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은 하루키 단편 소설집 ‘일인칭 단수’에 수록된 단편 소설이다. 2020년 9월쯤인가, 이미 한국에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가 나왔어야 하는데 내 생각에 너무 늦어지는 것 같았다. 일본에서 출간이 되고 1년 정도가 지나면 한국에도 하루키의 소설이 출판이 되는데 오래 걸리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하잖아? 이러다간 신간이 아니라 재출판물 같은 기분이었다.


신간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헌간? 지금도 생각 중이다.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에 실린 신간은 한 편을 제외하고 2019년에 뉴요커에 전부 실렸다. 하루키는 언젠가부터 뉴요커와 밀접한 관계가 되었고 인터뷰를 종종 가지며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신간, 지나간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뉴요커는 젊디 젊은 하루키 적 시절에 이미 알아본 거지. 아 이 사람은 세계적인 소설가가 되겠구나, 뭐 이런 미래를 보고 꾸준하게 하루키와 접촉을 해왔다.

하루키가 근래에는 일본 내에서 도쿄 FM 라디오 디제이도 하고(무라카미 라디오), 일본의 여러 잡지와 인터뷰도 진행하면서 자신의 소설이 영화가 된 이야기도 뱉어내고 있다. 드라이버 마이카, 버닝 같은 영화를 언급하면서 이창동 감독이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이전의 하루키를 보면 일본문단에서 하루키를 너무 적대시하니, 일본문단! 흥!하며 늘 외국에 체류하면서 소설을 쓰고, 일본 내에서 인터뷰는 거의 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하루키도 인자하고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작가뿐 아니라 배우도 화가도 너무 인자하고 마음씨 좋은 것보다 깐깐하고 욕도 하고 침도 뱉고 하는 게 좋은데 나이가 들면 대체로 뭔가 나는 자연이구나, 같은 모습이 되는 것 같다.


아니면 톰 크루즈처럼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을 유달리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던가. 사실 11번이나 내한을 했다는 건 그냥 스케줄만으로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이번 미션 임파서블을 촬영 중에 영국에서 톰 크루즈는 자신의 BMW 차령을 도난 당해 그 안에 있던 개인 소유물과 돈이 없어진 것에 분노했다. 그래서 더 많은 수행원들을 대동해서 이동을 했다. 화가 난 거지.


그런데 이번 한국, 아니 늘 한국에 올 때에는 단출한 수행원을 대동해서 서울의 밤거리를 저렇게 헤헤 다니고 있다. 과격한 팬들이 달려들 법도 해서 경호원이 톰 크루즈에게 빨리 들어가자,라고 하니까 톰이, 이봐 괜찮아, 여긴 괜찮다고. 하는 장면이 이번에 포착되었다.

사인만 두 시간 했다지


톰 크루즈가 그도 그럴 것이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간 미이라가 전 세계적으로 개봉을 했을 때 모든 나라에서 폭망 했는데 한국에서만 370만이 관람하며 흥행을 이루었다. 백만이 넘을 수 없는 영화였는데 한국관객들이 톰 크루즈를 보고 달려든 것이다.


그렇지만 톰 크루즈는 개인 생활이 철저하게 벽으로 가려져 있다. 잘 나가는 배우 한 명 정도는 그래도 좋을 것 같다. 오래전 우리나라 최은희나 신성일처럼 약간 거리를 두고 멋있는 모습을 보이는. 최은희 하니까 디마지오와 결혼한 먼로가 일본으로 신혼여행 중에 혼자 잠시 한국으로 와서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을 위해 공연을 하는데 그때 최은희가 동행을 했다. 최은희는 영화 속에서 늘 이국적이었는데 한복을 입은 최은희는 단아하고 먼로는 금발의 미녀였다.

정말 사진만 남는구나


아, 그래서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에 실릴 단편 소설이 한 편을 제외하고 뉴요커에 실렸는데 그중에 ‘크림’을 번역해서 책자로 몇 권 만들어봤다. 판매목적으로 만들면 안 된다. 그저 취미로 책자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디자인도 나름대로 하고 영차영차 해서 몇 번 수정 작업을 거쳐 책자로 만들었다.


몇 권 만들어서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이렇게 만들어 본 건 후에 제대로 된 한국 출판물이 나왔을 때 비교해서 보면 얼마나 다를까 하는 그런 기대가 있었다.

