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으로 치면 알려진 음악가들이, 그러니까 잘 나가는 작곡가, 편곡가, 연주가들이 붙어서 만든 앨범이 이화규의 앨범이 아닌가 싶다. 이 앨범에 참여한 음악가들이 화려하다. 예민, 김성호, 김명곤, 함춘호 등이 뛰어들었다. 그래서 이화규 1집의 노래들을 들어보면 절절한 사랑의 감성이 충만한 곡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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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은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로 잘 알려졌다. 예민은 1980년 대학가요제를 통해 나타나서 후에는 주로 가수들의 음반작업을 했다. 프로듀서를 하고 작사와 작곡을 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앨범도 내고 잘 활동하다가 미국으로 휙 유학을 가더니 뜸해진 가수가 되었다. 나는 예민의 노래 중에는 ‘꽃이 바람에게 전하는 말’을 좋아한다. 슬프다. 그런 감정이 가득한 노래다. 어떻게 이런 가사를 지어낼까, 늘 궁금한 부분이다. 이 노래는 예민의 버전도 좋고 박강수가 부르는 버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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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은 음악감독으로 첫 시작은 ‘사랑과 평화’의 키보드였다. 2집까지 활동한 것으로 안다. 사랑과 평화는 이장희에 의해서 발탁이 되어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장희의 곡 ‘한동안 뜸했었지’를 사랑과 평화의 곡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라고 해도 무슨 노래인지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김명곤은 엄청난 곡들을 작곡했다. 영화 음악을 많이 했는데 얼마 전 1주기를 맞이한 강수연이 나온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의 영화 음악을 했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는 말 그대로 청춘인 대학생 미미와 철수의, 공부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하지 않는 대학생활의 이야기다. 정말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공부를 안 하는 걸 부각한다. 80년대에 대학에 가면 그저 방탕하게 놀아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요즘 보면 뭐지? 할지도 모른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나 몰라라 해도 대학교에 가면 공부가 좀 재미있어서 그래도 좀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 속 철수는 좀 뭐랄까 술을 마셔도 사회의 비판이나 미래의 불안 같은 건 없이 그저 미미를 꼬시기 위한 술 마시기만 할 뿐이다.


철수는 법학과에 다니는 천재 보물섬과 친구를 먹게 되는데 수석 먹고 학과에 들어와 독서실에서 먹고 자고 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하는 보물섬은 철수와 친하게 되면서 맨날 술자리와 미미를 꼬시는 데만 같이 다닌다. 이쯤 되면 어른들이 친구를 잘 만나아야 어쩌고 저쩌고 할지도 모르겠다.


미미도 철수 못지않게 레미제라블이 장발장이 쓴 줄 알 정도로 상식과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 거기에 배우가 꿈인 최 아랑 드롱, 최양락도 나온다. 최양락은 정말 뭘 어떻게 해도 살은 안 찔 스타일로 보인다. 마를 대로 마른 최양락은 철수의 고등학교 친구다. 단역으로라도 배우가 되려고 하지만 잘 안된다. 철수에게 나 내일, 내일 촬영이 있는데,라며 부끄러워한다. 철수가 그, 그래? 잘 됐구나,라고 하니. 나 내일, 내일,,, 엑스레이 촬영이 있어. 요즘의 그 최양락 톤으로 그렇게 말한다.


미미의 강수연은 참 예쁘고, 철수의 박중훈과 보물섬의 김세준과 최 아랑 드롱의 최양락은 얼굴이 정말 어리다. 이들은 맨날 놀 궁리만 찾고 술만 마시다가 보물섬이 쓰러진다. 그러면서 보물섬의 병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보물섬은 공부도 일등이며 권투를 배워서 깡패들과도 맞서며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공부도 가르치는데 곧 죽게 된다. 이들의 좌충우돌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영화를 만든 감독은 80년대 봉준호라 불렸던 이규형 감독으로 이규형 감독은 2020년 암으로 별세했다. 글도 잘 썼던 이규형 감독은 자신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이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였다. 그리고 김명곤은 영화 음악을 맡았다. 이규형은 여러 영화를 만들었지만 청춘 스케치만큼 관객을 동원하지 못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도 했던 감독은 다시 돌아와 DMZ 비무장지대라는 영화를 만들었지만 역시 실패했다. 영화제작 투자금을 모집해서 제작은 않고 투자만 받다가 사기죄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들어오기 직전의 한국의 모습이라 재미있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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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에는 김성호도 참여했다. 김성호는 ‘김성호의 회상’의 김성호다. 김성호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한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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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춘호는 요즘도 아주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기타리스트다. 2019년에 함춘호와 워너원의 김재환이 같이 공연을 했는데 너무 좋았다. 그때 써 놓은 글인데 고작 3년 정도 된 글인데 30년 정도 된 글처럼 느껴진다.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들에게


