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한 날이 지속되고 굽굽하고 더울 때 식은 밥으로 볶음밥을 해 먹는다. 볶음밥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다. 그저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다 넣어서 볶으면 된다. 나는 모든 음식에 방울토마토를 넣어서 먹기 때문에 역시 볶음밥에도 방우리(방울토마토)를 왕창 넣었다. 숟가락으로 속을 파보면 안에 방우리가 가득하다. 뜨거운 방우리를 터트리면 토마토의 즙이 나오는데 모든 음식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김치를 넣을까 하다가 김치자체로 맛있어서 김치는 넣지 않았다. 김치를 넣어서 볶으면 말 그대로 김치볶음밥이 된다. 집에서는 거의 뭘 잘해 먹지 않지만 이렇게 찬밥이 있고 공기가 눅눅하고 그러면 밥을 볶아 먹으면 맛이 좋다. 거기에 김치를 넣어서 김치볶음밥으로 먹으면 더 맛있기도 하다.


김치볶음밥 하면 대학교 때 학교 근처 분식집 생각이 난다. 거기 분식집 김치볶음밥이 내 스타일이었다. 김치가 들어가서 벌겋게 볶였지만 맵지 않은, 버터맛이 살짝 나면서 뜨거운 김치가 아삭아삭 씹히는 그런 맛.


분식집에서 김치볶음밥을 주문하면 친구들은 집에서도 늘 해 먹을 수 있는 김치볶음밥은 왜 주문하느냐, 우리처럼 분식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쫄면이나 칼국수를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김치볶음밥은 분식집에서 먹는 게 제일 맛있다. 집에서 엄마가 아무리 김치볶음밥을 해줘도 분식집에서 만든 김치볶음밥 같은 맛은 나지 않았다.


내 생각에 김치볶음밥이야말로 분식집에서 먹어야 하는 메뉴다.

바보들.

아무리 맛있는 거 먹어봐라 나중에 김치볶음밥 먹었던 것만 기억이 날 걸. 흥.


집에서 온갖 재료를 다 넣고 김치볶음밥을 해도 분식집 김치볶음밥 보다 못하다. 분식집 김치볶음밥은 김치만으로 볶음밥 해서 그 위에 계란 프라이 하나 올린 것뿐인데 이상하지만 맛있다. 김치볶음밥은 하얀 플라스틱 접시 위에 담겨 있고 참기름 냄새가 솔솔 올라오고, 숟가락으로 계란 프라이를 잘라 김치볶음밥과 함께 한 숟가락 가득 먹는 맛. 그리고 딸려 나온 계란국을 한 모금 떠먹는 맛까지 더 하면 김치볶음밥의 완성이다. 반찬으로는 단무지가 어울린다.


김치볶음밥은 분식집에서만 판다. 동네 분식집에 가면 김치볶음밥이 다 있다. 좀 있어 보이는 식당에는 김치볶음밥은 없다. 김치볶음밥은 너무나 가까이 있는 음식, 흔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 하찮은 음식이라 요리로 취급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학생 때 종종 학교 앞 분식집에서 사 먹었던 김치볶음밥은 어른이 되어서는 먹지 않는다. 가끔 생각이 나지만 주위에 먹을 게 널려 있으니 김치볶음밥 따위는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치볶음밥은 오늘도 어떤 분식집에서는 학생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있을 것이다.


볶음밥은 아이들에게 인기 좋은 음식이다. 친구들과 집에 가면 엄마가 만들어 주었던 볶음밥을 다 같이 앉아 먹으며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음식이라는 건 혼자서 먹으면 끼니를 때운다는 의미가 강하지만 여럿이서 먹으면 식사시간을 즐긴다는 의미가 된다. 볶음밥은 당당하게 중식당에도 테이블에 오르고, 뷔페식당에서도 있지만 김치볶음밥은 동네 분식집에 가야 먹을 수 있다.


가끔 조깅을 하며 오다가 동네 분식집에 앉아서 김치볶음밥을 먹는 아저씨의 등을 볼 때가 있다. 김치볶음밥을 정말 좋아하거나 추억을 맛보고 싶어서 왔을지도 모른다. 전자의 경우는 잘 없다. 어른이 되면 김치볶음밥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분명 학창 시절에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즐거워했던 기억 때문에 동네 분식집에 앉아서 먹고 있을 것이다.


조깅을 매일 하다 보니, 반환점을 돌아오면서 여러 동네를 지나쳐 오는데 코로나 전에는 많았던 동네분식집들이 대체로 사라졌다. 그 말은 김치볶음밥을 먹을 수 있는 곳도 줄어들어간다는 말이다. 오늘도 열심히 달리면서 땀을 듬뿍 흘렸으니 김치를 왕창 넣은 김치볶음밥을 해 먹어야지.


