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 조깅을 하면서 같은 곳을 사진으로 담아 놓는다. 봄날의 저녁, 봄밤의 여러 날 중에 따뜻한 날도 있었고(지난주) 겨울만큼 몹시 추운 날도 있었다. 매일 나와서 같은 곳을 찍는데 매일 다르다. 시간, 대기의 흐름, 먼지의 움직임, 지나다니는 사람,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등 이 모든 것들이 매일 다르기 때문에 같은 곳이지만 같지는 않다.


구름과 비슷하다. 근대 사진가의 대부라고 불렸던 스티글리츠의 구름 연작 이퀴벌런트를 보면 구름은 인간의 마음에 빗대어서 시리즈를 만들었다. 구름이란 매일 하늘에 떠 있지만 같은 구름이 없다. 지구가 생긴 이래 구름이라는 게 보였을 텐데 매일 다르다니 놀라운 일이지만 인간의 마음이 구름과 비슷하다는 게 더 놀랍다.

조깅을 하다 보면 아직 벚꽃이 나오려면 좀 있어야 하지만 그새를 참지 못하고 다른 벚꽃 나무들은 아직 발가벗은 채로 인데 혼자서만 벚꽃을 피어 올린 나무가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신기해서 한참을 그 밑에서 벚꽃나무를 보기도 했다. 인간도 성질이 더럽고 성격이 급한 놈이 있는데 나무 또한 비슷하구나. 나무는 그럴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성격이 급한 놈은 또 급한 대로 지하고 싶은 대로 하는구나.

조깅을 하는데 누군가 성대결절이 걸렸다며 한탄을 하는 말을 들었다. 자신은 가수도 아닌데 성대결절이라며 세상을 원망했다. 성대결절은 가수만 걸리는 건 아니고, 통계적으로 5, 6세 아이들이나 30대 여성들도 많이 걸린다고 한다. 또 가수나 선생님처럼 목을 많이 쓰는 직업군의 사람들이 걸린다. 담임을 맡게 되어 열심히 하고자 반에 들어갔는데 아이들이 너무 떠들어서 야!!! 이!! 놈!! 들!! 아!!!라고 소리를 지를 때 1초에 만 번 이상 성대가 떨린다고 한다. 대단하지! 아이들도 자기표현이 자기 생각대로 안 될 때 꺄악 하고 소리를 지르니까 성대결절이 걸린다고 하니 아무튼 조심하자.

나 미역을 먹고 아다리가 걸려 체해서 배앓이를 하고 설사를 했는데, 설사를 하루 종일 하기는 태어나서 처음이다. 먹은 것도 없는데 배가 조금 골골하면 화장실로 가야 했다. 인간의 몸은 정말 신비하다. 물도 안 마셨는데도 설사가 지속적으로 나왔다. 덕분인지 몇 달 동안 매일 마요네즈를 먹고 조깅으로도 빠지지 않았던 등살이 조금 빠진 것 같다. 아무튼 신체는 참 신비하다.

봄은 여름과 다르고 겨울 같지 않다. 봄은 어린이 같은 계절이라 생각했지만 알 수 없는 계절이다. 모든 세계가 예쁘게 변하고 아지랑이 향이 코를 간질이지만 어쩐지 쓸쓸하고 외로운 계절이다. 낮동안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부옇고 따뜻했지만 해가 숨어버린 밤이 되면 추위가 아직 이곳저곳에 남아있어서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쌀쌀하고 춥다.


설사가 한창 진행을 때에도 저녁에 습관적으로 강변으로 나가고 말았다. 한 500미터 정도 갔나? 신호가 와서 큰일 날뻔했다. 강변에도 간이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지만 변기에 안착해서 응가를 하는 건 이상하지만 늘 앉는 곳에서 해결을 해야 한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으며 다시 돌아왔다. 그때의 내 표정이란. 아마 찰흙을 물에 불려 창문에 던져서 흘러내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시원하게 볼일 보고 난 후에는 머리가 맑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때서야 라디오의 사연이 귀에 들어왔다. 라디오에서 이번에 우리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이미 중2병이 진행 중인데, 그래서 자동차를 같이 타고 애가 탔는지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입학한 지 2주 정도 되었는데 교복 재킷을 당당하게 잃어버리고 들어와서 당당하게 다시 사달라고 어찌나 당당하게 말씀하시는지.

