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형을 바라보며 ‘이것만이 옳은 도형‘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 P14

마찬가지로 나와 다른 모양의 사람을 나와 같은 모양으로 살아주기를 요구하거나 강제할 수 없다. - P14

더구나 자신은 바뀌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만 다른 모양으로 바꾸라고 요구하는 일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다. - P14

나의 타고난 형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모양으로 억지로 바꾸려고 하면 할수록 당신은 심한 자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 P14

자신을 부정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탁월한 강점은 최대화하고 자신의 연약한 점은 보완할 수 있는 전략을 갖추는 것이 현명하다. - P14

남성 혹은 남자 아이들이 큰 힘을 얻는 것 중 하나가 동료나 또래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다. 반면에 자신을 인정해 주었던 동료나 친구를 실망하게 하고 버림받는 것을 대단히 두려워한다. 그래서 남성들은 사회생활에서 친구의 인정을, 상사의 인정을, 여자 친구의 인정을 격렬하게 갈구한다. - P21

당신이 되도록 편하고 행복한 직장 생활을 하고 싶다면, 태도를 단호하게 하고,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긍정적인 공격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 P31

이렇게 급속도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변하지 않는 가치는 어디서 찾아야만 하는가? 그 해답은 나 자신을 알고, 상대방을 아는 능력으로 되돌아간다. ‘나‘로 돌아가는 자아의 혁명, 이것은 8차 산업 혁명 사회가 와도 변치 않는 영원한 주제이며 기술이다. - P41

용장은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제어하고 책임지고 관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 P54

문제는 용장일수록 참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편이라는 겁니다. 정말 고집이 세죠. 자기중심적일 뿐만 아니라, 매우 경쟁적이라서 지는 것 자체를 싫어해요. 그걸 경험으로 살릴 생각은 잘하지 못하고, 잘못되는 것 자체를 경험으로 살릴 생각은 잘하지 못하고, 잘못되는 것 자체를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거죠. 누구나 완벽주의적인 기질은 조금씩 있지만, 세모는 가장 자기주장이 강한 편입니다 - P54

세모형에게 부족한 것은 지능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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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내 존재에 덧붙여지거나 부과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거기에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소명이 일직선으로 발전된 것은 아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 않았던무계획적인 사건과 사람들이 알고 보니 내 존재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거기에 의도가 있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

사무엘은 세상에 바쁠 것이 없는 여유로운 사람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편안한 여유였다. 자신이 누구인지 확신하는 사람은 서두를 필요가 없는 법이다.

‘하카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함의를 가진 단어인데, 고귀한 일을 맡을 적임자는 확실히 아니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한 배에서 태어났지만 제일 작고 약한 녀석이라는 뜻이다.

‘양 떼를 치는’ 일은 농장 일 중에서 가장 책임이 작은 일이다. 실수로 인한 피해가 가장 적다. 오늘날로 치면 이웃집 아이를 봐준다거나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봉투에 담아 준다거나 하는 정도의 일이다.

양 떼를 치던 다윗은 눈에 잘 띄지도 않았고 대체로 무시당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날 그를 베들레헴으로 데리고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선택받은 사람은 다윗이었다. 선택받았고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든, 형제들이든, 심지어는 사무엘이든, 사람이 그에게서 보았던 것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서 보았던 것 때문에 선택받았다. 그리고 사무엘의 손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하게 살도록 말이다.

학자들은 전례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미치는 힘과, 이야기가 우리 자신과 주변 세계를 이해하는 데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학문적 관심을 기울였다. 배우는 내용보다도 그것을 배우는 방식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 어떤 내용도 아무런 형태 없이 둥둥 떠서 우리 삶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일정한 형식 안에 자리잡은 채로 온다

하나님과 믿음에 대한 기본적이고 통합적인 실재를 알려면 그 형식 또한 기본적이고 통합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리는 주변화되고 결코 완전히 소화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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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몰랐지만, 그때 나의 무의식에서 싹트기 시작해 수년 후에 비로소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른 확신은, 하나님 나라처럼 커다란 규모로 일어나는 변화나 혁명의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주변부에서 일하는 소수자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한 친구가 내게 말하기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우리의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셨을 때 하신 결정적 행위가 바로 그들을 부모로 만드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약속한 것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사랑과 용서, 자비와 겸손의 그 모든 복잡한 내용들을 실천하는 삶으로 들어갔다

강의실과 교회와 결혼의 결합이 해낸 일이었다. 말하자면 그 세 가지가 결합해서 연쇄 반응을 일으켜목사 그리고목사의 아내를 만들어 낸 것이다. 강의실의 세계와 교회의 세계 그리고 결혼의 세계가 의식 이면에서 서로 상호작용을 했다. 상호작용은 너무 온건한 표현이다. 그 결합은 서로촉매 작용을 했다. 그 세 개는 더 이상 별개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 결합으로 네 번째의 세계가 생긴 것이다. 하나 더하기 하나 더하기 하나가 셋이 된 것이 아니라, 다섯이 된 것 같았다. 가르치는 일과 교회 일 그리고 결혼이 합하여 목사의 소명을 낳았다.

