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길롯이 목회 사역에 유용하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예배라는 맥락 안에서다

예배 행위(유월절, 오순절, 아빕월 제9일, 장막절, 부림절) 안에서 낭독되는 메길롯에 귀를 기울일 때, 이 책들은 전혀 다른 의미를 드러낸다

메길롯을 규정된 예배 행위 안에 자리 잡게 함으로써 유대교에서는 그 역사적 배경 안에서는 분명하지 않았던 효과가 드러나게 했다.

목회적 지침과 통찰을 제공했으며, 그 목회적 기능의 실례를 보여주었다.

새로운 것을 아무것도 더하지 않았으며, 원래부터 있던 것을 목회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을 뿐이다.

공동체의 예배라는 맥락에서 메길롯을 사용함으로써 유대교에서는 이스라엘과 교회 안에서 여전히 유효한 진리를 입증했다

즉, 목회 사역은 예배 행위에 그 기원을 둔다.

공동체("공동") 예배는 목회 사역을 위한 성경적 배경이다.

공동 예배를 떠나서 목회 사역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목회 사역 그 자체로는 아무런 정체성도 갖지 못한다.

예배할 때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는 함께 모여 성경과 설교, 성례전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이 선포된 말씀이 믿음을 낳고, 그 믿음으로부터 찬양과 순종, 헌신의 반응이 나타난다.

성경적 신앙, 혹은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삶이 이런 공동 예배와 상관없이 존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의 예배에 자주 그리고 꾸준히 참여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에 관한 사적인 생각으로부터 종교를 만들어내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

목회 사역은 주일 사이에, 첫 번째 날과 여덟 번째 날 사이에, 창조와 부활의 경계선 사이에서, 창세기 1장과 계시록 21장 사이에서 이뤄진다.

목회 사역은 강단과 세례반, 성찬대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병실과 거실, 상담실, 회의실에서 계속된다. 예배할 때 사람들을 이끄는 목회자는 예배 행위 사이에서는 바로 그 사람들의 동반자가 된다.

공동 예배로부터 단절된 모든 목회적 행위는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 그 성경적 특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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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사역을 경시할 때 종교는 예식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거나 사적인 감정으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어떤 경우이든 종교는 여전히 많은 일을 잘 수행한다. 신학은 심오하고, 명상은 신비적이며, 도덕적 충고는 현명하고, 예전은 화려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귀부인을 공적인 광장으로 끌고 나오기 전까지 종교는 복음으로 생동할 수 없으며, 그 사상과 신념을 실제 삶의 상황에 비추어 시험하고 적용해볼 기회를 얻지 못한다.

목회 사역은 일상적인 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독교 사역의 한 분야다.

목회 사역은 모든 기독교 사역과 마찬가지로 성경이라는 근원으로부터 유래했다.

과거를 거의 존중하지 않고 과거에 대해 잘 모르는 분위기가 심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목회 사역을 휘감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마치 마법에 걸린 듯 우리가 다른 이들과 나누도록 부르심을 받은 바로 그 지혜를 잊어버리고 있다.

하나님의 존귀한 실체를 잊고 있으며, 구속의 이야기 안에서 모든 개인적이며 지역적인 세부사항이 즉각적 중요성을 띤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뜻과 관련된 일은 시대를 더 잘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지 않고 인간-과 하나님-을 더 잘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일은 혁신이 아니라 연속성과 관련이 있다.

인간의 조건에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과 관련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환경과 문화 속에서 시험을 당하고, 그러한 중에 신실함을 증명한 사람들의 경험으로부터 더욱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도덕적으로 복잡한 상황에 대해 고려하기를 거부하는 태도, 역사와 더 광범위한 공동체에 대한 거부, 타자의 실종, 의지에 대한 과장, 모든 경험을 상투적인 것으로 환원하는 태도-이 모든 태도를 거의 모든 현대 심리 요법 안에서 맹아적 형태로 발견할 수 있다."

설교와 교육에 관해 지침과 가르침을 얻기 위해 서재로 들어가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카를 바르트Karl Barth와 찰스 도드C. H. Dodd, 존 브라이트John Bright와 도널드 밀러, 조지 버트릭George Buttrick과 데이비드 리드David Read, 브레바드 차일즈Brevard Childs와 게르하르트 폰 라트Gerhard von Rad의 책을 집어든다

강단은 예언자적, 케리그마적 전통에 기초하지만, 교회 사무실은 IBM 기계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

가르치는 행위는 역사비평, 본문비평, 양식비평, 편집비평을 통해 얻은 성경적 통찰에 의해 훈련을 받지만, 병실 심방은 정신과 의사와 의사들의 감독 아래서 이뤄진다.

