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미리예채파를 보는데 리정( 개인 퀘스트 실패 ㅋㅋ)이 티엘씨를 알고 있어서 놀랐다. 그리고 티엘씨의 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https://youtu.be/nj_IcXi3puU


혜미리예채파는 요즘 보는 가장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다. 정치인과 정부에 염증을 느끼다 못해 욕이 나올 정도로 답답해서 눈과 귀를 닫기로 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정치인 놈들은 내내 그러는데 전부 지들 밥그릇 챙기려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내가 사는 곳은 바닷가라 바닷가의 어민 들은 일본의 오염수 방출에 대해서 걱정과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전혀 씨도 먹히지 않고 야당은 지들 내부총질하느라 국민들 시름은 나 몰라라 하고.


이런 와중에 눈을 돌리니 혜미리예채파가 하네. 어깨탈골 언니 혜리의 백만 개 건치웃음폭탄부터 한 다면 하는 여자 조미연, 어딘가 백치미가 가득한 리정, 사고뭉치 오리 예나, 그리고 그녀의 앙숙 쌈아치 채원, 이 특급 아이돌 틈에서 전혀 꿀리지 않고 큰 웃음을 주는 진정이 안 되는 파트리샤까지. 넘나 재미있는 것이다.


이 예능을 보는데 티엘씨의 음악이 나오며 리정이 춤을 추고 다른 멤버들도 몸을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었다. 그때 나온 노래가 티엘씨의 크립이었다. 몹시 자유한데 절제가 가득한 음악이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최고로 잘 나갈 때의 티엘씨 모습이 담겨있다.   https://youtu.be/LlZydtG3xqI


90년대 남자들이 꽉 잡고 절대 놔주지 않았던 힙합의 판도에 와그작 하며 금을 내버린 멋진 언냐들 티엘씨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은 곳에서 하고 있고, 특히 늘 그렇듯이 유튜브 복고맨 같은 전문 팝스타를 다루는 채널이 있으니 가서 보면 티엘씨 역사에 대해서, 그들의 음악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음악적으로 뉴 잭 스윙이나 힙합이니 알엔비 같은 용어는 잘 모르니까 티엘씨의 음악에 대해서 논하는 건 넘어가자. 티엘씨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렇게, 이렇게 어깨와 머리가 자동으로 움직인다. 티엘씨의 음악의 장점은 칼군무를 하는 요즘 아이돌의 춤이 아닌 그저 몸이 알아서 움직이면 된다는 것이다.


티엘씨는 미용실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녀들은 왜 남자들만 펑퍼짐한 힙합적인 옷을 입고 노래를 부르냐며 우리도 할 수 있다며 두 사람이 들어가도 될 법한 큰 티셔츠와 펑퍼짐한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1집을 들고 나오자마자 아마 세계가 술렁거렸을 것이다. 악동 같은, 말괄량이 세 명이 나와서 그저 몸이 가는 대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이 언냐들 하면 의상을 빼놓을 수 없다. 이전의 힙합 보이들은 흑인에 하얀 티셔츠와 검은 옷 같은 매치만 했지만 티엘씨는 그야말로 컬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의상을 입었다. 마치 옷에 미술을 해 놓은 것 마냥 알록달록 파스텔 톤 한 가득이었다. 입술도 튀는 색으로 메이크업을 했다.


티엘씨는 승승장구해서 악동 같은 이미지에서 아티스트가 되었다. 그녀들이 발매한 앨범 기록은 내내 깨지지 않다가 후에 데스티니스 차일드에 이르러 깨졌다. 티엘씨는 굉장한 가수임에도, 엄청난 노래를 불렀음에도 흑인이라서 차별을 받았다.


HBO에서 만든 ‘러브크래프트 컨트리’에서도 흑인들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 잘 나온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무차별로 차별을 당한다. 리브 크래프트의 세계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무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이야기다. 러브 크래프트의 그 무시무시하고 기괴하고 공포 가득한 괴물들이 몽땅 나온다. 50년대의 미국은 흑인들에게 아직 무법천지였다. 인종차별을 해도 되는 지역이 있어서 그 지역을 흑인이 지나가면 백인들이 총을 쏘고 한다. 주인공 조나단 메이어스는 한국전쟁에 참여한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중간중간 나온다.

