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치기를 끓이는데 방울토마토를 넣고 오렌지를 넣었는데 옆에서 난리다. 오렌지를 왜 넣냐고. 그러나 막상 완성이 되고 난 후 먹어보면 확 달라진다. 오렌지는 달다, 거기에 짠맛을 흡수해 버리면 단짠의 매력을 잔뜩 가진다. 너무 맛있다. 게다가 과일이건, 채소건 차갑게 먹는 것보다 뜨겁게 조리해서 먹는 게 훨씬 맛있단 말이지. 탕수육 소스를 생각하면 간단하다. 탕수육 소스는 과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과일이 많이 들어간다. 그렇게 뜨겁게 만든 소스가 탕수육과 만나서 맛이 두 배, 세 배가 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과일이 음식을 조리하는데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처럼 생각을 한다. 이를 문화적으로 좀 더 넓혀보면 한때 가수 솔비가 제대로 배우지 않고 그린 그림으로 이름이 알려지고 비싼 가격에 그림이 팔려 나간다고 해서 그쪽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사람들이 솔비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배우들, 가수들 중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정우가 대표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하지원도. 그림 때문에 고생고생을 한 조영남도 있고, 이번에는 강원래도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작품전을 했다.


그 짝 계통의 사람들, 미술가들,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들은 입지가 좁아진다며 제대로 배우지 않고(그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서-그림이 유통되고 브로커를 어떤 방식으로 통해서 이러쿵저러쿵) 그린 그림들을 전시하고 팔아먹는다고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쏟아냈다. 대표적으로 홍대 이작가, 이규원 화가가 유튜브에 나와서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대중은 누군가를 비난하는 걸 재미있어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우르르 이작가의 말을 응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의사가 소설을 써서 소설가로 데뷔를 하거나, 화가가 소설집을 발표하거나, 엔지니어가 장편소설을 썼다고 해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프로 소설가들이 그들을 비난하거나 또는 비판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새로운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일을 하던 사람들이 소설을 발표했기에 읽어 보니 괜찮더라, 같은 말을 하기도 한다. 인기 있는 소설가들, 우리가 좋아하는 김영하 소설가나 태백산맥의 조정래, 왼쪽의 황석영 소설가나 오른쪽의 이문열 소설가 역시 이념이나 사상에 무관하게 소설가가 아닌 사람이 소설을 썼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새로운 장르의 소설이 10만 부가 팔려 나갔다고 해서 나의 소설 10만 부가 팔리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입지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어보면 소설가가 즉 하루키가 한 번은 사린 가스 사건으로 도쿄 지하철 사건을 취재해서 쓴 '언더그라운드'를 두고 일본의 논픽션 전문 작가들에게서 혹독한 비판을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소설가들은 다른 전문인들이 소설을 썼다고 해서 비판하기보다 오히려 호기심이 발동해서 기회가 닿으면 마주 앉아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때로는 격려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소설은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거의 누구라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나 발레리나로 데뷔하려면 어릴 때부터 길고 험난한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소설이라면 문장을 쓸 줄 알고 불펜과 노트가 손 맡에 있다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면 전문적인 훈련 따위는 받지 않아도 일단 쓰여버린다.


그래서 ‘소설을 누구라도 쓸 수 있다는 건’ 하루키가 보기에, 소설에게는 비방이 아니라 오히려 칭찬이라는 것이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프로레슬링 같은 것이다. 링도 상당히 널찍하고, 참여를 저지하고자 대기하는 경비원도 없고 심판도 그리 빡빡하게 굴지 않는다. 현역 선수들도 누구라도 다 올라오십시오,라는 기풍이 있다. 개방적이다. 손쉽다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상당히 대충대충일 수 있다고 하루키는 말했다. 하지만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거기서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다. 소설가는 물론 그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소설 한두 편 써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 이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보통 사람은 일단 못 할 짓, 이라고 말해버려도 무방할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어떤 특별한 것이 점점 필요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나름의 재능은 물론 필요하고 그만그만한 기개도 필요하다. 또한 인생의 다른 다양한 일들과 마찬가지로 운이나 인연도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어떤 종류의 자격 같은 것이 요구된다. 어찌 되었던 소설가로 계속 살아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냉엄한 일인지, 소설가는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소설가는 다른 전문 영역의 사람이 로프를 넘어 소설가로 등단하는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포용적이고 대범한 게 아닐까라고 하루키는 말했다. 자, 올 테면 얼마든지 오시죠,라는 태도를 많은 작가들은 취하고 있다. 혹은 누군가 새로 들어와도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만일 새로 들어온 사람이 얼마 안 돼 링에서 밀려난다면, 혹은 스스로 내려간다면 아, 가엾게도,라든가, 그럼 안녕히,라고 할 것이고, 만일 그 사람이 노력해서 끝까지 링에 남는다면 그건 물론 경의를 표할 만한 일인 것이다.