정말 궁금한 것은, 누가 당신을 이렇게 겁쟁이로 만들었나요? 마치 몸은 없고 머리만 있는 인간들처럼, 해보지도 않고 미리 결과를 예측해서 포기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하고, 젊디 젊은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나 고민하고.... 대체 왜 이렇게 됐습니까. 화가도 꿈꾸고 로커도 꿈꾸었다면 그걸 실천하지 못하게 누가 막았습니까? 누가 ‘직업적으로 성공할 자신 없으면 시작도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까? - 김형태의 너, 외롭구나.


어른이면 꿈도 못 꾸는가, 결혼한 여자는 꿈꿀 수도 없을까. 누가 우리에게 꿈꾸는 것조차 못하게 바리케이드를 쳐놨을까. 초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교 4학년까지 16년 정도 배운 것으로 한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그렇게 배운 것보다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게 더 많고 더 많이 배운다. 오래전, 4, 50년대의 교육방식의 배움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서 그것으로 지금의, 접는 폰이 나오는 이 시대에도 적용을 해버린다. 도대체 누가 그렇게 그러는 것일까. 인간이 100살까지 산다면 80년 정도를 평균적으로 산다고 봤을 때 40세에는 대학을 한 번 더 가는 사회적 구조가 되어서 인생 2장이 시작하는 배움의 길을 국민 전부가 가져야 하는 게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다시 배움의 길에서 꿈을 꿀 수 있게.


임경선과 요조의 책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를 보면, 하나 확실한 것은 어쩐지 나이가 많아 보이는 마흔 살이 되었다고 당장 ‘불혹’이 되진 않아. 하긴 40대가 불혹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 그건 역으로 40대가 미친 듯이 흔들릴 때라서 흔들리지 말라고 괜히 만들어 놓은 말 같아. 내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 단 한 명도 없었어. 아무튼 마치 저열한 젊음을 은퇴한 것처럼 초연해하거나 고민이 다 해결되거나 그러지 않아. 그리고 몇 살이 되어도 고민하는 것은 좋은 거야. 고민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니까. 고민을 하니까 우리는 스스로를 찾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 거야. 40대가 되었다고 다 산 노인네처럼 굴지 말고 몸과 마음 둘 다 움직여야지. 에너지는 사용한 만큼 고스란히 순환되어 내게 돌아오니까.


기타리스트 함춘호는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에 도전을 하고 실패를 맛보고 다시 일어선다. 그의 기타 연주를 잘 들을 수 없는 사람들도 드라마의 곡을 듣고 이 곡이 함춘호의 곡이야,라고 하면 아! 정말? 할지도 모른다. 그는 오래전 겨울연가부터 최근의 도깨비, 태양의 후예까지 많은 곡을 만들었다. 아마 해외에서 더 열광이다. 이 나이 꽤 많은 아저씨의 기타에 말이다. 그 이면에는 함춘호의 어떤 인성? 같은 것들이 함춘호를 끝없이 도전하게 만든다. 워너원의 김재환과 함께 봄여름가을겨울의 전태관 추모 공연에 협연을 할 정도로 젊은 가수들과 연주자들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