먼저 번역을 하고


뉴요커지의 크림을 번역해 본 책자


좌: 한국 출판물,  우: 번역본 책자


그때를 생각하면 재미있는 일은 번역을 하면서 무라카미 라디오도 동시에 듣고 있었는데 하루키가 그 당시에 장편 소설 하나 정도는 쓸 수 있겠다고 하는 것이다. 아마 당시의 무라카미 라디오를 듣던 사람들은 –일본인이건 다른 나라 독자들이건, 일큐팔사만큼 길고 긴 이야기를 써 주길 바라겠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때 장편소설 한 편쯤, 하던 게 지금은 일본에서는 새로운 장편소설이 출판되어 있다. 4월에 일본에서 출판이 되었으니 한국에도 곧 나올 것이다. 이미 여러 블로그에서는 장편소설을 읽고 번역해서 올리는 사람도 있다.


나 얼마 전에 일큐팔사 세 권을 다시 읽었는데 이로써 일큐팔사를 여섯 번인가? 읽어버렸다. 하지만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대략적인 줄거리는 알지만 좀 세세한 것들은 잘 기억이 벌써 안 난다. 해변의 카프카도, 일각수의 꿈도 거의 열 번 정도 읽었는데 기억은 나의 편이 아니다.


그래서 크림을 번역해서 책자로 만들어서 들고 있다가 나중에 ‘일인칭 단수’가 출간되었을 때 날름 구입해서 비교를 해보았는데 너무나 허무하게 비슷해서 맥이 풀렸다. 이게 뭐랄까 하루키의 소설을 많이 읽고 또 읽고 – 나 같은 재미없는 인간은 새로운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기보다 읽었던 소설을 또 읽고 자꾸 읽는다, 계속 읽다 보니 하루키 소설의 분위기를 알게 되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단편 소설집은 사소설 형식으로 주인공이 하루키다. 그래서 소설 '일인칭 단수'에서 아내의 식성에 대해서 말하는 문장은 에세이 '하루키 일상의 여백'에 나오는 문장을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고 할 정도로 똑같은 부분도 많다. 이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라 나중에 한 번 이야기를 하자.


나에게 크림 책자가 한 권이 남아 있어서 가끔 앉아서 읽곤 했는데, 오늘 다시 읽어보려고 찾아보니 또 없어졌다. 거참 기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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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태풍이 오지 않는 이상 매일 비슷한 시간이 되면 강변을 한 시간 반 정도 달린다. 그날도 비소식이 있었지만 약간 내릴 거라는 소식을 보고 강변으로 나갔다.


레인시즌이라 흐렸지만 보통의 흐린 날과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구름이 많고, 7시 정도에는 아직 여름 해가 떠 있어야 하는데 해가 없는, 그런 날이었다. 사람들도 강변으로 나와서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조깅을 했다.


그러고 강변을 달리는데 10분 만에 하늘이 거뭇하게 변했다. 확 어두워졌다. 방안의 스위치를 내려 버린 것처럼 온 세상이 어두워졌다. 이런 어둠은 밤이 되어 자연스럽게 내리는 어둠이 아니라 정전이 된 것처럼 느닷없는 어둠이었다. 평소에 볼 수 없는 어둠, 이런 갑작스러운 어둠은 무서움을 준다.

그러더니 쿠쿵하는 천둥소리가 몇 번 크게 들리더니 천지개벽하는 소리로 바뀌어서 여러 번 천둥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천둥소리가 초단위로 들리고 하늘이 번쩍번쩍 거리는 게 정말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강변으로 나온 어머님들도 너무나 놀라서 내가 들어와 있는, 몸을 푸는 곳으로 들어왔다. 우산을 쓰는 것도 의미가 없고, 비를 피하려 몸을 푸는 곳으로 들어와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비가 사선으로 쏟아졌고 비바람이 뺨을 후려갈겼다. 무엇보다 1분에 몇 번이라도 들리는 천둥소리와 번개가 너무 무섭게 했다. 이렇게 거대한 도시 속에 있어도 마치 고립이 된 것 같은데 산속에 있다가 이런 꼴을 당하면 아마 심장이 펌프질을 엄청나게 할 것이다.