어제는 김치볶음밥 해먹을 생각에 조깅하러 나왔다가 폭우에 천둥에 번개까지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날이었다. 비가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20분을 쏟아지더니 살면서 처음 듣고 보는 천둥과 번개가 쳤다. 번개가 칠 때 휴대폰 셔터를 눌렀는데 와 대단한 번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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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최예나가 질투해 마지않는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뱀파이어는,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지만, 개인적으로 올해 쏟아진 지구상의 노래들 중 - 한국, 일본, 중국, 미국, 영국에서 새롭게 나온 노래 중에 최고의 노래라고 생각한다. 나는 6, 70년대에 이미 지구에서 나올 좋은 노래는 다 나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도대체, 아니 어떻게 이렇게 노래가 좋지?  하게 된다.

Olivia Rodrigo - vampire https://youtu.be/RlPNh_PBZb4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코로나 시기에 나왔는데, 노래 '드라이버 라이선스'는 나오자마자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라 버렸다. 그 뒤로 노래마다 우와우와 하게 된다. 노래를 너무 잘 부르는 것도 있지만 그 노래를 소화를 잘 해낸다. 어떤 부분에서는 한창때의 라나 델 레이의 음색도 보이기도 하는데(몹시 꿈을 꾸는 듯하게 부른다, 몽환적으로), 아무튼 노래 부를 때 목소리가 너무 좋음이다.


외국에는 그저 술렁술렁 노래를 내놓는 것 같은데 나올 때마다 너무 좋아서 빵 터지게 하는 아티스트들이 있다. 아주 친근하게 생겨버려 연예인인가? 할 정도에 고교 때 만난 첫사랑과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지금은 모르겠다, 이 소식은 작년에 들었으니까), 또 방탄소년단의 정국이 앨범에도 참여했고 이번 시월에 내한공연을 5년 만에 오는 찰리푸스가 거기에 속한다. 해외 팝스타들이 내한공연하면 한 번 하고 가는 것에 비해 찰리푸스는 3일 동안 공연을 한다.

찰리푸스 2015년인가, 메간 트레이너와 함께 ‘마빈게이’를 냈을 때 우와 이런 노래를 어떻게 만들지 했었다. 마빈게이는 나 학창 시절에 음감에서 너무나 신청을 해서 들었던 노래가 아닌가.  https://youtu.be/igNVdlXhKcI Charlie Puth - Marvin Gaye ft. Meghan Trainor

마빈게이는 노래를 너무 잘하고 잘 만들어서 모타운에 있었다. 모타운이라 함은 가장 유명하게 퀸시존스와 엠제이(마이클 잭슨)가 있었던 회사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근데 마빈게이가 보기에 모타운은 백인들이 좋아할 만한 흑인노래를 만들었다. 흑인들을 위한 진정한 소울을 뿜어내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서 모타운을 나와서 자신만의 노래를 부른다. 그때 가수는 아니지만 세계적인 복서 알리와 함께 인권운동을 하기도 했다.

마빈게이의 노래는 시대를 논하지 않는다. 마빈게이의 노래를 들으면 몸이 막 저절로 이렇게, 막 이렇게 움직인다. 영화에서 몸을 흔드는 브루스 윌리스처럼, 춤은 잘 못 추지만 몸은 저절로 막 흔들리게 만드는 음악을 마빈게이는 한다. 마빈게이의 이야기는 정말 장황한데 역시 나보다는 전문 음악꾼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낫다. 마빈게이의 죽음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아버지의 장총에 맞아 죽었는데 자살이네, 타살이네, 의도가 있네 같은 말들이 아직도 많다.


Marvin Gaye - Let's Get It On https://youtu.be/_cHSyGpfLlI


찰리푸스와 함께 등장한 메간 트레이너의 자신감 넘치는 통통한 모습도 아주 좋았다. 요즘은 메간 트레이너가 살을 많이 뺐다. 살을 빼니 얼굴이 허윤진(르세라핌)을 쏙 빼닮았다. 벌써 아들도 낳고, 아무튼 미쿡 아티스트들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지낸다.


살 뺀 거 하니까 아델도 무려 45킬로그램이나 빼서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에밀리 블런트와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의 사라 폴슨 얼굴 중간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

아델 하면 최근에 재미있는 뉴스는 해외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가수들이 공연을 하면 일부 팬들이 얼굴에 물총으로 물을 쏘고, 물건을 얼굴에 집어던지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비비 렉사는 공연 도중에 팬이 집어던진 휴대폰에 눈을 그대로 맞아서 병원으로 가서 눈썹 부위가 찢어져 꿰매기도 했다. 다행인 건 눈이 다치지 않았다는 것.