내 행동과 생각이 ‘오케이, 부머’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막혀 있다면 이러쿵저러쿵 할 필요도 없다. 그래봐야 유치하고 어리광 부린다는 소리밖에 듣지 못한다. 만약 꿈꾸고 있는 게 있다면 고민이전에 한 번 해보아야 한다. 노래를 부르고 싶다면 녹음실에서 노래를 불러 앨범을 만들고, 연주를 하고 싶으면 피아노 학원에 등록을 하고, 글을 쓰고 싶다면 모두가 잠든 밤에 티브이보다는 책상 앞에 노트북을 열자.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 생활이 망가지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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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김광일, 박인호(두 사람은 잘 몰라서 검색을 했는데도 찾을 수 없었다) 등 음악가들이 앨범작업에 참여를 했다. 이화규는 2집까지 내고 활동을 그만둔 것으로 안다. MBC 합창단원 출신이라고 한다. 거기에 박남정도 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이화규의 언니가 이삼규로 동시에 활동을 했다고 한다. 언니는 당시 홍학표가 나왔던 우리들의 천국 1기에 나왔다고 한다. 홍학표는 울덜의 천국으로 등장해서 인지 홍학표 하면 90년대 청춘스타로 불렸다. 그러다가 제5 공화국에서 장세동으로 연기 끝내줬다. 이화규도 당시 예능 같은 프로그램에 많이 나왔는데 타이틀 곡인 ‘사랑할 때와 이별할 때’보다 발랄한 ‘왜’를 많이 불렀다고 한다.


그래도 오늘은 타이틀 곡을 들어보자. https://youtu.be/KEbTgdl3y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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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들어도 이건 거짓말이라는 걸 아는데 지속적으로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독 그러는 사람들이 국회의원, 정부 관계자, 고위관료들이다. 이들을 싸잡아 정치인이라고 하자. 그래서 정치인은 다 들킬 뻔 한 거짓말을 어째서 지치지 않고 할까. 것 걷기 시작한 호기심 분출하는 아기처럼 절대 지치지 않는다. 정치인은 단상 앞에서 누가 들어도 뻔 한 거짓말을 한다. 설령 후에 고개를 숙(이지도 않고, 숙이더라도 대상이 다른 경우가 많다)여 사과를 할지라도 거짓말을 한다. 마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연말이 되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뒤집어엎는다는 기사를 매년 본다. 도대체 왜 세금 낭비해 가면서 도로를 파헤쳐 엎어 버리냐고 사람들은 욕을 한다. 시, 군, 구. 각 구에서 보도블록을 뒤집어엎으면 지방 뉴스에 나게 되고 다른 구에 사는 사람들은 욕을 한다. 그리고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들은 인터넷으로는 댓글을 단다. 그런데 같은 구라고 해도 구가 생각보다 크다. 살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구를 다 돌아보지 못하고 나이 들어 죽는 경우도 있을 만큼 자신이 살고 있는 구가 크다.


그러니까 십 년은 금방 지나가지만 한 시간은 너무나 더디게 흐른다고 우리가 느끼는 것처럼 대한민국은 좁은 땅덩어리라고 생각하지만 살고 있는 시, 군, 구는 너무나 크다. 따라서 한 블록만 떨어져도 누가 사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뉴스에서 연말에 자신이 살고 있는 구의 도로를 뒤집어 보도블록을 다시 깐다는 기사를 접하면 구청장이 그래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군, 같은 생각을 한다.


구청장은 다른 구, 다른 도시의 시민들이 자신을 욕을 하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욕을 많이 해서 뉴스를 타면 자신의 구에 살고 있는 구민들에게 자신의 업적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이런 행적, 이런 업적이 쌓이고 쌓여 다음 재선의 발판으로, 더 나아가서는 중앙 정치 무대로 옮겨갈 수 있는 동력이 된다.