무섭다고 생각하는 순간 비가, 정말 비가 세숫대야로 퍼붓는 것처럼 쏟아졌다. 그렇게 퍼붓는 비가 30분 정도 지속되었다. 30분이라고 하지만 그 30분은 정말 공포였다. 비를 피하던 한 아주머니가 너무 무서워서 집으로 가야 한다며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가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쏟아지는 비는 그렇게 오래 내리지 않는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꾹 참고 비를 피하며 기다렸다. 두 명의 아주머니와 한 명의 아저씨가 있었는데 전부 거세게 쏟아지는 비 때문에 무서워서 가버리고 말았다. 혼자 있으니 정말 고립된 것처럼 무서웠다. 보통 조깅을 할 때 휴대폰으로 음악을 스피커로 틀어 놓고 주머니에 넣어서 달리는데 빗소리와 천둥소리 때문에 노랫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를 가장 공포스럽게 하는 건 번개였다. 이렇게 어두운데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번개가 천둥소리를 동반해서 분당 여러 번 빠지직거렸다. 천둥소리는 작년에도 들었고, 매년 들었다. 태풍이 오면 천둥소리는 따라온다. 그러나 이렇게 플래시가 뛰어다닌 것처럼 지속적으로 빠지직하는 번개는 이 도시에 살면서 처음 봤다.

그렇게 30분 정도 거세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다리도 다 젖고 얼굴도 축축하고, 그럼에도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에서도 팔 굽혀 펴기를 좀 하고 스쾃 같은 것들을 했더니 땀도 엄청났다. 비가 올 때 치던 번개는 세상을 그저 번쩍 하며 밝게만 했는데 비가 그치고 저 먼 하늘에서 빠지직하며 내려오는 번개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번개가 빠지직 저 멀리서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옆의 구름으로 가더니 거기서 터져버렸다. 그러다가 몇 분 후에 또다시 거짓말처럼 등장해서 빠지직 굉음과 나타나더니 천지창조를 보는 것처럼 하늘에 흔히 볼 수 없는 컬러로 나타났다.

이 같은 자줏빛을 띠는 빛은 크툴루 신화를 탄생시킨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빛의 색채가 아닌가. 니콜라스 케이지와 조엘리 리차드슨이 나온 영화 ‘컬러 아웃 오브 스페이스’를 보면 이런 색채의 빛이 등장한다.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 ‘우주에서 온 색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미국의 대학교 문학에 관련된 학과에서는 러브 크래프트의 세계관에 관련된 단편 쓰기도 있다고 한다. 재미있을 것 같다. 아무튼 색채에서 괴기하고 괴랄함을 느끼게 하는 공포를 러브크래프트가 표현했는데, 당시 망가져서 회생불능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선택한 영화치고는 괜찮았다.

특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우주에서 온 색채, 지구에서는 도저히 보지 못하고 볼 수도 없는 기묘한 색채의 빛, 그 자주색을 띤 빛이 바로 저런 번개에서 내뿜은 색채의 빛이었다. 나는 정말 불안해서 무서웠지만 폰을 들고 번개가 치기를 기다렸다가 셔터를 마구마구 눌렀다. 그러다 보니 흔들리고 말았다. 이럴 때 정말 좋은 폰이었다면, 최신 폰이었다면 제대로 잡아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작 황홀하면서 무섭고 불안했던 건 저 멀리서 마지막일듯한 번개가 대폭발 하는 번개였다. 바닥으로 떨어져서 빠직하는 순간 자줏빛이 폭발을 했다.  이 정도 번개는 내가 요즘 올리고 있는 번개를 다섯 번이나 맞는 주인공도 그대로 골로 가버릴 것만 같다. 덜덜덜.

번개와 비도 그친 이 시간쯤이 저녁 8시 정도 된 시간이다. 8시는 밤이다. 밤인데 낮처럼 빛으로 불 밝히는 게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아직 어둡지 않아야 할 시간에 느닷없이 어두워지고 어두운 밤이어야 할 시간에 낮처럼 빛이 대폭발을 일으키고. 지금까지 살면서 전혀 보지 못했던 광경을 보게 되니 앞으로 기대보다는 불안이 더 크다. 덜덜덜.


한 시간 정도 자연은 온갖 무서움을 대동해서 인간들에게 맛보기를 보여준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처럼 돌아갔다. 그래서 자연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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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 해리를 한국에서 가장 잘 설명하려면 김아중의 마리아를 부른 원곡 가수라고 하는 게 빠르다. 데보라 해리는 블론디의 보컬이었고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인물이었다. 일단 하트 오브 글라스를 들어 볼까. 들어보면 아 이 노래! 하게 된다. https://youtu.be/WGU_4-5RaxU


블론디의 데보라 해리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싶으면 전문 음악인들의 영상을 보는 게 좋습니다.


