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에 관심이 있고,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루키의 북 커버 디자인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루키의 북 커버 디자인은 출판하는 나라마다 다 다르다.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 북 커버는 우리나라, 일본, 미국인데 미국은 디자인의 미다스의 손 ‘칩 키드’가 하루키의 북 커버 디자인을 여럿 했다. 칩 키드는 영화 포스터부터 보는 순간 와 정말,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디자인이 지배하는 세상이 곧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세상이 디자인이 되어 가고 있다. 디자인되지 않는 세상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생각 된다.


나에게도 칩 키드 북커버 디자인의 카프카 온 더 쇼우가 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728


하루키 하면 이스라엘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 그 유명한 예루살렘 연설에서 ‘벽과 달걀’의 연설문은 전 세계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당연하지만 하루키의 모든 소설이 이스라엘에 출판이 되었는데 이스라엘의 유명한 디자이너 노마 바의 손을 거쳐 일관되면서 눈에 띄게 디자인을 했다. 노마 바의 눈에는 하루키는 일본 작가이고 일본이라는 느낌이 드러나는 디자인을 북 커버로 했지만 굉장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노마 바의 디자인은 심플 이즈 베스트다. 단순하다. 간단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명료하다. 노마 바의 디자인을 보면 한눈에 무엇을 말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빙빙 돌리지 않는다.


예루살렘 연설이 2009년에 있었고 2012년부터 하루키의 북 커버를 노마 바가 도맡아서 하게 되었다. 해변의 카프카 북 커버를 보면 노마 바의 디자인 특징을 잘 알 수 있다.


노마 바의 그래픽 아트를 검색해서 보면 우와 하는 그래픽 디자인이 많다.

노마 바의 디자인이다. 한눈에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다. 이 간결하고 단순한 색으로 말하고자 하는 모든 걸 표현했다.




미국순방 이후 아메리칸 파이만 생각나는 답답한 마음에 한 번 만들어봤다. 잡혀가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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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 하루키


하루키처럼 어른이 된 사람들은 누구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있을 것이다. 나는 라디오를 매일 듣는데 라디오 속에는 티브이와 다르게 사람들의 너무나 소소하고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하루 종일 흘러나온다. 고로 사람들은 생각만큼 메마른 사막처럼 지내지 않고 생각이상으로 자신만의 소확행을 확실하게 쫓아가고 있다.


때때로 문득 ‘혼자서 살아가는 것은 어차피 지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정말 피곤하네’라고 인정하면서도, 나름대로 힘껏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개인이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그 존재 기반을 세계에 제시하는 것, 그것이 소설을 쓰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를 관찰하기 위해 인간은 가능한 한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 하루키


느긋하지만 부지런하고, 타이트하고 고집스러울 만큼 자유한 영혼을 가지고 건강한 생각과 몸을 죽 끌고 가는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건강한 생각과 몸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은유이자 이데아인 것이다. 하루키는 통신판매로 싸구려 캐릭터 손목시계를 구입하고 좋아한다. 여러 개를 번갈아 차고 다니며 시간을 보는 즐거움을 누린다. 안달해 봤자, 기껏해야 이것이 인생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는데, 나는 언제쯤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나도 오래전에 통신판매, 쿠팡이겠지. 인터넷으로 주문한, 무려 이만 원이나 하는 감성의 돌핀 손목시계. 무려 와이파이로 시간을 정확하게 알아서 맞춰준다. 무려 배터리가 필요 없이 태양열로 생명을 유지한다. 사진 속 하루키의 시계 속에는 하루를 삼등분해서 먹기, 자기, 놀기로 나온다. 전자시계는 그렇게 나눌 수 없어 안타깝지만 삼분할을 한다면 당신은 어떤 식으로 나눌 수 있을까.

나의 손목시계는 스마트하지 않다.


사실 지금은 손목시계가 필요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렇기 때문인지 시계가 예전에 비해 세상에 더 늘어난 기분이다. 이제 더 이상 길거리에서 시간을 물어보는 사람은 없다. 손목시계가 필요 없는 시대인데 예전에 비해 손목에 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은 많아졌다. 손목시계의 종류와 질은 끝도 없이 올라가고 많아졌다. 무엇보다 스마트한 손목시계가 나타났다.