하루걸러 하루씩 교회에 일하러 가면서 밧모 섬의 요한과 함께 그 몇 주간을 지내는 동안, 강의실은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주제의 거대함을(그 넘치는 아름다움과 충일한 언어를) 제대로 다루기에는 강의실이 너무 좁고 질서정연했다. 강의실에서는 배제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 너무 많은 생명이, 너무 많은 세상이, 학생들의 너무 많은 부분이, 복잡한 관계와 세밀한 감정이 모두 배제되었다.

반면에 교회에서는 모든 것이 무작위로 계획 없이 동시에 일어났고, 규율도 없는 사소한 잡담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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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간추린판)
E. P. 샌더스 지음, 박규태 옮김, 김선용 간추림 / 비아토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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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발전은 세밀하고도 풍성하게 우리를 성경의 서사로 초대한다. 성경의 전체 내러티브는 텍스트의 철저한 독해와 더불어 당대의 문화와 배경 이해로 인해 더욱 다채로워진다. 신학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훌륭한 작품이 많다. 꼼꼼하게 살펴보고 반복하여 읽으면 좋겠지만 진입장벽이 꽤 높다. 전체적인 흐름을 놓칠 때도 있고, 핵심에서 벗어날 때도 있다. 탁월하고 친절한 안내자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지만, 간결하게 핵심을 정리한 책도 큰 도움이 된다. 


요약판은 방대한 내용을 간결하게 압축하여, 다른 곳으로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고 전체적인 흐름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큰 장점이 있다. 이러한 책들은 이미 있어 왔다.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의 『개혁교의학』 (Gereformeerde Dogmatiek)은 존 볼트(John Bolt, 1947~)에 의해 『개혁파 교의학』(Reformed Dogmatics: Abridged in data-one Volume)으로 단권 축약본이 나왔으며,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의 방대한 저서 『교회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또한 베버(Otto Weber, 1902~1966)에 의해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Karl Barth's Church Dogmatics, An Introductory Report data-on Volumes I: 1 to III:4)로 단권으로 소개되었다(모든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신약학에서 매우 중요한 샌더스(Ed Parish Sanders, 1937~)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Paul and Palestinian Judaism)는 출간된 지 40년 만에야 겨우 한국에 번역되었다. 하지만 내용의 방대함과 더불어 전체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워 완독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 읽었지만 오독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김선용 박사는 이를 위해 책의 내용을 과감하게 줄이고, 독자들이 쉽게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간추린판』은 샌더스가 주장하는 핵심을 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안내서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40주년 기념판과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간추린 판』에 동일하게 있는 마크 챈시(Mark Chancey)의 서문은 보다 더 선명하게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서문만 읽더라도 샌더스가 바라보는 유대교와 율법, 바울의 사상에 관한 관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이후의 발전 과정과 흐름을 간결하게 파악할 수 있다. 


오랫동안 개신교는 자신들의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에 따른 부작용도 크다. 특히 유대교에 대한 오해가 만연하다. 저자는 그러한 오해가 마치 개신교가 로마 가톨릭의 논쟁과 같다고 주장한다. 유대교를 로마 가톨릭교의 역할로 역투영하는 셈이다(82).  이러한 오해의 주된 원인은 유대교에 대한 베버(Ferdinand Wilhelm Weber, 1836-1879)의 묘사라 할 수 있다. 베버는 유대교를 기독교와 대립하는 율법 종교로 그렸다. 또한 유대교의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접근할 수 없는 분으로 묘사했다(71). 아마 대부분의 개신교인이 이러한 영향 아래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샌더스는 그동안의 오해를 바로잡기 위하여 유대 문헌을 직접 독해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유대 문헌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기본적인 전제를 밝힌다. 이를 저자는 "종교 패턴"이라고 한다. "종교 패턴은 그 종교 신자들이 기능을 따라 그 종교를 이해한 내용을 묘사한 것이다(59)." 저자는 유대교의 많은 문헌들(탄나힘, 사해, 외경과 위경)을 직접 읽고 해석하여 그동안 암묵적으로 동의한 유대교는 율법주의라는 등식을 해체한다. 


1장부터 3장의 연구는 4장에서 귀결된다. 저자는 4장  '팔레스타인 유대교'에서 유대교가 가진 기본적인 전제를 다시 한번 밝힌다. 즉 '언약' 개념이 유대교 신학의 기저에 전제되어 있었기에 '언약'이라는 용어가 매우 드물게 등장함을 주장한다. 이러한 '언약적 율법주의'는 유대교 문헌에서 볼 수 있는 근본적 패턴이다. 저자는 기원전 2세기 초부터 기원후 2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언약적 율법주의'가 일관되게 유지되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언약적 율법주의는 이미 팔레스타인 지역에 널리 퍼져있었으며, 예수와 바울도 알았을 수 있음을 조심스레 추측한다.