데보라 해리가 노래를 부르면 섹시했다. 그녀의 섹시함은 입술에서 나오는 것 같았고, 그녀의 입술은 세계에서 가장 강렬한 섹시함을 뿜어냈다. 지난번 나탈리 임부를리아의 이야기를 할 때에도 말했지만 데보라 해리의 섹시한 입술은 후에 여러 후배들이 오마주를 한 것 같았다. 현존 가장 섹시하다는 노 다웃의 그웬 스테파니가 그렇고, 커트 코베인의 아내였고 홀의 리더 보컬이었던 코트니 콕스가 그랬다.


데보라 해리가 있던 블론디가 어떤 그룹인가. 7, 80년대 지구를 그야말로 들었다 놨다 했던 그룹이었다. 블론디의 노래는 강렬해서 그런지 샤넬 광고에도 많이 사용이 되었다. 샤넬 역시 강렬한 붉은 진홍색을 표현하는데 블론디의 노래가 딱이었다. 2015년 여름에 샤넬 광고가 생각이 나서 검색을 해봐도 찾지를 못하겠다. 수영장에서 붉은 입술의 모델이 풀사이드에 나오면서 블론디의 아토믹이 나온다.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샤넬. 2017년까지도 티브이에 샤넬 오리지널 광고가 시즌 별로 나왔다. 광고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사실 샤넬의 창시자 가브리엘 샤넬은 일 중독자였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오직 디자인을 구상하고 일만 했다.


그녀는 몹시 미스터리한 인물이었다. 괴팍한 궤변가이자 오만함의 상징이고 집에서 무의도식하는 프랑스 여성들을 경멸했다. 가브리엘 샤넬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크리스마스였고 빈둥거린다는 이유로 프랑스 귀족 여자들을 몹시 싫어했다.


샤넬은 도도하고 부잣집 외동딸처럼 자랐을 것 같지만 그녀는 어린 시절 수녀원에서 자랐다. 샤넬은 어린 시절의 애정결핍과 아픔,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 디자인에 집착을 했고, 남자에게도 집착이 강했다.


샤넬의 옷 중에 검은색과 흰색의 조화가 많았는데 그것은 샤넬이 수녀원에서 보고 자란 수녀 복의 색채가 그녀의 디자인에 강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수녀들을 자신의 고모들이라 생각했고 스스로는 공주라 여겼다. 그녀의 디자인에는 사랑에 대한 갈구와 애착에 대한 심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런 샤넬에 반하는 디자인이 크리스찬 디올이다.


샤넬은 자기애가 무척 강했다. 그렇기에 결국 자기애가 그 힘을 발휘해서 샤넬이라는 명품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제품의 이름은 단순하게 지었다. 팔백만 원이 넘어가는 샤넬 2. 55백은 단순히 55년도 2월에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 한다. 그렇지만 가로의 길이가 또 25. 5 센티미터이기도 하다. 샤넬의 2.55백은 180가지의 공정을 거치며 6명의 전문가가 가내수공업으로 10시간 이상 투자를 하여 하나의 백을 만들어낸다.


샤넬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한 것은 이런 샤넬의 광고에 기가 막히게 데비 해리 - 데보라 해리, 블론디의 노래가 어울리기 때문이다.  https://youtu.be/O_WLw_0DFQQ Blondie - Atomic


https://youtu.be/HFcO3UD4-fM 드디어 찾은 샤넬 광고와 블론디의 아토믹


블론디의 실험적인 음악이 신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열광의 중심에는 데비 해리라는 보컬이 있었기 때문이다. 블론디의 노래는 음반을 구입해서 들어보지 않았어도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안다. 왜냐하면 어딘가에서 늘 나왔기 때문이다. 머나먼 이국의 조그만 도시의 어느 술집이나 옷가게, 지금은 사라진 레코드 가게의 스피커에서 블론디의 노래는 언제나 흘러나왔다.