휴대전화에 시간이 나오기 때문에 시간 정도는 얼마든지 시계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럼에도 손목에 손목시계 하나씩은 대체로 차고 있다. 스마트워치가 나온 이후는 정말 손목시계는 누구나 차고 있다. 이 세상에 소멸한 것 중에 시간을 물어보는 사람 역시 소멸했다. 이제 그런 모습을 보려면 70년대 영화 고교얄개에서나 봐야 할 것 같다.


나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아버지의 손목시계를 차고 헐렁헐렁한 채로 사진을 찍은 모습이 많다. 아버지의 손목시계가 지금의 내가 차고 있는 그런 전자시계였다. 쇠로 된 시계줄이 있는, 손석희 시계 같은, 그런 전자시계. 팔목이 가는 나에게 아버지의 손목시계는 너무나 커서 헐렁했는데 그 착용감이 좋았다. 이렇게 비틀비틀 손목을 흔들면 시계의 무게가 느껴졌다. 꼭 아버지 옆에 붙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또 어릴 때에는 외할머니의 시계도 좋아했다. 외할머니의 손목시계는 초시계였는데 초시계를 볼 줄도 모르면서 외할머니의 가죽 줄의 초침시계를 차고 있으면 뭔가 있어 보였다. 어이없는 분별력으로 잘도 차고 다녔다.

유튜브에는 시계 마니아들이 많아서 손목시계에 관한 영상들도 아주 많다. 손목시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부품들이, 가장 작은 공간에, 가장 많이 빼곡하게 들어차서 시간을 재깍재깍 움직이는 것에서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종류도 워낙 많아서 항공 크로노프 초침 시계 종류를 좋아하는 사람들, 다이버 시계 종류를 좋아하는 사람들, 가죽줄이 어울리는 시계 종류를 좋아하는 사람들, 전자시계를 좋아하는 사람들,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 - 요컨대 남자들이 환장하는 롤렉스부터 오데마피게 로열오크, IWC, 파텍? 뭐더라? 태그호이어 등. 내가 좋아하는 지샥도 만 원짜리부터 아주 비싼 시계까지 너무나 다양하다.


내가 지샥 손목시계를 좋아하는 이유는 디자인도 마음에 들지만 나는 거의 시계를 빼지 않는다. 조깅을 할 때에도, 샤워를 할 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차고 잔다. 풀었다가 찼다가 하는 게 너무 귀찮다. 그래서 충전해야 하는 스마트폰은 별로였다.


별로 비싸지 않기 때문에(6, 8만 원 정도) 부담 없이 착용하다가 고장 나거나 싫증이 나면 다른 시계로 갈아타면 되는데 아직 고장도, 싫증도 나지 않고 있다. 몇 년을 거의 매일 빼지 않고 착용하고 있는데 아직 새것 같다.


우리나라는 시계로 유명한 회사가 없다. 예전에 한독시계가 있었고, 거기서 돌핀 전자시계가 유명했다. 한독시계도 한없이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났는지 잘 볼 수 없다. 위의 사진처럼 돌핀 전자시계는 저렇게 생겼고 가격이 무척 저렴하고 태양빛으로 생명이 계속 이어지며, 와이파이로 시간을 아주 정확하게 알아서 맞춘다. 저렴한 데다 시계의 기능을 충실히 해줘서 내가 원하는 손목시계인데 잘 차고 다니지 않는다. 너무 굵다. 그게 단점인데 나에게는 너무나 큰 단점인 것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시간이 잘 간다고 해서 손목시계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며칠 전에 강변에서 조깅을 하다가 멈춰서 몸을 풀고 있는데 한 어머님이 와서 시간을 물어보았다.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서 시간을 보고 알려주었다. 손목에 멀쩡하게 시계를 착용하고 있으면서.