우리나라도 얼마 전에 워터밤 공연 무대에 오른 가수들의 얼굴, 특히 눈에 사람들이 강도가 센 물총으로 물을 쏘아대서 가수들이 아파하다가 고글을 착용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심리전문가들은 근래에 들어 사람들이 sns와 현실의 경계가 조금 무너져서 자신이 던진 어떤 물건에 아티스트들이 맞아서 아파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그 순간의 장면이 밈이나 짤로 돌아다니면서 바이럴이 되는 걸 원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점점 사람들이 무서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은 왜 그런지 항상 화가 나 있다. 가수들에게, 연예인들에게 늘 화가 나 있어서 공개된 장소, 즉 공연장에서는 가수들에게 무엇을 집어던지며 쾌락을 느낀다. 이에 대해 아델이 이번에 공연을 하다가 큰 장난감 총을 들고 나와서 “요즘 아티스트 얼굴에 뭘 집어던지는 사람이 있더라, ㅅㅂ 감히 내 얼굴에 뭘 집어던지면 죽여버릴 거야”라고 해서 사람들이 환호하고 아델이 장난감 총을 퐁 쏘기도 했다. 아델은 정말 화끈하고 그래.


2015년인가 아델이 ‘헬로’를 들고 나와서 세계를 씹어 삼켰을 때 그 노래 내용이 전 남친이 어쩌고 하는 거였다. 그랬는데 전 남친이 느닷없이 연락이 와서 나의 이야기가 실려 있으니 그 노래 저작권을 좀 줘, 해서 아델이 그래? 그러지 뭐. 하며 쿨하게 줘버렸다. 전 남친은 순식간에 부자가 되었고. 아델 라이브 한 번 들어볼까.


Adele - Hello https://youtu.be/DfG6VKnjrVw


그리고 노래를 내는 족족 인기를 얻는 가수가 에드 시런이다. 이 녀석은 그냥 입을 벌리고 노래를 내기만 하면 노래가 뜬다. 역시 내는 노래 족족 노래가 좋다. 에드시런은 항상 그 더벅머리 스타일에 그런 표정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노래를 부를 때에는 당연하지만 늘 그런 모습인데, 늘 그런 모습으로 영화에도 많이 등장했다.


릴리 제임스가 너무나 예쁘게 나왔던 영화, 이 세상의 비틀스의 노래가 사라졌는데 누군가 비틀스의 노래를 부르는 영화 ‘예스터데이’에서는 꽤나 비중 있게 등장한다. 너무나 놀랐던 영화는 ‘왕좌의 게임’에 병사로 등장했을 때다. 이런 제길, 그런 더벅머리에 그런 표정으로 왕좌의 게임에 나오다니. 이건 무도 멤버들이 사극에 나왔을 때보다 더 충격이었다.

에드 시런이 ’thinking out loud’로 세계를 씹어 삼키고 투어를 끝내고 나서 여행을 다녔을 때의 일화가 있다. 캐나다 어디 시골 마을에 혼자 어슬렁어슬렁 여행을 하다가 마트에 들러서 그로서리 쇼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 마을의 학생들이 작은 공연을 마트에서 하고 있었다. 그때 한 여고생이 에드 시런의 띤킨 아웃 라우더를 자신 없게 부르고 있었다. 그때 에드 시런이 살며시 무대 뒤를 돌아서 여학생에게 다가가서 같이 노래를 불러 줬다. 오오 이 감동. 사람들이 에드 시런을 좋아할 만하다. 한때 마룬 파이브의 에덤 리바인보다 문신이 많니 적니 하던 때가 있었다. 얼굴과 손바닥 발바닥 빼고 이 녀석들 전부 문신이 와글와글 우글우글하니까 팬들 사이에서 화재가 되었다.  


라이브가 정말 미친 것 같은 에드 시런의 딘킨 아웃 라우드 https://youtu.be/f6Cswdm601A


아, 적고 보니 정말 하찮은 음악이야기네, 아직 하와이 촌놈 출신으로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홀라랑 집어삼킨 브루노 마스도, 역시 내는 노래마다 좋아 죽을 것 같은 저스틴 비버도 이야기해야 하는데 너무 길다. 한때 잘 나가는 우리나라 보이그룹 노래는 대부분 뭐야? 또 저스틴 비버 풍이야? 할 때가 있었다. 편곡하는 애들이 그게 인기가 좋으니까 죄다 저스틴 비버를 따라 했다.


