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예배로 부름받을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현존과 말씀과 행동을 인식하게 되는 장소로 계속해서 들어갈 것이며, 깨어서 그 현존과 말씀과 행동에 동참할 것이다.
교회를 공식적으로 세울 준비를 하면서 우선순위가 정해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지성소를 마련할 것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을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는 핵심적 형성의 행위다.
단순히 거룩한 땅으로 가는 순례자들이 아니라, 단순히 역사 속에서 자신이 처한 위치와 상황에 따라서 규정되는 사람들이 아니라,하나님의 백성이다.
성막의 가구들은 그들이 드리는 예배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었다.
예배는 그 누구도 보지 못한 하나님과 관련된 일이다.
예배란 ‘숱한 세월의 희망과 두려움’을 지나 오면서 남자와 여자와 아기들의 몸에, 동네에, 가정에, 일터에 날마다 조금씩 형성되는 구원이라고 우리는 이해하게 되었다. 구원이 이루어지는 ‘산자의 땅’이 우리 동네에 창조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와 말씀하시고, 우리가 기도와 찬송을 통해서 그분과 말하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일도 이 안에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예배의 북극은 "당신의 거룩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와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이고, 예배의 남극은 "기도와 찬송을 통해서 주님과 말하는" 우리의 말이다.
우리는 예배당의 건축 양식이 그 북극과 남극을 유지하고, 어느 각도에서 보나 하나님의 현존과 말씀이 존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우리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임을 인식하는 데 최대한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장로교 전통에서 ‘거룩한 말씀’은 성경과 설교를 통해서 ‘듣는 말씀’과 성경적 성례전인 세례와 성찬을 통해서 ‘보는 말씀’, 두 가지다.
말씀을 통해서든 성례전을 통해서든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동일한 것을 말씀하신다.
세례반. 세례는 기독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성례전으로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 시작했음을 표시해 준다. 예배당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세례반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첫 번째 말씀이 우리를 받아들이시고 용서하신다는 말씀이라는 뜻이다.
예배의 장소는 듣는 장소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그곳은 또한 말씀으로 선포된 것에 대답하고 응답하는 장소이기도 한다.
우리는 회중으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며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기도와 찬송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예배드리러 올 때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이다. 우리는 단지 보고 듣기 위해서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함께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온다. 넉넉한 환대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복도는 넓게 만들었다.
높이 달린 이 십자가가 하는 또 하나의 선언은, 우리가 망각해서 혹은 부주의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아래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예배는 소원 성취를 위한 행위가 되고 찬송은 자기를 축하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이었다
십자가를 통해서 시작된 행동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일보다도 크고 포괄적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오직 관계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관계는 눈으로 볼 수 없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무엇을 만들거나 무엇을 하는 데 이용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예배는 감각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신비를 인식하게 하고 그 신비에 집중하게 하는 예술이다
예배는 야웨의 구원과 계시에 푹 잠기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다.
아내 잰이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는지, 그 관계의 복잡성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환대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잠자리를 마련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것 이상의 환대였다.
정원 가꾸기는, 우리가 먹을 것을 기르고 조리하고 대접하는 일이 곧 창조계를 존중하면서 거기에 존엄성을 부여하는 행위가 되게 하고, 또한 인간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모두를 포함하는 살아 있는 창조계와 우리를 연결시켜 주는 행위가 되게 하는 데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숙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실천이 되었다
성만찬도 식사다. 주님의 식탁에 모여 앉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준비해서 내놓은 예수님의 살과 피다. 그것은 궁극적 환대이며, 모든 환대의 모체다.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이 서로 유기적인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새와 물고기, 흙과 공기, 검정색과 하얀색,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침, 점심, 저녁 등 우리가 집에서 하는 모든 식사는 강렬하고도 깊은 의미에서 주의 만찬에서 파생되었다.
잰이 하는 일에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대략 ‘하늘과 땅의 교차로에서 서성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피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자녀들에게 그리고 또 다른 누구에게나 예수님을 증언할 때 우리는 조언이 아니라 씨앗을 나누어 주는 겁니다. 그리고 씨앗은 싹이 틀 수 있는 땅을 필요로 하지요. 식사는 바로 그와 같은 땅이에요. 식사는, 우리가 하거나 하지 않는 모든 말과, 느끼거나 느끼지 않는 모든 것과, 하나님의 말씀과 잡담 몇 마디가 음식과 함께 흡수되어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는 관계의 환경을 날마다 마련해 줍니다.
함께 식사를 할 때는 추상성이나 보편성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사람들에게 간단한 지혜를 나누어 주지 않으셨어요. 그런 몇 가지 지혜로 사람들이 알아서 하나님이나 자기 이웃을 찾아가게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이 하신 대로 할 수 있습니다. 매일 저녁 여러분의 식탁에서 예수님의 생명을 취하고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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