5장에서 저자는 바울의 사상이 인간의 비참한 곤경에서 시작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여기서는 순서가 중요해진다. 기존의 도식이 인간론으로부터 구원론을 시작했다면, 저자는 바울서신에서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유일한 해결책으로부터 시작한다. 즉 구원론으로 시작하여 인간론으로 연결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셔야 했고, 율법도 함께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면, 율법은 구원의 길이 될 수가 없다. 따라서 율법은 인간 곤경의 해결책일 수 없다. 이렇듯 바울 사상의 핵심은 기독론과 구원론이라 할 수 있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간추린 판』에서는 이 책에서만 볼 수 있는 부록이 있다. 그것은 샌더스의 자서전과 그의 소논문 "다시 살펴본 언약적 율법주의"다. 이 부록만으로도 매우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 샌더스의 자서전은 학자로서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특히 주요한 세 가지 저서(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예수와 유대교, 유대교: 관습과 믿음)의 출간 과정을 그린다. 각 저서의 방향성과 내용 요약은 각 저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안내해준다. 곳곳에 배어있는 학자로서의 치열함, 대학자이지만 겸손하게 자신과 자신의 연구를 성찰하는 겸손함은 많은 귀감이 된다.


부록 2인 '다시 살펴본 언약적 율법주의'는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반박에 대한 거의 유일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매우 중요하고도 귀한 논문이다. 2004년과 2007년에 발표한 논문이니만큼 후속 연구과 여러 반론에 대한 샌더스의 입장이 잘 정리되어 있다. 


또한 후속 연구를 위한 자료를 안내해주는 부록의 An Annotated Bibliography for Futhe Study도 매우 큰 도움이 된다. 김선용 박사는 일차 자료와 이차 자료를 꼼꼼하게 분석하여 소개한다. 바울 신학과 샌더스의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후속 연구를 위한 귀하고 친절한 안내를 통해 학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논의의 핵심을 뒤따라 가볼 수 있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많은 분량은 다양한 유대 문헌에 최대한 객관적으로 접근하여, 그 문헌들에서 전제하고 있는 핵심적이고 통일된 사상을 소개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그렇기에 유대교와 유대 문헌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훨씬 더 쉽게 이 책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된 책으로 살펴보자면, 다니엘 보야린(Daniel Boyarin, 1946~)의  『유대 배경으로 읽는 복음서』 (2020, 감은사)와 프데더릭 J. 머피(Frederick J. Murphy, 1949~)의  『초기 유대교와 예수 운동』 (2020, 새물결플러스), J.C 판데어캄(James C. VanderKam, 1946~)의 『초기 유다이즘 입문』 (2004, 성서와함께)등도 유대교와 유대 문헌 이해에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간추린 판』은 원래의 목적을 달성했는가? 독자들은 쉽고 간명하게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파악할 수 있는가? 독자들의 의견은 다양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그 목적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엄두를 내지 못했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전체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더 수월하게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읽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부록의 자서전과 논문, 후속 연구를 위한 안내를 통해 샌더스의 다른 저작을 독파하고 싶은 마음과 다양한 바울신학 저서도 빨리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면 이 책의 출간은 대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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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8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찌모찌 2020-12-08 14:56   좋아요 0 | URL
아~ 신약학 전공은 아니고요.. ㅎ 조직신학은 잠시 했었었죠...ㅎ 그냥 저도 잘 모르니 이것저것 읽으면서 알아가고 있답니다^^ 감사해요 ㅎㅎ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주요 문헌은 (에스라4서를 제외하면) 모두 어떤 종교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와 관련하여 공통된 이해를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것을 "종교 패턴"이라 불렀으며, "안으로 들어감과 그 안에 머묾"을 어떻게 이해했는가가 바로 종교 패턴의 의미라 정의했다. 이 종교 패턴의 기초는 이스라엘 선택이었다. - P504

외부인은 회심하면 "안으로"들어올 수 있었고, 내부인은 그들을 택하신 하나님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안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근본은 선택이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선택받은 이에게 율법을 수여함이다. 선택받은 이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그들이 언약 속에서 누리는 지위를 유지했다. - P504

우리 논지는 많은 고대 유대인이 여태까지 자주 언급되지 않은 기본 가설들을 주요 원리로서 견지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원리는 존재했다고 추론할 수 있으며 존재했다고 추론해야 한다. 두 주요 원리가 있었다. 하나는 선택을 확신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선택에 대한 확신과 함께 하는 요구, 곧 유대인은 율법에 순종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 P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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