로드리고를 이야기하면서 최예나가 질투한다고 했는데, 최예나 신곡의 제목이 ‘헤이트 로드리고’다. 로드리고는 노래도 잘 부르고 연기도 잘하고 뭐 그래서 질투 난다, 나도 로드리고처럼 되고 싶다, 이런 내용인데 ‘hate’가 여러 의미가 내포된 단어라 문제가 터지면서 뮤직비디오로 내렸고 비판을 넘어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최예나는 서바이버 아이돌 프로그램에서 살아남은 아이돌로 노래를 아주 잘 부른다. 목소리가 발라드, 트로트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노래를 잘 부른다. 거기에 로드리고는 하지 못하는 춤을 춘다. 춤꾼이다. 또 라이브로도 노래를 잘한다. 그 험난한 아이돌 서바이버 프로그램에서 경쟁하며, 도움주며 도움받고 부딪히고 올라와서 실력은 인정을 받았다. 무엇보다 어릴 때 앓았던 병을 이겨내고 올라온 것에 대해서도 팬들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뮤직비디오로 로드리고의 뮤비를 따라한 장면과 제목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https://youtu.be/1XIi9ofX2kE YENA (최예나) - Hate Rodrigo (Feat. 우기 ((여자) 아이들)) MV


말하는 김에 피프티피프티 사태를 아는 사람은 대충 알 텐데, 현재 이 사태를 두고 방시혁도, 음악 평론가들, 음악 전문기자 그리고 연예 기자 또 전홍준 대표 밑에서 가수 활동을 했던 예전 멤버들이 하나 같이 이번 사태에 대해서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특히 방시혁의 말이 아주 뼈 깊은 말이었다.


20년 전 샵 해체 문제에서 이지혜와 서지영이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지고 서지영 엄마가 등장해서 이지혜의 뺨을 때리며 모든 게 이지혜의 잘못으로 인정하기로 하고 기자회견을 할 때 이지혜 편에 서서 양심선언을 한 사람이 전홍준 대표이사, 당시 홍보이사였다.

진정 하찮음 음악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뱀파이어는 노래가 좋으니 들어보기 바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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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기간에 맞게 비가 공백과 공백 사이를 뚫고 내렸었다. 장마기간에 비가 쏟아지면 언젠가부터 폭우 수준이다. 한 삼사십 분 엄청나게 비가 쏟아진다. 쏴아 쏟아지는데 재미있지도 않지만 보게 된다.


진정 장마기간이다. 비가 내리고 있다. 장마기간에는 몸관리를(딱히 하는 건 없지만) 잘해야 한다. 자칫 축축 늘어질 수 있으니까. 장마가 오기 전에 하던 루틴을 장마가 왔다고 해서 멈출 수는 없다. 비가 와도 나는 늘 강변으로 나가니 이번에도 장마라고 해서 그냥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하루는 비가 너무 왔다. 폭우였다. 사진으로는 그냥 비가 오네 정도로 보이지만 강변 조깅 코스에 그 누구도 나오지 않는,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면 마치 물 위를 달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거센 비가 내렸다. 우산을 들고 몸을 푸는 곳까지, 대략 500미터 정도 갔는데 홀딱 다 젖어 버렸다.


몇 해 전 장마기간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비가 내내 내리거나 흐린 날의 연속이었다. 여행 중이라 오히려 비가 내려도 위화감이 덜 했다. 비가 엄청나게 내리면 더 가기를 멈추고 그 근처에서 숙소를 잡고 묵었다. 우리는 경주 근처쯤 밖이 보이는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비가 내리는 모습은 재미라고는 1도 없을 것 같은데 보고 있으면 빠져들어 버린다.


그때 비가 너무 와서 우리는 숙소에서 하루 종일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봤다. 공포 영화를 많이 봤고, 존 카펜터의 영화들이었다. 존 카펜터의 영화는 오래될수록 더 재미있는 것 같다. 물론 그래픽이나 뭐 그런 것들은 뒤쳐지지만 내용면에서 아주 흥미롭다. 86년 작품 ‘더 포그’라든가. 이 영화는 2006년에 스몰 빌의 히어로 톰 웰링을 대동해서 풍부한 그래픽으로 리메이크를 했는데 86년 작품보다 더 재미가 없었다.


존 카펜터의 영화는 원작 소설이 대부분 존재한다. 스티븐 킹의 소설도 존 카펜터에 의해 영화로 여러 편 만들어졌다. 존 카펜터의 영화를 보면 이걸 해야겠다는 집착과 집요가 좋은 쪽으로 밀고 나가는 힘을 보여준다. 공포영화의 명작에 꼭 들어가는 82년 작품 ‘더 씽’도 존 카펜터의 작품이다. 더 씽은 1938년에 나온 소설 ‘후 고우즈 데어?’가 원작이다. 더 씽은 존 카펜터의 집요가 이루어낸 쾌거가 보인다.

