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하는 노래 ‘꿈꾸는 소년’에서 풍부한 사운드로 꽉 채웠다는 걸 알 수 있다. 전기기타로 첫 스타트를 알림과 동시에 피아노와 함께 클래식을 떠올리는 연주와 합창이 가득하다. 자칫 이렇게 많은 사운드가 섞이면 혼잡할 수 있지만 교통정리가 너무나 잘 되어 있다. 무엇보다 록, 강력한 록 사운드가 가득해서 종합선물세트 같은 기분이 든다. https://youtu.be/LqbAFdwEIQQ


이승환이야 모두가 좋아했다. 1, 2집의 그 감성충만, 시적 허용이 가득한 앨범 속 노래들은 마음을 이미 소녀소녀하게 만들었다. 오태호? 오태호가 누구야?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았지만 가요에서 많은 명곡을 만든 사람이었다.


이범학의 이별 아닌 이별,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사이, 이상우의 하룻밤의 꿈 등. 이승환은 학창 시절에 헤비메탈 멤버였고 3집 이후로는 계속 록을 하고 있지만 1, 2집은 오태호의 손을 많이 거쳤다.


오태호의 노래는 곡도 곡이지만 가사가 참 좋다.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첫 시작이 ‘머리를 쓸어 올리는 너의 모습’인데 뭔가 그 모습이 너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오태호가 만든 이승환 1집의 ‘눈물로 시를 써도’라는 제목부터 가사가 아련 아련 시적이다.


오태호의 곡은 한국의 라디오 어딘가에서 늘 나오고 있지 않을까. 노래방에서 엄청나게 불리지 않을까. 그래서 아마 곡 하나하나에 붙는 프리미엄 때문에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저작권 순위 같은 것을 검색해 봐도 오태호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근황올림픽 같은 곳에서 조회수 욕심 좀 덜 부리고 오태호 같은 뮤지션이나 좀 찾아주지.


이오공감 앨범에 ‘잃어버린 나 파트 1, 2’를 들어봐도 엄청난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역시 중점은 록이다. 바이올린 같은 클래식도 같이 옆에서 음악을 받쳐 주어서 낭비가 없다. 확 끌어올렸다가 뒤에 ‘프란다스의 개’가 나오며 진정시켜 준다. https://youtu.be/kJhA9umSEtw


어릴 때 프란다스의 개 동화를 나는 정말, 너무 좋아했다. 그 동화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꼬질꼬질하고 낡았는데 그 동화책은 버릴 수가 없었다. 많이도 읽었다. 그런데 좀 커가면서, 그러니까 고학년으로 가면서 ‘프란다스의 개’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현실에서 이 죽일 놈의 어른들은 착하게 살아라, 착하게 행동해야 복 받고 오래 산다,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 같은 말을 늘 했다. 그런데 네로, 네로의 할아버지, 그리고 파트라슈는 착함의 대명사들 아닌가. 주인에게 버림받은 파트라슈를 거둔 네로와 할아버지는 지극정성으로 키우지만 착하기만 한 네로의 할아버지는 돈 한 번 만져보지 못하고 죽어 버리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에 네로는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루벤스의 그림도 보지 못하고 그 앞에서 눈을 맞으며 파트라슈를 끌어안고 쓸쓸하게 죽는다. 그것도 도둑으로 몰려서. 그것도 그렇게 좋아하던 아로하의 아버지가 네로를 도둑으로 몰았다.


이게  거지 같은 동화야?  착한 사람이 이렇게도 비참하게 죽어버리는 걸까. 착하 하면 모두가 행복하다는 어른들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잖아. 어렸던 나의 가치관 같은 것에 경종을 울리고 망치로 때리는 그런 동화였다. 하지만 노래는 좋다. https://youtu.be/xieDpXXOuLs


이오공감 이 앨범은 다 알겠지만 앞면은 이승환이 노래를 부르고, 뒷면은 곡을 만들던 오태호가 노래를 직접 부른다. 사실 얼마나 직접 부르고 싶었을까. 내가 곡을 만들고 가사를 쓸 줄 아는데 나에게 맞는,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도 만들어서 부르고 싶지 않았을까. 오태호의 목소리는 감성충만 발라드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처럼 들린다.


