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 때 사진부였는데 1학년 때에는 잔심부름을 많이 해야 한다. 심부름이라 하면 사진부 암실을 청소하고 물약을 정리하고 인화지를 제자리에 두고 주말에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단속을 하는 것이다. 토요일에 심부름을 다 끝내고 선배들이 빠져나간 암실의 한편에서 조용한 것을 확인했다. 토요일의 점심시간이 지나면 학교는 마치 고요한 호수의 수면과 비슷하다. 그 떠들썩하던 남자 고등학교의 함성과 냄새가 빠져나간 직후는 그야말로 적요했다. 정리를 다 끝내고 암실의 한편에 앉아서 헤드셋으로 크게 메탈리카의 메탈리카 앨범을 들으면 가슴이 터질 정도로 좋았다.


이래서 모두가 메탈리카 메탈리카 하는구나. 다른 밴드에 비해 라스의 드럼 소리가 미친 듯이 귀를 때렸다. 드럼 소리가 이렇게 멋지게 들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강력하고 또 강력한 이 드럼의 소리에 절대 밀리지 않는 게 제임스의 보컬이었다. 전율이란 이런 것이구나.


메탈리카의 메탈리카 앨범은 메탈리카 최고의 앨범이라 한다. 모든 노래가 육체와 정신을 살짝 분리시켜 놓았다. 시작의 앤터 샌드맨부터 세드 벗 트루를 이어서 낫띵 엘스 메럴까지. 메탈리카는 메탈리카 특유의 소울이 있었다. 그 부분이 오리지널리티 또는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게 아니라 대번에 이건 메탈리카야!라고.


막사는 거 같은데 그 속에는 자신들만의 어떤 규칙이 있어서 벗어나되 벗어나지 않는, 텅 비어있되 그래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리하여 흔들림 없는 확신보다는 흔들림이 많은 가능성 같은 걸 보여주었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뭔가를 표현하고 말하고 싶은데 그게 제대로 잘 안 되는 시기에 메탈리카의 앤터 샌드맨을 들었을 때 그 기분은 지금도 생생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래서 메탈리카의 메탈리카의 앨범을 듣고 있으면 이들은 태생적으로 난봉꾼기질을 잔뜩 가지고 있지만 천재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인슈타인이 살아있을 때 폴란드 시인 폴 발레리가 아인슈타인을 인터뷰를 했다. 그때 “착상(창작의 실마리가 되는 생각, 구상)을 기록하는 노트를 들고 다니십니까?”라고 물었다. 아인슈타인은 온화하지만 진심으로 놀라는 표정으로 “아, 그럴 필요가 없어요. 착상이 떠오르는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라고 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인 콜드 블러드(읽다가 죽는 줄 알았다, 신문 사설을 읽는 기분이었다)’로 유명한 소설가 드루먼 카포티는 사실 기자로 더 유명했다. 그의 스타일이 녹음도 하지 않고 어딘가에 받아 적는 일도 없었다. 그저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눈을 보며 진심으로 들어줄 뿐이었다. 그렇지만 카포티의 기사는 적확했고 맹점을 관통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한번 머릿속에 들어가면 그리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 말을 새삼 떠올리게 했는데 메탈리카의 메탈리카 앨범이 꼭 그랬다. 이런 앨범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이후에는 이런 앨범은 나오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이 앨범은 그저 모여서 노력을 한다고 해서, 연주를 준비한다고 해서, 경험이 많아서 작곡을 이렇게 저렇게 고쳐가며 한다고 해서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비틀스를 뛰어넘는 밴드가 현재까지 나오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메탈리카의 이야기는 역시 유튜브에서 전문적으로 다루는 채널이 많다. 메탈리카니까 얼마나 많은 록 마니아 채널에서 메탈리카를 파헤치고 난도질해 놨을까. 그곳을 이용하면 메탈리카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다.