무엇보다 80년대 할리우드의 공포 영화를 장식했던 러브 크래프트의 그 무시무시한 호러가 이 시대의 화려한 그래픽으로 재탄생되었다. 흑인 차별에 관한 것 중에서 이번 인어공주 에리얼도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하는데 인어공주는 흑인이라서 안 된다고 하는 게 아니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말하는데 난데없이 흑인차별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좀 이상한 흐름이다.


다시 티엘씨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대한민국은 한창 한일월드컵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2002년 4월에 레프트아이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충격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거의 10년 가까이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티엘씨가 레프트아이의 죽음으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해 한국은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었고 11월 티엘씨는 레프트아이가 없는 채로 4집을 발표한다. 뭐 4집이 생각만큼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 앨범에 있던 노 스쿠버는 노래 잘알못인 내가 들어도 최고다.


티엘씨 아무튼 엄청난 그룹이었음.


앨범 속 가장 대중적인 노래가 되었던 왓 어바웃 유 프랜 https://youtu.be/92gHq1s6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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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저녁의 향연이 이어지는 계절이다. 날이 선선해서 달리기에 너무나 좋은 요즘이다. 한 시간 정도 달리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어 있는 것 역시 기분 좋다.

색감이 묘한 저녁이다. 화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쪽과 비슷한데 다른 세계가 있는 것 같다. 그쪽 세계는 이쪽 세계와 거의 같은데 조금 다르다. 그 다른 조금의 부분이 너무나 크고 무섭게 다가온다. 그쪽 세계에 있는 나는 지금의 나와 똑같이 생겼지만 음식을 먹을 때 입으로 먹는 게 아니라 배가 갈라지고 그 안에서 괴물 같은 입이 튀어나와서.


쓸데 없는 생각을 뒤로 물리고 다시 달려가자. 으샤으샤.

이렇게 유랑하는 달의 모습을 담을 때는 단렌즈인 아이폰 8을 원망해 본다. 최신 휴대폰이라면 이 모습을 너무나 예쁘게 담을 수 있을 텐데.


이상일 감독의 '유랑의 달'을 봤다. 이상일 감독은 식스티 나인과 훌라걸스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화가 어둡다. 이번 유랑의 달을 끝내고 이상일 감독이 배우 송강호와 화상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영상이 유튜브에 있다. 한국어가 조금 서툴지만 송강호를 형님이라 부르며 영화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습이 소탈하게 보였다.

 

이 영화는 슬픈 이야기며, 아픈 이야기고, 안타까운 이야기다.

이야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색감이 차갑고 초연하다. 기생충의 느낌이 나는 것은 아무래도 기생충 촬영감독이 촬영을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축축하고 차가운 대지 위에서 건조하고 따뜻한 부분을 내주는 건 다름 아닌 자신과 비슷한 결핍 인간이다.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겨우 만났는데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벌레 보듯 본다. 그리고 그 시선은 점점 더 크고 넓어지고 확대된다. 하지만 달은 처음부터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달이 웃고 있다. 달은 너와 나를 연결시켜 준다.


아니라고 하지 못한 말은 그대로 사실이 되어 사람들은 이야기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다. 결핍 때문에 떠났지만 결국 결핍이 그리워 다시 결핍의 자리로 돌아오는 카나시이 하나시다.


장애라는 건 아픈 게 아니라 불편한 것이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욕을 하고 삿대질을 하며 마음대로 생각하는 그 사람들이 장애가 있는 것이다.라고 영화는 말하는 것 같다.

빗자루가 있다면 옆구리에 차고 강변으로 나가서 슥슥 구름을 쓸어서 담아 오고 싶다. 그래서 비닐에서 꺼낸 구름의 반은 집의 천장에 뿌려 놓고 반은 설탕을 뿌려서 솜사탕을 만들어서 먹고 싶다. 뭐? 먼지 때문에 구름이 더럽다고? 그래서 설탕을 넣는 거야. 하얀 그리움에 눈물이 흘러내리면 먼지 같은 것도 전부 사라지니까.


이제 저 연등도 일 년 뒤에나 볼 수 있겠지. 한 달 동안 잘 봤다. 연등들아. 구름을 빗자루로 쓸어서 담아 오고 싶은 저녁의 풍경이었다.

