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라는 아주 이상하고 기묘하고 기이한, 그래서 밥 먹고 한 없이 상상력만은 똥처럼 만들어내야 하는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하루키의 냉소는 첫 시작부터다.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플라톤이 이런 말을 했다.


[나의 사생활을 필요이상 말하지 마라. 사람의 이기적 본성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게 만든다. 따라서 나의 사생활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내 이야기가 주변에 퍼져서 심심풀이 주제로 소비되거나 언젠가 비수가 되어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또한 자신에 대해 과도하게 털어놓으면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기보다 오히려 멀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간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계속해서 변화한다. 지금은 아주 가깝지만 몇 년 뒤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람 사이다. 어떤 관계도 영원할 수 없다. 만약 나의 깊은 사생활을 잘 아는 사람과 관계가 안 좋아지면 쓸데없이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많이 생길 것이다. 특히 나의 안 좋은 습관들이나 불행한 가정사는 더욱 타인의 판단과 비판에 노출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삶의 특정 부분을 비밀로 유지해야 내가 더 품위 있고, 남들에게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드러내지 말아야 할 내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하고, 집에 돌아와 말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도 후회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


책에서 하루키는 말하고 있다. 작가들끼리 친하게 지낸다는 말은 순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친할수록, 그래서 말을 많이 할수록 손해 보는 직업이 있다면 소설가이지 싶다. 작가들끼리 붙여 놓으면 잘 되는 경우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비록 소설가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다. 옛날부터 친구끼리는 동업하지 마라, 같은 말이 있듯이.


재미있는 건 책에서도 말하지만 1922년 파리의 디너파티에서 세상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마르셀 프루스트와 제임스 조이스가 한자리에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두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기다렸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하지요.


사실 소설가가 아니라도 플라톤의 말처럼 나의 사생활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할 필요는 없다. 나의 사생활 따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엄마, 아이들, 애인, 아내, 남편)도 하루 종일 그 사람을 생각하고 걱정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혼자서만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부부가 함께 한 이불에 들어도 잠은 혼자서 자야 한다. 아픈 것도 대신할 수 없다. 무엇보다 소설은 정신을 바짝 세워 등을 구부리고 혼자서 묵묵히 써 내려가야 한다. 그 지겹고도 힘든 작업을 꾸준하게 할 수 있는 동력원은 오직 상상력과 엉덩이의 힘이다.


상상력은 머리가 좋아야 나오는 게 아니라 공상하기를 좋아하고 상상의 세계를 꿈꾸며 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하는 인간들에게서 나온다. 고로 하루키도 말하지만 머리가 좋으면 결국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머리가 그리 좋지 않은 인간들이 어쩌면 소설가라는 직업에 맞지 않을까 싶다.


요즘 같은 시대에 소설을 쓴다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어지간히 머리가 나쁜 인간이 아닌 다음에야 글이나 쓰고 앉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문학을 한다는 건 멋진 일이다. 중독이 되며 빠지면 나오기도 쉽지 않다. 세상의 수많은 중독이 나쁘지만 문학은 다르다. 소설가의 특징이라면 문학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다.


소설가 장강명도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에서 [나는 문학의 힘을 믿으므로 그런 때 무력한 문학인들을 미워하기 시작한다. 문학의 잘못이 아니라고, 우리가 멍청하기 때문이라고]라고 했다. 소설가는 참 기묘한 직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키스는 영혼과 영혼을 이어준다.

그리하여 키스를 끝내면 미련이 남아서 여운을 놓치지 않으려고 이어진 영혼을 좀 더 느끼려 한다.


계절과 계절의 키스도 그렇다.

계절과 계절이 만나는 경계가 지나면 마지막까지 남아서 지난 계절을 붙잡는 것들이 있다.

가을과 겨울이 만나 어딘가 뒹굴고 있는 낙엽이 그렇고,

겨울과 봄이 만나 느닷없이 내리는 4월의 눈이 그렇고,

봄과 여름이 만나 밥상 위에 오른 봄나물이 그렇고,

여름과 가을이 만나 아직 빠지지 않은 야외수영장의 물이 그렇다.