가장 최근의 소식은 메탈리카는 2008년부터 음반 제작을 담당해 온 레코드 공장 ‘퍼니스 레코드 프레싱’을 사버렸다. 우리의 음반을 레코드로 찍어 내는데 무슨 터울이 이렇게 많아? 그냥 우리가 사 버리자. 우리 그 정도는 되잖아. 그래서 우리의 앨범을 레코드판으로 실컷 찍어내자. 그렇게 공장을 사 버린 메탈리카는 메탈리카의 앨범을 엘피로 공장에서 열심히 내놓고 있고 미국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모든 노래가 좋지만 가장 전율을 받았던 노래가 더 언포기븐이었다. 요즘은 르세라핌의 언포기븐이 먼저 떠오르지만 메탈리카의 더 언포기븐은 대단한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후에는 더 언포기븐 2(더 후에 더 언포기븐 3도 나왔는데 사람들에게 좀 외면을 받았다)가 나왔을 정도로 이 노래는 전 세계를 휘어잡았다. 그 육중하고 굉장한 무게감이 주는 매력에, 아니 마력에 빠져서 학창 시절의 토요일에 모두가 떠난 사진부 암실에서 메탈리카의 더 언포기븐을 들었다.


이 터질듯한 감정을 가지고  늦은 오후에 학교를 나와서 음악 감상실에 갔다. 그곳에 가면 나와 비슷한 놈들이 한 두 명씩 있었다. 우리는 마음을 모아 메탈리카의 더 언포기븐을 신청했고 디제이는 뮤직비디오를 무척 큰 화면으로 틀어 주었다. 그걸 보는 재미가 상당했다. 영화도 열심히 보러 다녔지만(더스틴 호프만의 졸업이나, 리차드 기어의 아메리칸 지골로나 주성치의 영화) 메탈리카의 뮤직비디오를 이렇게 큰 화면으로 보는 것 역시 너무 좋았다.


분명 강력한데 처절하고 슬펐다. 가사와 뮤직비디오를 보면 알겠지만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으로 가는 것이고, 주먹보다 작은 심장은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으며 그 유지를 위해 인간은 끊임없는 고통을 겪으며 하루를 보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자유라는 흔한 말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느끼게 하는 것 같았던 노래가 더 언포기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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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여름에 물씬 가까워졌다. 아직은 싱그러운 바람이나 색감이 어울리는 유월이다. 지금은 해가 엄청나게 뜨겁지 않다. 곧 이글거리는 태양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무더운 여름이 온다. 해가 이글거리는 7월이 되면 해변에 나가 실컷 살을 태우는데 백신을 맞은 이후로 피부가 뭐랄까 긁거나 어디 쇠붙이 같은 것에 닿으면 부풀어 오른다. 어떤 사람은 코로나가 걸린 후로 피부를 건드리면 부풀어 오른다고 한다. 두드러기처럼 긁으면 부풀었다가 가라앉는 게  눈에 보인다. 신기하면서도 짜증이 난다.


크게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오염수를 방류하고 난 후 몇 년 뒤에 해산물 같은 것도 수입이 되고, 생물이야 사 먹지 않는다고 하지만 뭐 캔식료품이나 어묵이나 오뎅, 햄 같은 것에 들어간 건 먹을 수밖에 없는데 피부가 더 뒤집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닷가 근처 사람들이 전부 피부가 뒤집어져서 좀비처럼 다니면서 내륙에 사는 사람들과 마찰이 일어나고 정부가 개입하면서 전쟁이 일어나는 영화를 만들면 재미있을 거야.


코로나 이전에 맞이했던 여름과 코로나 시기에 접어들면서 맞이하는 여름은 다르게 느껴진다. 오늘 이전까지 내가 사는 바닷가의 여름은 사람이 없었다, 코로나 시기니까 축제 같은 것도 없고, 모여 있는 것도 안되고 하니 그래서 바닷가 사람들은 고민이 많았다. 사람들이 바닷가를 찾아야 먹고 살아가는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바닷가 사람들은 고민이 심해졌다. 오늘 이후 올해 여름은 하루하루 축제가 이어지고 사람들은 많지만 오염수 방류 때문에 어민들의 고민이 더해져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싱그럽고 푸르른 유월이어야 하는데, 먼지 많고 요 며칠 계속 흐리고 소나기가 내린다. 유월 초에(벌써 중순이라니) 해가 쨍쨍할 때 오전에 한 번 바닷가에서 한 시간 정도 살을 태웠다. 보통 태양에 피부를 실 것 태우면 살균이 되는지 모기도 달라붙지 않고 가렵지도 않다. 그런데 백신을 맞고 나서인지 좀 태웠지만 피부가 더 예민헤진 것만 같다. 칠월에 실 것 태워야겠다. 여름에는 역시 까무잡잡한 피부가 좋다. 코로나 전에는 허여멀건 피부가 태양 빛을 한 껏 받고 나서 탄탄해져 저녁에 맥주를 홀짝이며 시원한 배추에 강된장을 발라서 먹는 것을 즐겼다.


