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첫 일요일이 지나간다. 단 한 번뿐인 2023년 4월 9일의 일요일지 지나간다. 사월치고는 날이 쌀쌀하다. 그늘에 있으면 춥다. 햇빛에 있으면 따뜻한데 바람이 불거나 그늘에 들어가 버리면 춥다. 그래서 사월은 잔인한 계절이라고 하는가. 아직 난로를 틀고 있다. 날이 쌀쌀하지만 저기 건장한 청년은 반팔을 입고 다니고 있다. 근데 실은 나도 반팔이다. 실외는 오히려 괜찮은데 실내가 더 춥다. 잔인한 달이다.


극과 극. 사월인데 비슷해야 할 옷차림이 대극을 이루고 있는 모습도 있다. 내가 겨울 옷을 입고 있다는 건 아니고. 어떻든 사월은 잔인하다. 극과 극이 공존하고 있으니. 밑으로는 며칠 간의 사진이다. 며칠 동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후두두둑 다 떨어져 버렸고, 그와 동시에 쌀쌀함이 틈을 벌리고 세상에 들어와 버렸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대체로 몸속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고 싶은 말은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느닷없이 다른 형태가 되어 비명처럼 밖으로 툭 튀어나온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잘하지 않는다고 해서 친밀함이 부족한 것은 아닌데 사람들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열심히 사랑을 나누고 같은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꼭 자야 하나? 와 같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온도가 맞지 않고 불편하면 따로 잠들어도 될 텐데. 그런다고 친밀함이 멀어지는 것도 아닌데 멀어진다고, 멀어졌다고 생각을 한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될 문젠데 간단하게 생각하기를 포기한다.


보통 생각하는 게 무서우면 생각하기를 포기한다. 이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진격의 거인에서 아르민이 한 말이었다. 진격의 거인 재미있었다. 이제 4기까지 나왔나? 아무튼 생각하는 건 사실 무섭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될 문제를 복잡하게 생각하니 일이 커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하는 말이 다 올바른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마크 트웨인이 그랬나? 모든 문제는 모르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라고. 좋은 말이라 생각된다.


생각하는 건 무섭기 때문에 자꾸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고 싶다. 나만 그럴까. 나만 그렇다고 치자. 생각이란 생각을 자꾸 불러낸다. 그래서 생각은 하면 할수록 가망성이 떨어진다. 가망이 없는 생각은 무섭다. 생각에 생각을 덧입혀 생각을 하다 보면 잠이 들어도 생각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젠 생각에서 벗어나야지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플라톤이 이런 말을 했다. [나의 사생활을 필요이상 말하지 마라. 사람의 이기적 본성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게 만든다. 따라서 나의 사생활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내 이야기가 주변에 퍼져서 심심풀이 주제로 소비되거나 언젠가 비수가 되어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또한 자신에 대해 과도하게 털어놓으면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기보다 오히려 멀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간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계속해서 변화한다. 지금은 아주 가깝지만 몇 년 뒤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람 사이다. 어떤 관계도 영원할 수 없다. 만약 나의 깊은 사생활을 잘 아는 사람과 관계가 안 좋아지면 쓸데없이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많이 생길 것이다. 특히 나의 안 좋은 습관들이나 불행한 가정사는 더욱 타인의 판단과 비판에 노출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삶의 특정 부분을 비밀로 유지해야 내가 더 품위 있고, 남들에게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드러내지 말아야 할 내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하고, 집에 돌아와 말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도 후회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


플라톤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내가 따라 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만 말을 너무 하게 되면 내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게 되어 버린다. 하지만 히데의 이야기나 서태지의 음악이나, 유투의 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주저리주저리 잘 도 한다. 하루키에 대해서도, 백석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백석은, 백석 빠인 안도현의 백석평전을 읽은 덕분일까.


플라톤의 위대함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 삐삐다. 다 아는 그 말괄량이 삐삐. 삐삐의 롱네임은 삐삐로타 델리카테사 윈도셰이드 매크럴민트 에프레임즈 도터 롱스타킹.