계절과 계절이 만나 키스를 해도 그런데

사람과 사람의 키스는 두 사람을,

영혼과 영혼을 이어준다.


정현종 시인의 말처럼 사람이 온다는 건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온다.

그 사람의 부서지기 쉬운 영혼이 삶에 부딪히면서

슬픈 영혼이 말하지 못할 미래의 아픔까지,

키스를 통해 위로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요 며칠 동안 계속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틀어 놓고 있다. 그래봐야 유튜브로 틀어 놓는다. 등 뒤로는 기묘하지만 라디오가 계속 나오고 있고 앞으로는 라디오보다 큰 소리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이 나오고 있다. 이틀은 더 펄스 공연을 틀어서 들었고, 오늘은 디비전 벨 앨범의 곡들을 계속 듣고 있다. https://youtu.be/Nc7bHU6ylvM


나 예전에 이 앨범을 엘피로 구입을 했었다. 그때 내가 무슨 음악을 안다고(뭐 지금도 모르지만) 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 앨범을 구입해서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어린놈 주제에 주말이면 몇 시간씩 거실의 벽에 기대어 앉아 헤드폰으로 디비전 벨 앨범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전에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이 두 개 더 있었다. 가장 유명한 앨범과 또 하나 있었다. 그 두 개는 카세트테이프였다.


그래서 친구들이 불러도 주말에 나가지 않고 집구석에 앉아서 등을 구부리고 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을 들었다. 음악은 기묘해서 듣고 있으면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기시감이 굉장하다. 나는 형이나 누나가 없었기 때문에 오직 라디오와 음악 감상실에서 음악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요를 좋아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팝이나 강력한 음악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를 뚫고 핑크 플로이드가 들어왔다. 로저 워터스의 이야기, 황제로 군림하던 그가 나가고 데이비드 길무어가 7년 만에 낸 앨범에 관한 이야기. 이런 가십은 몰입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시간이라는 건 정말 알 수 없다. 시간은 때때로 사람을 조급하게 하거나 불안하게 한다. 그런 시간이 존재한다. 학창 시절에 일요일 오후 3시가 되면 불안하기 시작했다. 나는 얼마나 학교에 가기 싫었으면 일요일 오후 3시부터 불안했을까. 그때의 불안은 당시에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서 혼자서 마당의 무화과나무 밑에 앉아서 오후 3시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런 불안을 완화시켜 준 것이 핑크 플로이드 음악이었다.


일요일 오후 3시는 토요일 오후 3시와 너무 다르다. 금요일 오후 3시와도 다르며 월요일 오후 3시와도 다르다.


자율학습이 비교적 일찍 끝나는 토요일은 오후 3시가 되면 마음이 풍요로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토요일이었으니까. 자율학습이 없어서 1시에 수업을 마치면 강원분식에서 라면 곱빼기를 한 그릇 먹었다. 분식집 티브이에는 벅스 바니가 하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 하교 후 강원분식집에서 벅스 바니를 보며 먹는 라면 곱빼기는 정말 행복이었다.


4월의 봄, 토요일.

라면을 먹고 나오면 2시에서 3시 사이였다. 집으로 걸어서 왔다. 버스를 타야 하지만 토요일은 계속 걸었다. 도로에서 올라오는 아지랑이 냄새며 사람들의 봄옷이며, 전통시장의 넘쳐나는 봄기운이 토요일 오후 3시를 만끽하게 했다.


그러나 그 행복한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렸다. 일요일 오후 2시까지는 괜찮다. 몸도 마음도 오후 2시부터 어떠한 구멍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그 때문에 일요일에 낮잠을 자지 않았다. 잠이 들어 버리면 어김없이, 대책 없이 몰아치듯 오후 3시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내 속에 있는 알 수 없는 무력감으로 일요일 오후 시간을 완전히 망쳐버리고 만다. 일요일 오후 3시는 그렇게 학창 시절의 어떠한 부분에서 불안을 잔뜩 가져다 준 시간이었다. 그럴 때 차분하게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들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하이 홉스에 와서 엄청난 마음의 차분함과 떨림을 동시에 느꼈다.