구름이 또다시 그림을 만들어냈다. 놓칠 수 없는 풍경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작은 희망이 없어서였을까. 별이 궤도에서 또 이탈해서 나 돌아갈래, 하며 한 번 멋지게 폭발을 하며, 셀 수도 없을 만큼 수억 개의 별 중에 존재를 각인시키고 사라진 별의 흔적일까. 이럴 때 김중식 시인의 시 ‘이탈한 자가 문득’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구름과 새와 유랑하는 달을 담아냈다. 물론 신형폰의 유혹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지만 그래도 꽤 해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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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차에 밥을 말아먹으면 이게 뭐 얼마나 맛있겠냐 싶지만 막상 먹어보면 홀짝홀짝 먹게 된다. 거기에 총각김치를 젓가락으로 푹 찍어서 들고 우걱우걱 먹는 맛이 좋다.


예전에 어떤 다큐 같은 영상을 보니 김소희 요리사도 외국에서 손님들에게 엄청난 요리를 제공하고 자투리 시간에 주방에 서서 물에 밥을 말아서 총각김치로 밥을 먹더라고.


무더운 여름날 논다고 땀을 많이 흘러 러닝셔츠가 더 젖은 채로 들어오면 외할머니가 등을 슬슬 문질러주며 선풍기와 부채신공으로 땀을 식혀 주었던 게 생각난다. 외할머니는 내가 배고프다며 물에 만 밥을 한 숟가락 떠 그 위에 총각김치를 먹게 좋게 입으로 아작 씹어서 잘라내서 올려 주었다. 내가 와암 한 입 먹으면 외할머니는 엉덩이를 토닥 두드려주었다.


서러운 단어 가난이 무겁게 덮쳤던 어린 시절에 동생이 태어나면서 나는 일 년인가 그 이상인가, 외할머니가 있는 외가에서 지냈다. 그때가 아마 5, 6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밤마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었고(그렇다고 한다, 나는 믿지 않지만) 동네 아이들에게는 타지에서 온 아이라고 따돌림을 당하고 놀다가 싸움을 하면 늘 맞고 들어왔다.


불영계곡 저 안에 있는 외가는 물 맑은 개울이 흐르는 곳에 있어서 여름이면 졸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낮에는 개울에서 사촌형이 가재를 잡아 주었다. 좀 더 컸을 때에는 가재를 잡는 법과 낚시하는 법도 알려 주었다. 하지만 사촌형들과 누나들은 학교에 가고 외할머니와 외숙모는 밭일을 하고, 나는 홀로 동네에서 놀아야 했다.


5세 인생 전반에 있어서 낯선 곳의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릴 때 사진을 보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빼빼 말랐다. 그래서 늘 동네 아이들에게 맞고 들어왔다. 울면서 들어오면 외할머니는 슈퍼우먼이 되어 동네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그 애들의 부모에게도 한 소리를 퍼부었다. 야호. 외할머니는 동네에게 슈퍼우먼으로 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점심에 국수를 먹기도 했고, 상추쌈에 밥을 먹기도 했지만 보리차에 밥을 말아서 총각김치를 맛이 좋았다. 외할머니가 입으로 먹기 좋게 아작 깨물어서 숟가락 위에 올려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늙어버린 엄마를 보면 외할머니를 보는 것 같아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어제는 며칠 만에 온 임영웅 3단 우산을 드렸더니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외가에서 지냈던 사진들을 보면 하얀 팬티에 하얀 러닝셔츠만 입고 내내 다녔다. 어린 시절에야 가난에 대해서 알 수 없었지만 이 서러운 가난은 전쟁도 아닌데 그렇게 가족을 흩트려 놓았다. 외할머니는 그걸 나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아서 잠깐 밭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나를 업고 다니거나 옆에 있어 주었다. 또 외가에는 외할머니, 큰외삼촌, 큰 외숙모, 사촌형들과 누나들이 6명이나 있어서 늘 귀여움을 받았다. 그래서 외가에서 지내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형들과 누나들은 개울에 나가서 고기를 잡고 물장구를 치고 튜브를 잡아 주었다. 솥에서 작은 알감자를 삶아서 배고프면 같이 먹고, 외할머니와 함께 전부 앉아서 물에 밥을 말아서 총각김치를 아작아작 먹었다. 마냥 똥강아지 소리나 들으며 예쁨만 받을 줄 알았는데 총알 같은 시간은 내게서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갔다.