장마기간이지만 비가 오지 않는 날도 많다. 같은 강변의 비슷한 시간인데 비가 오나 비가 오지 않는 날도 사진으로는 왜 이렇게 비슷하게 보이냐.

한여름으로 갈수록 습도가 높고 굽굽한 더위가 사람들을 잠식한다. 그럴수록 몸을 열심히 움직이고 땀을 흘려 굽굽한 더위에 적응을 하는 몸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나는 아직 에어컨을 틀지 않고 잠을 잔다. 집에서도 아직 에어컨을 틀어 놓지 않는다.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가만있으면 시원하지는 않아도 덥지도 않아서 선풍기 바람으로도 좋은데, 에어컨 바람을 맞는 순간 에어컨 바람이 없어지면 덥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몸을 더위에 적응하는 몸으로 만드는 게 여름에 내가 보통 늘 하는 일이다. 적당히 태닝을 하고 매일 몸을 움직이는데 격렬하거나 덜 격렬하거나, 이런 수위 조절을 해가면서 몸을 더위에 노출시켜 적응을 하면 에어컨이 없어도 생활하는데 무리가 없는 몸이 되는 것 같다.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오면 그제야 에어컨을 슬슬 틀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매년 그래서 에어컨 때문에 전기세가 많이 나오는 경우는 없다. 같은 시간을 에어컨을 틀었어도 작년에 비해 올해는 전기세가 더 많이 나온다. 그래서 이래저래 몸이 에어컨 바람을 밀어내는 체질로 바꾸면 좋다.

장마기간의 맑은 날에는 눈으로 보이는 풍경이 마치 그림처럼 보인다. 나는 이런 풍경을 보면서 또 쓸데없는 상상을 한다. 나의 뇌는 어떻게 생겨 처먹었기에 하루도 공상을 하지 않는 날이 없다. 조금만 빌미가 보이면 멍하게 앉거나 서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상상을 하고 있다.

어김없이 찾아온 레인시즌. 이런 시기에는 이상하지만 새들도 평소보다 눈에 띄지 않는다. 원래 강변 조깅 코스에 참새들과 비둘기 떼, 매, 그리고 강에 서식하는 왜가리 같은 날개가 큰 조류들을 매일매일 보는데 장마기간에는 잘 볼 수 없다. 어제는 평소에 잘 보이지 않는 까마귀들을 보았다.


까마귀 떼는 2월에 강 상류 쪽에 엄청나게 나타난다. 10만 마리가 넘는 까마귀 떼가 상공에서 날아다니는데 그 소리와 형태가 신기하고 신비롭기보다 공포에 가깝다. 그러나 그 시기가 지나면 까마귀는 잘 볼 수 없다. 특히 바다와 만나는 강 하류 쪽에서는 더더욱. 그럼 까마귀들이 장마 기간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제 까마귀 떼가 하늘을 날아가는데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떨어져 나온 까마귀가 하늘에 머물러 있었다. 비행을 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마치 박혀 있는 것처럼 날갯짓도 없이 그대로 허공에 5초 정도 머물러 있다가 다시 날아갔다. 나는 그 장면을 보았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걸 계기로 해서 지구에 조금씩 균열이 오더니 아포칼립스가 되는 상상.


그림처럼 보이는 풍경



조깅을 하다가 들러 몸을 푸는 중간지정이 있다. 다리도 풀고 허리도 돌리고 하는 그런 장소다. 늘 깨끗한 이곳에 누군가 소주를 마시면서 더럽혀 놨다. 아니 도대체 누가 이렇게 강변에 나와서 산책하는 곳에 앉아서 소주를 마시고 뒷정리도 하지 않은 채 이렇게 더럽게 해 놨을까. 이렇게 보니 안주도 없이 소주 두 병을 마신 것 같았다. 안주가 담배였던 모양이다.

강변으로 조깅을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산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머니, 아버님 같은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에 가까운 사람들은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탈뿐 이렇게 앉아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렇다고 20대나 30대 같은 젊은 사람들도 앉아서 깡소주를 마시지는 않는다.


아마 60년대 생, 부머세대이지 않을까. 7, 80년대 치열하게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 또 거기서 치열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기업체에 들어가서 퇴직할 때까지 역시 치열하게 일을 한 세대의 사람들. 오직 치열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 회사를 영차영차 일구었다. 덕분에 7,80년대 영화를 보면 영화 배경에 고층건물이 꼭 나온다.


