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활동하던 주전 5세기에 제2성전이라는 틀이 형성되고, 율법이라는 내용이 유대인들의 삶에 결속력을 확립하면서 유대교가 만들어집니다. 또 이 시기에는 오랜 포로 생활로 히브리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남지 않게 되어서 율법을 보존하는 계급인 서기관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유대 사회는 포로기 이후에 독특한 구조를 형성했습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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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고 싶은 시간도 선물이었습니다
이효경 지음 / 마음시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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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아픔이 나를 잠식할 때, 그 고통이 분노가 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그토록 혐오하던 탐욕과 교만, 이기적인 모습이 나에게조차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항상 긍정적일 수는 없지만,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사실 그 어떤 사람도 우리의 내면에 깊이 관심을 갖기는 힘들기 때문이지요.


한 사람을 가열하게 내몰았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휩쓸고 간 고통의 시간들조차 우리를 모르는 척하기 일쑤입니다. 과거에게 집착하며 호되게 그를 나무란다 해도 변화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사라졌으리라 생각했던 마음의 생채기만 더 깊어집니다.


그렇습니다. 붙들어야 할 것은 예전의 '나'가 아니었습니다. 흔쾌히 '안녕'이라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살아내야 하는 순간입니다. 이효경 작가의 『지우고 싶은 시간도 선물이었습니다』는 '지금'을 살아낼 수 있게 하는 힘과 용기를 줍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기쁨의 조각들이 흩날립니다. 작가는 자신이 발견한 소소한 행복들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격정적으로 우리를 몰아가지 않습니다. 거칠어져 오돌토돌했던 마음이 금세 몽글몽글해집니다. 글과 사진으로 전해주는 따스함은 고스란히 우리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옵니다.


저자는 사진작가가 되어 드넓고 푸르른 생기를 전해줍니다. 초라한 인생이라 쪼그라든 마음에 바다와 숲을 품어봅니다. 저자는 시인이 되어 우리의 마음에 온기를 더하여 줍니다. '너'에게로 향한 작가의 시선은 낮은 곳을 향해 있습니다.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함께 아이들을 바라보노라면 어느새 우리 마음도 풍성해집니다.


작가는 일상의 고통을 모르는 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아픔을 보듬고 품어냅니다. 혼란스럽고 각박한 세상에서 홀로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지나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희망일지라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무기력하게 보이는 시간을 넘어 더욱 찬란하게 빛날 내일이 있음을 기대합니다.


작가의 현재와 미래는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닙니다. 너를 살리고 나를 살린 따스한 그 마음을 품고 지내는 것입니다. 그것을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누군가와 잇대어 있음을 알고, '너'를 기억하는 삶입니다. 서툰 사랑일지라도 받은 그 사랑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주는 삶입니다.


도란도란 나누는 삶의 이야기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사람들과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는 가슴 벅찬 사랑의 고백이요 노래입니다. 너에게 건네는 용서와 감사, 사랑은 나에게 또 다른 충만함을 선물로 줍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기쁨의 위로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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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 왜 예수의 부활을 믿는가? 비아 문고 13
제임스 던 지음, 김경민 옮김 / 비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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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핵심적 교리인 '부활'은 신비의 영역입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부활'은 하나의 걸림돌입니다. 그 사건을 직접적으로 본 사람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빈약한 자료에 의존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서의 증언은 일치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그럼에도 예수의 제자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을 의심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자신들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더욱 적극적으로 부활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과 구원의 능력에 대한 큰 이야기 한가운데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끌고 들어왔습니다.


영국의 세계적 신약학자인 제임스 D. G. 던(James D. G. Dunn)은 이 책 『부활: 왜 예수의 부활을 믿는가?』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어떻게 부활 사건이 그리스도인의 신앙 중심부로 들어왔는지에 대한 물음입니다. 진정으로 예수의 부활은 믿을만한 사건인가요?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박해에 진심이었던 바울에게 먼저 초점을 맞춥니다.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열정을 쏟아 핍박하던 바울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리스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하는 설교자와 선교사가 됩니다. 바울이 삶을 뒤흔들며 그를 변화시킨 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건입니다.