보고픈 내 외할머니. 오늘은 총각김치를 먹자. 물에 밥을 양껏 말아서 먹어야지. 총각김치는 맛있어서 이렇게 밥과 계란프라이와 두부와 같이 먹어도 너무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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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는 1집을 들고 나오면서 대한민국의 온갖 유행을 전부 갈아엎었다. 가장 눈에 띄는 유행은 옷에 상표를 떼지 않고 달고 다녔다는 것이다. 거기에 벙거지 모자가 유행이었다. 유튜브로 옛날 티브이 서태지에 관한 영상을 보면 정말 대단했다.


누군가 자신이 녹화해 놓은 영상을 올려놓은 것이 있는데 초딩들이 우르르 나와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전부 1 문하고 1 답을 얻어내는 영상도 있다. 이 영상에 사회를 보는 남녀 중에 여자 엠씨는 영화 '이장과 군수'에서 차승원의 첫사랑이었던 이현경이다. 남자는 개그맨 김은우.


뜬금없지만 그 시절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양현석과 이주노는 살도 찌도 얼굴도 커지면서 많이 변했는데 서태지는 거의 변함이 없는 게 신기하네. 얼마 전에 이치현도 봤는데, 이치현도 70살이 다 되었는데 외모의 변함이 별로 없어서 놀랐다.


영상을 보니 1집 활동을 하면서 일본에서도 공연을 하며 방송 활동을 했는데 일본의 어린 사람들? 거의 초등학교 정도 되는 아이들에게 많은 사인을 해주는 모습도 있었다. 좀 묘하네. 아무튼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전부 서태지와 아이들의 회오리춤을 따라 하곤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이렇게 국민적 인기를 끈 것에 대해서는 아마도 사람들의 갈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요는 많았지만 가요가 아직 팝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던 시절이었다. 팝이 표현해 내는 풍부한 음악적 서사를 가요는 무리였다. 지금도 좋아하는 아티스트 공연에 몰려가지만 – 얼마 전 조용필의 공연에 5만 명이 모였다. 정말 엄청나다 – 예전에도 가수들이 공연을 하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세계적으로 미국의 팝이 판을 치고 있었고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한국에 세계적인 보이 그룹 ‘뉴키즈 온 더 블록’이 공연을 오게 되었다. 1992년 2월 17일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초유의 공연이 개최되었다.


당시 서라벌레코드 초정으로 이 어마어마한 공연이 성사되었다. 그러나 대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뉴키즈가 공연을 해야 할 시간에도 나타나지 않자 사람들은 지치기 시작했고 불만을 터트렸다. 그러다가 뉴키즈가 등장했는데 팬들이 미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몰리면서 앞자리의 사람들이 쓰러지고 밟히는 사고가 일어났다. 거기에서 여고생 한 명이 숨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공연은 수습 후 계속되어서 새벽에 끝났다. 당시에 사고 소식이 티브이 뉴스를 통해 전국으로 보도되자 놀란 팬들의 부모들이 공연장으로 갔지만 뭐 제대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었다. 뉴스로 보도된 장면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충격이었던 것이다.


뉴키즈를 보러 온 한국 팬 천 명이 소리를 지르며 몰려들었고 사람이 깔리는 모습이나 시설 집기가 파손되는 모습까지 방송이 되었다. 이로 인해 서라벌 레코드 대표는 구속이 되었다. 후에 서라벌레코드 회사는 그해 9월에 부도가 나고 만다. 그리고 2004년까지 버티다가 결국 폐업을 하고 만다.


그렇게 팝에 대한 갈망과 갈증으로 인해 대참사를 겪은 대한민국에 그해 4월, 신예 한국 보이 그룹이 티브이를 통해 사람들 앞에 나타나게 된다.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뉴키즈 온 더 블록에 쏟아져 있던 관심을 가져오는데 무리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팝의 흐름은 힙합이었다. 크리스 크로스가 세계적으로 나타났고, 지금은 엄청난 아티스트가 되어 버린 티엘씨부터 힙합이 강력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시기였다. 그에 맞게 서태지와 아이들이 힙합에 댄스를 섞고 배경에는 록이 사운드를 받쳤다.


