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와 식빵과 과일로 도시락을 싸와서 오늘은 좀 먹었다. 도시락인지 군것질인지 분간은 안 가지만 어떻든 도시락으로 싸와서 먹었다. 도시락이라는 건 한 번은 싸와서, 아니 몇 번은 싸와서 먹을 수 있지만 매일 도시락 싸기는 힘들다.


나는 일 년 동안 내가 먹을 도시락을 싸왔는데 그저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을 넣어서 가져올 뿐인데 너어어어어어무 귀찮다. 도시락은 아무리 없어 보이게 싸줘도 도시락을 싸준 사람의 마음이 손가락을 통해 전달되니까 도시락이라는 건 인간 사회에 남은 마지막 인간의 정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AI가 발달을 해도 로봇이나 안드로이드가 도시락을 먹지는 못할 테니까.


3월 2일은 전국 엄마들의 자유가 이뤄지는 날이다. 아이들이 개학을 해서 학교에서 급식을 먹기 때문이다. 여름 방학이 올 때까지 이제 자유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고 라디오에서 내내 사연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급식이 나오기 때문에 도시락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어제 일본영화 ‘오늘도 괴롭히는 도시락’을 봤다. 도시락으로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일본영화에서 자주 언급하는 내용의 이야기다. 일본은 도시락, 벤또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아마도 아직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싸주는 일본 가정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도시락을 통해 삶을 이어가려는 두 집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도쿄지만 도쿄가 아닌 곳, 히치죠지마라고 하는 인구가 7500명 정도 사는 작은 섬마을이 배경이다. 주인공 시노하라 료코가 이 마을로 오게 된 이유는 남편을 잃고 어린 두 딸을 키우다 보니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린 두 딸을 늘 집에 두고 일을 나가던 어느 날 큰 딸이 울면서 엄마가 없어지면 작은 딸이 엄마가 보고 싶어서 계속 운다는 말에 가난하게 살더라도 같이 있고 싶어서 작은 섬마을로 오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작은 딸이 여고생이 되었는데 어릴 때 엄마와 결혼을 하겠다던 어린 딸이 초반항기를 겪으면서 엄마와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에게 할 말은 거실에서 문자로 해버린다. 그런 딸이 미워서 캐릭터 도시락으로 괴롭히려는 엄마.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 반 아이들이 몰려 들어서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는다. 그러기를 3년 동안이나 한다.


또 한 집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건 패스. 이 영화의 필름 같은 색감이 너무 마음에 든다. 도시락에 들어간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그래픽도 귀엽고 재미있다. 영화 중간에 영화가 끝난 줄 알고 화면에 이름이 줄줄 올라가는데 시노하라 료코가 아직 안 끝났어! 라며 소리를 치니까 이름들이 슬슬 내려가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다.


소소하고 평화롭고 반항하는 십 대와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그만 일이 터지고 만다. 잔잔한 이야기에 시노하라 료코와 요시네 쿄코의 연기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도시락을 매일 싸는 건 미치는 일이다. 그런데 도시락을 매일 싸면서 도시락을 먹을 그 사람을 생각하며 행복하다면 도시락을 싸주는 이를 얼마나 사랑하는 것일까. 그런 마음이 도시락을 통해 먹는 사람에게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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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누가 백세주를 한 병 주기에 백만 년 만에 마셨는데 오 백세주가 이렇게 맛있었다니. 백세주 맛이 좋다는 건 뭔지 알지. 나 예전에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할 때였다. 나는 야간알바라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일을 했다. 대학교 근처라 방학이면 사람이 없어서 밤새기에는 편했다. 대학교 근처애서 집까지는 극과 극이라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야 했다. 그래서 오전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올 때 버스를 타면 어김없이 졸았다.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내려서 집으로 와서 씻고 누우면 바로 잠이 오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백화점이다. 하루는 버스에서 내렸는데 소주 판촉을 백화점 앞 광장에서 하고 있었다. 햇빛 때문에 밀사의 눈초리로 뜨고 그 앞을 지나가니 내레이터 모델 사이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나는 더욱 밀사의 눈초리를 해서 보니 친구였다. 소주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친구는 어린 시절 나의 응응 친구로 어릴 때는 무척이나 붙어 다녔다. 그러다가 중학교가 갈리고 고등학교도 다른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주말에나 보거나 친구가 이성에 눈을 떠버린 이후로는 그 마저도 어려워졌다.