이 앨범의 재미있는 건 저 촌스러운 앨범 사진. 저 촌스러움 때문에 앨범이 요즘 더 빛이 나는 것 같다. 마치 하루키의 촌빨 날리는 에세이 책 표지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욕을 하면서도 하루키의 촌스러운 책표지 에세이를 구하려고 하는 것처럼. 카세트 앨범보다 시디 앨범이 볼거리는 더 많은데 안타깝다. 시디에는 두 사람이 무슨 들판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도 있는데, 모든 사진이 – 저 앨범 표지 사진 전부 괌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전혀 괌처럼 보이지 않는, 우리 동네 바닷가에서 촬영해도 저것보다 나을 것 같은 두 사람의 모습이 촌스러워 더 멋지게 보인다.


이 앨범을 관통하는 하나의 노래는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지만 오태호의 목소리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노래는 ‘나만 시작한다면’이 아닌가 싶다. 가사 내용은 세상의 주인은 나이니까 파이팅 하자는 그런 내용이다.

https://youtu.be/nzFf3-H06q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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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은 바닷가이고 곳곳에 카페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프랜차이즈 카페다. 스벅은 작은 바닷가에 두 곳이나 있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바글바글한다. 작년에 들어선 스타벅스는 앉아서 바다가 다 보이니까 늘 사람들이 많다. 커피가 비싸니 물가가 오르니 해도 스타벅스는 흥 하며 굳건하다.


개인이 하는 로컬카페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많았는데 서서히 없어지더니 싹 소멸했다. 작은 카페라면 빽다방과 컴포스 정도다. 카페는 좀 이상해서 사람이 너무 없어도 별로고, 너무 많아도 별로다. 적당히 있는 카페가 좋은데 이 적당히가 늘 어렵다. 우리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프랜차이즈를 피해 바닷가를 어슬렁 거리다가 포구 쪽까지 가게 되었다.

해변을 벗어나 바닷가를 걷다가 작은 카페를 한 군데 발견하고 들어가게 되었다. 옛날 기분이 물씬 나는 카페였다. 작은 공간에 테이블도 4개뿐이었다. 한쪽에는 책장이 있고 책이 가득 꽂혀 있었다. 카페 주인이 친절하기도 하고 같이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과일도 주었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커피 빵도 주었다. 아이스 아ㅁ[[ 두 잔 주문했을 뿐인데. 그러나 거절하지 않고 맛나게 다 먹고 왔다. 이런 분위기의 카페는 예전에 아이팟터치 3세대를 한창 사용을 하던 기분이 떠오른다.


그때는 노트북 아니면 투지 폰 시대였던 터라 아이팟터치를 가지고 메모를 하고 있으면 신기하게 보곤 했다. 초기 아이팟터치의 문제점이라면 메모장만 사용하는데도 배터리가 광탈이었다. 그러나 그게 올바른지 그렇지 못한 지 구분을 하지 못할 때라 배터리가 금방 떨어지면 충전을 했는데 또 금방 충전이 되었다.


단지 그때는 테이블 근처에 충전을 할 수 있는 돼지콧구멍이 없어서 충전기를 들고 카운터에서 충전을 좀 시켜달라고 했다. 하지만 자주 가지 않는 카페의 카운터에서 충전을 해 달라고 하기에는 머쓱하고 어려운 문제여서 자주 가는 카페에서 인사를 주고받는 주인이나 직원에게 부탁해서 충전을 하곤 했다.


늘 가던 카페가 있었다. 동네 카페로 노란 조명의 분위기가 아늑한 카페였다. 커피가 맛있었다. 그 크레마의 맛, 그 맛이 좋았다. 이전에는 노트북을 들고 다녀야 했지만 아이팟터치 3세대가 나오고 난 후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근데 내가 들고 다녔던 노트북은 현재 아이패드미니보다 적은 사이즈였다. 소형 노트북 종류 중에 유미드라고 하는 노트북으로 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였다.

마우스가 생각만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컴퓨터라 꺼진 상태에서 전원을 누르면 시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요즘 폰이나 아이패드처럼 생각이 났을 때 바로 켜서 글을 입력할 수는 없었다. 이 노트북 전에는 수첩을 들고 다니며 메모를 했다. 그냥 막 떠오르는 것들을 다 적었다. 뭐 잘 적고 못 적고를 떠나서 일단 적고 보자였다.

아무튼 아이팟터치 3세대가 나오고 난 후에는 이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아주 홀가분하게 다녔다. 그렇다고 해서 주머니가 가벼워졌다는 건 아니다. 아이팟터치에는 카메라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주머니에 투지폰, 아이팟터치 3, 캐논똑딱이 익서스 85를 넣고 다녔다. 똑딱이로 오만 것들을 다 사진에 담았다.

