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든 레이크는 2008년에 나온 공포영화에 가깝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실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뎀인가? 하는 제목의 영화를 다시 영국 버전으로 만든 영화다.


영화의 여자 주인공은 초등학교 교사다. 애인으로 마이클 패스벤더가 나온다. 두 사람이 호숫가에 갔을 때 그 동네에서 개판으로 생활하는 10대 초반의 아이들, 잼민이들이 놀고 있다. 제니는 스티브에게 그 자리를 피해서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한다. 하지만 스티브는 괜찮다며 호숫가에서 일광욕을 즐긴다.


잼민이 들은 제나를 희롱한다. 개로 위협하고, 망원경으로 몸을 훑고. 초등학교 교사인 제나는 학교에서 내놓은 잼민이들의 심리를 아니까 호숫가가 경치는 좋으나 다른 곳으로 스티브에게 말하지만 잼민이들에게 질 수 없는 스티브가 주의를 준다. 그리고 점점 가열되어서 잼민들에게 스티브가 처참하게 죽는다.


제니를 잡아서 사진을 찍고 희롱하고 죽이려는데 제니가 탈출해서 몹시 더러운 썩는 냄새가 나는 쓰레기 통에 몸을 숨겨 도망을 가서 마을의 사람들에게 구조가 된다. 구조되어서 경찰을 기다리는 그 집이 잼민이 들 중 스티브를 죽인 아이의 집이었다.


이 영화는 루마니아의 실제 잼민이들이 살인을 저지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2002년 시월에 루마니아의 한 지역에서 여자 시체 두 구가 발견되었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는 흉기에 살해되었고 딸은 질식사로 추정되지만 당일 엄청난 비로 범인의 모든 흔적이 지워졌다. 5일 뒤에는 인근 숲 속 저택에 살고 있는 젊은 남녀의 사체도 발견되는데 범인은 10대 잼민이 들이었고 범행 동기가 장난이었다고 해서 유럽 전역에 충격을 주었다.


이 영화도 보면 심각할 정도로 분노가 몰려온다. 화가 막 난다. 영화 속에서 범행을 저지르는 잼민이들의 부모들 역시 살인자인 아들을 살리려고 제니를,,, https://youtu.be/rJkO9HBXuhc


근래에 정신줄 놓아버린 잼민이 들 때문에 초등학교 교사가 구타를 당하고, 한 학교의 교실에서 끔찍한 선택을 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잼민이 들도 문제지만 그 부모들의 대응이 보도되면서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나는 대략 십 년 전부터 서천석 박사의 강의와 책을 좋아해서 그가 말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그가 바라보는 아이들의 방향과 어른과의 차이를 주의 깊게 듣고 보았다. 그래서 서천석 박사가 하는 말을 여러 글에서 소개를 했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우울하다. 그 이유는 무력하기 때문이다. 눈을 떠서 하는 모든 것들이 부모를 비롯해 타인에 의해 움직이고 먹게 된다. 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샐리 만의 사진에 그런 모습이 있다. 여성으로 최고의 사진가 반열에 오른 샐리 만의 초기 작품인 자신의 세 아이들을 담은 사진을 보면 아이들의 웃고 있는 사진이 거의 없다. 쉬르리얼리즘의 세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현실인데 비현실적이다. 그저 미스터리하고 신비하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굉장하다. 사진으로 그런 것들을 표현해내고 있다.

어떻든 아이들은 불완전한 존재로 기본적으로 그루미 하다. 말 잘 듣고 착하게 지내다 어쩌다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하게 되면 혼나게 되고, 또 이러다가 나중에 뭐가 되려고 그러니,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만약 어른이 그런 소리를 듣게 되면 그렇게 말을 사람과는 다시는 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이는 그럴 수가 없다. 아이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은 대체로 부모다. 친구나 학원 선생님이나 태권도 관장님은 그런 소리를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보는 영화를 만들 때 어린이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어린이 영화를 만들면 영화는 실패한다. 성인이 어설프게 연기를 하는 어린이 영화가 어린이들이 좋아할 거라는 망할 마인드로 만들면 아이들은 외면한다.