블론디의 노래는 영화 속에도 꽤 나왔는다. 영화 ‘졸업’이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으로 대표된다면, 블론디의 노래는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를 장식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이 상류층의 여성을 유혹해서 돈을 가져가는 그런 내용의 영화다. 단순한 것 같지만 아주 재미있다. 주인공으로 아주 젊은 시절의 리처드 기어가 나온다.


이 영화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당시 영화 의상을 누가 할래? 했을 때 아직 사회 초년병 시절의 한 디자이너가 손을 번쩍 들고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해서 그가 리처드 기어의 영화 의상을 도맡아서 하게 된다. 그 디자이너가 바로 남자들이 환장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였다. 이 영화는 당시 일대 파란을 일으키는데, 이 영화 이전에 섹시한 남자는 웃통을 벗은 근육질의 몸이었는데, 아르마니를 걸친 젊디 젊은 리처드 기어는 너무나 섹시했던 것이다. 근엄의 상징인 양복에서 섹시함의 대표가 되는 수트로의 해체가 이루어졌다. 수트를 입고 있는데 섹시함이 흘러넘쳤다. 집 안에서 빵만 구워대던 미국의 여성들이 극장으로 달려들었다.


전 세계 많은 나라에 리처드 기어와 아르마니의 섹시함을 퍼트렸지만 수위 때문에 한국은 수입이 불가능했다. 영화 속에서 리처드 기어가 옷장을 열면 아르마니가 옷장에 죽 걸려 있다. 아르마니를 보는 재미도 좋다.

영화 속, 아르마니를 걸친 리처드 기어의 움직임, 손짓, 눈빛 그 나하나하가 전부 섹시했다. 영화 속에는 아르마니 이외에 명품이 잔뜩 나온다. 음향기기, 스피커, 가구 그리고 페리에의 병도 지금과 똑같다. 리처드 기어가 미소를 지으면 그 미소가 마치 상영관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요즘으로 친다면 여친남친 여행 브이로그를 담은 유튜브 영상과 같을 것이다. 이 영화를 장식했던 음악이 블론디, 데보라 해리의 ‘콜 미’였다. https://youtu.be/i4DI71X6PeM Blondie - Call Me (Original Long Version) (American Gigolo) (1980)


데보라 해리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그녀의 섹시함 이면에는 귀여운 면모가 잔뜩 존재한다. 귀여우면서 섹시하기가 상당히 어려운데 그 어려운 길을 아무렇지 않게 걸어간다. 얼굴은 퇴폐미가 흐르는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동작이나 액션은 또 뭐야 그냥 인형이잖아! 하게 된다.


데보라 해리의 헤어, 의상, 화장 이 모든 것이 모두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데보라 해리는 마네킨보다 더 인형 같은 모습으로 그녀를 닮은 인형이 미국에서는 많이 팔렸다는 이야기를 학창 시절에 음감에서 디제이가 말한 것 같은데 뇌피셜이다.


데보라 해리는 74년에 5명의 남성과 함께 그룹을 결성하고 76년에 블론디라는 앨범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비교적 늦은 나이 서른 정도에 노래를 부른 데보라 해리는 블론디를 정상으로 끌어올린다. 그들의 음악을 뉴 웨이브, 컨템퍼러리 펑크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런 말들이 무슨 말인지 나는 모른다. 자세한 것을 알고 싶으면 음악 전문 리뷰어의 영상을 보기바람.


데보라 해리는 강렬하게 보이는 섹시한 인상과는 달리 순애보였다. 같은 멤버 중 기타의 크리스 스타인과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얼마나 행복했나. 투어를 다니며 사랑을 속삭이고 크리스는 데보라 해리의 깊은 눈동자를 쳐다보며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사랑의 속삭임은 음악의 영감이 되었고 같은 무대에서 같인 곳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했다.


가는 무대마다 전 세계 사람들은 열광했고 환호했다. 멋진 일이었다. 그런데 스타인이 난치병에 걸리고 만다. 공연은 물론이고 음악을 더 이상 하는 것에 제동이 걸리고 만다. 한창때였다. 최고를 달리고 있었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의 사람들에게도 블론디라는 그룹을 알릴 수 있었다. 기타리스트만 교체해서 다시 무대에 오르면 된다.


그러나 데보라 해리는 그 길로 부와 명성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병간호에 들어간다. 그 기간이 무려 15년이었다. 그렇게 80년대 최고를 달리던 블론디가 해체하고 만다. 15년 동안 데보라 해리의 극진한 병간호 덕분인지 크리스의 난치병이 완치가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헤어지고 만다. 그러나 두 사람은 친구가 되기로 한다.