당시 똑딱이로 담은 사진


사진은 실내에 들어와서 컴퓨터를 거쳐 트위터나 인터넷에 올렸지만 그때는 사람들이 아무튼 아이팟터치를 신기해했다. 아이팟터치 3세대는 지금 들고 다녀도 너무 신기하게 볼 걸 ㅋㅋ. 생각해 보면 투지폰으로 문자를 주고받을 때마다 요금이 나갔는데, 아이팟터치로 트위터로 대화를 하는 건 요금이 전혀 나가지 않았다. 문자를 자주 주고받는 사람들에게 트위터에 가입을 하라고 그랬지만 전부 시큰둥해서 트위터로는 모르는 이들과 대화를 했는데, 그게 올바른 거였다. 만약 가족과 트위터를 매일 한다고 생각해 보면? 직장 상사와 트위터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아이팟터치 3세대를 처음 하고는 신세계였다. 게임도 돌아가지 트위터도 할 수 있지 메모장에 마음껏 글을 적을 수 있었다. 물론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만 당연하게도 인터넷을 할 수 있었는데 모든 카페가 와이파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와이파이가 뭔지 생소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다니는 활동반경 내에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 두세 곳을 알아두고 번갈아가며 다녔다. 여자친구들도 다행이지만 책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카페에서 책을 보고 글을 끄적이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여행이나 어딘가를 형해 가야 하는 분위기가 우리에겐 소극적으로 있었다. 내가 글을 죽 적을 수 있었던 건 여자 친구들이 나의 글을 대체로 좋아해 주었다. 여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무척 흥미로워했다. 여자 친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소설 속에서 죽여버리거나 파리로 만들어 버리는 건 아니지만 호러블 하게 소설 속에 등장시키면 시큰둥하는 얼굴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자주 갔던 카페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노란 조명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카페였다. 카페의 주인도 책을 좋아해서 구석에 책장을 마련해 두고 거기에 많은 소설을 꽂아 두었다. 그리고 기억자로 된 공간이라 거기에는 책을 읽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저녁의 그 자리는 늘 우리가 앉았다. 매일 저녁 8시경에 우리는 카페에 들러 한 시간 반 정도 커피와 조각 케이크 따위를 먹으며 소설을 읽거나 메모를 신나게 하거나. 주인은 우리에게 카페에서 만든 머그컵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그 머그컵은 지금 내 양치질 컵으로 사용하고 있다.


카페는 그러더니 2호점, 3호점으로 늘어났다. 기쁜 일이었다. 여기도 광역 시니까 도시가 크다. 곳곳에 그 카페의 분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했다. 문자요금으로 주머니를 털어 갔던 각 통신사들은 이제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이다. 아이폰이 주머니에 들어오면서 캐논 똑딱이와 아이팟 터치, 투지폰을 무겁게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이런 과정을 겪지 않고 바로 스마트폰을 손에 쥔 세대는 이런 짜릿함을 모르겠지.

보고 싶은 우리 곱슬이.


 아이폰. 아이팟터치. 아이팟셔플. 아이패드. 아이도그. 맥북. 나도 사과밭을 만들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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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의 일인데, 무척이나 활발한 두 살짜리 아들을 보라고 엄마와 아빠가 서로 미루다가 엄마가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아빠가 보게 되었는데, 애가 너무 활발한 것이다. 앉으면 뱅뱅 돌아가는 의자의 등받이를 돌리다가 아이가 얼굴에 맞아서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아이의 아빠가 아이를 달래 보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아이는 더 크게 울었다. 사람들이 쳐다보고 아빠와 아이가 있는 곳을 피해 옆으로 가서 앉고, 뭐 그런 상황이었다. 화장실에 간 엄마는 아직 나오지 않고 아빠는 난처해하며 아이를 달래지만 아이는 더 크게 열심히 울었다. 엄마가 나왔을 때, 왜 애를 보지 못하냐, 너는 화장실에 가면 왜 그렇게 오래 있냐, 결국 두 사람은 서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해버리고는 터지고 말았다. 평소에 쌓인 불만이 분노가 되어 있다가 폭발한 것이다.