아이들이 보는 영화가 유치해도 된다는 마인드를 가진 영화인들이 아이들이 보는 영화를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보는 영화라고 해서 유치해도 된다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


성인, 그 이상으로 진지하고 디테일에 신경을 써서 아이들이 보는 영화를 만들어야 아이들이 마음을 조금 연다. 미취학아동 그 이전의 아이들이 보는 영화나 만화에는 방귀나 뀌고 똥이나 먹고 하면 먹힐지 모르나 그 이상 아이들은 그런 유치함을 영화 속에서까지 원하지 않는다.


유치원생 정도의 미취학아동을 성인이 대할 때 남자친구와 결혼할 거야? 여자 친구와 결혼할 거야? 같은 질문은 아주 잘못된 질문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이런 어른들의 관점에서 보는 로맨스가 없다고 서천석 박사는 말하고 있다. 어린이가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남자친구와 결혼을 해야 하는 건가? 남자친구가 있어야 하는 건가?라고 생각을 한다. 즉 일찍부터 어른들의 프레임에 들어오게 하는 질문을 어른들은 무의식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서천석 박사의 책을 보면 아이는 무력하기 때문에 대체로 부모의 요구대로 움직인다. 그러다 보면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기에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밤에 하품을 하면서도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는 그날 스트레스가 강하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럴 때 대체로 부모나 할머니는 우유를 먹이고 잠을 재우려 하는데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서천석 박사는 라디오에 많이 나오던 때가 있었고 방송에서도 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어느 날 방송에서 볼 수 없었다. 아마도 자신의 본분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 싶었을 것이다. 메스미디어는 과장과 자극을 원료로 끝을 모르고 달려가는 폭주기관차와 같다. 자신이 내려오지 않으면 폭주기관차에 올라탄 채 끝도 모르고 달렸을 것이다.


서천박 박사는 아마 그 사실을 인지하고 방송계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런 서천석 박사가 금쪽이 설루션을 비판하는 내용이 보도되면서 내용을 읽지 않은 채 사람들은 서초교사 사망은 오은영 탓? 같은 짤과 밈을 만들고 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4870907?sid=102


이미 사람들은 자극과 과장을 통해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수위가 극에 달해있다. 클릭과 조회수를 위해서라면 어떤 영상이나 말을 짜깁기해서 올릴 수 있다.


아이와 부모는 천차만별이고 전부 제각각인데 이 아이에게 적용한 설루션을 일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에게도 적용하려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집에서 아이 하나를 케어하고 훈육하는 것과 교실에서 여러 명의 아이들을 교육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니까.


오은영 박사가 티브이 프로그램에 나무 많이 나오니까 이제 그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반, 오은영 박사의 설루션이 좋으니 그냥 계속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반 정도 된다고 했을 때 방송 제작자 측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모여들고 시청률이 좋고 가만 둬도 자극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넘치는 방송을 끊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전부 메말라갈 때까지 쪽쪽 빨아먹을 집단이 방송국이다.


한 정신의학박사는 부모와 아이의 문제가 일어났을 때 아이에게 집중을 하는 오은영 박사에 비해 그는 부모에게 집중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10년 차 초등교사가 오은영 박사에게 하는 말을 올려본다. 스압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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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키의 사소설 격인 ‘일인칭 단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하루키의 장편소설이 아직 국내에 출간이 되지 않아서 한국 출판물로는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 ‘일인칭 단수’가 제일 마지막에 나온 소설집이다.