그렇다면 정치인이 씨도 안 먹히는 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누가 들어도 이게 뭐야? 왜 이런 거짓말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 국민들을 열받게 만들고 화나게 하는 정치인은 들은 왜 그러는지 감이 온다.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은 국민들의 분노 따위는 썩 신경 쓰지 않는다. 국민들의 분노에 일일이 답해주기보다 자신이 섬기는 절대 권력의 눈에 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거짓말 같은 메시지가 딱 한 사람의 눈과 귀에 들어가 옆에 설 수 있다면 거짓말 같은 건 백번도 더 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 국민의 화? 대중은 다른 이슈가 생기면 자신의 거짓말은 금방 잊어버리고 새로운 이슈로 달려간다. 국민, 대중의 분노 같은 것보다 정치인은 한 사람의 눈에 들면 되는 것이다. 절대 권력자의 눈에 들기 위해 하는 거짓말은 마치 진실이라고 믿는 정치인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정치인들이 왜 국회에 많을까. 국회의원이 너무 쉽게 되어서 그렇다. 편하게 국회의원이 되다 보니 마치 출퇴근하는 회사원처럼 생각하는 정치인도 있고, 국민들 위에 자신들이 있다고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인도 있다.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는데 4년이 지나면 다시 표를 얻으려고 사람들 앞에 굽신거리며 나선다. 그 말은 공론화되어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 초론 한 번 없이 지역에서 표를 받아서 국회의원이 된 정치인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 토론 방식을 뭐라 부르는지, 무슨 토론이라 부르는지 잊어버렸는데 아마 버니 샌더스가 이 방식을 도입한 것으로 안다. 버니 샌더스는 20대까지 지지를 받았다. 버니 샌더스는 사람들과 토론을 많이 했다. 정책결정권자가 도장을 찍어서 이미 끝난 공공사업임에도 정책결정권자가 억울한 주민대표들과 만나서 주민들을 위해 토론을 하는 방식이다. 예전에 이런 방식을 이재명도 한 번 한 것으로 안다. 계곡에 닭백숙 팔고 하는 무허가 건물 해체하는 결정이 났지만 생계 때문에 사업자들을 만나서 토론으로 상생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한 개인이 생활하면서 정치인을 실제로 보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사용법라는 책을 읽어보면 지방에 있는, 각 시, 군, 구의 국회의원 사무실은 국민들에게 개방이 되어 있어서 자주 들락날락 거리며 그들에게 불편함을 호소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간다고 해서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우리는 정치인(이 가족이 아닌 경우) 곁으로 가지 않는다. 평소에 만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


여기는 바닷가인데 일본과의 관계 때문인지, 오염수 그리고 멍게 같은 것들 때문에 화가 많이 난 사람들이 이런저런 불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불만 속에는 정치인들의 거짓말이 가장 문제다. 오래전 정치인처럼 겉으로는 서로 앙숙이지만 나라에 큰일이 닥쳤을 때는 한 번 도와줍쇼 하며 서로 손을 잡아서 뭔가를 헤처 나가는 모습은 지금은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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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앉아서 책을 좀 읽다 보니 축축하고 뿌연 게, 고개를 들어보니 해무가 인간이 있는, 내가 앉아 있는 곳까지 쑥 들어와 있었습니다. 숨을 쉬면 습 한 기운이 느껴지는 착각이 들 정도로 해무가 가득했습니다. 당신은 알까요? 그때 우리도 이런 해무를 접했던 적이 있습니다. 몇 해 전 해무가 가득했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바다는 참 이상합니다. 그리고 바다는 늘 당신을 닮았다고 생각이 듭니다. 늘 비슷하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해무가 들어차 앞이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은 확 맑았다가 어느새 비가 내려 바다를 적시려고 했습니다. 바다는 시간과도 닮았습니다. 하루는 긴데 한 달은 참 짧고 일 년은 더 짧습니다. 삶이 영화 일일시호일과 닮았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가장 무서운 건 적이 아니라 시간이라고 했는데 일일시호일을 보면 그 무서운 시간을 천천히 빗질을 하더군요. 짧게 만 느껴지는 10년이, 길고 천천히 빗어준 한 올 한 올의 소중한 추억으로 모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무가 들어찬 바다를 조용필의 노래처럼 걸어봤습니다. 전부 놓고 모두 내려놓고서 당신과 걷고 싶습니다. 그대와 걷고 싶다고 소리 내 부르면 봄이 되어 달려오는 당신의 보드라운 손을 품에 넣고서 시간을 들여 걸어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천천히 빗질하는 것입니다, 천천히, 길게. 인생이란 차에서 나는 향처럼 깊고 은은하게 퍼지는 여운이 조금씩 쌓여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그럼 또 편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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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지 오브 글로리 앨범은 영화 '영건 2'의 사운드 트랙이다. 무려 이 음악으로 존 본 조비는 골든 글로브를 거머쥔다. 그때가 몇 살 때야? 아무튼 당시 유행하던 로커헤어를 하고 아직 얼굴에 푸릇푸릇한 면모를 잔뜩 지니고 있었다.