마치 스티브 연 주연의 넷플 시리즈 ‘성난 사람들’을 실제로 보는 것 같았다. 원제는 ‘비프’인데 소고기 말고 뭐뭐에 대하여 불평을 해대는 뜻도 있다. 말 그대로 현대를 살아가면서 쌓이는 작은 불평이 나중에는 분노가 되어 터져버리고 만다. 서로 간에 건들지 말아야 할 감정선을 건드리고 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아이를 데리고 호기롭게 멋진 하루를 보내려 했던 그 부부는 집으로 돌아가서도 엉망진창으로 하루를 마무리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숨김없다. 그래서 벌레를 죽이는 재미를 알고, 고양이를 괴롭히는 재미를 안다. 순수란 그런 것이니까. 그래서 만약 아이들에게 기민함과 힘이 있다면 어쩌면 아이들은 죄다 연쇄살인범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가끔 아이들 중에는 좋아하는 것을 사주면 엄마에게 한 번 안게 해 준다는 아이도 있다. 오, 어린이날인데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벌써부터 겁을 집어 먹는 어른들이 있다.


어린이날 하면 방정환 선생을 가장 먼저 떠올리겠지만 어린이 동요와 합창곡을 많이 만든 윤석중 아동문학가도 있다. 윤석중 작가의 글은 정말 어쩜 이리도 어여쁠까.


나의 조카가 4살 때인가. 옥수수 하모니카를 가르쳐 줬는데, 지도 아기면서 아기가 노래 속에 등장하니 내내 부르고 했던 기억이 있다. 옥수수 하모니카라는 동요가 기억이 안 난다구요? 홍난파 작곡에 윤석중 작사. 그럼 일단 한 번 들어보면 아, 하게 되는 옥수수 하모니카. https://youtu.be/n3D6IR6XFHc 


윤석중 작가는 시인이며 아동문학가로, 동요의 아버지라 불렸다. 퐁당퐁당, 옥수수 하모니카, 종달새의 하루, 달맞이 등 우리가 다 아는 동요를 만들었다. 또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 노래, 졸업식 노래도 만들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당신께~~부터 나란히 나란히 나 란 히. 나란히 하면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까지 전부 윤석중의 작품이다. 작사를 다 했다.


배기성 역사학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윤석중 작가의 엄청난 일화를 알 수 있는데, 당시 이런 천재를 알아본 이승만 대통령이 윤석중에게 식목일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그 노래가 ‘나무를 심자’였다. 노래를 들어보면 대번에 전부 아, 하게 된다. https://youtu.be/UlgQ7NkZhYs


후에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박통이 1969년 7월에 윤석중을 부른다. 내가 미국에 가려고 하니 미국 대통령 앞에서 부를 노래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그래서 윤석중 작가가 고민을 한다. 그 당시 69년 7월 28일부터 31일 사이에 벌어졌던 전 세계적인 이벤트가 바로 아폴로 호가 달로 가서 착륙을 한 것인데 그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박통이 마국 워싱턴에 방문을 하는데, 그때 윤석중 작가가 만든 이 노래를 들고 갔다.


윤석중 작가는 당시에 영어로 된 ‘아폴로'라는 말을 우리나라 말로 어떤 단어가 어울릴까. 또 미국사람들이 들었을 때 아폴로라는 말이 떠오르게 하려면 어떤 우리나라 말이 가장 어울릴까 고심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동요가 바로 ‘앞으로’였다. 이 앞으로 라는 말이 미국인들이 들어도 아폴로처럼 들린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폴로를 타면 온 세상 어린이들까지 다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노래를 만들었다. https://youtu.be/n5-OylLUOMY


그렇게 만들어진 이 ‘앞으로’를 들고 박통이 워싱턴으로 가서 합창단이 이 노래를 불렀다. 69년 7월에 이 노래를 부르고 다음다음 달인 9월 14일에 삼선개헌이 통과되었다. 닉슨이 거기에서 승인을 한 것이다. 그 당시 이 동요를 준비해 불러서 확실한 외교성과를 들고 온 것이다. 삼선개헌이 통과된 것이다. 그때 박통이 닉슨에게 한국형 전술핵을 우리가 하게 해 달라고 했는데 닉슨은 거절을 했다. 뭔가 이번 미국방문과 비슷한,,, 어린이날인데 좋은 생각만 하자.


윤석중 작가의 글을 보고 있으면 나의 메마른 마음에 골이 생기고 거기에 아주 맑은 샘이 울라와 촉촉하게 해주는 착각이 든다. 좀 슬프면서, 좀 안타깝고 마냥 그립기만 한, 그런 마음이다.