우리나라의 고층건물이 7, 80년대 엄청나게 올라갔다. 그 덕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다. 자동차 산업은 백 년짜리 계획하에 모든 나라가 사업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간을 단축했고 기술력도 엄청났다. 이 작은 나라에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회사가 몇 개나 있다. 세상이 깜짝 놀라는 휴대폰을 만들어 내고 있고, 무엇보다 자체 검색 엔진, 포털사이트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이게 정말 엄청난 IT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카톡을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데, 일본도 카톡 같은 메신저를 온 국민이 사용을 한다. 근데 그게 네이버 라인이다. 일본의 메신저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네이버 라인을 일본의 국민 대부분이 사용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일군 주역이 60년대생, 부머세대들이다.


이 부머세대들은 퇴직을 하면 퇴직금과 함께 국민 연금을 받으며 편하게 노후를 보내는 상상을 하며 평생 열심히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퇴직을 하고 나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60세에 다시 20대처럼 뛰어들어 하루를 살아남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부모세대를 봉양하며 처음으로 자식세대에게 노후를 맡기지 않는 세대. 이상하지만 끼인 세대.


아마도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소주를 마신 건 힘들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강물은 아주 느리게 흐르나 절대 멈추지 않는다. 머뭇거림 없이 착실하게 흘러간다. 시간과 비슷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흐르는 시간에 끼여 같이 흘러가는 쓰레기 같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저기 보이는 많은 아파트가 있는데 이상하지만 집은 빚으로 점철되어 있고 자식들도 취직이다 결혼문제다 인간관계다 해서 허덕이고 있다. 소주를 마신 사람은 사는 게 힘들다고 느꼈을 것이다. 소주를 한 병만 마시고 싶어도 한 병으로는 취하지도 않는다. 두 병을 마셔야 그나마 조금 술을 마셨다는 기분이 든다. 병원에 가는 횟수는 자꾸 늘어가고 의사는 운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고. 이만큼 살았는데 답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더 달려야 답이라는 게 보이는 것일까.


조깅을 하다가 몸을 푸는 곳에 홀로 등을 구부리고 앉아 강을 바라보는 아저씨들을 본다. 그들은 다른 노인들보다 젊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퇴직을 한 상태다. 경비로 취업을 하는 것 역시 치열하다. 사무실에서 평생일만 하다가 퇴직을 하면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아저씨들의 굽은 등을 본다. 그 등을 타고 흐르는 어떤 불안한 기류를 느낀다.

언제나 물수제비 같은 길 고양이


김건모는 성공했으나 지금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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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카’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로 세 편의 단편 영화로 이루어진 영화가 ‘우연과 상상’이다. 이 영화(들)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정말 마법 같은 영화다. 세 편 전부 등장인물도 한두 명이 전부다. 특별한 사건이나 액션 없이 그저 주인공들이 대화를 나눌 뿐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는데 영화 속 주인공들의 대사를 들으면 상상을 하게 된다. 눈으로 영화를 좇지만 상상 속에서 또 다른 영화를 만들어낸다. ‘비 포 선 셋’ 시리즈처럼 내내 대화만 하는데 뭐야? 내 마음이 왜 이러지? 하게 된다.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의 가능성을 믿고, 문을 열어둔 채 상상은 우연이 되고 다시 한번 마음을 털어놓는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개인적으로 올해 들어 본 영화 중에는 이 영화 ‘우연과 상상’이 제일 좋았다.


이 영화의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하마구치 류스케는 10분 미만 짜리 단편 영화를 자신은 만들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재미있게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인간의 관계와 감정에 대해서 너무나 깊고 깊게 집요하게 파고 들어갔다. 총 세 편으로 이루어진 ‘우연과 상상’은 처음에 두 번째 영화 ‘문은 열어둔 채로’를 먼저 만들고, 1년 뒤에 처음 시작하는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을 만들었다. 그리고 준비하고 있던 장편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를 촬영하던 도중 코로나가 터졌다. 그렇게 시간을 거쳐 세 번째 영화 ’다시 한번'을 만들었다.


마지막 영화 '다시 한번'은 두 사람의 마음이 하는 말, 내내 숨기고 있었던 말이 내내 잔상이 되어 내가 어딜 가든 따라다니는 것만 같다. 


나츠코는 20년 만에 미야기 현의 미야기 여고 동창회가 열리는 곳에 참석을 한다. 그러나 재미도 없고 기억나는 친구도 거의 없다. 나츠코는 찾고 싶은 친구가 있었지만 그 친구는 나오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다시 도쿄로 가기 위해 센다이 역으로 간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나츠코는 반대쪽에서 내려오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을 발견하고 반가운 얼굴을 한다. 상대방 여성도 에스컬레이터를 다시 타고 올라오고 나츠코는 다시 내려가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다.