이 지샥은 선물로 받았는데 회색에 녹색이 섞여 있어서 실내에서 볼 때와 태양광이 있는 곳에서 볼 때의 색감이 다르다. 이런 색감은 나만의 생각일지 몰라도 대체로 호불호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여러 손목시계를 다 합쳐도 조카에게 줘버린 애플워치 7의 가격에 못 미친다. 조카도 매일 충전해야 하는 스마트한 기기를 차고 다니지 않고 있어서 스마트한 기기가 인간 세계에 깊숙하게 들어오려면 배터리 문제를 구시렁구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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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러복을 입은 연필에 대한 이야기도 에세이에 나오지만 참으로 제목이 하루키답다. 세일러복은 세라복으로 불리기도 하며 이와이 슌지 영화 ‘하나와 엘리스’에서도 오랜만에 만난 아빠와 밥을 먹는 장면에서 아빠가 아리스에게 교복은 세라복을 입는 거냐, 같은 대사를 한다. 그때 아리스가 야라시,라고 흥 하는 듯한 대사와 표정을 한다.


영화 ‘하나와 엘리스’는 성장영화인데 나는 그만 빠져버려서 한 서른 번은 봤을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나를 보며 저 미친놈이 또 저 영화를 보고 앉아 있네.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본격적인 하나와 엘리스 마니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 이 영화에 빠져있던 마니아들이 하나와 엘리스 영화 촬영지를 돌며 블로그질을 했었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이 영화는 원래 짤막한 티브이 광고 용으로 제작되었다. 이와이 슌지가 인터넷으로 독자들(이와이 슌지가 소설가이기도 하니까 – 립반 윙클의 신부 소설책도 재미있다, 물론 나는 영화 버전이 훨씬 좋았지만)에게 키켓(초콜릿) 광고의 시나리오 공모를 한 것이 시초였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하나 버전의 이야기가 먼저 공모가 되어서 광고로 만들어졌고, 이와이 슌지 감독이 여기서 끝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이야기라 아리스(엘리스)가와 데츠코의 버전을 만든 것이 하나와 엘리스가 되었지 싶다.


영화 속에서도 이 키켓을 먹는 장면의 오디션이 나온다. 이 키켓이라는 초콜릿도 그 세계를 들여다보면 덕질의 세계다. 일본에는 일본에만 판매하는 수많은 종류의 키켓이 존재한다. 크렌베리 키켓, 산딸기 키켓 등. 아무튼 사람들은 덕질하기를 좋아하고 같은 마니아끼리 서로 피터 찌리릿 같은 것이 있다.


이와이 슌지는 아톰의 아부지 데츠카 오사무를 너무 좋아해서 ‘하나와 엘리스’ 곳곳에 데츠카 오사무의 향기를 숨겨 놓았다. 아톰이 영화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와이 슌지를 좋아한 봉준호가 영화 ‘옥자’에서 ‘하나와 엘리스’의 그 장면을 오마주 했다. 옥자의 목소리를 배우 이정은이 했다는 건 다 알고 있는데 영화 옥자에서 내가 가장 압권으로 보는 장면은 서울의 지하도 장면이다. 옥자가 도망을 가는 장면인데, 그 짧은 장면 속에 지하도에서 생활하는, 또 오고 가는 우리 모습이 아주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놀랐다. 거기서 이정은이 1초 정도 휠체어를 탄 모습이 보인다.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에 대한 이야기도 에세이에 나오지만 참으로 제목이 하루키답다. 세일러복은 세라복으로 불리기도 하며 이와이 슌지 영화 ‘하나와 엘리스’에서도 오랜만에 만난 아빠와 밥을 먹는 장면에서 아빠가 아리스에게 교복은 세라복을 입는 거냐, 같은 대사를 한다. 그때 아리스가 야라시,라고 흥 하는 듯한 대사와 표정을 한다.