서로서로 휘뚜루마뚜루 지내다가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친구는 소주회사에서 일을 하는 만큼 술을 잘 마셨다. 꼭 소주회사에서 일을 해서 술을 잘 마시는 건 아니겠지만 친구는 말술이었다. 같이 술을 마셔서 친구가 술에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항상 내가 먼저 뻗었다. 밤을 새우고 버스에서 졸다가 대역죄인 같은 몰골로 버스에서 내려서 집으로 오다가 친구와 마주쳤다. 친구는 이제 곧 점심시간이니까 같이 밥이나 먹자고 했다. 밥 먹고 집으로 들어가서 푹 자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며 점심시간이 오기까지 그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햇빛을 받아서 노곤해진 몸과 눈꺼풀에는 성냥개비 삼만 개를 올려놓은 듯 자꾸 내려왔다. 옆에서 내레이션 모델들이 마구 판촉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지만 땅밑으로 꺼져내려가는 듯 몸은 축축 늘어졌다. 그때 친구는 점심시간이 되어서 나를 데리고 근처 삼겹살 집으로 갔다. 우리는 삼겹살을 구웠다.


친구는 술 한잔 할래?라고 하더니 소주는 너무 해비 하니까 백세주를 먹자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그래서 백세주를 주문해서 마신 게 15병을 마셨다. 아무튼 내가 친구에 비해 3분의 1 정도 마셨다. 나중에는 고기 맛이 뭔지도 몰랐다. 백세주는 달달하니 맛있어서 이게 술인지 음료인지 모르게 넘어가는데 어느 기점을 넘어서면, 여느 술과 마찬가지로 뇌를 잠식하고 몸을 문어화 시킨다. 나는 집으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고 도대체 우리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기억이 없었다.


친구는 그렇게 마시고도 벌떡 일어나서 또다시 일을 하러 갔다. 삼겹살 집 사장님이 신나서 백세주를 막 갖다 주던 게 생각이 난다. 이제 소주도 술집에서 육천 원의 시대가 올 거라는데 백세주는 술집에서 얼마에 팔까. 어제 마신 백세주를 보니 병도 예전에 비해서 작아진 것 같고, 한 병을 마셨지만 뭐랄까 전혀 술이 오르지 않았다. 이제 시대는 알코올 도수는 점점 줄어들고 병은 작아지고 가격은 올라간다. 그 말은 예전에 비해 비싸진 소주나 술을 한두병 마셔서는 전혀 술기운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  이것마저 없다면라고 한 안도현 시인의 퇴근길에서처럼 삼겹살에 소주 한잔은 이제 없어질지도 모른다. 건강을 위해서 도수를 줄인 소주가 쏙쏙 나오지만 도수가 약해서 사람들은 몇 병을 마신다. 도수가 강한 술을 파는 외국 같은 경우를 보면 술이 독하니 한두 잔에 술기운이 올라서 좋은 면도 있다. 사람들은 전부 제각각이라 약한 도수에 비싸진 술을 반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병을 마시고 전혀 술기운이 오르지 않는다면 한창때인 대학생들은 술을 얼마나 마셔야 할까. 어찌 되었던 너무나 오랜만에 마신 백세주는 맛이 좋았다.


친구는 타이어 회사로 이직했는데 소주회사를 다니니 술을 너무 마시게 된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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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의 고마코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영상으로 옮긴 여러 버전 중 가장 최근의 2022년 버전이다. 시마무라로 타카하시 잇세이가 나오며, 여리여리 눈 같은 기생에는 나오가 나온다.


눈으로 시작하여 불로 끝나는 이 소설은 너무나 유명한 문장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로 시작한다. 영화도 그렇게 시작한다. 그러나 이 문장 보다 이 문장 바로 뒤에 오는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라는 문장에 온 마음을 다 빼앗겨 버릴 것만 같다.


이 소설을 읽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소설인지 에세인지 넋두린지 플롯이 애매애매하다. 어쩌면 시에 가깝고 그 시를 이어 붙여 아주 긴 산문시 같은 느낌도 있다. 그래서 영화(는 아니지만)도 야스나리의 시적 내레이션이 아주 많이 나온다.


유리창이 거울이 되어 건너편의 여자를 비추고 있었다.

그녀 얼굴 가운데에 등불이 타올랐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손가락으로 기억하는 여자와 눈에 등불이 켜진 여자.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한 인상이었다.


시마무라는 고마코를 보며 이렇게 표현했다. 소설의 내용은 다 알겠지만 세 번 눈의 고장에 있는 여관을 찾아가는 내용으로 고마코와 그녀가 데리고 있는 요코와 시마무라 세 사람이 설국의 중심에 있는 이야기다.


소설은 머릿속으로 설국을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있고 영화는 운통 눈으로 덮인 설국에서도 눈에 띄게 하얗고 맑은 고마코를 보는 재미가 있다. 고마코는 예전 흑백 영화의 고마코가 더 예쁘다.