소설을 떠나 모든 예술이 진입 장벽은 그리 높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하다가 안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홍대 이작가는 유명한 연예인들이 그림을 어설프게 그려서 미술가들의 밥그릇을 빼앗아가는 것을 탐탁지 않게 말을 했다. 그러나 대중을 그렇게 너무 띄엄띄엄 봐서는 안 된다. 만약 미술가들이 그런 점이 별로라면 미술가들이 연예 활동을 하면 된다. 대중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그린 그림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연예인의 모든 모멘텀을 구매하는 것이다. 연예인이 유명해지기 위해 연예인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개고생을 했나. 그걸 딛고 일어나서 연예인으로 유명해진 다음 그리고 싶은 그림을 언젠가부터 그렸다. 대중은 그 모든 것을 구매하는 것이다.


요즘 가장 말 많고 탈 많은 남태현이 그린 낙서도 팬들은 천만 원에 구입을 한다. 일반인이 봤을 땐 너무나 터무니없는 일이지. 예술계라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미술계도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왜? 이 같은 일들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테니까.


때로는 상상력으로만 쓰인 소설이나 영화가 비평가들에게 쓴소리를 듣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냐하면 평소에 뚱딴지같은 생각을 가지고 뚱딴지같은 행동을 하고 말을 하는 예술가가 그걸 글이나 영상으로 표현을 했는데, 너무나 많이 배우고 똑똑하고 현명한 비평가들이- 그들의 생각과 그들만의 시간의 흐름과 그들의 정확한 틀 속에서 상상력만으로 표현하는 결과물을 평가하려니 쓴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모든 건 대중이 알아서 한다. 대중이 우매하기도 하지만 문화의 주도를 이끄는 것 역시 대중이다. 예술가들끼리 좋아서 희희낙락해 봐야 큰 발전이 없을 수 있다. 대중이 좋아해 주고 응원해주지 않으면 전부 허빵이다. 오렌지가 두루치기에 들어왔다고 이상하게 볼 필요가 전혀 없다. 일단 먹어보면 맛있다. 예술이라는 게 뭐 그런 거 아닌가. 내가 좋아하는 화가들, 마를렌 뒤마나 설치 미술가 트레이시 에민 그리고 우국원 화가는 입지 같은 거 따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너무 유명한 사람들이잖아요,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가만히 앉아서 그저 붓놀림으로만 유명해지지는 않았다는 걸 그 짝 사람들이 모르지는 않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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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난 뒤에 교복 바지를 좀 걷어 올린 다음 창가에 건방지게 앉아서 김현식을 듣고 있으면 겁나 멋있었다. 개뿔도 모르면서 김현식의 음악에 대해서 주절주절 거렸다.


이쪽에서는 메탈리카와 메가데쓰를 이야기하고, 저쪽에서는 유리스믹스 파들이 있고, 또 다른 쪽에서는 루나 씨, 엑스 제팬의 히데 파들이 있었다. 아무튼 그 녀석들은 유행하는 가요는 취급을 하지 않았지만 부활, 시나위, 블랙홀에 관해서는 살벌할 만큼 좋아했고, 유치하게 대립을 했다. 생각해 보면 중고딩시절에 나는 음악이 없었으면 어떻게 지냈을까, 하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것도 없고. 아 그러고 보니 미술대회에는 초중시절에 몇 번 나갔다. 그 덕분인지 대학교 때 건축과 아이들의 투시도를 그려주고 밥도 실컷 얻어먹었다. 아무튼 학창 시절에 어른들이 보기에 진절머리가 나도록 음악을 들었다. 뭐 그것밖에 할 게 없었다. 물론 아주 시끄럽고 정신 사납고 멘탈이 와그작 무너질 것 같은 음악들.