시간이 훌쩍 지나 세기말에 다시 무대에 등장한 데보라 해리는 예전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났다. 많이 늙고 힘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렸던 팬들은 그런 것쯤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저 돌아와서 무대에 오른 데보라 해리에게 열광했다. 99년 그렇게 마리아를 부른다.


 https://youtu.be/OF-EIqerj8o Maria 1999 "NYC" Live Video


사람들은 데보라 해리를 외쳤다. 팬들은 그녀를 아무런 불만 없이 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티스트와 팬, 이 알 수 없는 관계는 마치 산모와 뱃속의 아기처럼 설명이 안 된다. 데보라 해리는 이후 지금까지 꾸준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금은 70이 넘은 할머니의 모습이지만 여전히 멋있다. 여전사 같은 모습으로 무대에 오르지만 그 속의 부드러운 면모를 잔뜩 가진 채 노래를 부른다.


미국에서는 데보라 해리의 전기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소식도 벌써 몇 해 전에 들은 것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만약 영화가 된다면 데비 해리의 역할을 누가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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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을 기점으로 몸보신의 날이 펼쳐졌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현대인에게는 사실 보신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 신진대사가 빠른 10대를 제외하고 대체로 신체는 더 이상의 에너지를 섭취하지 마!라고 하는데 뇌가 때가 되면 자꾸 음식을 먹는다. 이 놈의 배꼽시계가 때가 되었으니 음식을 먹으라고 뇌에서 분비물을 마꾸 뿜어낸다. 일상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이 가장 수월하게 도파민을 뿜어낸다.


그러나 이미 우리의 몸은 온갖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신체는 "주인 놈아! 이제 그만 좀 먹으라고! 너 배를 좀 봐! 등도 배처럼 불룩하단 말이야! 더 이상 에너지를 보낼 때가 없단 말이야!"라고 외치지만 우리는 신체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한다. 그래서 복날이라고 해서 따로 보신이 되는 음식을 챙겨 먹을 필요는 없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초복을 챙기게 된다. 그래야 또 불경기에 호황을 누리는 식당도 생기기 때문이다. 초복에 가장 장사가 잘 되는 집은 당연하지만 삼계탕 집이다. 복날이라도 있으니 요즘 같은 시대에 장사가 잘 된다.


복날은,


한국의 닭들이 초토화되는 날이다. 집집마다 삼계탕을 끓여 먹기도 하고 삼계탕 집에서 먹기도 하고, 백숙 집으로 가기도 한다. 삼계탕은 생각해 보면 그 집이나 그 집이나, 저 집이나 이 집이나 맛이 거의 비슷하다. 대체로 비슷하니 대체로 무난하게 맛있다. 특별한 맛이 나지 않는 것이 삼계탕이다.


그래서 가정집에서 닭을 삶아 먹으면 맛이 집집마다 좀 다른데 들어가는 재료가 가지각색이라 그렇다. 마늘을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넣는 집이 있고, 들깨나 녹두를 왕창 넣는 집도 있고, 전복을 넣어서 삶아 먹는 집도 있다. 미역국과 비슷하다. 집집마다 미역국의 맛이 전부 다르듯이 가정에서 닭을 삶아 먹으면 맛이 좀 다르다.


이렇게 평균적으로 닭을 삶았을 때 맛이 거의 비슷한 이유는 닭이 육계라서 그렇다. 마트나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닭이 대부분 육계(다 그런 건 아니지만)다. 육계는 외국에서 들어온 종인데 주로 기름에 튀기거나 구워서 먹으면 맛있는데 국물을 우려내서 먹으면 그렇게 맛이 좋지 않다.


육계는 하림이라는 대기업에서 유통시키고 있다. 흔히 5일장 같은 전통시장에서 개인이 토종닭을 키워서 잡아서 파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대기업과 정부가 거래를 해서 개인이 닭을 잡아서 털을 벗겨 판매하는 행위를 위생을 걸고 불법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전통시장에서 개개인이 집에서 키운 토종닭을 파는 경우가 있는데 맛이 육계보다 훨씬 좋고, 그 닭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불법을 감안하고 판매를 하기도 한다.