영화 ‘하나와 엘리스’는 성장영화인데 나는 그만 빠져버려서 한 서른 번은 봤을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나를 보며 저 미친놈이 또 저 영화를 보고 앉아 있네.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본격적인 하나와 엘리스 마니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 이 영화에 빠져있던 마니아들이 하나와 엘리스 영화 촬영지를 돌며 블로그질을 했었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이 영화는 원래 짤막한 티브이 광고 용으로 제작되었다. 이와이 슌지가 인터넷으로 독자들(이와이 슌지가 소설가이기도 하니까 – 립반 윙클의 신부 소설책도 재미있다, 물론 나는 영화 버전이 훨씬 좋았지만)에게 키켓(초콜릿) 광고의 시나리오 공모를 한 것이 시초였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하나 버전의 이야기가 먼저 공모가 되어서 광고로 만들어졌고, 이와이 슌지 감독이 여기서 끝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이야기라 아리스(엘리스)가와 데츠코의 버전을 만든 것이 하나와 엘리스가 되었지 싶다.


영화 속에서도 이 키켓을 먹는 장면의 오디션이 나온다. 이 키켓이라는 초콜릿도 그 세계를 들여다보면 덕질의 세계다. 일본에는 일본에만 판매하는 수많은 종류의 키켓이 존재한다. 크렌베리 키켓, 산딸기 키켓 등. 아무튼 사람들은 덕질하기를 좋아하고 같은 마니아끼리 서로 피터 찌리릿 같은 것이 있다.


이와이 슌지는 아톰의 아부지 데츠카 오사무를 너무 좋아해서 ‘하나와 엘리스’ 곳곳에 데츠카 오사무의 향기를 숨겨 놓았다. 아톰이 영화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와이 슌지를 좋아한 봉준호가 영화 ‘옥자’에서 ‘하나와 엘리스’의 그 장면을 오마주 했다. 옥자의 목소리를 배우 이정은이 했다는 건 다 알고 있는데 영화 옥자에서 내가 가장 압권으로 보는 장면은 서울의 지하도 장면이다. 옥자가 도망을 가는 장면인데, 그 짧은 장면 속에 지하도에서 생활하는, 또 오고 가는 우리 모습이 아주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놀랐다. 거기서 이정은이 1초 정도 휠체어를 탄 모습이 보인다.

영화 ‘하나와 엘리스’가 나오고 10년인가 흘러서 애니메이션으로 하나 버전인 ‘하나와 엘리스: 살인사건’이 나왔다. 그 이야기도 재미있다. 어쩌면 아리스 버전보다 더 재미있다. 왜냐하면 하나와 엘리스에서는 왜 이렇게 꽃으로 가득한 집에 하나가 사는지, 하나는 왜 저러는지 같은 궁금증이 있는데 그런 이야기가 풀어헤쳐진다.


이와이 슌지 영화는 대체로 몇 번씩 보게 되는데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 마지막 콘서트 장면에서 수많은 인파가 콘서트 광장 앞에 서 있는데 전부, 모두, 몽땅 대사를 주었다고 한다. 엑스트라인데 전부 다른 대사를 주고 누가 카메라에 잡힐지 모르니까 열심히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촘촘하고 꼼꼼하게 연출을 한다.


여하튼 하루키는 에세이에서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이라는 말을 들은 후에 머리에서 그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보다 혈기가 왕성 할 때니까 사람들 모르게 안자이 미즈마루 씨에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이미지를 그려 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이 에세이에 ‘간사이 지방 사투리에 대하여’라는 챕터가 있다.


[나는 언어는 공기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지역이나 그곳만의 공기가 있고 그 공기에 맞는 언어가 있어, 웬만해서는 그것을 거역할 수 없다. 먼저 악센트가 바뀌고, 그다음으로 어휘가 바뀐다. 이 순서가 반대가 되면 언어를 쉽사리 마스터할 수 없다. 어휘란 이성적인 것이고 악센트는 감성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 챕터에 나오는 말이다. 사투리는 일본도 그렇지만 우리나라도 그 지역에 맞는 공기가 있다. 서울에 갔다가 고향으로 오면 그런 공기를 확 느낀다. 그 안에는 어휘보다는 악센트가 더 도드라지기 때문에 일종의 사투리만의 공기를 느낄 수 있다. 이성적인 어휘는 감성적인 악센트 뒤에 따라오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바닷가 지역이라 당연하지만 사람들이 사투리를 쓴다. 예전에 도로에서 자동차에게 치일 뻔했던 아저씨가 운전자를 향해 “눈까리 주 뽑아 뿌까, 운전을 그 따구로 하노!" 살벌했다.


