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안에서 사는 것은 단순히 율법에 대한 적당한 대용품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원하시는, 그리고 전적으로 율법의 가치에 부합하는 바로 그러한 종류의 행위("열매")로 이끌어준다(5:22-3)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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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율법을 고도의 윤리적인 삶의 방법에 필적할 만한 것으로 칭송하기 위해 덕목들을 사용한 반면, 바울은 그러한 목록을 영 안에 거하는 삶의 윤리성을 율법에 필적할 만한 것으로 칭송하기 위해 사용한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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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용어로 말하자면 ‘실체적 진실’은 바울이 예루살렘 사도들의 권위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3에서는 그가 복음의 핵심 메시지를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 받았다고 하는데, 이렇게 상황에 따라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바울의 탁월한 상황 대처 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가 말한 특정 내용을 문맥에서 분리해 교리화하거나 윤리지침으로 손쉽게 변환하는 작업에는 늘 위험이 따른다. 성서학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많은 갈라디아인도 바울이 예수님의 제자 무리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갈라디아 신자들이 ‘할례의 복음’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인 이유를 명확히 밝히기는 불가능하지만 아마도 예루살렘 사도, 특히 야고보가 ‘할례의 복음’에 우호적 입장을 취한 것이 결정적이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바울은 자신의 자리가 종속적인 것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복음이 하나님에게서 직접적으로 왔음을 여러 번 강조하며 자신의 사도직과 복음의 권위 및 독립성을 주장한다.

갈라디아서 2장 전반부(2:1-10)는 1장 후반부(1:15-23)와 함께 묶어 바울의 자전적 기술이 담겨 있는 한 단락으로 간주하는 것이 좋다.(비교적 안온한 분위기인 전반부에 비해 2:11부터는 갈등이 가득 담긴 회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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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사건은 세상 역사의 완성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철저한 전복인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갈라디아서의 신학은 ‘구속사‘와 ‘묵시‘의 결합으로 특징지어진다. - P185

새로운 시대의 상징인 부활의 자리는 영이 차지하고 있지만, 십자가를 강조하는 것은 이 서신에서 반대하려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 P190

즉, 율법 아래에서 사는 옛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갈라디아인들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은 과거의 존재 형태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을 가장 적나라한 말투로 설명해준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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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을 언급하는 어조(즉 강조점들), 빈도, 명료성과 생소함 모두가, 많은 주석가들이 말하고 있듯이, 갈라디아에 있던 바울의 대적자들이 갈라디아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호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P113

바울은 방어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여, 그들의 성경해석과 자신의 성경해석을 대결시킬 수밖에 없게 되었다. - P113

할례를 받아들임으로써 갈라디아인들은 갈라디아 사회의 나머지 사람들과 관계하면서 떳떳한 입장을 취할 수 있었다. - P123

비록 유대인들이 인기는 없었을지 몰라도, 최소한 유대 종교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기독교 운동처럼 의심스러운 새 것이 아니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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