이번에 나온 넷플릭스 시리즈 사냥개들을 보면 코로나 시기에 대해서 잘 나온다. 코로나 시기를 견딘 사람들이, 즉 상인들이 버텼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상권이라는 게 한 번 죽으면 그 이전처럼 살아나지 않는다. 이전에 했던 것처럼 열심히 영차영차 한다고만 해서 코로나로 인해 오지 않던 사람들이 우르르 오지는 않는다. 코로나를 지나면서 이상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어제는 친척이 나에게 와서 천만 원을 빌려갔다. 그 친척 집은 몹시 부자로 이번에 전원에 땅을 사서 집도 목수들을 데리고 주말마다 가서 직접 지었다. 사촌 형님은 차도 두 대나 있다. 한 대는 아우디 세단이고 한 대는 렉서스다. 그 정도로 여유와 돈이 많은데 나에게 와서 천만 원만 빌려 달라고 했다. 수동기어차를 20년 정도 몰고 다닐 정도로 돈도 없는데 빌려줬다. 천만 원을 실제로 본 적도 없는데 폰으로 터치 몇 번으로 통장에서 통장으로 휙 넘어간다는 게 몹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코로나를 거치면서 사람들도 날씨도 우리의 일반 상식에서 조금씩 이탈해가고 있는 것 같다. 오랜만에 시원한 배추 잎이 있어서 강된장에 밥을 싸서 먹었다. 짭조름하고 달달한 맛이 배추와 파와 함께 씹힌다. 싱그러움이 온 입안에서 퍼진다. 이 맛있는 맛은 이전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먹는 게 가장 맛있었던 건 어릴 때 외할머니 따라 밭일을 하고 점심을 먹을 때 집으로 와서 먹는 경우가 많았지만 어떤 날은 국민학교의 운동장 그늘에 앉아서 배추쌈을 먹었을 때였다. 외할머니 밭에 사촌누나들과 형들이 같이 나갈 때는 밭일을 하고 집에서 들고 온, 참에 먹을 점심을 학교 그늘에 앉아서 먹었다. 뭐 특별한 음식도 없다. 배추쌈에 강된장 그리고 밥과 얼음이 들어간 물이 전부다.


그렇게 먹으면 김밥이 없어도 꼭 소풍을 온 기분이 들었다. 시골에는 맑고 깨끗한 바람이 많아서 한 번 쏴아 하고 불면 운동장에 심어 놓은 미루나무가 노래를 불렀다. 외할머니가 싸서 입에 넣어준 배추쌈을 오물거리며 옆의 미끄럼틀에 가서 놀고 있으면 사촌누나가 와서 나에게 밥을 먹였다. 그렇게 강된장에 배추쌈 싸 먹는 맛이 좋았다.


여름이었다.

바람이 좋은 여름이었다.

미세먼지 같은 건 없었다.

창문만 열어 놓으면 바람이 불어 방 안도 상쾌해졌다.

어쩐지 다시는 이런 바람을 맞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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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시인들의 시 한 대목을 스토리에 올리고 있다. 커피를 투고하러 가면서 골목의 풍경을 하나 찍고 그 배경에 시인들의 시 한 대목을 적어 올리고 있다. 나의 인스타 팔로워들은 대체로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매일 올리면 매일 보고 간다.


같은 곳을 사진으로 찍는데 비슷한 것 같지만 매일 다르다. 구름이라든가, 지나다니는 사람이라든가, 차들이나 날씨 때문에 같은 곳이지만 다르게 보인다. 십 년 전에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지금 사진에 보이는 모습 밖으로, 좌우로, 그리고 내 뒤로는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아케이드가 생겨나고 분위기가 왕창 바뀌었지만 지금 보이는 이 풍경의 모습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앞으로 십 년이 더 지나면 달라지겠지. 그러나 어떻게 달라지는지 크게 궁금하지 않다.