그 정도로 사투리가 충만한 도시인데 근래에는 사투리를 예전만큼 들을 수 없다. 사투리의 공기가 달라졌다. 사투리이긴 하지만 사투리 속의 악센트와 어휘 속으로 표준어에 가까운 언어가 많이 틈입했다.


날 때부터 스마트기기를 달고 태어난 세대들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sns로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사투리보다는 표준어를 훨씬 많이 접한다. 그래서 어린이에서 갓 졸업한, 그렇다고 아직 청소년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중학교 1학년 정도의 여자애들이 하는 대화를 들어보면 억양이 뭔가 표준어에 닿으려 하지만 표준어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사투리스럽지도 않은 기묘한 말투를 쓴다.  


이 지역 사투리만의 악센트와 어휘이긴 하나, 악센트가 약해졌고 어휘에서도 그 형태가 둥글둥글하게 되었다. 분명 학생들이 사투리를 쓴다. 하지만 단단한 사투리의 공기가 옅어졌다. 그것이 옳은 일인지 그렇지 못한 일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사투리는 영상을 통해 재미 또는 무서움의 표현 방식으로 많이 비치기 때문에 사투리가 가지는 단단함은 사투리를 쓰는 사람끼리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20여 년 전 영화 친구에서처럼, 지방이라고 해서 학교에서 [샘요, 제가 그랬습니더. 지가 반장인데예. 알았심더] 같은 사투리는 사용을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보면 사투리의 공기는 시간과 함께 달라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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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의 정봉이가 심장 때문에 수술을 하고 난 후 몸을 회복하는데 힘이 드는 가운데 정팔이가 병실에 오니 정봉이가 다 죽어가는 소리로 정팔이에게, 너 코피 나는 건 괜찮냐고 묻는다. 그 장면은 기억에 참 많이 남는다. 가족을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이었다.


가족.

가족 하면 눈물이 먼저 나오는 사람이 있고, 한숨이 먼저 나오는 사람도 있다.


MBC 스트레이트 2023 청년보고서 ‘희망금지’ 편을 보면 2, 30대 고독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작은 집에서 고독사한 삼십 대 여성의 유품을 찾아가라고 그녀의 아버지에게 연락을 하니 찾아갈 것이 없어 전부 태워달라고 했다. 그렇게 30대 여성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 채 쓸쓸하고 고통스럽게 홀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f_AZQvPkkhc


YTN기사 중 ‘가족 돌봄 청년, 친구들보다 7배 더 우울하다’라는 기사가 있다. 청년인데 가족 중 장애를 가지거나 중병을 가진 가족을 돌보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청년의 삶의 질은 무척 심각하다.

https://www.ytn.co.kr/_ln/0103_202304261646136914


기사에도 나오지만 열에 여섯은 우울증을 겪고 있다. 또 우울증을 겪는 대부분은 제대로 된 치료나 상담조차 받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들을 다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은 이해한다. 나 역시 청년 시절 아버지 병간호를 2년 정도 했었다. 두 번의 크리스마스를 병실에서 보냈다. 병원 앞에 호텔이 있는데 병실에 난 창으로 보이는 반짝이는 호텔의 불빛을 보며 두 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 병원으로 와서 낮동안 병간호를 한 어머니와 교대를 했다. 밤새 간이침대에서 잠이 드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새벽에 아버지가 뒤척일 때는 자동적으로 일어나서 아버지를 살펴야 했고 이상이 있다면 간호사를 호출해야 했다. 잠을 거의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전에 어머니가 교대하러 오시면 출근하기 전에 잠시 눈을 좀 더 붙이고 출근하곤 했다.