소설집 속에 수록된 소설, 위드 더 비틀스는 두 번 정도 읽었다. 크림은 많이 읽었다. 한국 출판물이 나오기 전에 번역책자를 만들어 봤기 때문에 꽤 여러 번 읽었다. 적어도 15번은 넘게 읽은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기억이 아스라이 저 멀리.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도 많이 읽었다.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은 15년 전에 나온 시나가와 원숭이의 후편이다. 시나가와 원숭이도 나이가 많이 들었다. 하루키가 여행 중에 만나서 고백을 듣는 이야기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단편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중국 배우 후거가 재해석을 해서 영화로 만들었다. 꽤 잘 만들었다. 시나가와 원숭이가 이름을 훔쳐가는 이야기로, 현실에서 이름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딸로 불리며 조금씩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되다가 결국 자신도 자신의 이름을 모르게 되는, 아무튼 소설을 읽으면 재미있다.


이 시나가와 원숭이는 하루키가 아버지에 대해서 쓴 '고양이를 버리다'에도 등장한다. 첫 시작에 시나가와 원숭이가 나타나서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이름과 성, 둘 중에 하나의 선택권을 주겠다. 무라카미와 하루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너는 무엇을 택하겠나,라며 등장한다.


하루키의 글을 읽어보면, 특히 소설을 읽어보면 예전 소설들이 최근의 소설로 이어지면서 전부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시나가와 원숭이처럼 같은 문장을 여러 소설에 사용하기도 하며, 와타나베 노보루라는 이름도 여기저기 소설에 등장한다. 이 이름은 꽤 부정적이고 호러블 한 인물의 이름으로 주로 쓰였는데 하루키의 절친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본명이다.

일인칭 단수는 소설이라기보다 거의 에세이에 가깝다. 일인칭 단수를 읽어보면 위에서처럼 아내는 혼자서 중국음식을 먹으러 간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중국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음식에 들어가는 향신료 때문에 알레르기가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아내는 중국음식이 먹고 싶어 지면 중국음식을 못 먹는 주인공 때문에 친한 여자 친구들을 불러내서 먹으러 간다고 했다.라고 마치 남에게 말하듯 했지만 그건 하루키 본인의 이야기다.


일인칭 단수에는 주인공이 하루키 본인이라고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는 확실하게 주인공이 하루키 본인이라는 것을 안다. 만약 처음 일인칭 단수를 읽는 사람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아니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라며 따지듯 묻는다면 대답할 수 있을 정도다.

하루키의 일상의 여백을 읽어보면 확실하게 소설 일인칭 단수에 나온 문장이 그대로 주욱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에세이에 중국음식을 전혀 먹지 못해서 하루키는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던 이야기, 그리고 아내가 몰래 중국음식이 아닌 척하며 하루키에게 먹이려 했지만 실패하고 만 이야기, 그리하여 아내는 중국음식이 먹고플 때는 친구들과 간다는 이야기를 죽 써놨다.

하루키는 여러 글에서 자신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이전에 피터캣을 운영하면서 담배도 하루에 한 갑씩 피우고 먹는 것도 가리지 않고 먹었다고 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런 생활방식으로는 전혀 글을 쓰는 패턴을 찾을 수 없어서 기름기 있는 음식을 멀리하고 달리기를 하며 담배를 끊어 버렸다고 했다.

그리하여 위의 에세이에서 아내가 라면이 먹고 싶은데 하루키는 라면을 먹지 못해서 결국 혼자서 라면을 먹다가 “나이가 들어서도 혼자 라면을 먹으러 오는 여자만은 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옆에 테이블에서 들었다고 하루키에게 마구 화를 냈다.


그런데 혼자서 라면을 먹는 40대 여인이 어때서 그럴까. 나 돼지국밥 집에 한창 다닐 때 홀로 국밥을 맛나게 먹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소주병도 앞에 두고 면사리도 넣어서 야무지게 먹는 모습이 이상하지 않았는데.


하루키는 이렇게 먹는 것 때문에 세계를 돌아다니며 취재 겸 여행을 하면서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먼 북소리에도 잘 나와있고, 태엽 감는 새의 연대기 속의 노몬한과 만주 이야기를 보고 잡지사에서 실제로 가보지 않겠냐 해서 여행길에 오르게 되어서 쓴 하루키의 여행법, 우천염전에도 잘 나와있다.