그렇게 해서 1집의 인기를 뒤로 하고 서태지와 아이들 2집이 나왔는데 우려와는 다르게 1집만큼 인기를 끌게 되었다. 2집은 본격적인 힙합에 한국적인 정서를 섞어버린 하여가를 선보였다. 그야말로 한반도를 강타했다. 티피코시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계약을 맺고 광고를 했고 서태지의 패션은 거리를 물들였다.


처음으로 엑스세대가 등장했고 그 명맥이 이어져 지금은 엠지세대까지 불리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정해놓고 부르는 게 별로다. 대부분 본인들도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엠지야, 민지야,라고 말로 하는 사람들은 전부 꼰대들처럼 보인다. 엠지세대는 그 누구도 자신을 가리켜 우리 엠지세대야, 우리 제트세대야, 하고 하지 않는다.


티피코시는 서태지와 당시 김남주 등 협연으로 인기를 끌다가 세대가 변해감에 따라 거의 사라졌다가 요즘 다시 론칭을 하고 있다고 한다. 유행이란 그렇게 돌고 도는 거란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몰랐다가 후에 1집의 난 알아요가 밀리 바닐리의 ‘걸 유 노우 잇’를 따라 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표절시비와 무관하게 좀 웃긴 건 밀리 바닐리는 공연에서 대부분 노래를 직접 부르지 않고 립싱크를 했다고 한다. 아마 한 번도 실제로 불러 본 적이 없다고 했지. 서태지와 아이들 2집에서는 ‘우리들만의 추억’의 음이 꼭 오락실에 있는 보글보글의 음악과 비슷하게 들린다.


나는 2집에서 ‘죽음의 늪’이 너무 좋다. 그 노래를 들었을 때 시작할 때 두구두구당 하며 시작되는 음악이며 죽음의 늪이라는 게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은, 내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주 나쁘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 그 사람이 어느 날 밤 저기에 보이는데 조심 다가가서 보니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그런 느낌이 드는 노래다. 혼자 이 가사가 말하는 이야기는 철학적이야,라며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한 곡을 고르면 ‘죽음의 늪’이다.


제로 콘서트에서의 죽음의 늪. 몸을 때리는 굉장한 사운드가 너무나 좋다. https://youtu.be/Z-CIagrd29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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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관통하는 결락의 결정체, 배위와 모순, 사랑을 하면서 환희와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이 미친 음악, 말러의 아다지에토는 많은 영화인들이 영화에 사용하고 있다. 아다지에토가 영화 역사상 가장 잘 어울렸던 영화가 ‘베니스에서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영화의 숨결 자체가 아다지에토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가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이다.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의 선율이 몹시 아름답고 마음을 지그시 누르는 이유는 타악기나 관악기가 사라지고 현악기로 연주되기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이 말러 교향곡 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와 한 몸인 이유는 헤어질 결심이 서래의 이야기이며, 아다지에토가 서래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러는 아다지에토를 사랑하는 아내 알마 쉰들러를 위해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1910년 병으로 쓰러질 때까지 이 곡을 수정에 수정을 거쳤다.


알마는 1902년 말러와 결혼을 하지만 알마는 독일 예술 학교인 바우하우스 이념의 창시자인 그로피우스와도 사귀고, 화가 코코슈카하고도 사귄다. 그의 엄청난 그림 ‘바람의 신부’ 속 여인이 알마 쉰들러다.


처음 말러가 알마를 위해 아다지에토를 작곡했을 당시에는 이 곡은 그야말로 사랑으로만 충만했다. 하지만 수정에 수정을 거듭할수록 불안, 사라지는 것, 잊힘, 그리움, 죽음이 곡에 스며들게 된다. 사랑을 하게 됨으로 그 행복 속 결락과 죽음을 보게 된다.


헤어질 결심의 서래가 알마를 쏙 빼닮았다. 영화 초반 서래의 남편이 산에 오르면서 이런 대사를 한다. “말러 교향곡 5번 1악장부터 듣기 시작하면 4악장이 끝나갈 무렵 산 정상에 오른다. 그리고 산 정상에서 5악장을 듣고 내려온다.” 하지만 마지막 5악장은 듣지 못한 채 추락사하고 만다.