잠은 늘 부족하고, 부족한 잠이 누적이 되니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 그런 상태가 된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면 적응이 되고 몸이 너무 피곤하여 모두가 잠이 든 새벽 병동을 확인한 후 쿨쿨 간이침대에서도 잘도 뻗어 잤다. 얼마나 달콤하냐면 몇 분 잠든 것 같은데 벌써 아침이라 사람들이 오고 가고, 병실에 불이 들어오고, 간호사들이 다녔다.

처음에 간이침대에서 잠이 들어 일어나면 9세의 기운 좋은 남자아이가 몽둥이로 여기저기 때린 것처럼 몸이 욱신거렸지만 적응은 이딴 모든 것들을 해결을 해준다. 일 년 동안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도 없었고 나을 길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낫기를 바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처음 크리스마스를 병실에서 보낼 때, 든 생각은 작년까지는 친구들과 여자애들과 함께 즐겁게 크리스마스를 보냈는데 내년에는 여기를 벗어나서 그렇게 보내겠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2년 병실 생활을 하는 동안 몸은 몸대로 정신은 정신대로 피폐해져 갔다. 보험이 되지 않는 수술을 할 때에는 벌어 놓은 돈을 전부 부어야 했고, 무엇보다 수술의 도장을 받을 때에는 어머니도, 여동생도 아닌 아들인 나의 선택이 가장 중요했다. 그런 압박이 심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반나절을 병실에서 병시중을 드느라 혈압이 190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한 마디로 엉망진창인 것이다. 생활이란 것이 없다. 그저 일하고 일 끝나면 병원으로 가는 것이다. 그나마 일 할 때가 좋다. 그러나 어머니의 전화번호가 폰으로 뜨거나, 병원의 전화번호가 폰 화면에 뜨는 순간 가슴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숨소리와 신음소리로 들끓는 병동도 밤이 되면 고요해졌다. 나는 2년 동안 모두가 잠이 든 병동을 보며 간이침대에 엎드려 그날그날 글을 썼다. 글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고 그날의 일들을 메모를 했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가면 내가 할 일이 없기에 대기실에서 책을 읽었다. 그렇게 쓰고 읽은 책과 글이 꽤 많았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못된 자식처럼 도망쳐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같은 것에 대해서 생각이 드는 건 아버지는 2년 병실 생활 끝에 돌아가셨다. 만약 1년 더 병실 생활을 했다면 집을 팔고, 빚을 내야 했을 것이다. 모두가 다, 너는 빚이 없어서 다행이야,라고 말하는데 정말 다행일까.

기사에서 처럼 저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중증환자를 가족으로 둔 청년들의 삶에서 질이라는 건 찾아볼 수 없다. 밑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을 것이다. 설령 겉으로 표를 내지 않으려 할 뿐이지 힘들다고 말도 못 할 것이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그게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런 건 힘내라 같은 말은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버지가 고작 2년 병실에 있을 때 과일 같은 거 사 오는 친구에게 이거 말고 기저귀를 사가지고 오라고 했다. 누구라도 이렇게 한 글자, 한 문장으로 적어서 계속 노출을 하여 공론화시켜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만드는 방법이 지금으로서는 최고의 방법이며 최선의 선택이다.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정부에서 돌봄 청년 실태 조사가 이번이 처음이다.

사람들은 생각만큼 남 일에 관심이 없지만 생각보다 타인을 돕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알아야 도움을 줄 수 있다. 엄마 아버지를 병간호 잘한다고 효녀, 효자 같은 말로 퉁 치려 하는 관습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가족이 힘에서 짐이 되는 건 한 순간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속에 내가 속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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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조깅을 하러 강변으로 나오면 초파일의 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제 곧 부처님 오신 날이구나. 일전에 오랜만에 김밥을 먹었는데 초등학생 때 부처님 오신 날이 생각이 났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음악과 음식은 추억과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마치 악마와 계약을 한 것처럼 말이다. 이걸 먹으면 그때가 반드시 떠오를 거야!