오늘 하루 어린이와 지낸다면 모두 윤석중 작가의 마음으로 행복하게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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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딩시절에 빠져 있었던 여러 박살 나는 해비해비한 매틀 밴드 중에는 머틀리 크루도 있었다. 머틀리 크루는 매틸리카나 메가데쓰 쪽도 아니고, 본조비나 에어로 스미스 쪽도 아니며, 건스 앤 로지스나 포이즌 같은 쪽에도 속하지 않은, 아무튼 머틀리 크루였다. 수많은 골 때리는 개 양아치 같은 밴드 중에서도 탑이었다. 앞이 없는 녀석들만 모여서 밴드를 만들어서 그런지 정말 엉망진창인데 너무나 이상하게도 음악은 미칠 것처럼 좋았다. 아무튼 흥 부자였고 신나는데 굉장한 록이다. 이 녀석들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노래를 불렀다. 그 터질 것 같은 음악이 앨범에 고스란히 담겼었다.


저 앨범 빼고는 머틀리 크루의 다른 앨범이 엘피판으로 몇 장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맡겼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서 너무 아깝다. 미칠.


이 녀석들 하면 무엇보다 음악 감상실에서 디제이를 통해서 듣는 머틀리 크루의 가십이었다. 그야말로 기상천외였다. 입을 다물 수 없다. 거짓말 같지? 정말이었다. 입을 벌리고 들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마구 일어나고 일으켰던 녀석들이 머틀리 크루였다. 정말 지구인이 아닌 존재가 와도 치를 떨며 가버릴 것 같은 일들이 매일 일어난 녀석들이 머틀리 크루였다.

영화 ‘더 더트’는 그런 미친 녀석들, 머틀리 크루의 이야기를 담은 전기적 영화다(라고 하기에도 좀). 머틀리 크루가 누구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머틀리 크루는 대단한 록그룹임에는 틀림없는 밴드다. 어떻든 그들의 이야기다.


근래에(요 몇 년 동안) 음악에 관한 영화가 나와서 사람들의 호평을 얻었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가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그리고 영국의 국보급 가수 엘튼 존의 전기 영화 '로켓맨'이 있고, 이 영화 '더 더트'가 있다. 엘비스의 영화도 있었다.


더 더트는 로켓맨이나 보헤미안 랩소디에 비해 사람들이 잘 모르고 인기도 없지만 재미로 보자면(개인적인 평가로)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로켓맨이 훨씬 재미있었고, 더 더트가 로켓맨의 몇 배는 재미있었다.


로캣맨의 경우 엘튼 존의 이야긴데 엘튼 존이 제작자라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쏟아부었고, 이번에 나온 영화 ‘테트리스’에서도 멋진 연기를 보여준 테런 에저튼의 연기가 엘튼 존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더 더트’가 가장 재미있었던 이유는 머틀리 크루의 세간에 알려진 너무나 골 때리고 타노스도 울고 가버릴 진상의 일화들만 영화로 만들어서 시간이 금방 지나가버렸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지구에 쳐들어 온 외계인이 머틀리 크루의 개진상을 보고 그대로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온갖 사건 그 자체였던 머틀리 크루의 이야기다. 머틀리 크루의 음악은 해비메틀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신나게 들을 수 있는 록 음악을 하는 밴드다. 싸구려 틱 한데 신나고 계속 듣다 보면 자꾸 듣게 되는 음악을 한다.


더 더트는 닐스트라우스라는 기자가 쓴  더 더트라는 책이 영화가 되었다. 이 닐스트라우스라는 사람 자체가 골 때리는데 이 골 때리는 글쟁이가 골 때리는 머틀리 크루를 인터뷰하고 조사하면서 쓴 골 때리는 책 더 더트가 골 때리는 영화 더 더트로 나온 것이다.


머틀리 크루의 영화가 그들의 사건사고로 두 시간이라면, 그들의 사건사고로 이틀을 이이기 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의 사고가 다 뭉쳐있는 밴드다. 8,90년대 도켄, 곤 센 로즈, 본조비 같은 밴드와 함께 세계를 들썩였던 밴드였다. 당시 록 밴드 대부분이 사건사고로 사람들을 심심하지 않게 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양아치 사건사고의 중심에 있던 그룹이 바로 이 녀석들, 머틀리 크루다.


보컬의 빈스 닐, 기타의 믹 마스, 베이스의 니키 식스, 드럼의 토미 리, 네 명의 멤버로 이루어진 사고 밴드 머틀리 크루의 영화 더 더트가 나왔을 때 나는 정말 너무 좋아서 함성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좋았다. 머틀리 크루는 양아치 밴드의 대표를 표방하고 있어서 인지 남자들이 이 녀석들의 음악을 좋아했다. 하지만 멤버들은 전 세계 여자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빈스 닐 때문에 죽어버린 포르노 여배우도 있었다. 유명한 일화였다.