그럼 육계보다 국물을 우려내서 먹을 때 맛있는 닭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 맛닭’이라는 이름의 닭이다. 이는 거의 20년 동안 국립축산과학원에서 개발해 낸 새로운 종이다. 원래 있는 한국 토종 재래닭과 60년대 미국에서 들어와서 토착화된 토착종을 교배하여 만들어낸 토종닭이 우리 맛닭이다.


이 닭이 맛있다. 닭이 거기서 거기지 흥.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육계를 삶아서 국물을 우려내 먹는 맛과는 천지차이다. 아주 맛있다. 국물이 일반적인 삼계탕의 육수보다 깊고 맛있고, 고기도 부드럽게 맛있다.


https://www.nias.go.kr/front/participation1.do?cmCode=M190726141152094


여기서 사람들이 왕왕 착각하는 것이 토종닭이라고 해서 삶으면 졸깃졸깃 좀 질겨야 한다는 편견이 있다. 백숙집 같은 곳에 가면 압력밥솥에서 삶아서 내놓는 경우가 있는데, 뚜껑을 덮는 냄비에서 삶게 되면 닭이 질기게 된다. 이를 졸깃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질기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이 맛에 먹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맛이 있어야 한다는 것.


폐닭도 보통 그런 맛으로 먹기 때문에 조리를 잘하지 못하면 질겨 못 먹는다. 폐닭으로 닭곰탕을 잘하는 식당에 가면 맛있다. 영화 완득이를 보면 잘 나온다. 노계, 폐닭으로 조리를 잘하면 그 맛에 빠지게 된다. 입에 넣어서 흐믈흐믈 후룩 그냥 살이 분리되는 것보다 씹는 맛이 좋다고 느끼면 그게 훨씬 좋다.


닭을 삶아서 먹을 때에는 뚜껑을 열고 삶는 냄비에서 끓이게 되면 고기가 질기지 않고 맛있는 식감이 된다. 퍽퍽함이 거의 없다. 우리 맛닭은 2호까지 개발됐다. 10호의 작은 육계에 비해, 우리 맛닭은 14호 정도로 크고 고기살도 많아서 3인 가족이 한 마리만 삶아서 먹어도 된다. 초복은 일 년에 한 번 있고 중복, 말복 해서 세 번 정도 닭을 삶아 먹을 거라면 맛있고 푸짐하게 먹으면 좋다.


내 어릴 때에도 여름방학에 외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나면 외숙모와 큰 이모가 키우던 닭을 잡아서 닭을 삶아 주었다. 아주 옛날, 조선시대 같은 시기에도 닭은 귀한 가축이었다. 닭과 돼지와 소는 같은 급이었다. 닭과 돼지, 소 전부 사료를 먹는다. 그러니까 귀할 수밖에 없다. 닭이 돼지나 소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이유는 같은 양의 고기를 얻는데 가장 적은 양의 사료가 소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집에서 키우던 닭을 잡는 날은 경사가 아니면 잡아먹지 못했다. 하지만 닭 한 마리를 여러 명의 가족이 나눠먹기는 너무나 작은 양이라서 삶아서 국물을 우려내서 온 가족이 밥을 말아서 먹었다.


영화 관상을 보면 닭 한 마리 삶아서 닭다리 두 개는 송강호와 아이유의 남자, 이종석이 먹어 버리고 그렇게 먹고 싶은 닭다리를 바라만 봐야 했던 조정석을 떠올리면 된다. 집에서 닭을 푹 고아서 우려낸 육수는 맛있다. 내 어릴 때 외가에서 키우던 닭을 외숙모가 잡아서 삶아 먹으니 먹다 보면 덜 뽑힌 털이 나오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공장사육을 하지 않고 방목으로 키워서 고기가 졸깃졸깃 부드럽다. 닭의 크기도 크다.


우리 집은 바닷가라서 매일 보는 바다보다 방학에 외가가 있는 불영계곡 속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는 게 재미있었다. 어릴 때는 그랬다. 물이 너무 맑아서 가재도, 피라미도 요래 다 보여서 잡는 재미도 좋았다. 물놀이를 하며 놀다 보면 배가 금방 허기가 진다. 이상하게도 물놀이는 하면 배가 금빵 꺼진다.