말괄량이 삐삐를 보면 플라톤에 대해서 나온다. 삐삐는 어느 날 빌라빌라클라라는 큰 집으로 미스터 넬슨(원숭이)과 점박이 큰 말(이름이??)과 함께 이사를 온다. 큰집을 동경하던 토미와 아니카가 그 집에 누군가 이사를 왔다는 소리를 듣고 가게 된다.


베개를 머리가 아닌 발로 베고 자고 온 집을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의자를 치우는 것도 집어서 저쪽으로 던진다. 토미와 아니카는 자신의 집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을 삐삐는 마음 내키는 대로 제멋대로 자유롭게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그만 삐삐를 사랑하게 되는 토미와 아니카.


삐삐 속에서는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전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삐삐를 끝까지 고아원에 데리고 가려는 리사 아줌마가 있다. 또 마을을 지키는 경찰 두 명이 있다. 크림이라는 키가 크고 마른 경찰과 크레인이라는 뚱뚱한 경찰. 그리고 마을의 감옥에서 늘 탈출을 하는 악당(이라 부르기에 너무나 귀엽고 철딱서니가 없는, 그렇지만 게으르다) 두 명이다. 작고 마른 부릉과 뚱뚱한 돈이다.


그들은 삐삐를 괴롭히거나 삐삐의 금화를 훔치려고 하지만 늘 삐삐에게 당하는데 삐삐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푼다. 삐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어른들의 세계, 자본주의에 저항을 한다.


하루는 토미와 아니카처럼 방학을 하고 싶어서 삐삐는 미스터 넬슨을 데리고 학교에 간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미스터 넬슨을 소개해 주는데 선생님만 넬슨을 싫어하고 아이들은 좋아한다. 삐삐가 학교에 가자마자 하는 말이 위대한 플라톤에 대해서 배우러 왔다고 한다.


선생님: 5 더하기 7은 얼마니?

삐삐: 모르세요?

선생님: 나야 알지, 12잖니.

삐삐: 다 아시면서 왜 물어요?

선생님: 토미는 사과가 7개 있고 동생은 9개가 있는데 합치면 몇 개가 되니?

삐삐: 아유 그걸 다 먹으면 배탈이 날걸요. 그걸 왜 다 먹어요?


삐삐는 그리고 선생님에게 다른 지문에도 왜 그걸 알고 싶어 하느냐고 묻는다. 삐삐는 누구도 하지 못하는 말을 시원하게 한다. 결국 삐삐는 갇힌 공간과 짜인 틀에 싫증을 내고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나온다. 그러면서 위대한 플라톤의 배움을 받으러 다시 올 수 있으면 오겠다고 한다.



사월이 잔인하다고 한 건 티에스 엘리엣이다. 그의 시 ‘황무지’의 시작을 사월의 잔인함으로 출발한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엘리엇의 시가 아니라도 우리나라도 잔인한 사월이다. 사월에는 유독 사건, 혁명, 참사가 일어났다. 매일 달리는 조깅 코스도 사월에는 남달라 보인다. 어디서 잠을 자는지 알 수 없는 강변의 길고양이가 그리운 이가 있는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리움은 잔인하다. 5월에는 동네의 길고양이처럼 살도 찌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해라.


낚시하는 모습은 멍하게 바라보게 된다. 세상 재미없을 것 같은 게 민물낚시다. 물고기보다 시간을 낚는 것처럼 보이는 풍경. 물고기들아 제발 걸려 올라오지 마라.


비가 한 번 오더니 벚꽃이 다 떨어졌다. 그다음 날에는 벚꽃이 전부 떨어졌다. 잔인하다. 잔인한 사월이다. 유채가 예뻐서 잔인하고, 저녁에 보는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잔인한 사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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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란을 좋아한다. 문제는 너무 좋아한다는 것. 이 죽일 놈의 ‘너무’가 붙으면 언제나 별로다. ‘너무’라는 부사는 부정의 의미였다. 너무 크고, 너무 깊고, 너무 높고, 너무 밝으면 별로라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에 ‘너무’가 붙어서 2015년에 그 의미가 부정형이 아니라고 국립국어원에서 바꾸어 버렸다.