몇 백억 년 후의 우주와 지구에 관한 유튜브의 한 영상이 2주 정도 지났는데 거의 2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어서 조금 놀랐다. 나는 클릭을 해서 보지는 않았다. 나 같은 인간은 아주 먼 미래의 우주와 지구가 어떻게 변하는지 크게 궁금하지 않다. 나처럼 아주 재미없는 인간은 먼 미래는 관심이 없다. 내일도 관심이 없다. 그저 오늘도 살아남자!, 살아남으면 오늘 하루 잘 견뎠군. 하는 축에 속하는 인간인 것이다.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도 육상경기를 준비하는 여고생이 오늘도 열심히 하자가 아니라 오늘도 살아남자! 라며 파이팅을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여고생도 나의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놀랐다. 나와 다른 점은 여고생은 힘든 하루를 살아내면서도 웃으며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갔고, 나는 그러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는 거의 웃지 않는 인간인 것이다.


그런 인간인지라 몇 백억 년 후의 우주의 변화와 지구의 달라짐에 관심이 없다. 계획 따위 백날 잡아봐야 계획대로 되는 일도 없다. 내일보다는 오늘 하루 잘 견디는 게 나의 계획 내지는 목표가 된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이렇게 지내왔다. 오늘 하루 내가 견디는 것 때문에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고, 주로 여름에 한정되어 있지만 실컷 달리고 시원한 곳에서 맥주를 마시며 소설이나 읽으며 보내기도 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제 멋대로 살아가는 겁니까.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지금 까지 누군가에게 또는 기관에게 손 벌리지 않고 어떻게든 쓰러지지 않고 잘 버텨왔다. 폴란드의 유명한 시인이, 원천에 닿으려면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흐름에 떠내려가는 건 쓰레기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흐름에 딸려 내려가는 쓰레기 ‘1’ 정도 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쓰레기인 것에 별로 인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쓰레기는 더 이상 더러워질 수도 없으니까 막 뒹굴어도 된다.


그렇다고 해도 열심히 한 것도 있다. 나 같은 재미없는 인간의 특징이라면 했던 걸 계속하고, 봤던 걸 계속 보고, 갔던 곳에 계속 가는 것이다. 매일 조깅을 하고 그 기록을 어딘가에 올리고, 매일 조금씩 글을 써서 마찬가지로 올리고 있다. 올해는 2월에 하루, 지난달에 하루를 제외하고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거리를 비슷하게 달렸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비 막이가 있는 곳까지 가서 근력 운동을 하고 들어왔다. 전혀 안 그럴 것 같지만 비가 와도 조깅을 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꽤 있다. 뭐랄까 비를 맞으며 달려본 사람이 있다면 그 기분을 잘 알 텐데, 여름이라 춥지도 않아서 비를 잔뜩 맞으며 저어어어곳까지 달리는 상쾌한 기분은 중독이다.


이렇게 지내면서도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 살면서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 있다. 요컨대 이발소에서 머리(카락)를 자르면서, 이발사 아저씨가, 또는 미용사가 갑자기 가위를 들고 나의 눈을 찌르지는 않겠지? 무서운데? 같은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길을 걸어가면서 도로를 달리는 저 자동차가 갑자기 나를 덮칠까? 높은 건물에서 누군가 아령을 밑으로 집어던지지는 않겠지? 라며 누가 이런 것에 일일이 신경을 쓰며 살아갈까.


하지만 부산 돌려차기 남자 같은 사건이 종종 일어나는 요즘에는 그 쓸데없는 생각이 쓸모없는 생각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 같다.


돌려차기에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앞으로 그런 불안에 늘 떨며 지내야 할 텐데 생활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길을 걸어가다가 수십 번 뒤로 돌아볼 것이다. 일상이 무너지면 일탈도,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눈으로 보이는 풍경은 너무나 평온하게 흘러간다. 흐름에 딸려 내려가는 쓰레기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쓰레기가 되면 주위 풍경을 볼 수 있는 시선이 생기지 않을까.


꿈도 있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잔뜩 있었을 텐데 이유도 전조도 없이 사건이 휘말리고 말았다. 그리고 일상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수학여행 가던 아이들은 졸음운전을 해버린 운전사 때문에 추억의 한 편에 곱게 남아야 할 여행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중상을 입은 학생도 있다고 한다. 하루를 살아내는 것, 요즘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떻든 오늘 하루를 살아내야 내일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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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으로 하늘을 할퀴었다. 휙 휙.


