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리이든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름을 발음하는 소리가 중요하다
친밀함은 세계와 결합되는 모호하고 신비로운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타자와, 즉 아담과 하와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인격적이며 특수한 방식으로 연합하는 경험이다.
이름은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개별적이며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목회 사역 역시 이름에 초점을 맞춘다. 목회자의 서재에서 교인 명부는 성경 다음으로 중요한 책이다.
다른 이의 이름에 익숙해지고 다른 이가 자기 이름에 익숙해졌음을 발견하는 것이 곧 친밀함이다.
아가서에 제시하는 언약의 두 번째 측면은 친밀함의 어려움이다. 친밀함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친밀함을 제공하는 구조(언약)는 확고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고자 할 때 장애물과 방해물을 만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 사건에 응답하는 사람은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음을 알고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의심이라는 장애물 없이 하나님과의 하나 됨을 느끼지는 못한다.
갈망은 정처 없이 헤매는 것이 아니며, 찾음은 어둠 속을 더듬는 것이 아니다. 방향이 있고, 목표가 있다.
목회 사역은 영적 추구의 어려움과 고통을 인정하고 그것을 함께 나눈다.
목회자의 책무는 영적 삶을 단순화하거나 공통분모의 공식을 만들어내거나 제자도를 실천하는 손쉬운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영적 성장의 길에는 항상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으며, 그 어려움을 부인하거나 최소화하거나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지름길을 제공하려고 할 때 목회자는 그 사람이 참된 성장을 이루지 못하게 막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히려 목회자의 책무는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의 동반자가 되고, 그 어려움을 인정함으로써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런 시간을 통과할 때 그들과 함께 대화하고 기도하여 그들이 조금이나마 고독감을 덜 느끼고 조금이나마 소망을 품고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 의도가 아무리 선하다고 할지라도 단순화시키려고 하는 사람은 좋은 목회 사역을 파괴하는 사람이다.
이 세상은 은총에 대해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어떤 차원에서든-하나님과의 친밀함이든 사람들과의 친밀함이든-친밀함을 추구할 때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친밀함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 그것은 효율적이지 않으며, "매력적"이지도 않다.
친밀함은 결코 쉽게 이룰 수 없다. 고통이 따른다. 갈망과 실망, 상처가 있다.
친밀함을 얻기 위해 상당한 정도의 비용이 드는 만큼, 보상은 비길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의도하신 그 인간성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듬거리며 비틀거리고, 방황하며 곁길로 빠지고, 지체하며 꾸물거린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결같 이 영원한 사랑을 받듯이 우리도 그렇게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
사랑과 신앙 모두에서 친밀함은 긴장으로 가득하다. 성취는 지연되고, 욕망은 쓰디쓰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과 그 사랑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사이에는, 약속과 성취 사이에는, 언약으로 규정되는 경계 사이에는 열렬한 사랑과 열정적인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인내하며 끈질기게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그 욕망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고 그 어려움을 하나님 아래 맡겨드린다
기도는 가장 중요한 관계, 사람과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 모두를 진지하게 대하는 가장 중요한 목회적 대화다
기도할 때 우리는 욕망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아뢴다.
기도할 때 어려움을 분석하거나 연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과 더불어 어려움을 풀어나갈 뿐이다.
친밀함이 우리의 목표라면, 교육이나 상담, 심리 요법으로는 그 목표에 이를 수 없으며(이런 사역들이 도움을 줄 수는 있을 테지만), 중요한 이들과의 관계, 즉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서만 그 목표에 이를 수 있다.
사랑과 신앙 모두에서 친밀함은 긴장으로 가득하다. 성취는 지연되고, 욕망은 쓰디쓰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과 그 사랑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사이에는, 약속과 성취 사이에는, 언약으로 규정되는 경계 사이에는 열렬한 사랑과 열정적인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인내하며 끈질기게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그 욕망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고 그 어려움을 하나님 아래 맡겨드린다
기도는 가장 중요한 관계, 사람과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 모두를 진지하게 대하는 가장 중요한 목회적 대화다
기도할 때 우리는 욕망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아뢴다.
기도할 때 어려움을 분석하거나 연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과 더불어 어려움을 풀어나갈 뿐이다.
친밀함이 우리의 목표라면, 교육이나 상담, 심리 요법으로는 그 목표에 이를 수 없으며(이런 사역들이 도움을 줄 수는 있을 테지만), 중요한 이들과의 관계, 즉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서만 그 목표에 이를 수 있다.
적어도 기독교는 성례전적이라는 뜻이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이며, 세속적인 것은 성스러운 것의 통로이고, 물질적인 것은 영적인 것을 담은 그릇이다.
세례에서 물은 죄사함의 성례전이 되고, 성만찬에서 음식은 영생의 성례전이 된다.
몸이라는 "지표"는 성육신을 통해 가장 완전히 다뤄지는 실재의 목록이다.
몸은 결코 그저 몸이 아니라 존재의 영역, 창조와 구원을 결합하는 삶의 과정을 연결하는 망이기 때문이다
경배, 송축, 일편단심-우리가 "사랑에 빠질" 때 경험하는 모든 것-은 우리가 사랑/구원받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사랑은 우리를 위해, 우리 안에서 모든 것-자신에 관한 우리의 생각, 다른 이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 우리의 가치와 목적-을 바꾼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삶이 어떤 궁극적인 의미를 지니게 만들며, 우리 삶을 영원히 무언가에 적합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목회 사역이란 우리를 서로와 그리고 하나님과 구별시켜주는 작은 차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런 다음 그것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사역이다.
친밀함에 대한 욕구와 실제 인간관계의 시시콜콜한 문제들이 기도의 내용이 된다. 욕망은 경배로 바뀌고, 어려움은 간구로 변한다.
목회 사역에서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때, 개인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관계를 계발하는 대화와 기도의 사역을 못하게 된다
바쁘다는 것은 영혼의 질병이다. 그것은 소명을 성실히 수행하게 해주는 버팀목과 은총의 우선성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한 가지 일에서 다른 일로 서둘러 넘어가려는 태도다.
친밀함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하는 목회 사역을 가능하게 해주는 대화와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여가를 넉넉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곧 공동체 안의 다른 사람들에 의해 사람들에게 강요되는 여가에 대한 기능적, 기술적, 비인간적 의미 규정을 거부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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