그래서 멋진 사람에게 너무 멋져.라고 한들 부정의 의미는 없다는 것이지. 하지만 먹는 것에 ‘너무’가 붙으면 별로다. 나는 계란을 매일 두세 개씩은 먹는다. 어떤 날은 다섯 개를 먹는 날도 있다. 이게 참 많이 줄어서 이렇다. 대학교 때 자취할 때에는 한 번에 계란 한 판을 먹은 적도 몇 번 있다. 나 혼자 홀라당 먹은 건 아니고 자취방에 술 마시러 친구가 오면 전기밥솥에 밥을 안치고 다 되면 그 안에 계란 한 판을 다 집어넣어서 휘휘 저어서 고추장을 넣고 멸치볶음을 넣고 김으로 싸서 안주 겸 먹었다. 별로일 것 같지만 맛있다. 너무 맛있는 것이다.


고작 라면 하나를 끓일 때에도 계란 두세 개를 넣어서 먹기도 했다. 분홍분홍 소시지도 그냥 굽는 것보다 계란 옷을 한 번 입혀서 구운 것이 훨씬 맛있잖아. 계란프라이에 마요네즈와 함께라면 아아 노래가 절로 나온다. 이 세상에 계란만큼 완전한 식품이 또 있을까. 가격도 다른 식재료에 비해서 저렴한 편이었다.


계란을 너무 좋아하는 건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옆 나라 일본에서는 계란이 얼마나 좋으면 고기도 계란에 찍어 먹는다. 그렇게 먹으니 너무 맛있다. 또 계란으로 미니미니 피규어도 만들어냈다. 그것이 쿠테타마다. 인기도 좋아서 한때 나의 조카는 쿠테타마에 빠져서 피겨샾에 한동안 데리고 다녀야 했는데 가격이 흑흑.

이렇게 완전체 음식인 계란은 과하면 손해 보는 음식이 되었다. 박찬일도 그런 속내를 자신의 책을 통해서 드러냈다. 인간사 수많은 음식들을 관통하는 대명제, 왜 몸에 좋은 건 맛이 없나. 다시 말해서 몸에 나쁜 건 마이 좋다는 말이다. 흡연자들은 담배를 떠올리면, 한 대의 여유, 일상의 도피, 도파민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는 만족감. 특히 에스프레소와 절묘한 궁합.


짐 자무시는 그 조합을 어떻게 알았던지 ‘커피와 담배’라를 단편 영화들을 엮어서 사람들을 혹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박찬일도 주치의에게 계란을 조절해서 먹기를 강요받았다고 한다. 우리 인간이 언제부터 달걀을 먹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박찬일은 이 달걀이 인간세계에 들어옴으로 해서 요리의 신기원이 열렸다고 했다.


계란은 과자, 아이스크림에 반드시 들어간다. 달걀의 노른자와 흰자로 분리되는 두 가지 다른 성질은 인간의 화려한 미식의 열쇠가 되었다. 프랑스 요리에서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드는 크렘 브륄레나 슈크림, 커스터드로 넣은 샌드가 노른자의 마력이라면, 한없이 부풀어 올라 미식의 허영을 충족시켜 주는 수플레, 중독성 강한 마카롱 같은 과자는 희자의 무한 변신으로 가능해졌다고 한다.


요즘은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주문하면 예전처럼 맛있는 계란 프라이가 올라가지 않고 스크램블이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거대 웍에서 기름을 두르고 튀기듯 프라이를 만들었던 예전의 중국집 계란프라이만이 볶음밥에 같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었다. 짜장은 볶음밥 접시에 낄 수 없었다.


그랬던 계란이 한 때 위협을 받았다. 계란 파동으로 인해 가격이 자꾸 올라갔다. 그때가 아마 2017년으로 한 번 오른 계란 가격은 내려올 줄을 몰랐다. 그래서 결론은 가격도 예전 같지 않고, 계란은 많이 먹으면 몸에 탈이 난다고, 너무 좋아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계란찜은 언제나 위로가 된다. 계란찜이라는 음식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보통 엄마가 어릴 때 계란찜을 해 주는데 그 내밀한 기억이 어른이 되어서 계란찜을 먹을 때 미화되어서 떠오른다.