손톱이 어느새 자라 있다. 손톱을 깎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보니 손톱이 또 자라 있었다. 손톱이 자라는 걸 보니 조카가 문득 떠올랐다. 조카는 어린이였는데 어느 날 보니 훌쩍 커버렸다. 손톱은 정말 아이들과 비슷하다. 어느 순간 보면 이만큼 자라 있다.


강변을 따라 조깅을 하다 보면 이맘때쯤이면 사람만큼 자란 풀들을 깎는다. 강둑과 강변의 풀들을 정리하고 나면 깎은 자리에서 나는 풀냄새가 아주 좋다. 녹차가루에서 나는 진한 냄새가 난다. 작년에도 강변의 풀을 깎아내고 풀냄새가 좋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찾아보니 작년도 6월 16일에 그 글을 썼다. 아무튼 딱 이맘때에 강 주변을 이발한다.


냄새가 아주 좋다. 비가 한 번 오고 나면 손톱처럼 어느 순간 풀들은 불쑥 자라나 있을 것이다. 손톱깎이로 싹둑 손톱을 깎듯 강변의 풀들도 한 번 깎고 나면 아주 시야각이 좋다. 하지만 그렇게 풀들을 전부 깎아 버리고 나면 늘 생각이 드는 건 고양이들은?이다. 고양이들이 풀 속에서 생활을 하는 모양인데 어느 순간 서식자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강변에 나오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고양이들의 먹이를 챙겨주고 있다.


요즘 유튜브에서는 인어공주에 대한 이야기, 리뷰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인어공주가 일본 개봉 후 아시아에서는 누구도 예상못 한 흐름이 흐르고 있다. 동북아 패권을 다투는 한중일은 그간 정치적으로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런데 인어공주로 우리 하나 되어 단결된 흐름을 볼 수 있다. 한국의 인어공주 댓글도 쌈박하고 웃음이 터지는 댓글이 많았는데 일본도 비슷했다. 이런 댓글들이 있었다.


팀 버튼인가 싶을 정도로 어둡고 이상한 연출을 하고 있다.

말하는 물고기와 갑각류가 꿈틀거리고, 인어로 분장한 무언가가 노래하며 춤추는 지옥도.

정치적 올바름만 신경 쓰는 뇌로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


디즈니를 미국 다음으로 좋아하는 나라가 일본이 아닌가. 일본은 디즈니에 진심이다. 근간에 사이가 벌어질 대로 벌어진 한중일이지만 이렇게나 한마음으로 만들어준 롭 마샬 감독의 큰 그림을 그동안 우리는 보지 못했다.


롭 마샬 감독이 바네사로 제시카 알렉산더를 캐스팅했을 때 그의 빅피처를 봐야 했다. 롭 마샬 감독은 한국인들이 에리얼 역에 할리 베일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흑인이라 어울리지 않는다고 인터뷰를 했지만 그건 감독의 큰 그림에 의한 마음에도 없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롭 마샬은 언더 더 씨를 박력 터지는 에리얼에게도 부르게 함으로 감독이 할리 베일리를 비롯한 유색인종을 돌려 까기 해버린 것이 아닐까. 아니 언더 더 씨를 왜 에리얼도 같이 부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인어공주는 홍보마케팅 비용까지 해서 총 5천억이 들었다. 손익분기점이 7억 달러. 알라딘이 10.5억 달러, 라이온킹이 16.6억 달러를 벌어들였기에 무난하게 인어공주도 7억 달러를 가뿐하게 넘길 것이었으나 한국과 중국으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 그런데 거기에 일본까지. 인어공주는 6월 6일 기준으로 3억 3천8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북미에서 58%, 그 외 나머지 나라에서 42%를 벌었다. 다른 나라에는 똥망이라는 말이다. 이제 디즈니에 진심인 일본의 흥행에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지만 어려워 보인다. 이대로라면 7억 달러에 못 미치는 6억 달러 전후로 수천억 달러에서 2억 달러 정도의 손해를 본다.