너무나 반가운 동창. 만나고 싶었던 친구를 이렇게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나츠코는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길 바랐지만 친구는 택배 때문에 집으로 가자고 한다. 두 사람은 고교의 일을 이야기하며 집으로 간다. 집을 둘러보던 나츠코는 친구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 친구는 생각을 하다가 나츠코에게 되묻는다. 나츠코는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때 친구가 나츠코에게 미안하지만 실은 너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혹시 나의 이름이 기억나는지 묻는다. 황당한 나츠코는 친구의 이름을 말하지만 친구는 그 이름도 아니며, 우리는 같은 여고를 나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나츠코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두 사람은 고교 때 서로 친하게 지낸 친구가 되어 준다. 나츠코는 아야를 만나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아야가 아닌 코바야시에게 덤덤하게 말한다.


"말해야 할걸 못 한 나한테 화가 났어. 내가 하지 못한 말.

네가 마지막으로 전화했을 때 난 시부야 중심가에 있었어. 하마사키 아유미의 노래가 흘렀고 유행 차림 소녀들이 시끄럽게 떠들었어.

하지만 네 목소리는 아주 또렷이 들렸어. 아주 단호한 목소리였어. 혼자 힘든 시간을 견디다 전화했다는 게 느껴졌어.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했어.

뭔가 말하면 너를 더 힘들게 할 것만 같았어. 그래서 전화를 끊었고 다시는 걸지 않았어.

그때 내가 못 한 말은 난 너만을 사랑했다는 것.

넌 다른 사람이어도 괜찮을 수 있지만 난 네가 아니면 안 돼. 나와 함께 하면 네 인생이 복잡해질 수 있지만 그래도 날 선택해 줬으면 좋겠다고.

그 말을 못 했어. 하지만 지금 난 너에게 뭘 원해서 온 게 아니야.

단지 그때 그 말을 못 했다고 전하고 싶었어.

널 힘들게 하더라도 말했어야 했어. 그 고통이 우리 인생에 필요하단 걸 깨달았거든. 지금 네 인생에도 조금은 나와 같은 구멍이 생겼을 테니까.

그래서 왔어. 뭘 해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분명 있을 거야. 이젠 그걸 채울 수 없지만 나에게도 그게 있단 걸 전하려고 왔어.

그 구멍을 통해 우린 지금도 연결돼 있을지도 몰라. 그걸 말하려고 왔어"


하마구치의 이전 작품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상처를 받으려면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세번 째 단편 ’다시 한번'은 그때 비록 네가 힘들지라도 말해야 할 건 말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살면서 그런 고통이 필요하다는 걸 지내면서 깨달았다는 것. 하지 못한 말을 그대로 둔 채 시간이 흐르면 서로에게 점점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은 공백이 들어차게 되어서 더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이 세 편은 기가 막히게 하루키의 소설 같다. 쉴 새 없이 주고받는 농도 있는 대화가 소설을 읽는 기분을 준다. 정말 마법 같은 언어가 밀도 있게 시간을 채워 나간다. 아아 영화를 보면서 상상하게 만드는 아주 기묘한 마법을 부리는 감독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보다 나에게는 좋았던 영화 ‘우연과 상상’이었다. 와 씨 영화를 어떻게 이렇게 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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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에세이 ‘하루키 일상의 여백’의 북커버는 이렇게나 촌스럽다. 이 책 보다 더 촌스러운 북커버는 ‘하루키 여행법’이다. 이렇게나 촌스럽게 북커버를 디자인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이게 유니크해서 이런 예전 버전을 찾는 하루키 마니아들이 생겼다고 한다.


이렇게 촌스러운 북커버 덕분에 친근하게 느껴진다. 디자인이 마치 이제 일러스트나 포토샵을 배우고 갓 직장에 뛰어든 사회 초년병이 디자인해 놓은 것처럼 날 것 같다. 이 폰트도 넣어보고, 이 정도 크기도 한 번 집어넣어보고, 다 같이 한 번 해보자.라고 해서 만들어 버린 북커버의 디자인 같다. 그래서 촌스럽지만 그래서 세련돼 보인다.

이 책은 정사각형에 가까운데, 정확한 정사각형은 아니다. 일반적인 책의 비율에서 벗어났고 그렇다고 정사각형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니라서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레어템이 될지도 모르는 책이다.

추천의 말을 장석주 시인의 글로 시작한다. 한때 문학사상사에서 나오는 하루키의 출판물은, 소설이고 에세이고 추천사에 장석주 시인이 글을 썼다. 단편 소설집 ‘신의 아이들은 춤춘다’에서도 장석주 시인의 추천의 말로 시작을 한다. 장석주의 글을 읽는 재미도 있다. 장석주 시인의 시만 읽어서는 하루키와 어떻게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장석주는 또 문학평론가이기도 해서 그런지 하루키의 문체에 대해서, 그의 문학 세계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장석주 시인은 시인이나 문학평론가로도 유명하지만 언젠가부터는 박연준 시인의 남편으로 더 유명한 것 같다. 박연준 시인도 장석주 시인의 아내로 유명하기도 하고. 두 사람의 나이차 때문에 두 사람은 유명하게 되었다. 박연준 시인의 시와 산문은 명치끝을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날카롭고 아픈 구석이 있는데 인스타그램의 일상에서는 아주 깨발랄해서 좋다. 전혀 어른스럽지 않다.  