아다지에토는 산으로 시작해서 바다로 끝난다. 헤어질 결심 역시 산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바다에서 끝이 난다. 영화 속 미장센을 들여다보면 문형과 색감에서 잘 드러난다. 서래 집 벽지는 산인지 바다인지 모호하다. 박찬욱 사단으로 불리는 류성희 미술감독의 작품이다. 류성희 미술감독의 손을 거치면 영화 속 미장센이 마치 움직이는 예술품으로 보이는 마법이 펼쳐진다.

류성희 미술감독과 박찬욱

류성희


아다지에토는 카타르시스인 동시에 죽음을 표현한다. 불꽃처럼 만개하는 동시에 소멸하는 삶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에서 안개가 잔뜩 낀 산과 바다를 표현했다. 말러의 아다지에토는 헤어질 결심의 테이크 테이크 사이의 결, 그 숨결 사이에 녹아있다.


클래식 마니아인 박찬욱은 8년 전 탕웨이가 코오롱 스포츠 광고에 말러의 아다지에토와 함께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내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헤어질 결심의 마지막 장면에 그 장면을 오마주 했다. 코오롱 스포츠 광고 속 흐르는 아다지에토의 탕웨이는 너무 예쁘다. 헤어질 결심에 아다지에토가 흐른다. 서래는 말한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죠.


편집을 너무 잘했다. 영화 이야기와 아다지에토가 절묘 https://youtu.be/-MF0hJNqk2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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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많은 소설 속에 드러나는 인간 내면의 깊은 감정 중에 결락이 많이 나온다. 결락이란 말 그대로 있어야 할 부분이 빠져서 떨어져 나간 것을 말한다. 그래서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마음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난 뒤 심각한 결락감을 느끼고 그 공백을 채우려 안간힘을 쓴다.


이 결락을 가장 잘 느끼게 하는 음악이 말러의 아다지에토이며, 결락감을 견딜 수 없어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가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다. 말러리안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말러의 교향곡 아다지에토가 영화 내내 흐르는데 요동치는 가슴을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어째서 아다지에토는 이토록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까. 말러는 아다지에토를 1901년에 작곡을 했는데, 그때 41살의 말러는 작곡가, 지휘자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당시 최고의 여인, 말러보다 19살이나 어린 작곡자이자 사교계의 여인 알마 쉰들러의 사랑을 얻게 된다. 말러는 알마에 대한 사랑을 담아서 아다지에토를 작곡하고 그녀에게 헌정했다.


음악이, 그리고 그 울림이 당신을 향한 나의 열망을 더욱 이끌어낸다면, 당신은 매일 아침 이 곡을 듣게 될 것입니다. 당신을 향한 당신을 위한 모든 것은 내 안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알마 – 말러로부터


그런데 이 사랑하는 곡이 어째서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쓰이면서 영화를 명작으로 만들고, 이후 수많은 모순의 사랑을 담아내는 영화에 등장했을까. 알마에 의하면 말러는 늘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베니스의 죽음은 71년의 영화로 주인공 구스타프 에센바흐는 점점 몸이 쇠약해져 가기 시작해서 베니스로 요양을 오게 된다. 지휘자로 명성을 떨치던 에센바흐는 대중에게 버림받고, 아내마저 자신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에센바흐는 살아갈 의미를 잃어버린 채 결락감에 하루하루를 보낸다.


에센바흐는 아름다운 죽음을 생각한다. 자신의 몸보다 자신의 예술이 죽어가는 것에 대한 결락은 에센바흐의 몸과 마음에 곰팡이를 피우게 한다. 이렇게 꺼져가는 마음을 다시 뛰게 하는 건 베니스에서 만난 아름다운 소년 타지오였다. 너무나 아름다운 미소년에서 자신의 결락의 공백을 메워줄 무엇을 보았다.

이 미치도록 아름다운 소년에게 에센바흐는 몸과 마음을 전부 사로잡혀 버린다. 소년 때문에 좌절이 오고, 소년 덕분에 희망이 번갈아 찾아오면서 말러의 아다지에토가 흐른다. 모순이 동시에 공존하는 이율배반의 미학을 아다지에토가 보여주고 있다. 그 사이의 결이 너무나 섬세하여 새벽의 몽환화가 사람의 손끝에 놀라 꽃을 틔울 정도로 섬세한 음악이 아다지에토이다.