그래도 그때는 요즘처럼 이렇게 대기질이 엉망이거나 미세먼지로 마스크를 하고 다니지는 않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존의 상식이 깨지고 있는 요즘이다. 학생들이 약을 구해서 약을 하는 이야기가 뉴스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주위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학생의 부모는 천청벽력을 맞이했다. 요즘의 학생들은 내가 학생 때 느꼈던 일요일 오후 3시의 불안보다, 더 한 불안을, 몇 배는 더 큰 불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약을 오래 하다 보면 약을 끊었다 해도 약을 하기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못한다. 맛있게 먹었던 과자나 음료가 아무 맛도 느낄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을 만나도 의욕이 전혀 없고 해서 뭐 하나 같은 허무가 늘 깔려있다. 생활이 힘든 것이 아니라 생활이 안 된다.


경북 고령 같은 고장에는 젊은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평균 연령이 54세라고 한다. 문제는 농사짓는 일을 거의, 대부분 동남아 사람들이 한다. 그러다 보니 다문화 가정이 많은데 오죽하면 한국인 드문 시골 고장의 학교에 다문화 아이들이 전부라 한국인 아이가 따돌림을 받기도 한다고 한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지방대학교가 폐교되는 이야기를 한 번 적었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3437


이 심각함을 영상으로 보면 더 충격이다. 유튜브에 폐교가 되어 유령 마을이 된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도 많다. https://youtu.be/kRo-s1NEyNQ


썩 왕래가 없는 아는 친구가 아이가 열이 펄펄 나서 소아과를 갔는데 한 시간이 넘도록 대기를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제 겨우 말을 하는 아이가 아파서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부모는 속이 타들어가는 것이다. 간호사들은 간호사들대로 힘들고, 아이는 아이대로, 아이의 부모는 부모대로, 의사는 의사대로 힘들고 피곤한 것이다. 너는 진짜 아이가 없어서 모른다고 하는데 속으로 맞아, 난 알 수가 없지.


일요일의 저녁은 금방 지나갔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이었다. 어제와 지금이 다른 점이라면 먼지가 조금 걷혔다는 것이다. 온 세상에 부옇고 부연 대기의 최악 상태였는데 오늘은 먼지가 조금 걷혔을 뿐인데 이렇게 하늘이 다르다. 하늘의 구름의 층위가 마치 질 좋은 마블링의 단면을 보는 것처럼 다 드러났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차피 하루는 지나가고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일이 펼쳐질 것이다. 오늘 평안하고 고요하게 지나갔다면,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도 무료하지만 고요하고 아무 일 없이 지나간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면 덜 불행한 것이다. 거기에 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 앨범을 듣는다면 조금 행복한 날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너는 참 눈물이 없네,라는 말을 예전에도, 지금도 듣는데 그건 정말 잘 모르는 말이다. 사람들 앞에서, 누구 앞에서 눈물을 흘릴 일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나는 포인트가 늘어간다.


단지 아이처럼 넘어져서 아파서 울지는 않는다. 잘 넘어지지도 않지만, 일단 한 번 넘어지면 어른은 너무 쪽팔린다. 아픔을 느끼기 전에 이 난관을 어떻게 수습하지 같은 생각이 먼저 든다. 나는 조깅을 하다가 넘어진 적이 있었는데, 누군가 조깅 코스로 팍 들어오는 바람에 피하다가,,, 아무튼 넘어지면 재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는 게 나에게는 관건이었다.


그런 어른들도 근래에 코로나에 걸려 아파서 우는 경우를 봤다. 나는 코로나를 아직 걸리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나 역시 걸리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고 굉장한 고통으로 훌쩍 눈물을 흘릴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른이 되어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좀 다른 곳에 있다. 감정을 건드리는 포인트에 눈물을 많이 흘린다. 보통 소설을 읽다가, 영화 또는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주인공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몰입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주인공이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고 기뻐하면 같이 기뻐한다. 그리고 다음 날 전부 모여서 그 전날 드라마에 대해서 수다를 떨며 그 감정을 공유한다.