계란찜을 아주 맛있게 먹는 방법은 컵라면에서 면만 건져내서 먹고 국물에 계란 두세 개를 넣어서 휘휘 저어서 전자레인지에 돌려주면 정말 너무너무 맛있는 계란찜이 된다. 하지만 너무 좋아하지 마라, 너무 많이 먹으면 탈이 난다. 맛있는 음식을 너무 좋아하면 너를 공격할 거야. 이런 것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속에 항상 공존하고 있다.



나 매일 삶은 달걀을 까먹는데, 그래서 달걀 껍질 까는 스킬이 남다른데 나를 짜증 나게 하는 삶은 계란이 등장했다. 다른 계란과 똑 같이 삶았을 뿐인데 껍질이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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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가 서태지에게 물리적으로나 영혼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가장 강력한 록 스피릿이 충만할 때가 아닌가 싶다. 가사도 너무나 멋지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불태워버리고, 여긴 곧 파멸직전이고, 온 도시가 튼 권위에 감싸여 욕이 나오고, 전투적이며, 상처에 침묵하고, 균열에, 칼과 바다를 착각하는 등


https://youtu.be/8S9ehcnuMZI 태지와 화 중 탱크


가사는 직설적이면서 온통 은유가 가득해서 듣는 이들이 느끼는 대로, 해석하는 대로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다. 우리는 변화하되 변함없는 울트라맨이라는 것이다.


태지의 화 이 공연에서 서태지는 스무 곡에 가까운 노래를 부르는데 목을 긁어서 내는 그로울링으로 정말 미친 보컬을 보여준다. 누가 서태지는 노래 못 부른다고 했던가. 특히 컴백홈을 부를 때는 요즘 말 많은 양현석이 등장해서 같이 노래를 부르는데 굉장한 록 사운드에 서태지의 엄청난 그로울링 보컬을 들을 수 있다.


말할 때에는 목을 다치지 않으면서 이렇게 목을 긁어서 굉장한 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건 아마도 연습에 연습 그리고 연습 때문일 것이다. 이 당시 서태지의 록사운드를 핌프록이라고 불렀는데 뜻을 찾아보면 별소리 없다. 이때 늘 비교되던 보컬이 프레드 더스트였다. 연예가 중계인가 한 방송매체에서 프레드 더스트를 찾아가서 서태지 노래를 들려주며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기도 했었다.


프레드 더스트도 서태지 같은 그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는데 서태지처럼 그로울링으로 노래를 많이 부르지는 않았다. 프레드 더스트가 누구냐면 미션임파서블의 주제곡을 부른 림프 비즈킷의 보컬이었다. 림프 비즈킷은 대단했지만 나는 서태지가 더 대단했다. 태지와 화 공연에서 필승을 부를 때에는 또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서 연주를 한다, 그러면서 춤도 춘다. 혼자서 스무 곡을 부르면서 춤도 추고 연주도 하고 관객을 이끌면서 무엇보다 그로울링으로 미친 듯이 노래를 한다. 이걸 서태지가 해냈다.


이게 얼마나 힘이 드냐면, 나는 매일 라디오를 들으니까 오후 4시에 윤도현이 하는 라디오도 매일 듣는다. 매일이다. 매일 듣고 있다. 윤도현이 한 동안 - 6개월 동안 투어 때문에 라디오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와서 투어 공연을 하면서 힘든 것들을 계속 말해주었다. 나이가 있어 힘에 부쳐서 그럴 수도 있지만 격한 댄스를 하면서, 몸을 흔들면서, 연주를 하면서, 무대를 뛰어다니며, 그로울링을 스무 곡을 하게 되면 아마도 다음 날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미친것처럼 공연을 하는 건 시기가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이승환은 정말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지.


무엇보다 공연의 무대연출이 마치 연극을 보는 것처럼,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획을 했다. 이때, 90년대 강력한 록을 선보였던 콘의 조나단도 서태지를 추켜 세우며 “태지가 하는 건 나는 다 좋아”라고 했다. 후에 서태지가 라이브 와이어 앨범을 냈을 때 투어를 콘과 함께 했다.