이 영화는 토마스 만의 소설을 비스콘티 감독이 구스타프 말러를 모델로 하여 원작의 작가를 영화 속에서 작곡자이자 지휘자로 변경했지만 이 영화는 지금까지 너무나 좋은 영화로 남아있다.


아다지에토에는 미칠 것 같은 결락과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할 용기와 마음속에서 요동치고 멈추지 못할 것 같은 사랑의 감정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 아다지에토가 영화 ‘베니스의 죽음’보다 더 영상과 한 몸이 된 작품이 있다. 영화의 모든 장면과 내용, 그리고 주인공들이 내쉬는 숨결에 붙어서 아다지에토가 느껴지는 영화가 바로 ‘헤어질 결심’이다.


https://youtu.be/JvQewVDzv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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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신부

영화 포스터


말러가 한평생 사랑한 여인, 검은 밝음과 하얀 어둠을 지닌 여자 알마 쉰들러, 결혼 후 알마 말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바람의 신부다. 그리고 화가 코코슈카의 그림의 제목이기도 한 바람의 신부. 그림 속 격정적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이 코코슈카와 알마다.

바람의 신부


이 영화에 나오는 알마와 말러 그리고 코코슈카는 실물과 싱크로가 대단하다. 알마는 루살로메를 닮았다. 릴케의 사랑을 받았지만 니체의 사랑도, 프로이트의 사랑도 받았던 루. 그런 루와 닮았다. 루와 알마는 어린 나이에도 당대 최고의 시인이며 문학가, 작곡에도 능력을 보였다.


알마는 화가, 작곡가, 지휘자, 건축가와 사랑을 했다. 클림트, 쉰베르크, 쳄린스키 등. 알마는 그림 ‘바람의 신부’처럼 바람과 같은 삶을 살았다. 40세까지 독신으로 저녁 자리에서도 작곡만 하는 말러를 알마는 만난다.  말러 교향곡 1번을 듣고 [금관이 과도하여 주된 멜로디가 없다. 문명화되지 않고 주제가 복잡하고 반복이 너무 많다. 지나치게 이국적이다] 같은 막힘없이 말러의 음악을 비평했다. 말러는 이 당돌한 어린 아가씨에 반하게 되어 둘은 사랑에 빠진다.


알마는 쳄린스키와 만나고 있었지만 말러에게 반해 23살 꽃 같은 나이에 19살 차이가 나는 말러와 결혼을 한다. 결혼을 하며 알마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포기한다. 그녀가 얼마나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냐면 말러의 교향곡 리허설을 듣고 그 선율을 바로 피아노로 연주해 버릴 정도였다. 알마는 모든 재능을 포기하고 말러의 아내로 두 딸의 엄마로 지낸다.


하지만 큰 딸을 잃고 난 후 알마는 조금씩 심경의 변화가 찾아온다. 알마의 아버지는 당시 비엔나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에밀 야곱 쉰들러였다. 그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았지만 말러는 자신을 묶어 두려고만 했다. 완벽주의자 말러는 알마를 마치 선생님이 학생을 훈육하듯 대했다. 알마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비서처럼 부려먹는 것이라 여기고 건축가 그로피우스와 바람을 피운다. 하지만 말러를 배반할 수 없어 곁을 지킨다.


그러나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말러는 지병이 악화되어 51세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사랑과 배반, 불안, 아름다운 죽음을 느낀 말러는 알마에게 헌정한 아다지에토를 죽기 직전까지 수정하고 수정했다. 알마는 말러가 죽고 그로피우스와 결혼하려 하지만 건축가의 어머니 반대로 무산된다. 그리고 코코슈카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그림의 모델이 되어 주면서 불같은 사랑을 나눈다.