나를 가르치는 이들은 성경에서 본문 하나를 택해 그 본문이 내 편이 되어준다고 나를 안심시키지만, 명백한 사실은 그들이 장려하는 문화 속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목회적 동반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구원의 역사, 언약 신학, 성육신적 사고는 그들의 관심사에서 변두리로 밀려나 있으며 그들의 전문 분야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

그들은 나에게 능란하게 역할을 수행하고 민첩하게 그 역할을 바꾸라고 가르친다.

목회 사역의 독특한 속성은 사역의 두 가지 측면을 결합한다는 점이다. 즉, 한편으로는 영원한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목회자가 사는 실제 장소와 그가 더불어 살고 있는 이름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독특한 요소들 사이에서 그 일을 하는 것이다

만약 둘 중 어느 한 측면을 가벼이 여긴다면 좋은 목회 사역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최선의 목회 사역에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과 옛 아담의 죄를 물려받았지만 새 아담의 구원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 사이에서 성경이 묘사하는 은총의 교회를 이야기하고 그 모형을 만들어낸다.

목회 사역에서는 마치 후대의 세대가 새로운 수준에 도달해 전 세대를 능가하거나 뒤처지는 것처럼 진보의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는 깊이를 발견한다. 켜켜이 쌓여 있는 증거들이 있고, 그것들이 걸러져 그중 일부는 지혜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목회 사역 하는 것을 자신의 과업으로 삼았다

목회 사역이 성경적인 바탕과 목회적 전통-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특별한 교감이 일어난 증거-안에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 것은 필수 요건이다.

무지 때문이든 망각 때문이든 성경의 목회적 전통으로부터 분리될 때 목회 사역은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낳는다

성경에서 그리는 하나님의 현실과 인간의 현실 사이의 모범적인 상호작용은 목회적 능력을 얻고 그 능력을 새롭게 해준다.

지역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에 몰입할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목적에 대해 우리 사회는 엄청난 자원과 창의력에 집중한다.

그들은 창조의 세부사항이나 구속의 무대와도 접촉하지 못한 채 대중 운동의 일반화와 제도화된 직업의 비인격화라는 흐름에 휩쓸려가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과학이나 정치, 예술, 학문에 대해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지혜의 교사가 될 수 없다. 즉, 하나님의 창조의 맥락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에 응답하며 순전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사는 일에 관해 그들은 유익한 조언을 제공할 수 없다. 그리고 목회 사역은 바로 그 일을 맡고 있다.

우리가 주일에 사용하는 성경은 월요일이 되면 최신 조직학 입문서나 상담 안내서, 잡지의 사설로 재빨리 대체된다. 그러나 목회 사역에서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함으로써가 아니라 옛 지혜를 흡수함으로써, 최신 서적을 읽음으로써가 아니라 옛 책들을 소화함으로써 전문 지식을 수집한다

우리 시대에 목회 사역은 그런 과정-대학원, 베스트셀러 목록,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관한 최신 여론조사 결과 등 가용한 것은 무엇이든 허겁지겁 필사적으로 끌어모아 날림으로 지은 건물-에 따라 얻은 결과물인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우리 시대에 목회 사역은 그런 과정-대학원, 베스트셀러 목록,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관한 최신 여론조사 결과 등 가용한 것은 무엇이든 허겁지겁 필사적으로 끌어모아 날림으로 지은 건물-에 따라 얻은 결과물인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성경에 접근할 때 성경이라는 기초와 목회라는 상부구조 사이의 구별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경 안에는 목회자의 일상적 사역 안으로 그대로 가져와 적용할 수 있는 목회 사역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각 문화와 각 세대, 각 회중은 저마다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 세대의 목회자들이, 그리고 어느 정도는 목회자 각자가 자신만의 목회 사역이라는 상부구조를 세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만의 기초를 설계하지 못하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역사 속에서 이 시대에 목회 사역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이 고대인들처럼 파괴의 시간이 지난 후 폐허로 돌아가 어떻게 여기서 재건을 시작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정교하고 미묘한 심방의 능력 대신 우리는 주일마다 예배당을 가득 채울 수 있게 해준다고 약속하는, 전도라고 잘못 명명된 집단 방문 운동을 위한 훈련을 받는다.

영적 권면을 담은 편지 대신에 우리는 본래 대중매체를 위해 만들어진 표어를 사용한다.

인내의 본보기 대신에 우리는 그저 사기를 북돋는 말을 건네며 교회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치어리더처럼 소리를 지른다.

목회 사역의 역사는 사역이라는 평원 위에 있는 커다란 언덕이다

그 일을 했던 선배들의 층이 선명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층, 베네딕투스의 층, 프란체스코의 층, 루터의 층, 칼뱅의 층, 웨슬리의 층, 키르케고르의 층이 있다.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하는 일 한 가지는 정처 없이 다니며 새로운 건물터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재건은 성경이라는 터 위에서 성경에서 찾은 기초석을 사용해 이뤄져야 한다.