여행지에서 먹는 것이 안 맞아서 불만 섞인 말을 내뱉는 모습부터 쇠파리, 구더기, 철조망, 국경까지 긴박한 이야기도 잘 나온다. 그러면서 노몬한 전투에 대한 이야기도 빠트리지 않고 한다.


[해가 지면 몽고의 하늘은 별들로 뒤덮인다]로 시작해서 [피투성이의 싸움을 벌이고, 그곳에서 수만 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총에 맞고 화염 방사기에 불태워지고, 탱크의 캐터필러에 깔려 죽는다며 생매장을 당하고 또 그것의 몇 배나 되는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입고 팔이나 다리를 잃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암담한 심정이다]라고 쓴 부분을 읽으면 하루키식 유머만으로 이루어진 여행기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져서 좋다.


이런 기록은 장편 소설 태엽 감는 새의 연대기에 잘 나온다. 포로의 가죽을 조금씩 벗기는 이야기, 전투 중에 버려진 군인들을 처리하는 방법. 전쟁의 아이러니가 바로 평화를 위해 서로의 몸에 총을 겨누고 총구멍을 낸다는 것이 잘 드러난다. 모순인 것이다. 온통 모순으로 점철된 처절한 모습까지 소설에 잘 녹아있다.


어떻든 일인칭 단수는 에세이에 근접한 소설, 사소설인 것이다. 특히 아내에 대한 부분은 실제 하루키의 아내 요코 여사에 관한 이야기다.


하루키는 그간 아내에 대해서 대체로 함구하고 있지만 일상의 여백을 읽으면 아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래도 돼? 할 정도다. 아내가 갑자기 일정을 바꾸자고 하는 바람에 난처했는데 이유가, 아내가 읽는 책에 빠져서 책에 나오는 곳으로 갑자기 사자고 해서 혼났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내에게 핀잔을 들은 이야기를 마치 수다를 떨듯 주절주절하고, 또 하루키 자신은 바빠서 취재를 가지 못하니 사진기사 겸 조사원을 파견하는데 그 사람이 아내였다는 이야기까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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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는 집에 가는데 비가 너무 쏟아져서 불안하고 무서웠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더니 좀 비가 줄어드나 싶더니 다시 엄청나게 하늘에서 쏟아졌다. 집으로 가는 30분 정도가 완전히 긴장의 연속이었다. 해안도로는 비가 이렇게 쏟아지면 한 차선에 물이 가득 들어차서 차들이 다른 차로로 옮긴다고 거북이 운행이고 해안도로 옆의 바다는 곧 들이닥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이번을 비롯해서 세 번 정도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에 고립되거나 도로 위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에도 엄청난 비 때문에 도시가 물난리가 나고 전국이 떠들썩했는데 어제처럼 무섭거나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한 번은 비가 도심지를 집어삼킬 만큼 내렸을 때 움푹 파인 도로에 빗물이 가득 고여 있는데 그곳을 지나가다가 차가 그대로 퍼지고 말았다. 그때 차는 사촌형이 차를 구입하기 전에 몰아 보라고 던져 준 중고차였다. 수동기어에 고장도 잘 나지 않아서 잘 몰고 다녔다. 붕붕 가다가 빗물이 고인 도로에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시동은 걸리지 않고 보험사에 전화를 하니 전부 출동을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말만 들었다.


그러나 무섭거나 두려운 마음이 별로 들지 않았다. 좀 외진 곳이라 도로에 나밖에 없었지만 도심지 안이고 보험사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오겠지 같은 생각 때문인지 그냥 차 안에 가만히 있으면서 문자나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데 한 40분 정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바퀴가 물에 잠기고 차가 둥둥 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미련한 건지,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비가 쏟아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내가 있는 도로의 중간이 밑으로 움푹 파여서 그렇지 여기만 벗어나면 도로로 나갈 수 있고 주위는 전부 아파트 단지고 곧 보험에서 출동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또 한 번은 남이섬으로 가는 도중에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그때는 일행과 함께 여행 중이었고 가평인가, 아무튼 어딘가에서 남이섬으로 이동을 하는 중이었다. 오전이었고 산속에 난 길을 따라 이동을 하는데 엄청난 비를 맞이했다. 비가 차 천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드럼소리처럼 컸다. 산 중간을 관통하는 구불구불한 도로 옆의 개울이 막 흘러 넘 칠 정도로 비가 많이 왔다.


