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말하기와 묵묵한 듣기의 경우처럼 말하기와 듣기의 사회적 측면이 항상 실패한다면 화자와 청자 사이에 공동체가 형성되기는 어렵다. 활기차고 번성하는 인간 공동체를 이루려면 말하기와 듣기의 사회적 측면이 잘 발휘되어야 한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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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영혼의 치료제
애덤 S. 맥휴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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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뒤흔드는 기막힌 일 앞에 한숨과 눈물만 늘어납니다. 마음을 다잡고 일상을 살아보려 노력하지만, 또 다른 말 앞에 번번이 무너질 때가 많습니다. 붙들고 있으면 무너지는 것은 우리이기에 놓아주려 애써봅니다. 마음이 쪼그라들어 여유가 없는 것 같아 조금만 더 천천히 가보려 합니다.


이런 작은 신음도 들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너무도 힘겨워 하나님 앞에서도 머뭇머뭇거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뒤바뀌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하나님을 원망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과 고통을 잘 알고 계시며, '위로'를 선물하십니다.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7)"


그렇습니다. '위로'는 '경청'에서 시작됩니다.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듣고 계셨습니다. 울부짖음, 몸부림, 한숨까지도 들으십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경청하신 하나님이며, 구속의 드라마는 '들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출 2:24)"


애덤 S. 맥휴 (Adam S. Mchugh)는 『경청, 영혼의 치료제』(도서출판 CUP)에서 경청에 대한 다양하고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성경의 말씀이 중심이 되면서도, 상담의 경험들이 풍부하게 담겨있습니다. '들어줌'의 행위가 어떻게 '환대'와 '위로'가 되는지를 꼼꼼하게 살핍니다.


'경청'은 능동적 행위입니다. '들음'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마음을 내어주어야 가능한 일이기에 집중된 상태, 나의 에너지를 쏟는 순간이 됩니다. '경청'은 '나'를 열어 '너'에게 향하는 시간이며, 공간입니다. 그 순간 '너'의 고통은 '나'의 아픔이 되며, '너'의 슬픔은 '나'의 눈물이 됩니다.


하나님은 경청하시는 분입니다. 저자는 성경에서의 하나님은 우리를 듣는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들으심으로 인해 구속사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말에는 행하셨다는 의미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들으심은 곧 행하심입니다. 하나님은 들으시되 하염없이 들으십니다.


인격적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그 가운데 가장 적절한 메시지를 말씀하십니다. 소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듣지 않으려 합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은 온갖 소음으로 가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합니다. 나의 필요 이전에 아버지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말씀하소서, 듣겠나이다"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우리를 겸허하게 합니다. 우리를 순종으로 이끕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를 열어둡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중에 하나는 성경 읽기를 통한 기도입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이미 성경에 뚜렷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시편이나 복음서를 통해 조용히 주님의 음성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에 풍덩 빠질 수 있습니다.


또한 온 만물에는 하나님의 흔적이 묻어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피조 세계에 가득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듣고 본다면 일상 곳곳에서 하나님을 들을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여유 있게 주변을 둘러보세요. 우리가 듣는 음악, 서로의 대화, 바람 소리와 찬란한 태양 말이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이웃을 들을 수 있습니다. 드디어 '너'에게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들으면서도 훈수를 더하고 싶은 충동에 빠집니다. 아니면 내가 더 큰 고통 가운데 있다며 한 수 더 뜨는 방식으로 듣기도 합니다. 교묘하게 말을 돌리기도 하고요.


하지만 마음 다한 경청은 '너'로부터 시작합니다. 나의 기준이 아니라 너의 기준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매우 더디지만 상대의 진심을 듣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의 의도를 파악해 보세요. 지금 그가 처한 상황에서 어떤 부분이 제일 시급한지, 힘겨운지를 들어야 합니다.