머틀리 크루의 영화 더 더트는 그들의 굵직한 양아치 사건사고 에피소드들을 거의 자세하게 묘사를 해놨다. 그들의 매니저는 본조비, 키스 등 여러 밴드들을 돌봤는데 전부 돌아이 사고뭉치들이었지만 머틀리 크루는 차원이 달랐다고 했다. 그 말이 영화에서 대사로 그대로 나온다. 이들의 굵직한 사건사고를 영화 속에 담았는데 첫 스타트는 빈스 닐이다.


83년에 이들은 2번째 앨범 ‘샷 엣 더 데빌’로 뜬 후 온갖 공연과 여자들에게서 인기를 받는다. 이 날도 빈스 닐의 집에서 파티를 했다. 이들의 일과는 눈 뜨면 오후 5시. 그때부터 술과 약을 빤다. 그리고 클럽에 가서 여자들과 또 술에 절어든다. 그런 상태에서 9시부터 하는 무대 공연에 오른다. 아주 그냥 술과 약의 힘으로 미친듯한 공연을 한다. 노래 부르다 열 채면 던지고 욕하고 부수고. 그렇게 자정까지 공연을 하고 술집을 찾거나 창녀촌을 찾는다. 그렇게 해가 뜰 때까지 마시고 약을 빤다. 그게 공연 중 하루 일과 전부다.

그날도 빈스 닐의 집에서 술 파티를 한다. 그런데 술이 떨어지고 만다. 빈스 닐은 새로 뽑은 페라리를 몰고 술을 사러 멀리 가야 했다. 미국의 당시는 그랬다. 같이 동승한 사람이 핀란드 출신의 글램 록밴드 하노이락스의 드러머 라즐이 옆에 타고 같이 가는데 빈스 닐이 술에 절어서 밟을 대로 밟았다. 만취 상태에서 너무 밟다가 상대방의 차를 그대로 박고 말았다. 라즐은 그 자리에서 즉사. 엄청난 보석금으로 나온 빈스 닐이었지만 실제로 87년까지 법정 공방을 갔다. 이후에 전 세계가 좋아한 노래 머틀리 크루의 ‘홈 스위트 홈’을 발표하고 인기를 더 얻어 간다.

다음 베이스의 니키 식스의 이야기다. 니키 식스의 별명은 약국이다. 니키는 아마도 쳇 베이커만큼 약을 많이 했을 것이다. 나는 내 몸에 모든 화학실험을 다 했다고 할 정도로 약물 중독이었다. 그러다가 87년인가 헤로인에 손을 대면서 헤로인에 중독이 되었다. 매일 팔뚝에 찔렀다. 그러다 어느 날 파티를 하다가 약을 찌르고 그대로 죽어 버리고 만다. 그때 옆에 있던 사람이 건스 앤 로지스의 더프와 슬래쉬였다.

이들이 심장이 멎은 니키 때문에 911을 불렀다. 구급차에 실려서 가는데 이미 사망했다고 했다. 그때 911 대원 중 한 명이 니키의 엄청난 팬이었는데 아드레날린 주사를 심장에 한 방 콱 넣었는데 살아나지 않아서 한 방 더 팍 박았을 때 니키가 허억 하며 일어나는데 영화에 그대로 나온다. 이후 니키는 약을 끊고 제대로 된 생활을 했을까. 약으로 죽을 뻔한 놀란 가슴 약으로 달랬다.


이 녀석들이 약과 술에 거의 초주검까지 갔지만 아직도 건강? 하게 잘 살고 있는 이유는 머틀리 크루에게는 스트레스가 없다. 그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해버렸다고 한다.

드럼의 토미는 인형처럼 예쁜 배우 헤더를 아내로 맞이한다. 헤더는 머틀리 크루와는 노는 물이 달랐다. 저 상위 층에 있는 여자였다. 토미도 실제로 길쭉길쭉하며 정말 마네킹처럼 생겼다. 헤더 로클리어를 찾아보면 젊은 시절의 패티 보이드(조지 해리슨의 아내)를 닮았다. 정말 인형처럼 예뻤다. 토미 리는 섹스왕에다가 술에 절은 생활을 하지만 좋아하는 여자에게는 순애보였다. 문신도 가리기 위해 헤더를 만날 때면 늘 긴 팔을 입고 가고. 토미 리는 헤더와 결혼을 함으로 미국의 셀럽이 되며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결혼에 골인하지만 7년 후에 이혼을 하고 만다.  