이 일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많은 성경적 문서가 있다. 예를 들어, 신명기는 이 일을 위해 한 차례 이상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명기는 옛 족장과 출애굽 전통을 가져와 새로운 상황에 맞게 재처리해 요시야 시대에 목회적으로 활용된 문서다. 마태복음은 메시아적 공동체인 교회가 사도 시대의 케리그마적, 교훈적 자료를 목회적으로 활용한 예다. 그 밖에 다른 예도 있다.

메길롯을 현재의 목회 사역을 위해 재활용하고자 할 때 우리는 이스라엘이 반복적으로 성경을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성경을 사용하게 된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행위로 전해진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존경심을 가지고 성경을 대하고, 그 의미를 묵상한 다음, 현재의 상황 속에서 그것을 적용하며, 바로 여기서 그것을 믿고 그것을 살아낸다.

우리는 성경적으로 "그럴듯한 모양을 만들기" 위해 현대 목회적 삶을 고대적 틀 안에 집어넣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성경적 자료 안에 분명히 드러난 좋은 목회 사역의 생명력에 다가가 그것을 우리 시대에 활용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성경의 재활용은 그 자체로 성경적인 행위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그렇게 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역사를 단순히 주기적으로 반복하지 않았다. 각 세대가 어떤 것은 후대로 넘겨주고 어떤 요소는 무시하고 가끔은 혁신적인 것을 도입하기도 했다.

전통에 대한 의존과 전통 안에서의 자유가 공존했다.

게르하르트 폰 라트는 "새로운 상황에 맞게 옛 전통을 적응시키는 이 과정이 이스라엘이 자신의 역사와 하나님의 연속성을 보존하고 그것이 일련의 무관한 행위로 해체되는 것을 방지하는 가장 정당한 방법이었음"을 자세히 논증한 바 있다.

모든 목회 사역은 편집 행위, 즉 오늘의 공동체를 위해 성경적 설교와 교육을 수정하는 행위, 케리그마적 충실성과 목회적 감수성을 결합하는 행위다.

유대교에서 예배 행위 안에 자리 잡은 메길롯의 책들은 각각 목회 사역의 한 양상을 다룬다. 즉, 구원의 맥락에서 사랑하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일(아가서),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맥락 안에서 믿음의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발전시키는 일(룻기), 구속적인 심판의 맥락에서 고통을 다루는 일(애가), 섭리적 축복의 맥락에서 종교적 망상과 경건을 가장한 기만을 폭로하는 일(전도서), 세상의 적의라는 환경 속에서 축제의 신앙 공동체가 되는 일(에스더서)에 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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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을 거듭한 끝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 P10

‘노력‘은 ‘습관‘이 생기면 지속할 수 있다. - P10

‘습관‘을 만드는 방법은 배울 수 있다. - P10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돈이 없다는 불안을 느낄 때 그 불안에서 도망치기 위해 마구 쇼핑을 한다. - P90

불안한 사람은 자신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고 만다. - P90

아래와 같은 조건을 염두에 두고 ‘하지 않을 일‘을 생각해보자.

자녀가 배우지 않았으면 하는 일
끝난 후에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고 후회하는 일
돌이켜봤을 때 커다란 배움을 얻었다고 느낄 수 없는 일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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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의 휴식 - 마음의 평안과 자유를 얻은
이무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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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삶.

웃음과 울음. 

사랑과 미움의 공존.


시간이 지나 보면.

우리의 어리석음과 무지에

아쉬움 가득.


이해 못한 내 행동.

그 원인을 찾아 떠나는 여행.


정직하게 자신을 바라보면

여전히 울고 있는 어린아이.


그래, 괜찮아.

많이 아팠지?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우리에게 친구처럼 다가와

용기 낼 수 있게 해주는 책.


#30년만의휴식

#이무석

#비전과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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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는 존재이다. 부와 명성, 권력을 다 갖추고 있어도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주변사람들과 냉랭한 관계에 있는 사람은 삶의 만족과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 P28

인간관계가 빈약한 사람들은 고독에 시달린다. - P28

자기를 빼고 대화에만 열중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로워진 것이다. - P71

상대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비난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 P71

사람은 인정해 달라고 애걸하는 심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버림받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대화 중에 자기를 뺄 수 있다. - P71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대단한 일을 성취하거나 많은 재산, 명예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 P112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 P112

자신에 대해 자존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P112

나를 작게 만드는 사람에게 나를 판단할 전권을 주지 말라. - P112

나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관계없이 온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이다. - P112

시기하는 아이에게서 벗어나려면 다른 사람보다 나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스스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 P120

나는 남과의 비교를 통해 존재이유가 드러나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나인 것만으로도 존재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P120

장단점을 가진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해 줄 필요가 있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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