나의 조카가가 한창 질문이 많을 때가 있었다. “왜 그러는데” 병이 걸려서 뭐만 말하면 왜 그러는데? 왜 그러는데? 가 튀어나왔다. 한창 말을 배우고 나면 할 말이 많아져서 계속 질문투성이다.


한 엄마가 조수석에 탄 5살 딸아이를 보며 느닷없이 울컥해서 “너는 내게 온 선물이야”라고 했더니, 5살 아이가 눈을 요래 뜨고 엄마를 보더니, 무슨 선물? 누가 선물 줬는데? 왜 엄마만 선물 받았어? 내 선물은?

그랬던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 중2병이 걸리면서 입을 자물쇠로 잠그듯 그대로 닫고 만다. 엄마는 속상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좀 우울한 얘기지만 지금 아이들은 미래를 조심해야 한다. 암울한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아이들에게 해당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믿었던 국민연금도 위태위태하지, 이제 지진에서 편안한 하루를 보낼 수도 없는 시기에 들어왔지, 취업은 더더욱 어려워졌지, 일자리 또한 인공지능에게 많은 부분 내줘야 하지, 남녀갈등은 더 심해지지, 월급 받아서 집을 살 수 없는 시대를 이미 지났기에 주식이나 코인 투자는 일상이 되었지, 물가는 지속적으로 오르지, 택시회사는 자꾸 도산하고 있지.


물론 부모세대가 돈이 많아서 물려받은 자녀는 괜찮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불안하고 불행한 생활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일본은 이제 고등학교도 의무교육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정부에서 돈을 대준다는 말이지. 그런데 제일교포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 오전에 부산대, 부산외대, 해양대, 울산과학기술대학교 등에서는 아침밥을 천 원에 제공한다는 뉴스가 떴다. 천 원짜리 밥이라 에이, 했지만 메뉴구성을 보니 너무 좋다. 이렇게 시행하는 이유는 물가가 천정부지로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진짜 이유는 엠지세대를 잡기 위한 명분 쌓기다.


천 원으로 아침밥을 먹을 수 있는 대학교 역시 그렇게 많지 않다. 이는 모두 정부 산하 기관 부서와 협력을 통해서 이뤄진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대학이나 인기가 없는 대학교는 이렇게 할 수 없다. 어디를 가나 빈익빈 부익부는 있기 마련이다.


정말 이렇게 원론적인 방법 없이 눈앞에 보이는 것만 건드린다고 젊은 세대가 좋아할까. 엠지세대라는 말도 당사자들은 거의 쓰지도 않는 말인데 늙다리들이 그렇게 울타리 속에 집어넣어서 엠지세대라고 부르고 당근을 주며 뭐든 다 들어줄 것처럼 했지만 결국 이번에 대학생들마저 거리로 나와서 소리를 내게 되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봄이 되었으니까, 지금을 즐길 수 있으면 즐기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그냥 지금 하자. 살기가 어려워도 그 속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잘 벌리면 소소한 행복이 있다. 그런 행복을 자주 접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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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자석처럼 멍게를 찾아 먹는다. 봄 미나리와 멍게를 먹기 시작한 후로는 봄이 되면 개나리가 피듯 멍게를 찾아서 먹게 된다. 멍게는 뜨거운 물에 아주 살짝, 한 번 데쳐서 먹으면 더 맛있다. 멍게는 멍게 맛으로 먹는 게 훨씬 좋다.


멍게를 먹을 때 초장에 찍어 먹으라고들 하는데 멍게를 초장에 찍어 먹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멍게는 멍게 맛으로 먹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훨씬 맛있기 때문이다. 멍게의 그 풍요로운 맛, 그 기분 좋은 맛을 초장에게 다 빼앗기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초장은 반찬이 아무것도 없을 때 밥에 훌훌 비벼 먹을 때나 사용하자.