토미는 이후 파멜라 엔더슨을 만난다. 헤더 로클리어는 누굴 만나냐? 본조비의 리치 샘보라를 만난다. 아무튼 거두 절미하고 머틀리 크루는 그동안의 많은 골 때리는 밴드 중에서도 사건사고가 가장 많았다. 건스 앤 로지스의 이지 스트레들린이 빈스 닐의 아내를 건드리니까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반격에 나선 엑슬로즈가 내 친구를 때려? 하면서 빈스 닐을 만나러 가는데 총을 든 갱단도 데리고,,,,, 이런 이야기는 영화에 안 나온다. 이런 이야기가 영화에 나와야 하는데 아깝다.  

파멜라와 만난 토미


이 두 사람의 섹스 스캔들은 미드 '팜 앤 토미로' 제작되어서 릴리 제임스와 세바스찬 스탠이 파멜라와 토미로 출연했다. 스캔들을 짧게 말하자면 토미가 헤더와 헤어지고 파멜라를 만난 지 100시간 만에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두 사람의 은밀한 비디오테이프가 도둑을 맞게 되고, 그게 온라인으로 배급되는데 두 사람은 배급사를 찾아가서 고소하네마네 하는데 배급사가 내놓는 합의금에 두 사람은 합의를 하고 쿨하게 그럼 배포해!라고 하는 이야기다. 그때가 1995년이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말했지만 법정에서는 당시 파멜라의 몸은 노출된 채로 수많은 잡지와 영상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공공의 재산이라는 판결을 받는다. 요즘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엄청난 수위의 내용인데 꿈과 희망의 디즈니에서 공개했다. 뭔가 이상하지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것 역시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다.


리치 샘보라와 만난 헤더


이런 사고뭉치의 결정체인 머틀리 크루도 따라가지 못할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오지 오스본, 오즈였다. 오즈는 개미를 약처럼 빨아들이고 수영장에서 바닥에 오줌을 갈기고 그것을 빨아먹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머틀리 크루도 뭐야? 오즈? 도대체 당신이라는 사람,라고 했을 정도였다.

 생 날 것의 록 밴드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예전 록 그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영화 더 더트였다.


https://youtu.be/k6bSJ4rXYbI 예고편만 봐도 골 때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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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사이다 한 잔을 마시고 싶다. 지금 당장 편의점에 가서 사이다를 사 와서 꿀꺽하고 마시고 싶다. 그러나 병에 담긴 사이다를 마시고 싶다. 하지만 요즘은 병에 담긴 사이다를 잘 볼 수 없다. 병 사이다면 킨 사이다라도 좋다. 꼭 칠성 사이다일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칠성 사이다로 마시고 싶다. 시원한, 그리고 병에 담긴 사이다.


따지고 보니 사이다를 언제 마셔봤더라. 근래에는 마신 기억이 없다. 오히려 얼마 전에 콜라를 마신 기억은 있지만 사이다는 마신 기억이 없다. 대학교 때 학교 앞 주점에서 2통 1반 많이도 마셨는데. 달달하니 잘 취하지도 않다가 한 번 취하면 걷잡을 수 없었다. 같이 먹은 빈대떡과 함께 위장에서 믹스가 되어서 역류하는데 $#^$%&%#ㅆ$. 그때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서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지르는 놈들이 많았다.


일요일에 조깅을 하는데 월요일이 근로자의 날이라 쉬는 가족단위가 많아서인지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계절을 즐기고 있었다. 날은 좋아 하늘은 멍이 들어 파랗고, 바람은 시원하고 먼지가 조금 걷혀 그야말로 봄 소풍 가기 딱 좋은 날이었다.


봄 소풍에는 역시 김밥이며 역시 사이다지. 초등학생 때 봄 소풍을 가면 가방에 엄마가 싸준 김밥과 사이다와 과자를 넣고 한 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도형이는 우리 반도 아닌데 나에게 와서 김밥을 뺏어 먹었다. 이 놈의 도형이는 기억 속에 왜 이렇게 많이 등장하냐. 도형이는 여자애다. 사실 도형이는 김밥을 잘 못 싸왔다. 도형이네 엄마, 아버지가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는데 소풍 때 김밥을 못 가져올 때도 있었다.


도형이는 그런 거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김밥 뺏어먹으면 되니까. 짜증 나. 초등학생 때 생각해 보면 김밥을 그렇게 많이 먹지도 못했다. 그걸 부모들은 알아서인지 많이도 싸줬다. 그래서 뺏어먹고 빼앗기고 뭐 그랬다. 목적지까지 가면 김밥이 김밥통 여기저기에 부딪혀 모양이 다 찌그러져있기도 했다. 도형이가 두 개 먹으면 질세라 나도 입에 한가득 넣어서 김밥을 먹다가 목이 콱 막히면 사이다를 마셨다. 아 시원한 사이다.