이 영화 앨범은 몹시 좋고, 아주 좋고, 정말 좋다. 아마 이런 앨범은 이제 다시는 나오지 않겠지. 이 영화에 본 조비가 조연인가 엑스트라로 나온다. 나도 본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분명 나온다. 유튜브를 검색해 보니 영화가 좋은 화질로 풀 영상이 올라와 있다. 물론 자막은 없다.


존 본 조비는 뭔가 외계인 같은 사람이라고 학창 시절에는 생각했다. 늙지도 않을 것 같고 전성기 때 우리가 너무나 좋아하는 그 보컬을 지니고 있었다. 허스키의 그로울링으로 내지르는 이런 목소리에 우리는 환장했으니까. 거기에 피아노 실력이나 음악을 만드는 실력에, 무엇보다 그놈의 얼굴이 너무 잘생겼다는 거였다. 이렇게 마이크를 잡고 입술을 한 번 찡그리면 전 세계 여자들이 좋아 죽었다.


이 당시 존 본 조비는 넘사벽이었다. 잘 나가고 잘 나가는 록스타였던 것이다. 당시 록스타는 스포츠스타 그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본조비가 잘 나가던 중 혼자 솔로 1집으로 영화음악을 내며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독보적으로 잘 나가버린 것이다. 본 조비 그룹 안에 존 본 조비만큼 비주얼과 실력으로 라이벌이자 동료인 기타리스트 리치 샘보라도 흥 하며 솔로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해버렸다. 두 사람의 사이는 좋지만 좋지 않았다는 가십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 본 조비 노래들을 죽 들어보면 알겠지만 리치 샘보라도 노래를 부르는 파트가 많다. 곳곳에서 리치 샘보라의 목소리가 들린다. 몇 해 전에는 일본에서 홍 쇼핑으로 옷을 팔기도 했다고 하는데. 리치 샘보라는 옷을 너무 잘 입거든. 옷도 너무 좋아하는 것 같고. 그래서 어쩌면 비주얼이 존 본 조비보다 마초적이며 더 멋있기도 했다.


내가 중고딩시절에는 이런 가십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죄다 음악 감상실에서 디제이가 하는 이야기를 주워듣거나, 음악 잡지에 실린 가십 이야기를 보거나 했다. 아마 당시에 음악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악동이 엑슬로즈였다. 그래서 늘 사고뭉치였던 엑슬로즈의 이야기를 주머니 속에 숨겨 두었다가 하나씩 꺼내기도 했다. 뭐, 호텔 2층에서 자신을 찾아온 팬들에게 의자를 집어던지고 소란을 피우고 한 이야기 같은 것들. 엑슬로즈는 가십의 단골 메뉴였다.


여하튼 중딩 때 라디오에서 듣지 못하는 가십이나 이야기를 들으려면 음악감상실에 달려와야 했다. 그리고 이런 가십을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주는 디제이가 할 시간에 맞춰서 와야 했다. 지금은 검색을 하면 존 본 조비와 리치 샘보라의 가십에 대한 이야기를 다 알 수 있으니 더 쉽고 정확하게 알 수 있지만 재미는 덜 한 것 같다. 오오 하며 듣는 그런 재미가 빠져 버렸다.