옆 자리에서 일행은 너무나 겁을 집어 먹고 있었고 불안해해서 나까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냥 이대로 도로만 잘 나가면 마을이나 뭔가가 나올 것 같았다. 내비게이션도 10분 정도만 가면 식당들이 있는 곳이라고 해서 뭐 그다지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엇 그런데 산에서 토사가 흘러내려 도로를 막은 것이다. 지금까지 한 시간 넘게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렸는데 공포영화에서처럼 지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내려서 치워볼 요량으로 차밖으로 나오자마자 물벼락을 맞아서 그야말로 다 젖어 버렸다. 차 안에 들어오니 에어컨 때문에 춥고, 에어컨을 끄자니 성애가 가득 끼고. 옆에서 일행은 무서워서 곧 울음이 터지기 일보직전이고. 아무튼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려 다시 왔던 길로 나와야 했다. 그때를 생각하니 또 짜증이 나네.


나는 조깅을 할 때에도 갔다가 반환점에서 돌아올 때 더 먼 거리라도 절대 왔던 길로 되돌아오지는 않는다. 아무튼 갔던 카페에 가고, 읽었던 책을 읽고, 먹었던 음식을 먹는 회귀성이 강한 인간인데 조깅을 하면서 왔던 길로 되돌아오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한 시간이나 달려서 왔던 산속의 구불구불한 도로를 다시 돌아 나와야 했다.


일행 때문에 운전도 조심조심해야 했다. 비가 앞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쏟아졌기 때문에 위험했다. 만약 지금 그랬다면 나는 정말 그대로 울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때에는 한 시간을 다시 돌아 나오다 보니 빗줄기가 좀 줄어들었고 들어올 때는 보지 못했던 식당 하나를 발견하고 그대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식당은 아직 장사를 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주인내외가 나왔는데 우리의, 아니 나의 몰골을 보더니 테이블에 앉게 하더니(테이블이 홀에 두 개가 있고 옆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방처럼 생긴 그런 곳에 우리를 앉게 했다) 물을 갖다 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반계탕 밖에 안 되는데 괜찮냐는 것이다. 우리는 반계탕을 달라고 했다.


반계탕 두 그릇을 주문했는데 만두까지 주인내외가 주었다. 반계탕 국물이 들어가니 비와는 상관없이 몸이 확 풀어졌다. 닭고기의 살을 뜯어먹고 일행은 호기롭게 소주까지 한 잔 마셨다. 그제야 일행은 안심을 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때 우리는 식당을 둘러봤다. 식당은 들어오는 문 반대편으로는 개울로 나가는 문이 크게 있었다. 개울로 나가면 발도 담글 수 있고 평상도 있고, 그렇게 예쁘게 되어 있었다.


우리는 반계탕을 다 먹었는데도 주인내외는 비가 줄어들 때까지 있다가 가라고 했다. 그래서 개울이 있는 곳으로 나와서 비막이 밑에서 운치를 즐겼다. 주인내외가 자식들을 다 키우고 둘이서 작은 식당을 하는데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때 다시 들려서 반계탕을 먹자고 했는데 그러지는 못했다. 그때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는데 무서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 몇 해 전부터는 무서운 것들이 많아졌다. 엊그제는 오후부터 비가 엄청나게 왔다. 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조깅이고 뭐고 평소보다 일찍 나왔다. 일찍 나오는 것도 바로 나오지 않고 창으로 이렇게 보다가 빗줄기가 조금 줄어들었을 때 나왔는데 10분 정도 차를 모는데 그야말로 쏴아 쏟아졌고 30분이나 그대로 지속되었다. 내가 예전과 다른 것은 너무 무섭고 불안하다는 것이다. 나는 어쩌다가 이지경이 되었을까.