아무래도 말하기를 즐겨 합니다. 말해야만 하는 시간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습니다. 그 말에 영향력이 있으려면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어야 합니다. '너'가 사라진 말들은 허황됩니다. '너'의 상황과 마음이 없는 언어는 공허합니다. 조금 더 들어야겠습니다. 진심을 다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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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은 곧 환대라는 것이다. 경청할 때 우리는 문을 열고 손님을 안으로 들인다. 나의 공간 속으로 타인을 맞이한다. 자신을 여는 것이다. 경청은 초대이며, 그 초대된 곳에서 사람들은 약점까지 내보이며 친해질 수 있다. 제대로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도 모른다. 누가 무엇을 가지고 들어올지 모른다. 우리는 뜻밖의 상황에 마음을 열고, 낯선 이를 받아들이며, 예기치 못한 일을 듣는다. 변화에 자신을 여는 것이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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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일기 - 나를 만나다
곽그림(그리움) 지음, 웨스트윤 그림 / 모모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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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이 적은 사람이 단상에서 쏟아내는 말은 너무도 힘겹습니다. 공감과 배려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자신보다도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왔다고 말합니다. 타인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임에도 자신은 사랑과 섬김의 인생이었다고 거듭 이야기합니다.


자신에 대한 객관화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중성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상대방에게 씻을 수 없는 크나큰 상처를 남겼음에도 자신은 억울하다 생각합니다. 미안함과 고마움은 전혀 없습니다. 이들이 가하는 계속된 폭력으로 주변의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갑니다.


자신을 아는 것은 여러모로 중요합니다.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있어서 말입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합니다. 누군가의 비판이 있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합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나 침묵하는 사람이나, 피해를 입으면서도 참고 반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그 원인을 깊숙하게 추적해 보면 자존감의 결여, 자기 객관화의 부족함이 있습니다. '나'를 진실하게 직면해야만 '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말로는 쉽지만 실제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신을 만난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이 책 『마음 일기』의 저자인 곽그림(그리움)은 그동안의 상담과 코칭의 경험을 눌러 담았습니다. 아주 쉽고도 구체적으로 자신을 만날 수 있는 도구로 이 책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간단하고 명쾌하게 이론을 소개한 뒤 그것을 직접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책에 바로 기록하고, 그림을 그리며, 질문에 대해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아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추적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형식으로 이 책은 '나에게 관심 가지기', '나 살펴보기', '나 다독이기', '나 안아 주기', '나 키우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순서를 따라가다 보면,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자존감을 키우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어른 아이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철없는 사람인지도 모른 채 자신의 위치와 힘을 함부로 사용합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았어야 하고, 자신을 아끼고 돌보아야 했습니다. 모두가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았다면 보다 더 풍성하고도 만족스러운 관계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리뷰는 모모북스(@momo_books__)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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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에 신실할 것이며, 이것이 바로 제한되는 자유인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자유는 세상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자유다. - P78

온전한 관계를 위해서는 어느 쪽도 상대방을 힘으로 압도할 수 없다. 관계를 위해 하나님은 일부분 권력의 행사를 포기한다… 관계에서 타자를 완전히 통제하는 것은 온전한 관계라고 할 수 없다. - P79

하나님이 세상에 깃들고 세상에 전념한 것을 고려할 때, 하나님은 결코 다시는 세상을 떠나 완전히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 존재하고 행하는 모든 이유는 관계를 위한 것이 된다. 또한 하나님의 자기-제한은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에서 필수적인 측면임이 분명하다. 관계를 위해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취한 이 전적으로 자유로운 자기-제한 행위는 하나님의 케노시스, 자기-비움, 자기-희생의 행위로 묘사될 수 있다. 따라서 창조 행위 자체가 하나님의 파토스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세상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피조물의 죄악된 삶을 포함한 세상의 삶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신을 낮추는 하나님은 죄로 가득한 피조물과 온전히 그리고 가장 깊은 사랑으로 관계를 맺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 P117

하나님의 약속, 즉 하나님이 애초에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자유와 관련된 모든 이야기에 결정적인 제한을 두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러한 약속을 할 때 자신의 자유를 행하했지만, 자유롭게 약속을 한 후에는 그 약속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유가 적법하게 제한받는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겠다고 말씀한 것을 행할 것이며, 하나님 자신의 약속에 신실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가능한 한 최대한의 강화로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필연divine necessity이다. 비록 그것이 실현되지 못하더라도 약속의 하나님은 그것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 - P135

하나님은 은혜롭게도 피조물의 모든 세부적인 것들 안에, 함께, 아래에 임재하며, 피조물과 하나님은 서로 호혜의 관계에 있다. 이스라엘의 내재적이고 초월적인 하나님은 이 세상의 공간과 시간 속에 깃들어 있으며, 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고, 모든 경우에 효과적이며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그들과 함께 움직인다. 이러한 관점은 하나님이 진정한 관계에 수반되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취약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에 고통받는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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