그러면 외숙모와 큰 이모가 닭을 삶아서 죽을 만들어서 닭고기를 죽죽 찢어서 넣어주었다. 그런 닭이 맛있었다. 개울가에서 그렇게 먹고 또 물놀이를 하다 보면 금방 저녁이 되었다. 저녁이 되어 해가 산 넘어서 사라지고 나면 추웠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은 여름이라도 밤이 되면 그렇게 덥지 않았다.


저녁에는 닭을 삶은 육수에 대파, 고사리와 고추장을 넣고 닭개장을 끓여서 다 같이 둘러앉아서 먹었다. 끼륵끼륵, 요즘 잘 들을 수 없는 귀뚜라미나 메뚜기 다리 비비는 소리를 들으며 사촌형들과 누나들과 함께 외가의 마당에 앉아서 닭개장을 후루룩 맛있게 먹었다.


요즘 치솟는 물가를 생각해 보면 병아리로 삼계탕을 만들어내는 일반적인 삼계탕 집은 너무 비싸다. 일단 만원이 넘잖아. 그럴 바에는 우리 맛닭으로 집에서 삶아서 먹는 게 낫다. 아무튼 초복에 우리 맛닭을 삶아서 먹으니 어릴 때 물놀이 후 맛있게 먹었던 추억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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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 시골마을.

두 시간 넘게 버스를 기다리는 한 청년.

저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버스가 한 대 온다. 청년은 버스에 올라탄다. 이 험난한 시골길의 대형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는 20대 젊은 여성이다.


청년은 버스에 오르며 두 시간을 기다렸다고 젊은 여성의 기사에게 말하지만 멋쩍게 한 번 웃고는 기사는 시큰둥하다. 버스에는 시골마을 사람들로 보이는 남자들이 가득 앉아 있다. 청년은 담배를 한 대 피운다.


그렇게 버스가 시골길을 터덜터덜 가는데 저 앞에서 다친 사람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보인다. 버스가 멈추고 그들을 버스에 태우자마자 강도로 돌변해서 승객들의 돈을 뺏는다. 승객들은 순박해서 반항을 하거나 덤빌 생각을 하지 못한다. 승객 중 한 명이 강도에게 돈을 주지 않으려 하다가 강도에게 맞아서 피가 난다.


강도들은 버스에서 내리려다가 운전기사가 젊은 여성이라는 걸 알고 끌고 내려가서 겁탈하려고 한다. 기사는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버스에 탄 남자들은 그저 멀뚱멀뚱 보기만 한다. 순박한 얼굴 표정에서 나만 다치지 않으면 기사가 당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얼굴이다.


강도들은 여성 기사를 끌고 내려가서 겁탈을 한다. 승객들은 그저 그 모습을 멀뚱히 보기만 할 뿐이다. 가장 늦게 올라탔던 청년이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느냐며 버스에서 내려 강도들에게 달려들다가 칼에 찔려 다리에 피가 나서 쓰러지고 만다.


성폭행을 하고 강도들은 가버리고 여성 운전자가 만신창이 되어 버스에 오른다. 오르면서 버스에 탄 사람들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본다. 승객들은 여성 운전자의 시선을 피하기만 할 뿐 더 큰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안도하는 얼굴이다. 여성 기사는 한참을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운전석에 앉는다.


그때 청년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버스에 타려고 한다. 그런데 여성 운전자가 타지 말라고 화를 낸다. 청년은 도와주려고 했던 사람은 나뿐인데 왜 나만 버스에 태워주지 않느냐고 한다. 여성 운전자는 화가 나서 버스의 문을 그대로 닫아 버린다. 청년은 태워달라고 하지만 여성 운전자는 창문으로 청년을 가방을 던져준 후 버스를 몰고 그 자리를 떠난다.


황당한 청년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시골길을 가다가 어떤 차에 히치하이킹을 해서 간다. 얼마쯤 갔을까 경찰들이 도로를 통제하고 있다. 청년은 내려서 본다. 거기 가서 보니 아까 그 버스가 절벽으로 떨어져 모두가 사망하고 말았다.




이 단편 영화는 1998년 8월 중국의 지방 신문에 보도된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11분짜리 단편 영화를 보면 잘 알겠지만 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다. 전 세계에서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는 생물 1위가 모기, 2위가 인간이라고.


요즘 공포영화가 많이 나오는데 귀신? 좀비? 뱀파이어? 괴물? 유령은 장난 수준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잔인하다. 요즘 아기들 버리고 파묻고 냉장고에 넣고 봤지. 영화 풀버전은 유튜브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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