야스나리는 자살했는데 아끼는 제자 미시마 유키오가 자살을 한 다음 해에 자살했다. 금각사로 유명한 미시마 유키오는 인간실격의 다자이 오사무를 찾아가서 막 욕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신의 소설은 죽음을 쓴 연약한 소설에 불가할 뿐이야! 라며 다자이 오사무를 폄훼했다. 그때 오사무는 어허 너도 나를 찾아온 걸 보니 나의 글이 좋아서 온 것이다,라며 응수했다.


야스나리는 34년 우리나라 무용가 최승희(당시는 북한의 무용가로 숙명여고를 나와 고전 무용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최초의 인물이었는데 57세에 숙청당했다)가 일본 데뷔를 하는데 그때 그녀의 무용을 본 야스나리는 일본 내에서도 신진 여류 무용가 중에서 제 일인자로 꼽았다. 소설 무희에서 최승희에 대해서 다루었다.


유튜브에서 snow country 2022라고 치면 전편을 다 볼 수 있다. 배우 나오의 얼굴은 아오이 유우와 쿠로키 하루를 섞어 놓은 듯한 얼굴이다. 그런 계보를 잇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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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집을 나오니 아 날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늘에 있으면 몹시 쌀쌀한데 해가 비치는 양지바른 곳은 따뜻했다. 어린 시절에는 겨울과 봄의 길목에서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는 게 참 좋았다. 아버지와는 주말 저녁에 대중목욕탕에 갔다. 여름에는 가지 않았고 날이 쌀쌀해지면 아버지와 함께 주말 저녁에 대중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했다. 차디찬 겨울에 아버지와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도 좋았지만 기묘한 기분이 드는 겨울과 봄의 길목에 대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게 좋았다.


이맘때가 되면 기시감이 늘 드는데 기시감이 드는 꿈도 부쩍 자주 꾼다. 하지만 꿈은 늘 호러블하다. 꿈속에서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꿈 속이니까 꿈속에서도 꿈속만의 리얼리티를 느끼니까 현실은 아니라서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리얼하니까 불안한 것이다. 그리고 목욕탕에 가는 꿈을 꾼다. 옷을 입은 채로 대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한다. 그러나 발가벗고 목욕을 하는 사람들과 이질감이 없다. 역시 이상하다는 걸 알지만 이상하지 않다.


옷을 입은 채 대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상상을 어릴 때 왕왕했었다. 그러다가 진짜 기회가 한 번 왔었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 중에 목욕탕 집 아들내미가 있었다. 그 녀석과는 썩 친하게 지내지 않았는데 그 녀석이 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니 내가 듣던 앨범을 빌려가면서 자연스럽게 친하게 되었다. 나는 그 녀석에게 음악감상실이라는 세계에 눈 뜨게 해 주었다.


목욕탕 옥상에 그 녀석의 집이 따로 있었다. 와 정말 부러웠다. 그 녀석은 실천력이 좋은지 방에 좋은 오디오와 스피커를 사들여 놓았다. 빵빵한 사운드로 듣는 마이클잭슨은 정말 너무나 멋졌다.  그리고 그날은 그 녀석의 집에서 밤을 보냈다. 목욕탕 옥상에 따로 마련된 그 녀석의 작은 집은 정말 좋았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아담하고 멋진 방이었다.


소파와 침대가 있고 기타 그리고 오디오, 여러 대의 스피커. 컴퓨터도 두 대나 있었다. 창문을 열면 밤하늘의 별이 바로 보였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에 녀석을 나를 깨우더니 목욕탕에서 씻자고 했다. 아직 손님이 오지 않은 대중목욕탕은 울림이 있었다. 나는 그때 옷을 입은 채 목욕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샤워기를 들고 옷을 입은 채 물을 몸에 뿌리고 싶었다.


살다 보니 간단하게 하면 되는데 간단하지만은 않은 경우가 있다. 옷을 입고 목욕을 하는 것, 옷을 입은 채 영화처럼 샤워를 하는 것도 그렇다. 옷을 입고 샤워를 한다고 해서 뭔가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질타를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쉽게 하게 되지 않는다. 영화에서처럼 속이 상한 일이 있을 때 샤워기의 물을 맞으며 옷을 입은 채 크게 울고 싶어도 잘 안 된다.