바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가 붙잡히던 밤에 모두 떠나버렸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몸과 마음으로 배운 가장 가까이에 있던 제자들이 모두 도망갔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이 다시금 회복되고 죽음을 불사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을 변화시킨 것은 다름 아닌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건입니다.


저자는 성경의 세부적 진술에서 다양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건 자체의 불확실성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관성이 없다고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는 중요한 증언들을 억지로 짜 맞추는 데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더하여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핵심적 사실은 일치함에 주목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도 빈 무덤에 대한 반대 논증이 많이 있었습니다. 무덤이 비었다는 것에 대해 믿지 못했던 사람들이 고안해 낸 논리들이죠. 하지만 그 무엇도 결정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논증이 진행될수록 빈 무덤은 더욱 확실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던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부활을 설명합니다. 저자는 결국 우리가 부활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우리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죽음을 초월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탁월한 저자의 논증으로 충분하지만, 비아 문고가 늘 그래왔듯 보다 더 풍성하게 이 책을 마무리합니다. 옮긴이의 해설과 함께 함께 읽을 다양한 책을 소개합니다. '부활'에 대해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이보다 더 친절하고 탁월한 안내자를 찾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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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접
크리스틴 폴 지음, 정옥배 옮김 / 복있는사람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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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인 듯 보입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자신의 영역을 고수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점점이 흩어져 저마다의 공간에서 자신만을 위한 삶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만의 안전한 요새를 구축한 채 다른 사람이 침범하는 것을 꺼리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살펴보면 그들은 서로를 원합니다. 관계를 갈구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에서 의미를 찾고 싶어 합니다. 이동이 잦고, 자기중심적인 문화 가운데 외로움과 소외를 경험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수용되기를 원합니다. 누구보다도 '너'를 원하는 시대 가운데 살아갑니다.


하지만 안전하게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들인 경험이 부족합니다. '너'를 향해 손을 내밀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에 대해 잘 모릅니다.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을 온전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어떠한 표현도 진심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듯합니다.


기독교의 오랜 전통에서 '손대접'은 마음 다해 '너'를 받아들이는 행위였습니다. 기독교 윤리학자인 크리스틴 폴(Christine D. Pohl)은 다양한 기독교 공동체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저술합니다. 저자는 성경과 역사를 통해 기독교에서의 '손대접'이야말로 환대를 표현하는 적극적 행위였음을 강조합니다.


손대접이 가진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다르게 손대접에는 반문화적인 것을 내포할 때도 있습니다. 이미 자연스럽게 습득된 세속화를 저항하는 행위입니다. 세상은 힘과 명예를 가진 사람들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손대접은 특정한 부류의 사람을 배제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모든 사람을 받아들입니다. 특히 약한 사람들을 귀하게 여깁니다.


우리는 때로 추상적인 말로 존중을 표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향한 진심 어린 인정은 구체적인 일상의 관계에서 실제 삶으로 드러나야만 합니다. 가정과 교회, 공동체에서는 손대접을 통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영접하는 것을 몸소 보여줍니다. 사회적으로 불리한 사람들을 보호하며, 비인간성을 용인하는 사회에 저항합니다.


손대접은 나그네를 돌보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나그네였음을 기억함으로 시작됩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때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때에야 우리의 손대접은 행위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궁핍한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혹여나 모를 위험요소들 때문입니다. 오랜 역사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이 나그네를 영접하는 일에 따르는 위험과 어려움에 대해 염려했습니다. 저자는 그러한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초기의 만남은 공적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손대접해보기를 권면합니다.


나그네를 돌보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들은 '타자'로 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근본적으로 그들이 우리와 같은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손대접은 우리의 차이점보다 동질성을 인식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나그네의 차이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며, 형제자매로 보아야 합니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손대접의 한계와 어려움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어떤 지점에서 경계선을 그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정직하게 토로합니다. 그럼에도 우선적으로는 언제나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주장합니다. 그렇게 할 때 이후의 모호한 상황들에 대해 더욱 잘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독려합니다.


손대접은 마지못해 하는 의무나 책임이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반응입니다. 인색하거나 억지로 하는 손대접은 우리를 지치게 하며, 상대방에게도 상처를 줍니다. 우리의 모든 사역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한 반영이며, 반응입니다.