멍게를 미나리와 함께 밥에 이렇게 올려 멍게와 밥을 먹거나 휙휙 비벼서 먹는 맛이 나에게는 봄의 맛이다. 여름은 여름이라고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지만 봄은 언제 왔는지 모르게 온다. 아직 난로를 틀고 있지만 밖은 벚꽃이 올라오고 목련이 피고, 개나리가 색을 띄운다.


멍게는 사계절 늘 먹을 수 있지만 봄에 먹는 멍게가 나는 제일 좋다. 이렇게 5월까지는 열심히 먹어재 낀다. 미나리와 함께 먹는 멍게가 단연코 맛있다. 멍게비빔밥에도 옆에서 자꾸 초고추장을 넣으라고 하지만 용납할 수 없다. 이것만은 타협을 하지 않는다.


나는 멍게를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요즘은 멍게가 전부 손질이 되어서 팔지만 예전에는 직접 아버지가 직접 손질을 했다. 여름방학의 일요일에 오전 일찍 일어나면 티브이에서 어린이특선 만화가 하고 있었다. 그걸 보다 보면 아버지가 이른 시간에 시장으로 가서 멍게를 이만큼 사 와서 마당의 수돗가에서 늘 손질을 했다.


나는 만화를 보다가 마당에 나와서 앉아서 아버지가 수돗가에서 멍게를 손질을 하는 모습을 봤다. 아버지는 쪼그리고 앉아서 멍게를 다듬었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남달라서 회사에서 만들어온 칼들이 많았다. 아주 잘 들고 용도도 남다른 칼들이 많았다. 아버지는 그걸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지 여러 칼들 중에서 작고 날이 아주 날카로운 칼로 멍게를 따고 쓱싹쓱싹 내장을 분리했다.


꼭지도 따고 내장을 빼내는데 이미 등에 나는 땀 때문에 러닝셔츠가 다 젖어 있었다. 나는 일요일 마침마다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질이 끝나면 나를 불러 등목을 치게 했다. 멍게는 간간하니 묘한 맛이 났다. 멍게를 먹고 있으면 아버지의 등이 생각난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정수리에 그대로 받으며 멍게를 손질하는 모습. 그의 뒷모습.


멍게를 먹으면 먹게의 맛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아주 기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건 분명 기시감이다. 봄이 되면 느끼는 그 알 수 없는 감정과 함께 멍게가 기억의 한 부분을 건드린다. 기시감 중에서도 가장 깊고 강력한 기사감이다. 아? 이건 그때에도 이런 일이 한 번? 같은 기시감이 아니다. 한 번 겪어봤는데? 따위의 것이 아니라 몹시 모호하고 부옇고 애매하고 끈적하지만 강력한 기시감이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멍게를 먹으며 이런 알 수 없는 기시감이 휩싸일 수 있다. 그때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은 다르지만 비슷하게 흐른다. 시간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특히 물리학자들이 가장 어려워하고 난처한 얼굴이 되는 질문이 시간이란 무엇입니까?라는 것이다. 시간을 정의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단지 시간은 흐른다는 것이다. 내가 어릴 때의 시간이 흘러 지금의 시간이 되었다. 분명 멍게의 맛도 달라졌겠지만 기시감 때문에 그때의 멍게 맛을 느끼고 있다. 인간이란 너무나 기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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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리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래된 꿈>이 깊숙한 서고에서 끈끈해져, 일깨우듯이, 봉인된"이야기"가 깊고 조용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혼을 흔드는 순도 100%의 무라카미 월드



이번 장편 소설에는 도서관이 나오고, 주인공이 학창 시절에 만난 그녀를 찾아가고, 그림자가 등장한다. 요만큼만으로도 하루키 세계의 여러 소설들이 스쳐간다.