나의 경우는 소설을 제일 많이 읽고 있지만 소설을 읽고 눈물이 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화를 봐도 그렇고, 드라마를 봐도 눈물의 포인트에 그냥 넘어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노래를 듣고 눈물을 꽤 흘리는 편이다. 노래를 듣다가 가사에 나도 모르게 빠져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가사 앞뒤로 서사가 보이면서 주인공의 삶에, 또는 가사와 곡을 쓴 작곡가에게 이입을 하게 된다. 요컨대 이문세와 이소라의 ‘슬픈 사랑의 노래’가 그렇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오는 건 아니고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나만의 분위기가 잡혀 있을 때 눈물이 나오는 것 같다.


이 노래는 이영훈이 가장 사랑하는 곡이고 내 생애에 다시 작곡하기 힘든 곡이라고 했다. 86년에 자곡을 시작해서 6년 만에 멜로디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 멜로디에 맞는 가사를 쓰는데 또 4년이나 걸렸다. 10년에 걸쳐 노래 하나가 탄생했다. 그런 스토리가 슬픈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이문세와 이소라의 목소리에 붙어 있어서 어떤 감정의 연약한 부분을 건드리면 눈물이 흐른다.


하지만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이렇게만 단정하기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 그건 팝을 듣다가 눈물이 흐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팝의 가사를 아는 것도 아니고, 스토리를 알 수 있지도 않다. 정말 설명할 수 없는 게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 영화를 보다가 눈물이 나오는 포인트가 있는데 그건 무척 드문 일이다.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경우보다 빈도수가 낮다. 나는 영화를 무척 많이 보는 편이다. 장르도 특별하게 가리지 않는다. 독립영화부터 좀비물이나 고어물까지 두루두루 다 본다. 삼일에 두 편을 보는 편이다. 아주 많이 보는 편인데 최근에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 기억은 없다.


보통 4월이 되면 장국영의 영화를 답습하듯 보게 되는데 좋아하는 장국영이 나온다고 해서, 장국영이 살아있지 않아서, 장국영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만 본다고 해서 눈물이 흐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일마 전에 다시 본 록키 발보아의 이야기, 록키 1을 보고 눈물이 많이 흘렀다. 록키는 정말 뒷골목의 지질한 인생이었다. 못 배우고 껄렁하고 고리대금업자의 뒷일이나 하면서도 돈을 제대로 받아내지도 못한다. 그들이 불쌍해서. 두목이 때려주라는 것도 잘 못하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농담이나 내뱉는 뒷골목의 쓸쓸함과 페치카의 따뜻함을 동시에 지닌 록키 발보아의 이야기.


록키는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70년대 필라델피아로 왔다. 돈을 걸어 내기를 하는 3류 복서장에서 몸을 혹사시킨다. 당시 미국은 기회의 나라였다.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의 성지이며 그 해가 독립 200년이 되는 해였다. 미국은 기념을 하기 위한 이벤트가 필요했는데 크리드와 록키의, 슈퍼 복서와 삼류 복서의, 신과 인간의 대결을 부추긴다.


록키는 배운 것 없고 배우기 싫어서 몸으로 되는대로 먹고살자, 같은 정신과 투박한 말투인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말투가 친숙해진다. 록키는 에드리안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장면이 있는데 점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배우기 싫어하는 록키가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쓸쓸한 집에서 거북이와 금붕어에게 농담 연습을 하는 장면이 찡하다.


어둡기만 한 필라델피아 골목은 록키의 앞날과도 같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세계, 그것이 록키 발보아의 미래였다. 하지만 록키는 자신도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지만 친구의 여동생을 악의 소굴에서 데리고 집으로 바래다주고, 주위를 돌아보며 사람들을 챙긴다. 그러면서도 새벽마다 시합을 위해 조깅을 할 때 시장 상인들이 록키에게 사과를 던져 준다.


눈물이 펑펑 흐르는 장면은 마지막 크리드와의 시합이다. 너무나 멋진 장면이다. 판정승을 한 크리드. 사람들은 록키에게 재시합을 묻는다. 록키의 얼굴은 마치 찰흙을 벽에 던져 흘러내리는 얼굴로 애드리안을 큰 소리로 찾는다. 군중 속에서 모자를 잃어버리고 록키에게 안기는 애드리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가슴을 몇 번이나 두드린다. 록키는 승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꼭 이기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너무너무너무 좋은 영화다.