그 속에서도 김현식은 독보적이었다. 김현식을 듣고 있으면 여기저기 음악적 분파들도 아무런 소리를 하지 않았다. 김현식 하면 따라다니는 말이 많았다. 전설, 싱어 송 라이트, 진정한 아티스트이자 폭군, 술꾼이라는 것.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면 죽는다고 의사가 말했을 정도로 간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술을 더 이상 마시면 안 되지만, 이 앨범, 6집을 녹음하던 중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노래를 완성할 수 없다며 노래를 부를 수 있게 술을 마시게 해 달라고 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하지만 결국 6집을 완성하지 못한 채 1990년 11월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후배들이 노래를 못 부르면 의자도 집어던질 정도로 노래에 집착했다고 하는데 김현식이 술에 입을 댄 것이 밴드 활동으로 풍부한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해체하고 난 후 힘든 시기를 거쳤을 때지 싶다.


김현식은 그때 다시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이 되는데 그 해가 87년 11월이었다. 김현식은 독기를 품고 4집을 발표하는데 4집의 수록곡들이 무척 좋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언제나 그대 내 곁에’는 정말 좋아 죽을 것 같은 노래다. 그러나 4집의 멋들어진 노래들은 조금 우울하고 어둡고 깊은 그리움과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노래들이었다. 88년 당시 한국은 올림픽으로 인해 굉장히 붕 떠 있던 시기였다. 김현식의 노래가 대중의 사랑을 얻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거지.


김현식은 신촌블루스의 객원보컬로 노래도 부르고, 89년에 나온 ‘비 오는 날의 수채화’의 주제곡을 녹음할 때부터 슬슬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곽재용 감독의 ‘비 오는 날의 수채화’는 그럴 것 같지 않지만 보면 참 재미있다. 곽재용 감독을 가장 잘 나타내는 영화가 ‘클래식’이다. 그리고 ‘엽기적인 그녀’다. 곽재용은 사랑을 늘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곽재용 식 판타지가 있다.


특히 영화 ‘중독’에서는 깜짝 놀랄 정도의 반전이 있었다. 엽기적인 그녀가 탄생되는 배경을 그린 영화, 그 이전의 이야기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래에서 현재로 와 버린 어마무시한 사이보그 그녀, 아야세 하루카를 데리고 만든 ‘싸이보그 그녀’가 정말 곽재용 식 사랑을 잘 표현했다. 이 모든 곽재용 세계관의 시작이 아마도 ‘비 오는 날의 수채화’가 아닌가 싶다.


그 주제가를 요즘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는 권인하 그리고 강인원, 김현식이 함께 불렀다. 김현식의 가장 매력이라고 하면 바로 우리가 좋아하는 그 허스키한 목소리다. 그로울링으로 거칠게 내뱉는 김현식의 독보적인 목소리가 노래에 젖어들게 만든다. 김현식은 소울, 록에도 어울리지만 블루스에 정말 끝장이었다.


6집에서 한 곡을 고르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추억 만들기’를 듣자. https://youtu.be/LMNJiA6Xlz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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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고 소주가 한 잔 당기는 날이라 돼지찌개를 한 번 끓였다.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게도 물 넣고, 호박 넣고, 두부 넣고, 파 넣고, 양념 넣고 돼지고기 넣고 끓이면 된다. 너무나 간단하다. 뭐 국 간장? 고춧가루? 같은 건 넣지 않는다. 간을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경험상 대충 이렇게 끓이면 어느 정도 맛있기 때문에 그냥저냥 맛있다. 돼지고기는 비계가 붙은,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돼지고기 부위를 잔뜩 집어넣으면 된다. 딱 저렇게 비계가 붙은 고기에서 나오는 기름 때문에 돼지찌개가 끓으면 맛이 좋다. 숟가락으로 밑바닥을 훑으면 두부가 잔뜩 들어있어서 입천장이 홀라당 다 벗겨지며 후후 하며 먹으면 된다.


이런 마이너 급의 비교적 저렴한 돼지찌개 집이 있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 집의 단골(까지는 아니지만)이었다. 그 돼지찌개 집은 좀 기묘해서 손님의 98%가 남자손님이었다. 2%는 뭐냐? 2%는 남자친구를 따라온 여자 손님이었지만 일단 한 번 와서 먹고는 대부분 다시는 오지 않았다. 허름한 식당으로 새시로 된 여닫이문을 드르륵 열면 오래된 형광등이 아슬아슬 달려 있는 집이었다. 아슬아슬한 형광등만큼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돼지찌개 집주인이었다.