초등학생 때 부처님 오신 날은 신나는 날이었다. 생각해 보면 크리스마스보다 더 좋았다. 같은 공휴일이지만 성탄절은 겨울방학 안에 있었고, 초파일은 평일의, 그것도 좋은 봄날에 있었다. 초파일이 월요일이었던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월요일이 초파일이면 정말 좋지 아니한가.


크리스마스는 끝나면 허무한 마음이 따라다니는데 초파일은 끝이 나도 털끝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털끝하나 흔들리지 않았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성탄절은 한 달 전부터 온통 캐럴로 분위기를 하늘 저 위까지 띄우고는 만개했을 때 그대로 펑 터져버려 아주 허무했다. 고작 하루 차이인데 25일과 26일은 너무나 동떨어진 세계였다. 크리스마스 하루 지나서 듣는 캐럴은 듣기 싫었다. 그에 비해 초파일은 그런 의미부여가 없었다.


무엇보다 어릴 때 초파일이 다가오면 초파일 전 날에 거리 퍼레이드를 했다. 그걸 보는 재미가 있었다. 지방에는 일본처럼 지역 축제가 늘 있었다. 유월에는 70년대부터 시에서 하는 불꽃놀이가 있었다. 그 규모가 꽤 컸다. 규모가 크다는 말은 시간적으로 꽤나 길게 불꽃놀이를 했다는 말이다. 불꽃놀이가 시작하면 동네의 공터 같은 작은 공원에 가족들이 다 나와서 자리를 잡고 음료와 빵이나 맥주를 마시며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 불꽃놀이가 끊어지지 않고 매년 유월에 계속되다가 코로나로 인해 끊어졌다. 올해는 하려나.


불꽃놀이는 애써 혼자서 보러 가지는 않는다. 모양도 크기도 컬러도 아름답고 다 다르지만 불꽃놀이가 끝나면 불꽃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불꽃놀이를 같이 봤던 누군가는 기억이 난다. 목마를 태워준 아빠가 기억나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가면 그 사람이 기억이 난다. 불꽃놀이는 내밀한 기억 속에 같이 했던 누군가를 소중하게 추억한다.


초파일의 밤 퍼레이드도 그렇다. 어릴 때 동네 친구들과 퍼레이드를 보며 어디까지 졸졸 따라가며 즐거워했다. 그중에 도형이도 있었다. 부처님에 관한 코스튬과 각종 개조한 차량의 행렬을 보는 게 좋았다. 마치 놀이동산의 디즈니 캐릭터의 행렬처럼 말이다. 우리는 신나서 따라다녔다. 초파일 전날 학교에서는 서유기 영화를 보여주었다. 지금이야 서유기가 너무나 많은 버전으로 우후죽순 나와서 재미가 없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손오공의 신공을 보는 것은 어린 우리의 눈에는 너무나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밤에는 퍼레이드를 보느라 재미있었고, 다음 날 초파일에는 늦잠을 잘 수 있었고 하루 종일 놀 수 있었다. 초파일에도 하루 종일 티브이를 했고 서유기를 보여주었다. 서유기 영화, 드래곤볼의 만화, 만화책, 게임은 우리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다. 5학년 때인가, 초파일에 이른 아침부터 도형이가 우리 집으로 놀러 왔다. 동생과 나는 자고 있었는데 우리 엄마와 함께 도형이가 김밥을 말고 있었다. 도형이는 김밥을 말면서 날름날름 집어 먹었다.


부스스 일어났을 때 아버지는 회사에 일찍 가셨고 엄마는 볼일이 있다며 김밥을 잔뜩 말아 놓고 나가시고 없었다. 도형이가 접시에 김밥을 잔뜩 올려 들고 와서 티브이를 보자고 했다. 동생과 나는 일어나자마자 김밥을 먹으며 티브이를 봤다. 아마 티브이에 서유기가 하고 있었겠지. 엄마는 사이다를 냉장고에 사 넣어두셨다. 우리는 김밥을 볼이 터져라 입에 넣어서 먹다가 사이다를 한 모금 마셨다. 김밥은 소풍 때만 먹었는데, 이렇게 김밥을 먹으니 풍요로운 맛이었다. 그때는 아마 그런 맛을 몰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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