롭 마샬의 큰 그림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미국은 수면 위에서 흑인을 비판하지 못한다. 흑인을 노예로 부려먹은 역사가 있기에 미국은 매스미디어에서 흑인에 대한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 없는 분위기가 강하다. 디즈니는 꿈과 희망을 파는 곳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적자에 허덕이더니 꿈을 포기하고 장사꾼 마인드로 온통 피시주의로 쳐발쳐발하는 것에 가장 열받은 사람이 롭 마샬일지도 모른다. 롭 마샬은 캐리비안 해적 낯선 조류에서 동심을 파괴해 버린 진짜 괴물의 인어를 연출한 이력도 있다.


미녀와 야수의 실사에서 찻잔과 주전자, 촛대에 팔다리가 달려 있고 눈코입으로 말을 한다고 해서 전혀 이질감이 없고 이상하지도 않았지만, 인어공주를 보면 왜;; 왜 물고기가 말을 하지? 같은 생각이 들어 버린다.


CNN에서도 한국은 에리얼이 흑인이라 싫어한다는 식으로 뉴스를 보도했지만 한국  사람 누구도 흑인이라서 인어공주가 싫은 게 아니라 에리얼에 어울리지 않아서 별로라는 거다. 블랙팬서 1의 채드윅 보스만에 대해서 싫어한다고 말한 한국인이 누가 있을까. 엑스맨의 스톰 역의 할리 베리에 대해서 한국인 누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지?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미국은 디즈니의 정치적 올바름을 좋아하는 것이고 우리는 디즈니를 좋아하는 것, 오직 그 차이뿐이다. 때 낀 수족관 닦는 기분이라는 박평식의 한 줄 평이 맴도는, 한중일 한마음 하나 되어, 로 묶어준 여러모로 참 의미가 찰진 영화 인어공주였다.



아기공룡 둘리에서 마이콜이 등장한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고길동 씨의 집 앞에 마이콜이 나타났다. 가수를 꿈꾸는 마이콜. 둘리와 도우너에게 노래 지적을 받은 후 마이콜은 핵폭탄과 유도탄들이라는 트리오를 만들어 ‘라면과 구공탄’으로 방송 장악을 하려 한다.


인어공주의 롭 마샬은 한국 너희들이 문제야, 인어공주는 재미있게 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너희들에게 문제가 있는 거라고,라며 영화가 마치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재 일본 디즈니에서는 인어공주 관람 시 번쩍하는 빛 때문에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문을 게재했다. 1997년 12월 16일 일본에서 포켓몬스터를 시청하던 어린이 700여 명이 발작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폴리곤 쇼크, 전뇌 전사 폴리곤 사건 또는 폴리곤 플래시 등의 명칭으로 불렸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괜찮았지만 시청하던 어린이들에게 문제가 일어났다.


포켓몬스터 38화를 시청하던 어린이들(시청 가정 2690만 가구 약 345만 명의 4세에서 12세 사이의) - 추정했는데 이를 시청하던 어린이들 중 700명이 발작을 일으키고 구토 증세를 보이거나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쇼크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파악한 환자는 750여 명 그중 135명이 입원을 했다.


원인은 에피소드 전체적으로 나왔던 빠른 점멸 이펙트와 중반부의 피카츄의 전기 공격에 의한 대폭발 장면에서 빛의 화면 점멸이 연속으로 나오는 장면에 의한 안구 광과민성 발작이었다. 시청하는 어린이들 중 일부가 방을 소등하고 화면 가까이에서 시청을 한 것도 큰 작용으로 본다고 했다.


미국은 다양성은 인정하라고 하면서도 어린이들의 이런 발작 증상에 대해서는 세세하지 못했다.


한국은 흑인을 차별한다고 하는데 그랬다면 마이콜은 태어나지 말았어야지. 마이콜을 싫어하는 한국인이 있을까. 게다가 라면을 좋아하는, 그것도 구공탄에 끓인 라면을 좋아하는 마이콜을 말이야. 애초에 우리는 무시무시한 공룡인 둘리를 좋아한다. 게다가 고길동 씨도 좋아하고, 또치도 도우너도 좋아한다. 차별 없이 다 좋아한다. 우리는 얘네들의 차이만 인정하지 차별은 하지 않는다.