돼지찌개에 들어가는 고기는 썩 좋은 고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돼지찌개 집에서 돼지찌개를 먹는 그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다. 돼지찌개 안에 고기가 상당했다. 숟가락으로 휘저으면 거짓말 좀 보태서 국물보다 고기가 더 많았다. 땀을 흘려가며 건져 먹는 맛이 좋았다. 비계에서 흐른 기름이 찌개에 떠 있어서 더 맛있었다.


풍채가 좋고 늘 같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고 머리가 새하얀 할머니가 식당을 했는데 4인용 식탁이 4개가 전부였다. 여자들은 좋아할 만한 분위기의 식당은 아니었다. 하지만 98%가 남자손님인 데에는 그 이유가 명확했다. 춥고 배고픈 겨울에는 정말 좋은 식당이었다. 매콤한 돼지찌개를 퍼서 밥 위에 올려 후룩 먹는 맛이 좋았다. 몸도 데워지고 배도 불렀다. 그러나 여름에는 못 갈 곳이었다. 결정적으로 에어컨이 없었다. 선풍기가 있었지만 여름의 그 찜통 같은 더위를 식혀주지 못했다. 그런 식당이라 손님이 없을 것만 같은데 땀을 뻘뻘 흘리며 돼지찌개를 먹는 남자 손님들은 늘 있었다. 테이블이 4개가 전부라 손님이 많지는 않았지만 절대 끊어지지 않았다.


만약 여름에 남자친구를 따라왔다가는 화장이 전부 홀라당 지워질 정도로 땀이 나고 입은 옷이 땀 때문에 엉망이 되기 때문에 여자 손님들은 오지 않는 집이었다. 주로 남자손님들, 그것도 20대 남자 손님들이 많았다. 식당이 꾸질꾸질하고 초췌해서 어디 바닷가 외진 곳에 있을 것만 같지만 아주 번화한 다운타운의 뒷골목에 위치해 있었다. 오래된 식당으로 그런 식당들이 도시마다 있다. 그리고 다운타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남성 보세 옷 가게나 신발타운, 휴대전화 파는 곳에서 일하는 남자들, 피시방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백화점에서 일을 하는 젊은 남자 직원들이 돼지찌개 집의 주 손님이었다.


그래서 식사시간이 되면 작은 골목으로 들어와서 담배를 한 대 맛있게 피우고 돼지찌개 집으로 들어와 배부르게 먹고 갔다. 가격이 저렴했고 밥은 원하는 대로 퍼 먹을 수 있었다. 한 명이 와도 국밥처럼 돼지찌개 일 인분이 되었는데 두 명의 양이나 한 명의 양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녁이면 돼지찌개에 소주를 마시는 근처 젊은 손님들이 있었다. 눌러앉아서 오랜 시간 마시는 게 아니라 밥을 먹으며 소주를 반주로 후루룩 먹고 나갔다.


우리는 여름에는 가지 않았지만 추운 날이면 가끔 가서 돼지찌개를 먹곤 했다. 이상하지만 썩 맛있지 않은데 맛있었다. 겨울에 가서 보면 자리가 꽉 차서 다른 곳으로 가기 일쑤였지만 자리가 비면 얼른 가서 앉아서 돼지찌개에 밥을 먹었다. 메뉴도 돼지찌개 달랑 하나다. 참 희한한 식당이었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가 굽은 등으로 돼지찌개를 팔았는데 어느 순간 가게가 문을 닫았다.


그 골목은 그런 식당이 죽 붙어있는 골목인데 돼지찌개 집이 문을 닫은 후로 다른 식당도 점차 사라졌다. 중간에 코로나가 끼면서 골목에서 오랫동안 자리 잡고 저렴하게 음식을 만들어 팔던 식당들은 대부분 없어졌다.


조금 없어 보이고 덥고, 조금 춥지만 하하 호호 뭐 이런 소리가 가득했던 식당들이었다. 그때에도 물가가 올라서, 같은 소리를 들었지만 할머니는 너네 먹을 만큼 먹고 가,라는 식이었다. 불과 몇 해 전의 일인데 아주 오래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오늘의 선곡은 돼지찌개 집에서 티브이로 많이도 봤던, 하염없이 눈물이 나~~ 제아의 후유증이다. 라이브 너무 잘 하는 거 아니야. https://youtu.be/YySS1GOlW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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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매일 듣는데 한 라디오 사연에 20년 지기 친구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20년 지기 친구인데 빌려준 돈을 가지고 영영 달아나 버렸다는 그런 사연이었다.