이번에도 독자들에게 조밀하게 분리해 놓은 하루키 세계의 보이지 않는 형태를 하나씩 찾아가게 끔 메타포를 숨겨 놓은 것 같다. 마치 비치 보이스의 노래 409를 듣고 아, 비치 보이스 군, 그래 비치 보이스야, 잊고 있었어. 하게 되는 것처럼.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으며 동시공체를 느꼈다. 감각을 살려 놓으면 몸은 재가 되어 버리더라도 정신의 세계 안에서 무한 루프로 불멸할지도 모른다. 그것에는 부작용이 뒤 따른다. 부작용이란 마음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 세계에서는 음악이 뭔지 모르고 ‘시’라는 것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현실 속에서도 비현실의 세계가 비집고 들어와 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아마 하루키의 신작에서는 손을 뻗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곳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세계에 들어가는 이유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받아들이려 가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중에 한 번은 그림자와 만나고 한 번은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우리는 그런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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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작년, 그러니까 2022년 12월에 써 놓아서 다음에 나올 소설에 대해서 청취자에게 하루키가 언급을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4월에는 기사단장 죽이기 이후 장편소설이 일본에서 출간이 될 예정이고 곧 우리나라에도 출간이 될 예정입니다.



하루키가 진행하는 무라카미 라디오 43회에서도 청취자들에게 받은 사연을 답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럼 오늘도 그중에 몇 개를 소개해 본다. 이하 멋대로 의역이 되었다는 점 이해 바랍니다.


하루키: 지난달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야마시타 요스케 트리오 재난입 라이브]를 방송해 버렸는데 그 소감의 사연을 꽤나 받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프리 재즈 라이브를 틀어 버려서 괜찮을까 하고 조금 걱정하고 있었습니다만, 의외로 많은 분들이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카제마치 소라마메 (40대, 남성, 치바현)

1969년의 재난입은 되지 않았지만, 그 시대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지금이라는 시대가 좀 더 이상이라는 것에 관대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정해진 것이 없어도 맞출 수 있는 것은 또 제대로 맞출 수 있다. 그런 자유를 추구할 수 있다. 그게 저의 이상입니다. 프리 재즈를 처음 들었는데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하루키

글쎄요, [프리재즈]라는 형식으로 묶어 버리면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지만 야마시타 씨의 음악에는 그런 장르를 넘어선 자유롭고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집니다. 진짜 음악이라고 할까, 정말 멋집니다. 저도 눈앞에서 듣다가 오랜만에 몸 안에 쿵 하며 뭔가가 왔어요. 가능하면 당일 연주를 그대로 레코드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홈조비 (20대, 남성, 미야기 현)

무라카미 하루키 씨가 '소설 집필 강좌‘를 열어 주셨으면 합니다.


하루키

하아,라고 할까요. 소설 쓰는 법을 타인에게 가르쳐 주는 일은 어렵습니다. 저는 대체로 이기적인 인간이라, 내가 쓰는 소설을 어떻게 쓸까 하는 것 밖에 잘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타인이 소설을 어떻게 쓸까,,,, 까지는 좀체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제자 같은 사람을 받은 적도 없고 클래스를 가지고 창작 지도를 한 적도 없고 문학상 심사위원을 한 적도 없습니다.


레이먼드 카버 씨를 인터뷰했을 때 그는 뉴욕 시러큐스 대학에서 창작과 선생님을 몇 년 정도 했는데 한 학기에 단편을 하나만 학생들에게 쓰게 한다고 했습니다. 한편 이상은 쓰지 않는다. 한 편의 소설을 한 학기 동안 매주 제출하게 하고, 그 소설을 비평하고, 조금씩 고쳐 쓰고 다시 쓰고 해서 닦아 나간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버 씨도 말했지만 [몇 번이고 참을성 있게 다시 쓴다], [어쨌든 충분히 시간을 들인다]라는 것이 소설 쓰기에는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명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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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밑으로 하루키는 예전에는 읽던 책이 재미없어도 예전에는 다 읽었지만 요즘에는 에이 뭐야 시간도 아깝잖아, 눈도 잘 안 보이고 흥. 하며 읽다가 안 읽어지는 책은 도중에 읽지 않는 책도 많다고 한다.


또 어느 청취자가 장편소설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 말해달라고 했다. 이는 우리 모두가 궁금한 점이다. 하루키는 이에 대해 장편소설에 관해서는 쓰고 있다, 아직이다, 같은 말 자체를 발설하지 않는다고 한다. 독자가 궁금해서 잠을 못 잔다고 하니, 그것은 참 안 된 일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지구 온난화에 비하면 나의 장편소설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궁금해해 줘서 샹큐,라고 하며 어느 날 갑자기 신문에 신간 광고가 실리게 된다면, 그날을 기대하며 조용히 기다려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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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케이크를 받거나 하면 걱정부터 하게 된다. 이 달달한 걸 어째 다 먹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케이크가 예전처럼 귀한 음식도 아니다. 생일에나 맛볼 수 있는 그런 음식이 더 이상 아닌 것이다.