어린 시절부터 바닷가에 살면서 바다에도 늘 들어가서 빠지기도 하고, 헤엄을 쳐서 그런지 바다에 대한 무서움 같은 건 1도 없었는데, 언젠가부터는 바다에 발가락도 담그지 않게 되었다. 운전하는 걸 좋아하고 서울 가는 것을 좋아해서 몇 해전까지만 해도 부웅 고속도로를 타고 열심히 생생 달려 서울로 가서 백남준 아트전을 꼭 보고 내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도 싫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도 별로다. 백남준? 이전에 나만큼 본 사람도 없을 테니까 지금은 인터넷으로 보면 된다는 식이다.


폭포수처럼 내리던 비가 그치고 그 자리에 무지개가 떠 올랐다. 무지개는 보통 금방 없어지는데 좀 지켜보고 있으니 옆에 작은 쌍무지개도 떴다. 그러더니 무지개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무지개 본연의 색을 다 버리고 밝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밝게 빛나는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이 황홀하기도 또 불안하기도 했다. 무지개가 이래도 돼? 할 정도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무지개는 시인들이 시에도 많이 적용시킨다. 무지개가 일곱 가지 컬러를 버리고 밝게 빛나는 걸 보니 누군가 무지개 밑에서 일곱 가지 색만 빼가서 무지개가 화가 나서 저렇게 빛을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곱 가지 색을 떡에 넣어서 무지개떡으로 만들고, 하나씩 컬러를 떡에 넣어서 갖가지 색이 나는 송편을 만들기도 했다.


무지개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오래도록 머무르다 그렇게 사라졌다. 지금은 소강상태지만 아직 비가 완전히 물러간 건 아니다. 이번 사태를 보니 비가 많이 와서 물이 차오르는 차에 있으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울까. 어른이 되니까 강해지는 게 아니라 점점 약해지고 불안이 주위에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오성인 시인의 말


나이를 먹는 일은 진화의 일종일까.

어른이 되려면 슬픔을 먼저 이해해야 했다.

슬픔을 외면한 대가로 불면에 시달릴 때마다 아직 꺼내 놓은 적 없는 죄책감들을 뒤적였다.

잠은 죽음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생각했다.


2023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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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는 맨홀 2023-07-20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무지개 보기 힘들었는데 잘 보고 갑니다.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오이냉국을 한 모금 마신다. 오이를 한 입 씹어 먹는다. 상쾌하고 식초의 좋은 맛이 입 안으로 와르르 들어온다. 우걱우걱 씹을수록 오이가 아삭함을 온몸으로 퍼트려 준다. 비가 내리는 무더운 여름밤에 시원한 오이냉국만 한 음식도 없다.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곡이 있는데 그 노래 속 주인공이 되어 바다를 보며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시원한 오이냉국의 오이를 아삭아삭 씹어 먹는다. 모든 게 예전 그대 로고 달라질 이유 없는데, 오이냉국도 어릴 때 먹던 그 맛인데 그대만 곁에 없다는 게 너무나 슬프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오이냉국이라는 곡도 만들면 여름에 너무나 좋을 것 같다. 아삭아삭 씹히는 상쾌한 소리가 여름밤에 울려 퍼지면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계절송이 되어 여름밤이 되면 그대를 그리워하며 오이냉국을 꿀꺽 먹는다. 여기서 말하는 그대는 연인이라기보다 어머니다.


어머니가 어릴 때 여름이면 시원하게 송송 오이를 잘라 담가주던 오이냉국은 여름이면 늘 그대로인데, 같은 생각을 하면서 권성연이 1990년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한여름 밤의 꿈을 듣고 있으면 이야기가 눈앞에 선하게 펼쳐진다.