잠깐 콘의 조나단 얘기를 하자면, 콘 역시 엄청난 강한 사운드 해비해비한 메탈사운드 그룹이다. 한때 콘의 노래에 빠져서 콘이 박혀 있는 티셔츠를 입고 다녔던 학창 시절의 흑역사가 떠오른다. 조나단은 태지의 화에서 보여준 서태지의 헤어스타일을 늘 고수했다. 그런 헤어스타일에 늘 아디다스 져지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콘의 노래 블라인드를 들으면 이 과격함의 미친 헤비메탈 사운드에 조나단 특유의 그로울링 보컬이 너무나 죽였다. 거기에 조나단은 언제나 아디다스 져지를 입고 노래를 불렀다. https://youtu.be/SGK00Q7xx-s


덕분에 아디다스가 거의 나이키를 따라잡을 정도로 붕 떠오른 것이다. 아디다스 회장은 너무나 기뻤다. 아디다스는 퓨마와 지독한 경쟁 상대였다. 퓨마와 거의 잡아먹을 듯 경쟁을 했던 이유가 아디다스 회장과 퓨마 회장은 친 형제로 둘의 사이가 너무나 안 좋았다. 그래서 이 죽일 듯한 경쟁이 지금의 아디다스와 퓨마로 이끌어 올렸을지도 모른다. 퓨마의 회장은 아디다스가 잘 나가는 게 너무나 배 아프고 미칠 것처럼 싫었는데 그 당시에 패리스 힐튼이 퓨마의 분홍분홍 져지 패션을 선보이며 또 퓨마가 세계적으로 빵 떠버렸다. 아무튼 이 두 회사의 경쟁 구도 이야기는 유명했다.


지금 콘의 조나단과 마릴린 맨슨은 드럼통 같은 너무나 뚱뚱한 몸으로 공연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서태지는 저때나 지금이나 외모적으로는 거의 변화가 없다는 게 또 신기한 일이다. 서태지는 태지의 화 공연 중간중간 맨트를 자주 한다. 팬들과 주고받고 소통을 열심히 한다. 한 가수의 팬이 되면 이런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 힘이 된다. 서태지가 사실 참 재미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 또한 일종의 스토리지에 쌓이고 쌓여 역사가 되어서 서태지 특유의 고유한 콘셉트 내지는 메뉴가 되었다.


코로나 전 서태지는 남탕, 여탕 공연을 했는데 말 그대로 여자들만 불러 공연을, 남자들만 불러 공연을 했다. 남탕 공연에서 남자들이 태지형! 욕! 욕을 해줘! 해서 시원하게 씨발!!!! 같은 욕을 하며 신나게 공연을 즐기기도 했다. 중요한 건 서태지 공연에서는 화장한 얼굴이 전부 지워지고 방방 뛰면서 공연을 즐기며 에너지를 전부 뽑아 놓고 나온다는 것이다. 태지의 화 공연에서 관객들은 처음에는 팽팽한 청경채 같지만 나중에는 푹 데쳐진 시금치가 되었다.


우리가 서태지의 강력한 메탈사운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마음속 어떤 응어리를 터트려 주기 때문이다. 흔히 록스피릿이 그런 것이다. 반항적이며 반항적이고 반항하는 것이다. 무엇에? 부조리와 권위에 삐딱해지는 것이다. 서태지를 따라 소리를 지르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른다고 나무랄 사람 1도 없다. 오히려 가만히 있으면 이상하다. 이런 멋진 공연에서 주인공은 서태지가 아니라 바로 너야,라고 서태지는 말하고 노래를 부른다. 일상에서 내가 주인공이었던 적이 있기나 했던가.


그리고 좋아하는 가수를 보며 우는 사람을 욕하지 마라. 어른이 되고 나서 아파서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감격하는 포인트, 내가 감동적인 순간에는 눈물이 나온다. 그 매개가 내가 좋아하는 가수라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음을 모르는 이들은, 그래서 가수를 보며 우는 팬들을 욕하는 사람들은 꼰대 중의 꼰대 아니냐. 그럼 서태지의 그로울링의 미친 음색의 노래 몇 곡을 들어보자. 엄청난 록 사운드의 연주도 좋다.