빵에는 어마어마한 설탕이 들어간다. 아무 맛도 안나는 식빵에도 설탕이 들어간다. 바카스 한 병에는 각설탕 12개가량의 설탕이 들어간다고 하고, 한식에는 거의 백 프로 설탕이 들어간다. 바카스를 마시면 약간 기운이 나는 것 같으면서 기분이 좋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성석제 소설 '투명인간'을 보면 60년대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하면 좀 사는 집에서는 설탕물을 대접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한 컵 들이키고 땀을 닦으며 잘 마셨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전에는 그만큼 설탕이 귀했다. 아주 거슬러 올라가면 유럽에서는 이 설탕 때문에,,, 까지만 하고. 이렇게 귀한 감미료 설탕이 요즘은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그래서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은 요즘에는 환영받지 못한다. 케이크도 마찬가지다. 케이크는 달고, 게다가 빵 보다 부피나 크기도 크고 비싸고. 아이 있는 집에 선물하면 아마 엄마입장에서 썩 반가운 음식은 아닐 것이다.


이건 단맛이 거의 없는 케이크야, 한 번 먹어봐. 해서 선물 받은 케이큰데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케이크가 아니라 지역 빵집에서 만든 케이큰데 먹어보니 정말, 이야, 단맛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설탕이 안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맛은 거의 없다. 그런데 맛있다. 희한하네. 대충 단맛이 빠져버린 생크림 맛? 그런 맛이다. 예전에는 단맛이 많이 나는 조각케이크를 먹을 때에는 진한 커피와 같이 먹었는데 이 케이크는, 케이크를 받을 때 별빛 청하도 같이 받아서 그걸 같이 먹었다.


별빛 청하는 처음 마셔봤는데 이게 술인지, 탄산순지 뭔지 모를 그런 알코올이었다.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술이라는데 여자들이 정말 이런 맛을 좋아하는 것일까. 기업은 여자들의 마음을 너무 모르는 것 같군.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술이 아니라 술이 약하고 탄산이 들어간 술맛을 즐기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 술이다.


근데 어쩌다 한 번 정도 먹는 케이크 좀 달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자주 먹는 것도 아니고, 단맛이 나지 않을 뿐 설탕이 안 들어간 것도 아니고. 설탕은 들어갔지만 설탕 맛이 나지 않게 하는 것보다 여봐란듯이 달달한 케이크라도 '뭐 어때'하는 생각이 든다.


단맛을 가리기보다, 자신을 가리기보다 있는 그대로 내보이고 선택하려면 하고 안 그럼 말어. 하는 태도가 요즘은 더 필요한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는 잘 안 되지만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내보여야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태도가 중요하다. 거짓말로 자신을 가리고 달달한 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태도는 이제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번에 아카데미를 휩쓸어 버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두 덩어리의 돌멩이가 나오는데 그 장면이 마음을 울린 장면이었다. 돌은 겉과 속이 같다. 인간은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없다. 얼굴은 참 착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그 속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돌이 되었을 때는 순수하게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되었다. 그때 하던 대화가 인상 깊었다. 진심이 느껴졌단 말이다.


보기에는 달달하지만 맛은 달달하지 않은 케이크는 뭔가 기묘하다.

맛있지만 맛이 없다.

가끔 '뭐 어때!' 하는 마음으로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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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3-1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저도 케이크 별로 안 좋아하지만 단맛 없는 케잌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네요. 케잌은 달아야 제맛인데.
초코가 있는 거 보면 달 것 같은데 말이죠.

이번 아카데미는 울나라가 이름을 못 올려서 기운이 빠지더군요.
중국 여우주연상 받았다던데 울나라 조연상 받을 걸 생각하니까
괜히 아쉽고 질투나고 그러더라구요.ㅋ

교관 2023-03-18 11:34   좋아요 0 | URL
아카데미 주최자의 제일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이 중국계 미국 여성이거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