나는 그 사연을 들으며 생각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연수에 그렇게 매달리는 것일까. 연수가 오래되면, 특히 인간관계에서 알고 지낸 기간이 길면 어째서 친밀한 사이라고 믿어버리는 걸까.


20년 지기 친구라고 해도 20년 동안 몇 번을 만났을까. 가끔 티브이에서 우리는 1년에 한 번 만나는 사이지만 매일 보는 사이처럼 너무나 친밀해요, 같은 연예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연예인들은 우리와 너무나 동떨어져서 그런지 뭐 그렇다고 하자.


고등학교 때 친구가 찾아와서 나에게 뭔가를 부탁했다. 만약 이 친구가 4개월 전에 만난 사회의 친구이고 4개월 동안 주욱 만나는 사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그 부탁을 들어줄 의향이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친구라도, 설령 그 당시에 죽고 못하는 친구였다고 해도 10년 동안 연락이 없다가 느닷없이 나타나서 우리 친구잖아?라고 하는 건 뭔가 이상하다. 내가 그전에 뭔가를 부탁했거나, 손을 내밀었다면 모를까.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지내면서 – 아버지가 병원생활을 2년 동안 할 때에도, 그리하여 나의 생활이 무너졌을 때에도 친구들에게 뭔가를 부탁하거나, 손을 내밀지 않았다. 특히 돈에 관한 것은 누구에게도 빌려달라고 한 적도 없고 빌려준 적도 없다. 좀 이상하게 살아와서 그런지 아직 대출도 한 번 없다.


라디오의 사연에서 20년 지기 친구라고 치고, 그 친구와 20년 동안 몇 번 만났을까. 매일 한 시간씩 만날까. 성인이 되면, 그리하여 각각 가정을 이루고 나면 힘들다. 그래서 인간은 어쩌다 만나서 수다를 떨며 가정생활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그럼 여기에서 친구보다 더 밀접한 관계인 가족, 부모나 형제자매가 친밀한 관계인가. 정희진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인 제도, 가장 부패한 제도, 가장 비인간적인 제도는 가족이다. 가족은 곧 계급이다. 교육문제, 부동산 문제, 성차별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다. 부(자본) 뿐만 아니라 문화, 자본, 인맥, 건강, 외모, 성격까지 세습되는 도구다. 간단히 말해 만악의 근원이다]라고 했다. 물론 지나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성인이 되어 갈수록, 나이가 들어 갈수록 가족은 힘이 되기보다 짐이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김소연 시인도 가족에 대해서 [우리는 아주 친밀한 사람에게 ‘가족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특별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실재하는 가족은 특별함을 일찌감치 지나쳐 온갖 문제가 산적한 집합체가 되어 있다. 우리들 내면에 간직된 상처의 가장 깊숙하고 거대한 상처는 대부분 가족으로부터 얻은 것이다]라고 했다.


가족도 그런데 고작 20년 지기 친구라고 해서 친밀한 관계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연수로 묶어서 관계를 결정짓은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인간은 이상하게도 친구를 좋아한다. 친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친구일까. 학창 시절에는 친구가 분명하게 있다. 매일 교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고 밥을 같이 먹고 같이 놀고 같이 자니며 비밀을 공유한다.


부모보다 선생님보다 당연하지만 친구가 좋다. 여자 친구에게 하지 못하는 말도, 남자 친구에게 열받는 일도 친구끼리는 같이 나눈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어 갈수록 그때만큼의 생각을 가지기는 힘들다. 오로지 친구만 생각하기에는 눈앞에 닥친 일들이 많고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매일 넘치기 때문이다. 만나고 연락하는 문제보다 친구를 친구로 얼마나 생각하느냐에 대한 문제가 성인이 되면 상기해야 한다. 아내가 친구를 싫어할 수 있고, 반대로 아내가 자신보다 친구를 더 좋아할 수도 있다.


김영하 소설가는 [살아보니 친구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편이다. 친구를 훨씬 덜 만났더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이라고 김영하 소설가는 말했다. 쓸데없는 술자리에 너무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어떤 남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 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 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결국 모든 친구들과 다 헤어지게 된다.라고 했는데 공감이 너무 간다.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친구라고 해서 정녕 친구인가. 그것에 대해서 한 번 생각을 해본다. 운동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조깅을 한 지 10년 정도 되었다고 하면 모두가 와 대단하네, 같은 말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은 조깅을 전혀 해보지 않거나, 1, 2년 정도 하다가 그만둔 사람들이다.