양현석과 함께 부른 컴백 홈. 사운드, 연주, 춤, 노래, 음색 다 미쳐 https://youtu.be/QwYVmNZVako


인터넷 전쟁 그리고 프리 스타일로 넘어간다. 인터넷 전쟁 미쳤다 정말. 서태지 포포몬스부터 목소리, 그리고 연주까지 미침. 프리 스타일에서는 김종서와 함께 부른다. 김종서가 더 신난 듯. https://youtu.be/tJIW7BpI5x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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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발단은 투정 부릴 수조차 없을 만큼 맑게 갠, 7월의 일요일 오후였다. 7월의 첫 일요일이었다.로 이 소설은 시작한다. 하루키는 7월의 모습을 투명한 유리에 물방울이 떨어지듯 하루키만의 언어로 멋지게 표현을 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떠오른 가난한 아주머니가 온 마음을 휘어잡았다.


마치 거대하고 끊임없을 것만 같은 행복을 이어주는 건 불행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가난한 아주머니의 가난이란 무엇일까. 성석제와 톨스토이 작품 속 가난은 실존적인 가난이었다. 그러나 하루키의 가난은 메타포 이거나 이데아에 가깝다. 그리고 그 가난은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던지면 돌아오는 부메랑과 같은 것이다. 분명 행복하지만 등에는 불행의 짐짝이 붙어 있는 것처럼.


가난한 아주머니는 텅 빈 동공일지도 모르고, 하나의 무형태를 띤 형상일지도 모른다. 잔성처럼 말이다. 가난한 아주머니는 왔다가 사라져 갔다. 어휘는 투명한 탄도처럼, 일요일 오후의 한낮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가난한 아주머니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존재다. 가난한 아주머니란 그런 존재니까. 아주머니는 다 알지만 그 앞에 가난이 붙으면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가난한 아주머니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야만 한다. 이 세상에는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바로 가난한 아주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가까이 있으면 보지 않게 되고 멀리 있는 것만 쫓는 경향이 있다. 가난한 아주머니가 진짜로 있는 그녀는 가난한 아주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적당한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나는 가난한 아주머니를 전혀 모르지만 받아들이려고 한다. 받아들인 다는 건 동시에 구제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가난한 아주머니는 나의 주위, 그녀의 주위, 모든 사람의 주위에 항상 있는 존재다. 하지만 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잘 볼 수 없지만 제대로 볼 수는 있는 존재. 그것이 가난한 아주머니 일지도 모른다. 특징 없는 누군가를 가리켜 누구지?라고 물으면, 응 가난한 아주머니일 뿐이야.라고 하면 된다.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누구였더라? 에도 가난한 아주머니를 집어넣으면 간단하다.


이름이 없는 사람들이 가난한 아주머니뿐이더냐. 이름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살아남아 용케도 이름의 거리에 당도하여 그들이 공동체를 만들면 그 속에서 가난한 아주머니를 마주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가난한 아주머니와 내가 같은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이름을 잃어버리고 살아왔기 때문에.


가난한 아주머니는 무게도 대단하지 않고, 불쾌한 감각도 아니며 귓전에 대고 냄새나는 입김을 불지도 않지만 표백된 그림자처럼 내 잔등에 착 달라붙어 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 존재에 익숙해진다. 친구들도 썩 신경 쓰지 않는다. 가난한 아주머니란 그런 것이다. 일종의 에테르. 보는 사람에 따라 형상이 뒤틀어지는. 일각수처럼 고정된 형상이 아니다. 평범한 낱말일 뿐이다. 평범한 언어가 가난한 아주머니다. 개념적인 기호일지도.


그리고 겨울이 다가올 즈음 가난한 아주머니는 나의 등에서 사라졌다. 이후 나는 자신을 원래의 나 자신을 꼭 닮은, 또 하나의 자신으로 여겨졌다. 산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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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을 모르는 지구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마이클 잭슨이 죽은 지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전 세계의 라디오, 유튜브 등 어딘가의 영상이나 채널에서는 매 시간, 매 분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마이클 잭슨의 광적인 팬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광적으로 좋아하는 가수는 없는 것 같다. 광적 보다 한 단계 밑? 정도로 좋아하는 가수들은 꽤 있다. 뭐 본조비라든가, 서태지라든가, 히데라든가. 앨범이 많고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거의 따라 부르며, 뮤직비디오를 좀 많이 보고.