당시에 록키를 실제 권투선수로 착각했던 사람들도 많았다. 영화 속 사과를 던져주는 것도 실제로 권투 선수로 알고 록키에게 던져 주었는데 그대로 영화에 삽입이 되었다. 요즘도 어떤 사람들은 록키를 실제 권투 선수 역사에 있는 실존 선수로 알고 있다.


록키를 몇 번을 봤다. 지치고 쓰러질 때 록키의 주제가는 많이 이들에게 어김없이 힘을 주었다. 저 필라델피아 광장의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 양손을 높이 든 록키가 되어, 보이지 않던 앞도 보이게 될 것만 같다. 록키보다 더 멋진 사람은 코치였다. 록키의 모든 캐릭터가 눈물의 포인트다. https://youtu.be/K-YSlyhSues Rocky1 트레이닝 장면과 끝부분. -노래 : 록키 테마송-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제는 [목요일] 날이 몹시 더웠다. 오전에 밖에 커피를 투고하러 나오니 더위가 느껴졌다. 그렇지만 건물 안에 있으면 더운 지 어떤지 전혀 모른다. 더욱이 내가 일하는 건물은 건물 뒤편의 외풍이 심해서 실내가 춥다. 그러나 밖은 더워서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났다. 이런 날은 정말 미친 듯이 땀을 흘리며 달려야 하는데 대기가 너무 뿌옇고 미세먼지가 너무 많다. 정말 공기 질이 엉망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뿌연 대기를 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 처음 보는 미세먼지, 처음 보는 대기질이 더 늘어나겠지.


이렇게 부옇고 뿌연 날에는 귤이 먹고 싶어 진다. 귤이 먹고 싶어서 커피를 투고해서 오다가 슈퍼와 시장에 들렀는데 귤은 하나도 없고 오렌지만 있었다. 세상에, 몰랐는데 오렌지천지였다. 그럴 리가 없지만 이렇게 먼지가 가득한 날에 귤을 하나 까먹으면 입으로 들어와 목에 낀 먼지가 다 내려갈 것 같다. 그러나 귤은 없고 오렌지가 세계를 차지했다. 오렌지도 종류가 많지만 요즘 먹는 오렌지는 껍질이 잘 까지지 않는다. 껍질이 얇아서 그런지 고목에 붙은 매미마냥 딱 달라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토록 껍질이 잘 까지지 않을까. 귤처럼 한 번에 시원하게 까져서 먹을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오렌지 껍질은 얇기도 얇아서 온 신경을 그쪽으로 돌려야 한다. 맛에 있어서도 나는 오렌지보다 귤이 더 낫다. 오렌지는 맛이 너무 진하다. 맛이 너무 난다. 이래도 안 먹을래? 같은 분위기를 가진 게 오렌지다. 그에 비해 귤은 껍질도 잘 까져, 맛도 내 입에는 딱이다. 사실 요즘 귤도 달지 않은 귤을 찾기가 어렵다. 귤이고 오렌지고 전부 스테로이드를 잔뜩 맞은 보디빌더 같다.


오렌지가 언제부터 이렇게 생활 속으로 밀접하게 들어왔을까. 10년 전까지만 해도 오렌지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슈퍼마켓에 귤보다 오렌지가 더 많아졌다. 어릴 때에는 오렌지가 잘 없었다. 오렌지하면 델몬트에서 나온 오렌지 주스가 전부였다. 델몬트 오렌지는 고급진 음료라 유리병에 담겨 있었다. 그래서 마시고 나면 그 병에 보리차를 넣어서 먹는 집들이 많았다. 요즘은 유리병은 나오지 않는데 검색을 하면 델몬트 유리병만 따로 판매한다. 델몬트 오렌지 주스는 단 맛보다는 약간 새큼한 오렌지 맛이 많이 나는 주스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단맛이 별로 안 났지만 설탕은 엄청나게 들어가 있었다.