이 앨범의 모든 노래가 다 좋다. ‘네버 세이 다이’ 같은 노래는 신나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딱 한 곡을 선곡하자면 아무래도 ‘산타 페’다. 시작부터 나오는 연주와 존 본 조비의 독보적인 보컬이 너무나 잘 어우러진다. 산타 페가 이 영화 영건 2의 이야기를 확 다 들려주는 기분이 든다. 산타 페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높은 화질 HD로 나와서 오래된 영화 영상임에도 마치 작년에 나온 영화 같은 느낌이다.


미드 24의 히로인 키퍼 서덜랜드를 비롯해서 라밤바의 주연이었던 루 다이아몬드 필립스, 에밀리오와 크리스찬 슬레이터의 아주 당차고 돌도 씹어 먹을 것만 같은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무튼 영화보다 존 본 조비의 영화 사운드트랙이 더 인기가 좋았다.


존 본 조비는 실력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얼굴, 얼굴이 존잘이었다. 1, 2집의 촌빨 날리는 모습임에도 자신감 가득한 존잘 존 본 조비를 어떤 여자들이 마다할 수 있을까. 8, 90년대 록스타 대부분이 난잡까지는 아니지만 공연을 하거나 투어를 하면서 난잡에 비슷한 생활을 했다. 피지컬이 가장 튼튼하고 밤새 술을 마셔도 다음 날에 미친 듯이 공연을 할 수 있었다. 매일 밤 여자들과 함께 파티를 즐겼다. 결혼해서 한 여자만 보며 지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이다. 록스타들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금발의 섹시섹시 미녀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존 본 조비는 고등학생 때 만난 도로테아와 결혼을 해서 아직까지 잘 살고 있는 순애보 록커다. 전혀 안 그럴 것 같지만 세바스찬 바도 일찍 결혼을 했고, 제임스 헷필드도 씹어 먹을 듯한 록스타였는데 딸아이 학예회 발표에서 기타를 들고 세션을 해줬다. 그 모습이 메탈리카 같지 않으면서 너무나 멋진 메틸라카 같은 모습이었다. 그 사진은 엄청 유명하다.


존 본 조비는 도 여사와 결혼하기 전에 한 번 헤어졌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다이안 레인과 잠깐 만나기도 했다. 그때 다이안 레인은 세상 끝자락 미모였다. 그러나 다시 도 여사에게 돌아와서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아들딸 낳고 잘 살고 있다. 아들이 밀라 바비 브라운과 사귄 데지.


본 조비는 앨범이 많아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다른 앨범 올릴 때 또 본 조비의 이야기를 하고 음악은 정말이지 온통 추억이다. 학창 시절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본 조비를 들으며 얼마나 행복해했었나. 창가에 앉아서 교복 안으로 이어폰을 빼내서 한쪽 귀로만 본 조비를 들었지만 행복충만이었다.  

다이안 레인과 즐거운 한 때


영건 2 사운드트랙으로 골든 글로브를 탔다. 이때 이미 도로 테아와 결혼을 한 상태다. 두 사람이 같이 시상식장에 나타났다.

다정다정


시간이 좀 흐른 후

도로 테아의 미모도 넘사벽


또 시간이 좀 흐른 후,

이때는 2014년인가 2016년인가 골든 글로브 노미네이트로 다시 한번 존과 도로테아 두 사람이 시상식장에 나타났다.  

이후에 심장 때문에 한 번 쓰러졌다는 소식이 트위터에 뜨기도 했다. 일전에 한국에 와서 존 본 조비는 그랬다. 한국분들이 제 노래 올웨이즈를 가장 사랑해 주신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그 노래를 예전처럼 부르지 못하지만 한국팬들을 위해 한 번 불러 보겠다.


오늘의 선곡은 영건 2 사운드트랙 중 산타 페 https://youtu.be/v5C6vAUVW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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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나오니 복도에 짜파게티 냄새가 퍼져있다. 어느 집에서 끓이는 것일까. 너무 냄새가 좋다. 이 냄새는 물을 찰방 하게 남겨서 스프를 넣고 팔팔 끓여서 짜장소스가 면 깊숙이 밴 짜파게티의 냄새다. 면이 타지 않고 졸아 들어서 입 안이 온통 짜장으로 물결을 이루는 그 냄새다. 짜파게티에는 김치가 필요하다지만 단무지가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오전에 짜파게티 생각을 뇌 속 깊이 각인을 한 후 저녁에 조깅을 하면서 오늘은 짜파게티를 먹으리 라는 일념으로 열심히 달렸다. 짜파게티는 집에 늘 한두 개는 있다. 나는 공복에 조깅을 한다. 뭔가를 먹고 조깅을 하면 당연하지만 먹은 음식이 다 소화가 되어 버리고 들어오면 또 배가 고프다.