그에 비해 마이클 잭슨은 그 정도까지도 좋아하지도 않고 듣지 않은 것 같은데 집을 뒤져 보니 마이클 잭슨의 앨범이 4장이나 있었다. 원래는 시디로도 더 있는데 시디 앨범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어떤 물품은 가만 두면 내 품을 떠나가기도 한다. 세상에는 그런 물품이 꼭 존재한다.


아무튼 나에게 마이클 잭슨의 데인저러스 앨범이 있다는 건 너무나 행운인 것만 같다. 앨범을 잘 보면 마이클 잭슨의 얼굴이 저 뒤에 있는 것처럼 입체적으로 보인다. 이 앨범 속 노래들은 아마도 가장 유명하고, 뮤직비디오 역시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제작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노래를 듣고 있으면 앨범의 표지 속 마이클 잭슨처럼 입체적이다.


[데인저러스 투어는 그야말로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 냈다. 남미의 주요 국가들과 이스라엘, 러시아와 루마니아를 비롯한 구 공산권 국가들이 투어에 포함되었다. 1993년 진행된 2차 투어 도중에 거짓 성추행 사건과 관련하여 미국 경찰의 미심쩍은 수사가 시작되면서 탕수증세로 공연을 취소하기도 했고, 투어 막바지에는 진통제 중독으로 예정된 일정을 진행하지 못한 채 멕시코에서 투어를 종료했다. -나무위키]


마이클 잭슨을 무척이나 안타깝게 이야기한 사람 중에는 김혜자도 있다. 한 방송에 나와서 그렇게 순수하게 노래를 하는 사람에게 언론과 방송은 왜 그렇게 가만두지 못하는지, 같은 이야기를 했다. 너무나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장국영을 장난감으로 취급한 홍콩의 언론들도 그랬다. 장국영의 처참한 죽음마저도 미화시켰다.


마이클잭슨은 늘 하느님에게 기도를 했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마이클 잭슨은 신을 믿지 않고서는, 신에게 기대지 않고서는 그 험한 할리우드에서 계속 노래를 부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데인저러스의 가사 중에는 I have to pray to god, cause i know how lust can blind라는 가사가 있다.


데인저러스 이 앨범의 모든 곡의 뮤직비디오가 혼을 빼놓을 정도로 재미있다.


첫 노래 ‘잼’에는 마이클 조던, 크리스 크로스가 뮤직비디오에 등장해서 마이클 잭슨과 함께 뮤직비디오를 충만하게 해 준다. 마이클 잭슨은 조던에게 춤을 가르쳐 주고, 조던은 마이클 잭슨에게 농구를 가르쳐 주는 모습이 나온다. 음, 그냥 너무 좋다. 당시 최고의 래퍼 아기아기한 크리스 크로스도 나온다. 얘네들 엄청났지. 오죽하면 박진영이 보고 량현량하를 제작해 버리기. 크리스 크로스 중 한 살 많은 크리스 켈리는 10년 전에 죽었다. 잼의 뮤직비디오는 노래가 끝나도 마지막까지 보는 게 좋다. 조던이 마이클 잭슨에게 춤을 배우는 모습이 나오기 때문이다. https://youtu.be/JbHI1yI1Ndk


두 번째 노래 '와이 유 와나 트립 온 미'의 뮤직비디오는 우리의 캐빈, 맥컬리 컬킨의 기타 연주로 시작한다. 실루엣으로 보이는 마이클의 멋진 모습이 나오면서 데인저러스 앨범 속 많은 뮤직비디오 영상이 교차되어서 나온다. 주로 블랙 오어 화이트, 잼의 뮤직비디오의 모습을 교차편집해서 ‘와이 유 워나 트립 온 미’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https://youtu.be/iSyvCrnYiuA