좀 비켜간 얘기로 간혹 미국의 햄버거는 엄청 짜던데, 우리나라는 짠맛이 안 나기 때문에 소금이 미국보다 덜 들어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소금 맛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서 짠맛이 나기 때문에 덜 먹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짠맛이 그대로 드러나면 거부감이 든다. 그래서 많이 못 먹게 된다. 그러나 소금이 왕창 들어갔지만 조미료나 어떤 소스로 인해 그 짠맛이 가려지면 계속 먹게 된다. 짠맛이 덜 난다고 해서 소금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건 뇌가 속고 있는 것이다. 국밥이나 탕이 식었을 때 먹어보면 뜨거워서 드러나지 않았던 짠맛을 잘 느낄 수 있다. 델몬트도 그렇지 않을까.


미국에도 귤이 있을 텐데, 여러 미드를 봐도 오렌지를 먹는 장면은 많이 나오는데 귤을 먹는 장면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다. 분명 귤도 먹을 텐데 먹는 장면이 없는 걸 보면 그들은 확실히 귤보다는 오렌지가 더 맛있고 더 낫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참외와 멜론 같을지도 모른다. 참외는 의외로 우리나라 정도만 먹는다고 한다. 참외와 비슷한 맛이 멜론인데 더 달고 씨도 없고, 먹기도 편하고 무엇보다 더 맛있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참외를 먹을 이유를 찾지 않는다. 그래서 메로나도 멜론이 아니라 참외를 가지고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맛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멜론을 먹기 시작한 것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참외도 예전에는 씨까지 다 먹었는데 근래에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씨는 버리고 먹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는 시원한 참외를 노란 껍질 째 우걱우걱 씹어 먹는 걸 좋아한다. 멜론이 아무리 맛있다지만 껍질 째 먹는 참외의 맛을 못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나의 입맛에는 그게 훨씬 맛있다.


미제가 최고의 서구문화권이었던 때 오렌지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집에 정원이 크고 소나무가 있고 큰 주방이 거실에서 벗어나 따로 있는 저택에 사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집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던 초등학생이었다. 놀러 가면 그 집 어머니가 오렌지를 꺼내 주었다. 귤 같지만 귤에서 느낄 수 없는 크고 노란 압도의 분위기가 있어서 마구 집어서 까먹을 수 없었다. 친구는 여자아이로 집에 피아노도 있고 아버지가 소아과 의사였다. 그 애가 오렌지를 까서 반을 나에게 건넸다. 맛있어,라며 먹어보라고 했다. 한 입 먹으니 주욱 오렌지의 진한 맛이 입으로 퍼져 들어왔다. 맛있지만 적응할 수 없는 오렌지의 진한 맛. 그건 그 애와의 관계가 거기까지인 것과 비슷했다. 우리는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며 놀았지만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그 애의 어머니가 점심식사로 함박스테이크를 만들어 주었다. 스테이크 접시에도 오렌지가 놓여 있었다.


도형이네 집은 골목길에서 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고 방이 붙어있었다. 신발을 벗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는, 그런 단칸방에 도형이는 살고 있었다. 동생과 부모님이 단칸방에 살았다. 낮에는 부모님이 일하고 집에는 도형이와 동생밖에 없었다. 도형이네는 워낙 자주 가서 들어가자마자 이불을 꺼내서 덮고 눕거나 엎드려서 놀았다. 도형이네는 검은 봉다리에 귤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꺼내서 엎드려 까먹었다. 귤을 네 개 정도 까먹으면 배가 불렀다. 우리는 마스터 키튼 만화책을 봤다. 키득거릴 만화가 아니었는데 우리는 재미있게 봤다. 그러다가 귤로 부른 배가 꺼지고 배가 고프면 도형이가 라면을 끓여 왔다. 도형이네는 연탄으로 난방을 했기 때문에 도형이가 연탄에 라면을 끓였다. 잘 끓였다. 방바닥에 앉아서 호로록 먹는 안성탕면은 정말 맛있었다.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고, 그러면 귤을 까먹고, 마스터 키튼도 재미있었고, 도형이도 좋았다. 도형이는 6학년까지 같이 붙어 다녔다. 잘 지낼까. 도형이도 여자였다. 지금은 시집가서 아이들하고 잘 살고 있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