알마는 코코슈카의 온 마음을 뒤 흔들었다. 그림 바람의 신부는 코코슈카의 그림 중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바람의 신부는 두 사람의 불 같은 사랑을 가슴에서 그대로 뿜어져 나오는 거친 화풍으로 그렸다. 코코슈카는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운동의 대표라 불리는 화가였으며 미술계의 프로이트라 불렸다. 알마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어가며 코코슈카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불같은 사랑을 나누던 두 사람은 이어지지 못한다. 코코슈카가 군대를 가면서 헤어지게 된다. 알마는 코코슈카가 군대에서 총상으로 사망했다는 소문을 듣고 건축가와 다시 만나 결혼을 하여 아이를 갖게 된다. 후에 살아서 군에서 돌아온 코코슈카는 알마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녀를 잊지 못하고 병적으로 그녀를 갈망하여 알마를 닮은 사람만 한 인형을 제작해서 데리고 다니며 같이 생활했다. 이 인형은 검색을 하면 볼 수 있다.


알마는 건축가와의 결혼생활이 오래가지 못했다. 잦은 해외 출장과 함께 아들이 친부인가 하는 문제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시인이자 소설가인 프란츠 베르벨에게 빠져들어 10년 동안 동거를 하다 결혼을 하게 된다. 알마 쉰들러는 그렇게 해서 얻은 이름이 ‘알마 마리아 말러 그로피우스 베르펠’이 된다.


알마는 자신의 남자들이 걸작을 남기지 않으면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다. 알마는 코코슈카와 함께 지낼 때에도 말러의 두상 조각품과 사진을 집에 걸어 두었고, 건축가 그로피우스와 지낼 때에는 코코슈카가 그린 자신의 나체 소묘를 벽에 걸어 두었다. 같이 사는 남자들이 그것에 불만을 드러내면 알마는 “그들은 내 삶의 일부였다고”라고 일축했다.


영화는 알마가 작곡한 가곡을 발표하면서 끝이 난다. 알마의 첫 입술을 훔친 사람이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다. 클림트의 ‘키스’ 속 여인이 알마 쉰들러다.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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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노 요코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우리에게는 카우보이 비밥 ost로 잘 알려진 음악가 칸노 요코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음악도 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칸노 요코도 말러의 교향곡 아다지에토를 무척이나 좋아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네 자매가 바닷가를 거니는 엔딩 장면에 마지막을 장식하는 음악이 흐른다. 그 엔딩 곡을 듣고 있으면 네 자매가 살아오면서 지치고 부딪히고 힘들어하면서 불안을 딛고 가족이 되어 가는 모든 순간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막내 스즈와 세 언니들은 전혀 닮지 않았는데 같이 지내면서 점점 하나둘씩 닮은 점을 알아간다. 매사에 꾹꾹 참고 견디는 건 큰 언니 사치와 닮았고, 술을 마시고 용감해지는 건 둘째 언니 요시노와 닮았다.


낚시를 즐기는 셋째 언니 치카는 스즈가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자주 했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처음 본 동생과 기억이 없는 아버지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치카가 만든 어묵 카레를 먹으며 스즈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1도 없는 치카 언니와 아버지와의 추억으로만 가득한 스즈는 그것을 공유한다.


이 모든 이야기가 칸노 요코의 마지막 엔딩곡에 스며들어 흐른다. 음악의 분위기도 말러를 닮았다. 이 영화는 영화 시작 18분부터 가슴이 따뜻해지더니 마지막까지 그 따뜻함을 유지한다.


온 마을 사람들이 스즈를 있는 그대로 가족으로 받아준다. 고래 뱃속 같은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스즈를 가족처럼 대한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모두가 하나같이 슬퍼한다. 떠난 사람은 남겨진 사람들이 기억해 주고 남겨진 이들은 서로를 위로한다. 피를 나누지 않아도 그들은 가족이 된다. 그런 가족에게 스즈는 사랑받는다. 보는 이들도 스즈를 통해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칸노 요코의 엔딩 곡은 마지막 네 자매의 이야기가 The end가 아니라 The and로 끝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https://youtu.be/O6R9av6Zj4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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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지에토와 탕웨이를 가장 어울리게 담아 놓은 영상이 바로 거의 십 년 전 코오롱 스포츠 광고 영상이다. 바다와 탕웨이가 펼치는 아다지에토를 보며 박찬욱 감독은 이미 탕웨이의 사랑을 표현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을 것이다. 말도 못하게 예쁘게 나오는 분당댁 https://youtu.be/tNKxAoi-M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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