사이다. 가방에 있어서 시원하지 않았는데, 근처에서 사 먹어도 될 텐데 초등학생 때에는 가방에 적당한 무게를 채우는 그런 맛이 있었다. 소풍 가방이 너무 가벼우면 안 된다. 병으로 된 사이다의 맛을 몰라서 캔 사이다를 넣어서 갔다. 탁 따서 마시고 있으면 도형이가 사이다도 뺏어서 마셨다.


코로나 전에 고등학생들은 소풍에 김밥 같은 건 싸가지 않고 운동장에서 인원체크하고 찢어지거나, 극장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찢어진다고 했다. 와 너무 재미없겠다,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고등학생 정도면 단체로 움직이는 것보다 친구들끼리 셀카 찍으며 카페에서 음료 마시는 게 훨씬 재미있겠다 싶었다.


내가 초딩 때 봄 소풍은 몇 월에 갔을까. 오월이 되고 나니 봄 소풍에 어울리는 달이 오월이 아닌가 싶다. 소풍은 가을 소풍보다 봄 소풍이었다. 가을에는 가을 운동회가 있었고 달리기에서 3등 안에 들면 상품을 받았는데 나는 곧잘 달려서 줄곧 상품을 받았다. 4학년 때 한 번 등수에 들지 못했다. 그때 좌절감이란. 어린놈의 세키가 맛보는 좌절감의 맛은 떫은 감의 몇 배는 되었다. 그래서 달리기 뒤의 행사, 뭐 있더라, 뭐 박 깨기 같은 거, 혼신을 다 했다. 하지만 상품이 걸린 달리기만큼의 성취감은 들지 않았다. 달리는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그런 경쟁 구도에서 나 같은 놈도 잘 도 견디며 지내왔구나.


봄 소풍은 우리나라의 말에만 가능한 ‘아련 아련’이 어울리는 풍경이 펼쳐졌다. 저학년 때에는 엄마가 따라왔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부모 없이 반 아이들과 함께 오와 열을 맞춰서 소풍 장소까지 걸어갔다. 걸어가는 동안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아련 아련이다. 벚꽃이 다 떨어진, 아직 장미가 세상을 점령하지 않은, 아지랑이가 흐믈흐믈 땅 위에 오르고 밤이 되면 밤꽃냄새가 퍼지는 계절이다. 소풍을 가기에는 딱 좋은 계절인 것이다.


가방에는 김밥과 사이다가 들어있다. 소풍 당일에 장소까지 가는 일도 즐겁지만 진정 행복 충만은 소풍 전날이다. 알 수 없는 기대와 학교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소풍 전날은 축제다. 아직 어린이라서 그런지 소풍 당일에도 그저 즐겁다. 요즘처럼 행복한 날이 저문다는 생각에 찬란한 슬픔을 느끼지는 못했기에 그저 좋고, 즐겁고 재미있었다. 소풍이 그러면 된 것이다.


꽃가루가 코끝을 간질이고 꽃이 핀 곳에 향기가 가득하고 몇 안 되는 새들의 소리가 전부 달라서 새들의 교향시를 만들어내는 풍경이 봄 소풍의 그림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햇빛을 피해 각자 그늘진 곳에 앉아서 김밥을 까먹으며 사이다를 마셨다. 생각해 보면 그럴 리 없지만 사이다는 분명 아주 시원했다. 도형이는 뭘 하고 놀았던지 이마에 맺힌 땀이 햇빛에 비쳐 반짝였고 사이다를 마시고 아 시원하다고 했다.


소풍이 다 끝나고 아쉽지 않았던 건 집으로 와서 소풍에서 뒹굴며 몸에 묻은 먼지를 씻어내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남은 김밥과 사이다를 마시며 티브이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홈 스윗 홈인 것이다. 머클리 크루의 홈 스웟 홈. 지구에서 가장 악동이고, 지구에서 제일 별나고 과격하고 약을 엄청나게 하고 인기가 제일 많은 골 때리는 세기의 밴드, 머틀리 크루는 온 세계를 씹어 먹어 버릴 해비해비한 메틀을 했지만 홈 스웟 홈을 부를 땐 한 없이 부드럽다.


지금 필요한 건 시원한 사이다 한 잔과 홈 스윗 홈이다. 야호.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홈 스윗 홈 https://youtu.be/Gmrh42foU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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