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의도하셨지만 죄 때문에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인격적 관계가 구원에 의해 재창조(재구속)된다
구원이란 우리를 죄의 결과(속박, 분열)로부터 구원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또 이웃과 자유롭고 열린 사랑의 관계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 명령은 구원을 전제로 삼는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없다면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있기에 우리가 이 모든 명령을 받아들일 수 있고, 이를 통해 하나님과 또 다른 이들과 생기 있고 전인적이며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이 묵상하는 구원 행위는 출애굽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구원자로, 자신을 구원받은 사람들로 경험하는 위대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히브리인들의 모든 삶에 대한 케리그마적 중심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그들은 거룩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 앞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신 그분의 강력한 행위를 기쁘게 선포했다.
이 선포는 유월절을 통해 유지되었다. 이 축제를 해마다 반복함으로써 이 사건을 새롭게 기억할 수 있었다.
의례적인 식사와 이야기하기, 시편 찬송하기를 통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 삶을 시작했던 사건을 가정 안에서 다시 체험하고 이해하고 노래한다.
그들은 군사적, 정치적, 혹은 환경적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에 의해 정의되고 형성되고 정향定向된다.
구원은 역사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행위이므로, 각 사람이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믿음 안에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구원-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시며 속박의 세력을 극복하시고, 악의 힘을 물리치시고, 그 백성을 실제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으로 삼으신 사건-은 유월절을 통해 현재적이며 개인적인 사건으로 공표된다.
출애굽 이야기의 형태를 띤 구원 이야기는 놀랍고도 장엄하다
하나님 백성의 역사에서 이보다 더 기억에 남을 만한 이야기는 없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보다 더 위대한 사건은 최종적이며 완결된 출애굽인 부활절밖에 없다.
경건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사건으로 계속해서 되돌아와 이를 기억하고 이해하고 찬양하고 그에 대해 응답했다.
아무리 놀랍다 하더라도 이 사건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역사적이었다
연대를 추적할 수 있는 시간과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장소에서 일어났으며, 따라서 현재의 시공간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무도 이 사건을 인간의 실존을 "이해"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혹은 활용할 수 없는) 무시간의 영역에서 일어난 신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셨음을 명백히 증명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해마다 유월절에 이 구원의 행위를 선포함으로써 그분의 백성은 그들이 지금 이렇게 존재하는 것이 그들을 멸망에서 구해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대적에 맞서 새로운 삶의 길을 걷게 하시고, 믿음의 삶을 살도록 그들을 온전히 회복시키신 하나님의 행위 덕분이라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거듭 되새긴다.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말은 "파멸로부터의 구출"이라는 뜻과 "건강한 상태로의 회복"이라는 뜻을 모두 갖는다
구원은 다시 온전한 상태로 회복되고 위험으로부터 건짐 받음을 뜻한다.
히브리어 어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말은 악이 아무리 당신을 가까이 에워싸더라도 당신이 마음껏 움직일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필요한 공간을 마련해주시리라는 뜻까지 담고 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보여주는 그분의 결정적인 행위에 해마다 관심을 집중시키는 절기였다.
유월절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는 의례적 식사를 나누는 것이다. 이 식사는 아가서를 읽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아가서가 쓰이기 오래전부터 유대인들은 이 절기를 지켰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유월절 식사seder를 마무리할 때 아가서를 읽기 시작했다. 아가서를 읽게 한 것은 분명히 목회적인 결정이었다.
유월절의 맥락에서 아가서를 읽는 것은, 사람들이 날마다 부대끼는 가정이라는 친밀한 공간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백성을 일으켜 세우는, 단번에 이루어진 영광스러운 역사적 구원 사건을 재현하는 행위였다.
아가서는 성경의 모든 책 중에서(아마도 시편을 제외하고는) 가장 내향적이며, 가장 친밀하고, 가장 개인적인 책이다. 이 책은 개인적 재참여를 통해 역사적 재연을 보충한다.
이 책은 역사적 배경에 쏠려 있던 관심을 내적 관계로 향하게 한다. 고대의 것이든 현대의 것이든 온전해지고 다른 사람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즉, 구원을 받을 때-느끼는 친밀감과 기쁨을 아가서만큼 설득력 있게 그려낸 시는 없다.
아가서와 유월절의 조합은 매우 잘 들어맞는다. 이 점은 친밀한 신앙과 통전적 관계성-구원의 맥락에서 복음의 인격적, 즉각적, 경험적 측면-을 길러주어야 할 책임을 맡은 목회자들에게는 특히나 주목할 만하다.
많은 부분에서 목회 사역이란, 누구나 겪고 있는 문제, 즉 구원의 장엄함에 대해 예민한 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는 문제를 다룬다.
친밀함을 잃어버린 후에도 정통 교리는 보존된다.
초월을 나타내는 상징과 유물 가운데서 일하는 목회자는 스스로, 또한 동시에 신자들 사이에서 냉담함이라는 모래톱으로 떠내려갈 위험에 직면해 있다.
공적이며 외적인 활동(교회 일, 신앙을 변론하는 일, 증언과 설교, 도덕적 형식주의)을 강화함으로써 잃어버린 부분을 은폐하려 할 때 경건의 삶은 약해지고 만다.
목회자는 역사와 제도라는 맥락 안에서 사람들을 대하지만, 그 목적은 그들을 언제나 예배의 형식과 제도의 규율 속에서 의례화된 구원의 사랑에 인격적이며 친밀한 방식으로 참여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예배에서 이뤄지는 기도와 찬양, 설교로부터 시작된 일은 목회 사역 안에서 계속된다
구원의 복음 안에 선포된 구출 작전은 목회자가 성도를 제자로 이끄는 과정을 통해 건강 회복 작전으로 이어진다.
아가서는 구원의 사랑, 비존재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고 관계 안의 존재를 만들어내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그 일상적 친밀함을 풍성하고도 자세한 방식으로 탐구하기 때문에 목회적인 문서 역할을 한다. 출애굽의 역사 안에 강력하고도 압도적으로 나타나 있는 삶을 변화시키는 사랑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침실만큼이나 친밀한 경험을 통해서 내밀한 인격적 관계 안에서 노래한다.
아가서의 사랑 노래들은 살아 있는 신앙을 생기 없는 ‘종교’로 변질시키려고 하는 모든 경향을 막아주는 보호 장치다.
이 노래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할 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배제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아가서에서는 신앙을 전통으로 환원하거나 그것을 가지고 학문적인 교의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우리의 경향성에 대한 교정책을 제공한다.
아가서에서는 하나님의 행위가 아무리 위대하며 하나님의 진리가 아무리 고귀하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 경험하지 못할 정도로 위대하거나 고귀하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구원의 위대한 진리가 ‘일상의 세계’ 안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믿는 신앙의 행위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의도하셨지만 죄 때문에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인격적 관계가 구원에 의해 재창조(재구속)된다
구원이란 우리를 죄의 결과(속박, 분열)로부터 구원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또 이웃과 자유롭고 열린 사랑의 관계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 명령은 구원을 전제로 삼는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없다면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있기에 우리가 이 모든 명령을 받아들일 수 있고, 이를 통해 하나님과 또 다른 이들과 생기 있고 전인적이며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이 묵상하는 구원 행위는 출애굽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구원자로, 자신을 구원받은 사람들로 경험하는 위대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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