어른이라는 건 되고 싶지 않아도 언젠가는 어른이 되어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늘 진지하고 진중하게 말하고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하는 말이나 어떤 행동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나 담아내는 사진에게 농담이 섞여 있고 철이 없다고 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죽 철 없이 지낼 거야. 남들에게 말 못 할 불안을 가득 안고 매일 아슬아슬하게 지내고 있기에 그걸 잠시 라도 잊기 위해서는 철들지 않고 지내는 것뿐이야. 그 방변으로 글을 쓰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 말고 모르는 이야기, 나만 간직한 이야기, 깜깜한 이야기, 빛과 어둠이 아니라 그늘과 옅은 그림자에 대한 글을 지치지 않고 쓰고 싶어. 저를 비롯해서 글 쓰는 걸 멈추지 마세요,라고 하는 것 같다.


장석주 시인이 말한 것처럼 하루키의 ‘가벼움’ 속에는 하찮은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가득하다. 그건 하루키의 여러 에세이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큭큭 하며 웃게 되는 포인트가 마음의 위로를 한다. 그런 하루키의 시선은 우리가 보통 가지고 있는 일종의 이타성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하찮은 것들을 위해서 방탄소년단도 노래를 불러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책을 읽다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는데 오래된 책이라 그런지, 아니면 이 책만 그런 건지 글과 글 사이의 간격이 뒤죽박죽이다. 간격이 일정하지 않은 건 물론이고, 그 간격이 조금씩 다르다. 간격이 아주 짧은 것부터 강처럼 아주 길게 벌어진 간격도 있다.


이 책의 타이틀이 ‘달리기, 고양이, 여행’이다. 하루키의 루틴 같은 생활의 습관과 태도를 통해서 여백을 채워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달리기에 관한 부분은 달리기 에세이 ‘달리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전초전 같은 모습이다. 하루키가 달리는 것에서 느끼고 얻는 것에 대해서 잘 말하고 있다.

나 같은 경우가 10년을 넘게 거의 매일 한두 시간씩 달리고 있는데, 주위에서 가끔 하루키를 얼마나 좋아하면 하루키처럼 매일 달리냐,라고 하는 말을 듣는데, 하루키를 좋아해서 조깅을 매일 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는 게 좋아서 매일 조깅을 하는 것인데 사람들 중에서는 편견을 가지고 그렇게 말을 하기도 한다.


하루키 빠에다, 조깅 마니아인 소설가 김연수도 하루키를 따라 하고 싶어서 달리는 게 아니라 조깅이 좋아서 달리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건 김연수의 달리기 에세이 ‘지지 않는다는 말‘을 읽어보면 잘 나온다. 김연수 소설가도 하루키처럼 번역을 하기도 했다. 여러 모로 하루키와 닮긴 닮았네.


하루키의 이 책에서는 어떤 무언가를 설명하는데 길게 하지 않는다. 간결하고 간단하게 끝낸다. 그런데 어? 더 궁금한데?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애초에 술렁술렁 읽어주세요,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또 포인트는 적확하게 집어낸다.

재미있는 것은 글의 내용과는 조금 다른 사진들이 책 사이사이에 있다. 근 몇 년 동안 나오는 하루키의 에세이에는 그런 점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 책에는 로드킬을 당해 죽어있는 아르마딜로의 사진을 조그마하게 삽입을 한다던가, 다람쥐에 대한 사진도 아주 작게 삽입을 해놨다. 놀려 먹는 공간이 없도록 하겠다! 뭐 이건가? 싶기도 하고. 게다가 교미 중인 다람쥐에 대한 설명은 진지하다. 하긴 저들은 진지하게 교배를 위해 교미를 한다.


인간처럼 쾌락을 위해 교미를 하지 않는다. 설명에는 하루키도, 진지하게 대낮에 일을 벌이고 있는데 싱글벙글 웃으며 일을 벌이면 곤란하다고 했다. 다람쥐를 관찰했던지 검은 다람쥐는 검은 다람쥐끼리 사귀고 갈색 다람쥐는 갈색 다람쥐끼리 사귀는 것 같다고 했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맞는 건가. 여기까지가 초반인데 뒤로 갈수록 큭큭 거릴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점점 불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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