공복에 조깅을 하는 것이 몸이 가볍고 뭐 그렇다. 어떻든 올해는 2월인가 하루 빼고는 매일 한두 시간 정도 달리며 걸으며, 그렇게 조깅을 했다. 조깅을 할 때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뇌를 텅 비우고 무의 상태로 조깅을 한다. 달리면서 뭔가를 떠올리고 무엇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이란 생각처럼 되는 게 아니라 멍 한 상태의 나의 뇌로 알아서 어떤 생각이 들어오기도 한다.


달리는데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게 짜파게티의 냄새였다. 그때부터 허기가 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보통은 공복이라도 조깅을 할 때 허기가 지는 일 따위는 없다. 그러나 오전에 나의 온몸을 떨리게 했던 이 죽일 놈의 짜파게티 냄새는 허기를 화악 몰고 왔다.


집으로 와서 샤워를 한 후 호기롭게 주방의 선반을 열었는데 늘 있던 짜파게티가 없었다. 이 허탈함이란. 순간이지만 마음의 공백이 엄청났다. 밖에 나가서 사 올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가 눈에 보이는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근래에 라면을 끓이면 라면자체의 맛이 좋아서 라면만 끓여 먹게 되었다. 몇 년 동안 라면을 끓여 먹으면 계속 그 안에 이것저것 넣어서 먹다 보니 라면 맛이 뭔지 알지 못하게 되어서 언젠가부터는 라면만 딱 끓여서 먹고 있었다.


그런데 먹다 남은 두부가 보이고, 양배추 찌끄러지가 보이고, 버섯이 보이기에 다 같이 집어넣고 울진표 고춧가루를 좀 넣어서 끓였다. 이렇게 라면을 끓여 먹지 않으리 했는데 결국 찌개가 되었다. 라면에 두부가 들어간 게 아니라 찌개에 라면사리를 넣은 것 같은 맛이 되었다.


정말 인생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네.

단무지도 없어 깍두기를 곁들여 먹었다.

밥도 말아먹었다.


짜파게티에서 이만 광년이나 멀어졌지만 라면은 늘, 언제나 왜 이렇게 맛있을까. 라면은 이상하지만 끓일 때 이것저것 집어넣어서 라면 맛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 같지만 라면 맛은 없어지지 않는다. 맛있다는 말이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모금 떠먹으면 마치 짬뽕 국물을 떠먹는 것 같은 맛도 들지만 끝은 라면 국물이다. 짜파게티가 먹고 싶었는데 먹다 보니 짜파게티의 생각이 싹 사라졌다.


찌개라면은 뜨거울 때 해치워야 한다. 호로록 면을 빨아들이고 국물을 한 모금 떠 마시고 뜨거운 두부를 프릅프릅 먹는다. 며칠 동안 비가 왔다. 비바람이 심했다. 풍랑 특보가 발효되고 외출 삼가라고 했다. 그래도 우산을 들고 조깅할 시간에 강변으로 나갔다. 이렇게 며칠 동안 비바람이 부는 건 장마기간을 제외하고 오랜만인 것 같다. 날도 추워서 우산을 들고 빨리 걷거나 달렸다. 아는 척은 못 하지만 늘 비슷한 시간에 나와서 조깅을 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역시 우산을 들고 나와서 조깅을 하고 있다.


별거 아닌 일상의 풍경이 조금 특별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런 건 너무 가까이 있어서 쉽게 발견하지 못하거나 너무 하찮아서 쳐다보지 않게 된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보면 특별한 것들은 늘 나의 주위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고 나면 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혼자서 미소를 짓곤 한다. 라면이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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