여기서 1, 2년 조깅을 했다,라고 하지만 그 1년 동안 얼마나 달렸는가 따져보면 참담한 수준일 것이다. 일주일에 3, 4일씩 달려도 1년이 지나면 1년 달렸다고 퉁 친다. 하루에 30분 정도, 2킬로미터를 달렸어도 매일 많은 거리를 달렸다고 퉁친다.


그날 한 운동은 그날로 잊어야 한다. 오늘 조깅을 8킬로미터 달렸다면 그건 오늘로 끝인 것이다. 그걸 죽 끌고 다니며 나 얼마나 달렸네, 운동했네 같은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일 년을 꼬박 한 시간 이상씩 조깅을 해도 명절에 이틀 정도 방구석에서 맛있는 거 먹고 나면 이전에 아무리 조깅을 했다고 해도 무용지물이다. 배가 나오고 등살이 붙는다.


그러니 연수로 뭔가를 보상받으려는 그 이상한 일반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친구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친구가 괜찮은 친구다. 친구라고 해서 죽고 못 살고 없으면 안 되는 건 사춘기 때나 어울린다. 아니다, 요즘은 그것도 별로다. 요즘은 예전처럼 친구가 힘들다고 하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보다 약을 권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가장 마음에 든 장면은 두 덩어리의 돌멩이가 되었을 때다. 돌은 겉과 속이 같다. 인간은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없다. 얼굴은 참 착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그 속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20년 동안 알고 지낸 친구도 돈을 빌려 도망을 가지. 그러나 돌이 되었을 때는 순수하게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된다. 친구라면 적어도 돌멩이 같은 친구가 나에게도, 또 상대방에게도 옳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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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뉴스를 본 사람들 백 퍼센트에 가깝게 기자의 직업정신과 걱정과 함께 극한 직업에 대한 댓글이 이어졌다.


엄청난 하루살이 떼가 나타났다. 사람에게는 아무런 해를 주지 않는다며 기자는 투철한 직업정신을 발휘했다.


그러면서 정부 관계자의 인터뷰가 나왔다. 병충해가 없고, 입이 퇴화해 사람을 물지 못하며 주 서식지가 상수보호구역인 한강이라 약품을 뿌릴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는 말은 조금 거짓말을 보태서 동양하루살이 떼가 나타난 엄청난 곳을 지나가야 한다면 기자처럼 몸에 수백 마리를 붙이고 지나가라는 말이다. 아무런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잔말 말고 지나가라는 거다.


이 사진의 뉴스는 한 일주일 전인데, 5월 28일 자 뉴스에도 동양하루살이 떼에 관한 기사가 있다. 앵커의 첫마디가 ‘도심 곳곳에서 하루살이 떼 습격으로 시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였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86185&ref=A


인체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데 사람들은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계당국은 해가 없으니 그냥 살아란 말이야, 너희들 도대체 뭐가 문제야?라고 하는 것만 같다.


벌레라는 게 인체에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더라도 한 마리가 붕 하며 나타나도 기겁을 하게 된다. 이 동양하루살이는 벌레 중에서는 3센티미터, 날개를 펴면 5센티미터로 꽤 큰 편이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공포는 충분하다. 개체가 상상이상이 되면 인간은 공포를 심하게 느낀다. 나는 이 길을 지나가야만 집에 갈 수 있는데 그 길의 풍경을 바꿔버릴 정도로 하루살이 떼가 있다면 이 길을 지나갈 수 있을까.


동양하루살이라고 검색을 하면 밑에 동양하루살이 기자도 검색어로 나타난다. 그리고 함민정 기자의 기사가 엄청 많다. 모두가 프로정신에 대단하다는 글이다. 무슨 수당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프로정신이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이런 장면은 양봉하는 곳에서나 봤고 영화 속에서나 봤지 2023년 5월에 뉴스로 이런 모습을 보다니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뉴스로 나올지 참으로 기대되는 세상이다.

너무 화재가 된 나머지 극한직업을 뛰어넘은 함민정 기자의 뒷 이야기.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127670


이 기사가 나간 후 지자체에서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하루살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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