세 번째 노래 ‘인 더 클로셋’의 뮤직비디오에는 최고의 모델이었던 나오미 캠벨이 등장한다. 둘 다 하얀 탑 셔츠를 입고 있고 피부는 까맣다. 그게 묘한 대비의 미를 이룬다. 앞의 두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장난기 가득하고 한 없이 순수한 노래를 표현했지만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그야말로 섹슈얼리티다. 데인저러스 이 앨범의 노래 세 곡이 빌보다 탑 텐에 오르는데 이 노래도 세 번째로 오르게 된다. 이 노래에서 마이클 잭슨은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호텔 풀 사이드의 수면처럼 높낮이가 크게 오고 가지 않게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섹시함을 더한다. https://youtu.be/4qLY0vbrT8Q


네 번째 노래 ‘쉬 드라이버스 미 와일드’에서의 목소리를 잘 들어보면 알겠지만 앞의 노래처럼 부드럽게 부르는 게 아니라 목을 긁어서 내는 소리처럼 강하고 탁하게 부른다. 이게 마이클 잭슨의 매력이다. 서태지도 20대, 30대 초에는 이렇게 목을 긁어서 미친 록을 했다. 매력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엑스제팬의 히데도 그렇게 노래를 불렀다. 당연하지만 듣고 있으면 빠져든다. 지드래곤도 ‘삐딱하게'를 부를 때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이렇게 목을 긁어서 노래를 부르면 너무 멋지지만 그렇게 부를 수 있는 나이대가 있다. 나이가 들면 그렇게 부를 수 없는데 마이클 잭슨은 부드러움과 강함을 오고 가며 노래를 계속 부른다. 이게 듣는 사람을 미치게 한다. https://youtu.be/7Dz7yB9h984


다섯 번째 노래 ‘리멤버 더 타임’은 그야말로 영화 한 편이다. 보면 무슨 내용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지금 봐도 어색하지 않다. 이 뮤직비디오에는 제일 잘 나갔던 배우 에디 머피와 농구스타 매직 존스, 데이비드 보위의 아내이자 세상에서 제일 예쁜 모델 이만이 왕비로 등장한다. 이만은 마치 에이아이처럼, 컴퓨터가 만들어 놓은 인간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이클 잭슨의 등장에 바로 눈길을 주는 왕비 이만과 그녀를 질투하는 왕 에디 머피의 연기를 볼 수 있는 뮤직비디오다. https://youtu.be/LeiFF0gvqcc


이 앨범의 노래를 전부 소개하고 싶지만 14곡이나 되기 때문에 두 곡만 더 하자. 일곱 번째의 노래가 바로 지금도 라디오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노래 ‘히얼 더 월드’다. 이 노래는 뮤직비디오도 좋지만 93년 슈퍼볼 경기 하프 타임 때 영상을 보는 게 더 감격이다. 그 영상 속에는 한복을 입은 우리나라의 꼬마도 나온다. 그 꼬마는 지금 어른이 되어 있겠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자신이 마이클 잭슨의 영상에 나왔다는 걸 알 텐데. 같은 생각을 하면 재미있다. 이 하프타임의 첫 등장은 정말 30년 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다. 늘 같이 다니던 여자 기타리스트의 모습도 마이클 잭슨과 함께 볼거리다. 기타가 스타트를 끊으면 동료들과 칼군무로 빌리진을 선보인다. 정말 죽인다,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내가 미워지는 순간.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계속 듣게 되는 건 멋진 록이라서 그렇다. https://youtu.be/PI3dptwgIdU


여덟 번째 노래가 ‘블랙 오어 화이트’인데 하프 타임에도 부르고, 이 뮤직비디오에는 우리의 캐빈이 나온다. 아버지로 나오는 존 굿맨을 저 아프리카 대륙까지 기타 연주로 날려버린다. 이 노래는 그저 신나게 불러서 그렇지 내용이 너무 좋다. 흑인과 백인으로 단정 지었지만 실은 너와 나 사이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노래는 말하고 있다. 인종의 갈등은 총과 칼로써는 해결이 안 되지만 노래를 통해서 서로 안아 줄 수 있는 관계가 된다는 것을 마이클 잭슨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래서 노래가 좋고,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아직도 너무 좋은 것이다. https://youtu.be/F2AitTPI5U0


유튜브 때문에 짜증 나기도 하지만 이렇게 마이클 잭슨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이 행성에서 많은 사람들의 손을 잡게 만들고 하늘로 가버린 마이클 잭슨은 분명 거기서도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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