영상을 찾아서 보면 그날, 권성연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그날이 자신의 생일이라고 한다. 간주 중에는 자막으로 권성연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고려대 불문과에 국민학교 때 MBC어린이노래자랑 우수상 수상, 취미는 낮잠, 별명은 쥐방울이라고 한다.


자막도, 화면도, 가수도, 사회자인 이수만과 이미연은 비현실적이라 정말 꿈같다. 오직 권성연이 부르는 노래만이 시대에 머무르는 꿈같지 않다. 노래를 끝내고 들어가려는 권성연을 이수만이 붙잡아서 이런저런 말을 막 시키고 요들송을 시킨다. 그런데 권성연이 요들송을 부르는데 와, 정말 잘한다.


권성연은 자신의 자작곡인 한여름 밤의 꿈으로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재즈가수가 되고 싶어 했던 권성연은 당일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배탈이 나서 정신이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고. 그런데도 노래를 부르고 남아서 요들송도 멋들어지게 불렀다. 권성연은 이후에 영심이 주제곡 ‘해봐’도 부르고 피구왕 통키의 주제가도 부른다.


권성연의 한여름 밤의 꿈을 듣고 누군가가 여름에 이 노래 한곡만으로 여름 내내 버텨낼 수 있다고. 한 번 끝까지 노래를 들어보면 노래가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


매년 여름이 시작할 때 오이냉국에 관한 글을 적는 것 같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오이냉국에 대해서 열심히 적고, 또 열심히 먹었다. 나는 보통 이렇게 오이냉국으로 해서 오이를 일 년에 한 네 박스 정도를 먹는다. 라면박스 정도의 크기가 아니라 책이 택배로 오는 정도의 박스다. 여름이 되면 찾아서 먹게 되는 채소와 과일이 있다.


수박은 잘 먹지 않지만 오이는 여름이 되면 찾아서 먹게 된다. 그리소 복숭아와 자두를 먹게 된다. 물방울이 겉면에 흐르는 시원한 자두를 먹고 있으면 여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이는 그냥 생으로는 잘 먹게 되지 않지만 오이냉국으로 해 놓으면 하루에 한 그릇씩 뚝딱 먹게 된다.


오이냉국으로 만든 오이는 아삭아삭 씹어 먹는 맛이 좋아서 자꾸 먹게 된다. 맥주와 먹기에도 좋다. 이렇게 시원하게 국을 만들어 먹기 좋은 건 콩나물국도 그렇다. 콩나물만으로 만든 슴슴한 국도 뜨거운 것보다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꺼내 마시는 시원한 콩나물국이 좋다. 시원한 콩나물국은 겨울에도 좋다. 뜨거울 때는 잘 못 느끼는 간간한 맛도 시원하면 느낄 수 있다.


여름에 나를 찾아온 오이냉국.

오이냉국만 있다면 이 여름 내내 나는 견뎌낼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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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여름을 맞이하면서 동반되는 연중행사 같은 것이 공포프로그램이 티브이를 통해 나온다는 것이다. 공포영화가 케이블 영화 채널을 통해 나오고, 심야 괴담회 역시 여름 특집으로 단단하게 중무장해서 나올 것이다. 여름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제갹이야,라고 하는 것처럼 티브이는 예전부터 여름이 되면 무서운 이야기를 만들어서 내보내고 있다.


