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구원이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 그리고 선택받은 상태를 유지하는 데 의롭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에 충성과 순종을 이어가는 것임을 발견한다. - P298

우리는 희년서의 구원론도 우리가 팔레스타인 유대교 안에 아주 널리 퍼져있음을 발견했던 그 구원론이라고 결론짓는다: - P307

구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조상들과 언약을 세우실 때, 곧 그가 결코 버리지 않으실 언약을 세우실 때 은혜로 베풀어주신 것이다(1.18). - P307

하지만 개인들도 언약 자체를 걷어 차버렸다 할 정도로 죄를 짓는다면, 이스라엘에서 배제당할 수 있다. - P307

희년서는 많은 점에서 구약의 신앙을 이어간다. 저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베푸시는 사랑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신실하심, 순종하라는 하나님의 요구, 당신이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 그리고 참회하는 자를 기꺼이 용서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강조한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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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자들이 어둠의 천사의 지배 아래 있다는 진술이 있긴 해도(1QS 3.20), 이 악한 자들이 죄와 관련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참회하고 언약에 합류하는 일이다. - P253

이것은 쿰란이 가졌던 견해와 유대교의 나머지 그룹 및 바울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점이다. - P253

랍비 문헌을 보면, 사람은 범죄를 참회함으로 언약에 합류하는 게 아니다. 애초에 사람은 언약 안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 P253

하지만 죄를 범과로 보고 참회를 이런 범과에서 고침을 받는 것으로 보는 기본 범주(개념)는 쿰란이나 유대교의 나머지 그룹이나 바울이나 똑같다. - P253

앞으로 보겠지만, 바울과 에세네인은 똑같이 사람은 날 때부터 구원에 효험이 있는 언약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른 행동(곧 "믿음")으로 언약에 합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P253

처벌은 행위에 따라 이뤄지나 보상은 자비로 말미암아 주어진다는 테마가 말하려는 요지는 인간이 범죄를 저질러 구원을 잃어버리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인간이 순종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은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 P259

여기서 잠시 멈춰 서서 에세네파의 견해와 랍비들의 견해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살펴봐도 될 것 같다. - P261

랍비 문헌을 보면, 하나님이 행위에 따라 형벌과 보상을 공정하게 나눠주신다는 점을 사해 사본보다 더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이 의롭다하심을 받는 데 필요하다는 점은 사해사본보다 덜 강조한다. - P261

하지만 둘의 근본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랍비 문헌을 보면, 보상과 형벌을 베품이 구원의 기초가 되지 않고 도리어 언약이 구원의 주요 요소인 반면, 언약 안에서는 인간이 그 행위에 따라 형벌을 받고 보상을 받는다. - P261

마찬가지로 쿰란도 사람이 언약에 따른 법규를 어기면 처벌받고 법규를 지키면 보상을 받는다고 말하면서도, 언약 자체 안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고 말한다. - P261

사람을 언약 속에 놓아두는 하나님의 은혜는 랍비 문헌보다 쿰란이 더 강조한다. - P261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인식과 순종하라는 요구가 모두 높았다는 점은 유대교 전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P262

이는 곧 유대교가 "은혜"와 "행위"를 결코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음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 P262

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노력이 어떤 방식으로라도 대립한다는 개념이 팔레스타인 유대교에겐 철저히 낯선 개념이라고 말하는 게 안전하다고 믿는다. - P262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팔레스타인 유대교가 은혜와 행위 중 어느 하나만을 구원에 이르는 길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 P262

(에스라4서를 제외하면) 구원은 언약에서 체현(體現)되어 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 P262

그러나 언약 조문은 순종을 요구한다. 우리는 쿰란(사해 사본)에서 순종하라는 요구와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을 믿는 믿음이 함께 나타남을 특히 분명하게 목격한다. - P262

이는 쿰란이 이 두 가지 점을 두드러지게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팔레스타인 유대교 전체에서 대체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 P262

하나님과 맺은 경건한 관계의 중요성이 이 집회서 저자의 주 관심사라는 주장은 아무도 시비할 수 없다. - P276

그러나 이 책의 논지,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말하는 주제는 지혜와 율법의 변증법(dialectic) 속에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 P276

벤 시락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지혜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선생에게서 지혜를 구하지 말고 오히려 모세 언약을 지켜야[observe] 한다고 주장한다. - P276

이런 주장은 요한복음의 논지, 곧 주변 문화들이 하나같이 동의하는 욕구와 가치(진리, 빛 따위)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었다는 논지와 비교해 볼 수 있다. - P276

이처럼 "보편주의"와 "특수주의"가 실상 균형을 이루고 있지도 않고 긴장 관계에 있지도 않다. - P276

지혜와 토라의 관계는 변증법적이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복종하지 않는다. - P276

지혜는 선하며 추구해야 할 것이다. 토라 안에서 지혜가 구현된다(embodied in the Torah). - P276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모세의 계명에 순종하는자는 지혜로울 것이다. - P276

올바른 행위의 내용은 평범한 이도 아는 지혜 전통과 긴밀하게 결합해 있으나, 벤 시락은 이런 내용이 토라와 일치하며 토라 안에 구현되어 있다고 밝힌다. - P276

벤 시락은 지혜 전통의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지혜를 이스라엘이 선택받음과 이스라엘이 모세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틀 안에 놓고 다루는 생산적인 신학적 조화를 추구한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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