결국 유익을 누리는 것은 우리들입니다. 이해관계로 인해 시작한 사역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손대접하는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차고 넘치게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풍요로움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손대접을 통해 우리의 일상에서 작은 죽음과 부활을 경험합니다. 우리에게 뛰어드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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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자의 친구 - 세상이 외면한 이웃들과 우정을 나누다
크리스틴 폴 & 크리스토퍼 휴어츠 지음, 박세혁 옮김 / 복있는사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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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가 중요한 듯 보이는 세상입니다. 이슈는 시시각각 변합니다. 새로움은 중요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빨리 변하지 않으면 답답해합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맵니다. 진득하게 무엇인가를 추구하기보다는 재빨리 우리를 자극할 만한 것을 찾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그러합니다.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그 사람을 누리고 함께 하는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합니다. 마음에 잇닿지 못하고 표면적인 관계로 만족합니다. 함께 찍은 밝게 웃는 사진으로 우리 사이를 대변하지만, 궁극적 순간에 서로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난하고 약한 자들은 더 소외됩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그들의 상처를 온전하게 치유한다는 것은 요원하게 보입니다. 서로를 신뢰하며 우정을 나누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저 서로를 기다리고 보듬어주는 과정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야만 합니다.


『손 대접』의 저자 크리스틴 폴(Christine D. Pohl)은 영성과 실천의 통합을 도모하는 '그래비티'의 공동 설립자 크리스토퍼 휴어츠(Christopher L. Heuertz)와 함께 어려운 곳에서 나눈 우정의 경험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책 『약한 자의 친구』를 함께 저술합니다.


저자들의 이야기는 세상의 가장 어려운 곳에서 가난하고 힘이 없고 권리를 침해당한 이들과 더불어 사역하기로 결정한 공동체에서 나왔습니다. 이 공동체는 Word Made Flesh(WMF, 육신이 되신 말씀)입니다. WMF는 세계 각국의 가장 약한 이들과 동행하기를 원했고, 실제로 수많은 프로그램과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WMF의 핵심적인 정신 중 하나는 '관계'입니다. 이들은 약하고 소외된 자, 착취당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 여성들과 우정을 만들어 갑니다. 이들에게는 그럴듯한 결과물과 눈에 바로 드러나는 무엇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 나와 함께 하는 이 사람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상처와 학대의 경험은 그 기간이 매우 길고 상흔은 깊어 온전한 회복은 꽤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이 공동체와 긴밀하게 관계하며 우정을 쌓아온 지 거의 15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회복을 위해 힘겹게 싸우는 친구들이 매우 많습니다. 고통의 깊이만큼이나 빠른 해결책이나 쉬운 해답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저자들은 아픔을 경험한 사례에도 충실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합니다. 그중에 하나는 '개인 소매 평등세'로 우정을 맺은 친구가 일하는 공장의 제품을 소비를 할 때마다 스스로 가격의 12퍼센트를 세금으로 떼어 기금으로 적립합니다. 그리하여 연말에 그 기금을 그 친구에게 전달하는 것이죠.


이러한 결정은 우리의 진심을 그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삶에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시급한 그들에게 말로만이 아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가 있습니다. 물론 부패한 정부를 변화시키거나 정치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아닙니다.


이것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지구적인 불의와 인간의 필요는 거대한 문제이기에 다양한 종류의 대응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름과 얼굴을 마주하는 한 사람을 돌보아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는 들려져야 하며, 누군가는 들어야 합니다.


복음의 핵심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들려주고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의 선교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에 대한 반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것들로 눈을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독점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흘러가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선교는 관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우정은 일방적인 관계를 뛰어넘습니다. 서로에게 유익을 줍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깁니다. 한 사람이 주고, 또 다른 사람이 받는 관계가 아닙니다. 자기 헌신과 희생이 아닙니다. 우정은 서로에 대한 감사와 나눔입니다. 서로를 내어주며 함께 자라납니다.


서로를 신뢰하는 우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더디고 갑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가벼이 여길 수 없습니다. 그 시간이 우리의 사랑이며, 서로를 향한 마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참고 기다리셨는지를 기억합니다. 약한 자들에게 오랜 시간을 쏟는 것이 우정의 시작이며 선교의 핵심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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