미국아 너희가 알아야 할 건, 겟 아웃이 전 세계에서 한국이 두 번째로 흥행한 나라라는 걸. 그것도 사람들이 펀딩을 해서 극장 상영을 하게 해서 겟 아웃이 상영관에서 볼 수 있었다. 그 덕에 200만이라는 엄청난 사람들이 겟 아웃을 봤다. 조던 필은 ‘어스’ 영화 상영회에서 “겟 아웃은 미국에서 낳고 한국에서 키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한국에서 흑인을 차별해서 인어공주가 흥행이 실패한 것이라면 겟 아웃에 대해서 롭 마샬 감독은 설득력 있는 해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 CNN 앵커도 말이다.


게다가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핫 한 인물 중에 조나단과 파트리샤가 있다. 혜미리예채파에서 리샤의 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 정말 혓바닥이 신나 버려서 그랬어. 




흔한 풍경 몇 장

민족대이동


새의 노래


해가 하루 일과를 끝내는 길


산책하는 가족의 행복모습


붉은 낯빛을 띠는 하늘아


해도 해도 끝은 보이지 않고 피곤은 덮쳐오고, 봄은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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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전작(해수의 아이)이 너무 철학적이고 과학적이고 해양학적에 초현실적이라 망설였다가 니쿠코짱의 캐릭터를 보고 보게 된 니쿠코짱 이야기. 애니메이션인데 눈물이 와르르 흘러서 놀랐다.

니쿠코짱은 만나는 남자에게 속아서 빚더미까지 떠안게 되어서 살던 곳을 버리고 이사를 가지만 자신의 어린 딸 키쿠코를 데리고 씩씩하고 아무 고민 없이 살아간다.

남자에게 혹 해서 넘어가고, 그럴 때마다 이사를 다니고, 돈은 없어서 허드렛일만 하지만 니쿠코짱에게는 딸 키쿠코와 누워 잘 수 있는 곳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헤헤 실실 좋기만 하다. 그런 엄마와 얼굴부터 성격까지 전혀 닮지 않은 키쿠코는 엄마가 부끄럽다.

온 마을 사람들과 다 친하게 지내고 기분 나쁜 일에도 헤헤 실실.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보통날이 최고라는 엄마 니쿠코짱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키쿠코. 그녀는 반에서 무표정의 얼굴에 앞머리로 눈을 가리고 다니는 니노미야와 대화를 하게 된다. 키쿠코 앞에서만 얼굴을 이상하게 변형하는 틱장애 같은 걸 보이는 니노미야. 왜 인지 모를 막연한 불안감이 들 때 니노미야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일그러트리면 기분이 나아진다. 아이같은 엄마 니쿠코짱 대신 이제 십 대 학생인 키쿠코는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춘기. 반에서 친구들도 분파로 나뉘려고 하고 뒤에서 누군가를 헐뜯는데 혈안이 된 모습을 보며 치를 떠는 키쿠코는 자신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러다가 배탈이 났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아 이러면 안 되는데. 주인아저씨가 어렵게 마련해 준 이 바다 위의 작은 배가 우리 집인데 내가 아프면 여기서 나가야 하는데, 어어? 왜 이러지. 아 너무 아프다.

급성 맹장염으로 쓰러진 키쿠코는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눈을 뜨니 니쿠코짱이 벌벌 떨며 괜찮냐고 울면서 묻는다. 그러면서 전혀 닮지 않았던 니쿠코짱과 키쿠코는 엄마와 딸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 니쿠코짱의 헤헤 실실 속에는 어떻게든 키쿠코를 예쁘게 잘 키워야겠다는 오직 그 하나의 결심이 있었다.

니쿠코짱이 주인공이지만 키쿠코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전행된다. 만화인데 대단히 감동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니쿠코짱의 목소리를 연기한 오타케 시노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검은 집의 원작에서 정말 이 여자는 정신이 나가버린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할 정도의 연기를 보여줬다. 오타케 시노부는 애니메이션을 많이 했다. 니쿠코짱의 오버스러우면서 정말 만화 같은 캐릭터인데 그 속에서 묘하지만 키쿠코를 지키려는 엄마를 표현했다.

반드시 가족이 아니라도 괜찮다.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식구가 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

낳아준 사랑은 못됐지만 길러준 사랑은 나쁘지 않았던 기분 좋은 영화 ‘항구의 니쿠코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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