너무 쉬워서 언제라도 하면 되지 하는 것들이 있다면 지금 해야지 언젠가 하려고 하면 잘하게 되지 못하거나 마음이 꺾이거나 누군가와 함께 하려고 했는데 그 누군가가 없어지고 마는 경우가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히잡도 그렇다. 저쪽 나라의 히잡 그거 그냥 벗어버리면 되지만 그게 쉽게 되지 않는다. 히잡 벗었다가 몸이 난도질 당해 죽음을 당하게 되기도 하다. 그놈의 히잡 그게 뭐라고, 쉽게 그냥 벗어버리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엄격하고 오래된 잘못된 관습이 그걸 막고 있다.


귀화해서 한국인이 된 알파고시나씨는 한국 방송에서 튀르키예 지진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그 나라 정부의 잘못된 대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고 한국의 여러 방송, 국영방송이 아닌 민영, 개인 방송에까지 제재가 들어왔다. 알파고가 속해 있는 기획사 대표에게 대사관에서 제제가 들어왔다고 한다. 알파고가 거짓된 가짜뉴스를 말한다면 제재를 가해도 되지만 있는 사실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것도 귀화해서 한국인이 된 알파고의 한국방송 출연 재재를 가한다. 게다가 튀르키예 한국 전문가들도 알파고와 함께 방송에 나오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게 흘러가는 건 여러 곳곳에 존재한다. 그것이 설령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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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자단의 격투가 아닌 견자단의 무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할만하다. 김용의 활극의 엄청난 서사를 영상으로 뽑아냈다. 김용이 만들어 낸 수많은 무공을 좀 더 봤더라면 좋았을 법했다.

주성치의 쿵푸허슬은 할리우드에서 촬영팀도 부르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중무장을 해서 엄청난 자본이 들어갔는데 그 많은 자본 중에 반 이상이 영화 속에서 사용하는 무공의 저작권에 들어갔다. 바로 김용이 만들어 낸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주성치는 얼마가 들어가더라도 돼지촌에서 일어나는 캐릭터의 무공을 전부 김용의 무공으로 사용했다.

천룡팔부에서 교봉이 사용하는 휘이이익 황룡십팔장 같은 무공이 더 많이 나와야 좀 더 김용 무협스러웠을 텐데 아쉬웠다. 이제부터 아쉬운 걸 말하자면 영화가 2시간이 넘는데 1시간 정도는, 그래 이렇게 우리가 만나고 헤어지고 그건 오해야 그러니까 아니라고, 같은 내용을 말하기 위해 지루하게 흘러간다.

그러다가 1시간이 지나면서 무협 액션 활극 장면이 나온다. 판타지 액션 활극치고는 타격감이 좋다. 예전 풍운(망했지만 재미있었음 개인적으로)은 타격감은 별로 없고 판타지 액션의 맛만 났다면 이번 교봉전은 견자단이 무술까지 감독을 해서인지 타격감이 좋다. 그러나 수십 명이 화살을 몇 백 개씩 쏘아대는데 몸통만 맞는다. 눈이나 얼굴도 맞아야 하는데 얼굴만 빼고 몸통만 화살을 맞는다 뷁.

천룡팔부는 영화 마지막에서 다음 편을 예고하면서 끝났다. 마지막 장면에서 뭐야? 견자단이 모용박보다 왜 늙어 보이지? 했는데 2편은 교봉의 전 세대, 아버지 세대의 갈등을 예고하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견자단이 1인 2역을 했다.

옛 향수를 자극하며 견자단이 한국까지 와서 열심히 홍보를 하며 극장 상영을 감행했지만 상영관 안에 사람은 거의 없거나 별로다. 중국 내에서는 극장 상영을 하지 않고 오티티 서비스로만 하는 걸로 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게 예전만큼 만만찮다. 4디 상영관에서 두 명이서 영화를 보고 팝콘이나 음료를 마시면 5만 원 돈이 날아간다. 그렇기에 영화를 고르는 관객 입장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천룡팔부 같은 판타지 무협 영화는 일단 여자들은 썩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친구가 나는 싫어, 하면 다른 영화를 봐야 한다. 예전의 무협 향수를 가지고 보는 사람이라면 나이가 있는 남자들인데 요즘 나이가 든 남자들은 물가의 고공행진으로 여가에 쓸 돈과 시간은 너무나 중요한 선택사항이다. 나머지가 젊은 남자들인데, 이 계층의 남자들 중 견자단의 진정한 팬이 아니라면 애매하다.

무엇보다 2시간이 너무 길고 1시간이 내용을 설명하기에 힘들다. 시간을 좀 줄이고 액션에 더 과감하게, 그러니까 김용의 원작을 그대로 영상화 시켰으니 김용의 무공이 많이 나오는 액션 활극이라면 오티티로 풀려도 사람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만고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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