일본 채널에서도 오밤중에 공포 이야기를 방송한다. 기묘한 이야기라든가, 정말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등 이런 프로그램은 20년 이상씩 된 프로그램으로 장수 프로그램이다. 10주년, 20주년 기념 방송을 하기도 하는데 그때에는 일본 내에서도 잘 나가는 배우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한이 서린 우리네 이야기에 비해 일본의 서민 공포는 민담이나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복수라는 개념보다 귀신이나 오니가 개뜬금 없이 나타나서 인간을 괴롭히거나 죽이거나 저쪽 세계로 데리고 간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서 귀신의 종류도 많고 믿고 있는 신이나, 모시는 신도 엄청나게 많다. 그래서 기독교가 강세인 한국에 비해 일본에서는 기독교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한국의 사이비 종교를 내세우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이단 기독교의 모습이 많지만, 일본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기독교가 나오는 비중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성은 김, 박, 이, 최 등 300여 가지의 성이 있지만 일본은 10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인처럼 성을 불러도 자신을 부르는지 안다. 우리나라처럼 도심지에서 김 씨! 하고 부르면 한 스무 명이 돌아보는 것과는 다르다. 귀신이나 신도 우리나라보다 종류도 다양하고 수도 월등하게 많아서 그런지 여전히 오래된 공포 이야기를 드라마로 제작해서 내보내고 있다.


한을 주로 다루며 강력한 무기, 구미호를 내세운 전설의 고향도 장수 프로그램이었는데 좀비라든가, 뱀파이어, 사이코패스에게 자리를 내주며 씁쓸하게 은퇴를 해버렸다. 전설의 고향 시리즈도 감독과 제작사를 잘 만났다면 아직도 여름에 한반도를 강타하고 지금은 넷플릭스 같은 오티티 플랫폼을 타고 확장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현재 악귀, 마당이 있는 집 같은 시리즈가 공포를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공포와 무서움에는 미미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악귀는 김태리와 오정세가 열연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악귀가 씐 사람들의 이야기다. 귀신 이야기라는 것. 그 안에는 아이를 제물로 바친다거나 하는 아픈 이야기도 있다. 마당이 있는 집은 서스펜스다. 느리게 이야기가 흘러가지만 그 느림의 미학이 주는 공포가 또 꽤 두렵다. 인간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공포를 준다.


우리나라 공포영화도 계보가 죽 있었다. 그중에 한국 공포영화사에 남길 만한 영화가 ‘스승의 은혜’였다. 복수하는 이야긴데 우리나라 최초로 신체훼손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자칫 처음이 재미없을 수 있는데 스승의 은혜는 아주 고어적이면서 공포적이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1974년에 일어난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을 열심히 영화로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은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데, 미래의 우주선까지 가기도 했다. 거기서도 아주 그냥 인간들을 작살낸다. 호스텔도, 쏘우 시리즈까지 열심히 신체훼손 공포영화가 나오고 있다.

신체훼손 하면 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공포영화도 다양해야 하는데 그 이유라고 하자면 현실에서 이런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나 기사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건 한계가 있다. 뉴스로 어떻게 세세하게 내보낼 것이며, 짧은 기사로도 그런 엄청난 일을 내보낼 수 없다. 요즘은 유튜브가 있어서 실제로 일어난 신체훼손 사건을 다루는 채널이 많이 있다.


홍콩에서는 아주 예쁜 모델 애비 최가 28살의 나이에 남편에서 살해당했다. 그런데 온몸을 전부 토막을 내서 일부 신체는 냄비에서 탕으로 끓였다고 한 것으로 경찰은 전했다. 이 사건이 올해 2월에 일어난 사건이다.

애비 최는 아주 예쁜 얼굴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엘리사브 봄 2023 여름 오트쿠튀르 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글로벌 패션계의 주목을 받은 모델이었는데 딸을 만나러 갔다가 남편에게 살해당해서 온몸이 토막이 나버렸다.

이 사건은 올해 초 인터넷을 엄청나게 달구었다. 그 잔인함과 극악무도함에 대해서 사람들은 말했지만 사실 쉽게 알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가 된다면 또 얘기는 달라진다. 물론 영화제작 과정에서는 적잖은 타협과 잡음이 들어가겠지만 지금까지 잘 만든 영화들은 잘 만들어왔다.


우리나라는 공포영화를 너무 잘 만들려는 경향이 짙다. 여고생들의 아픔으로 시작한 여고괴담이 큰 인기를 얻다 보니 너무 잘 만드려고 하다가 전부 실패를 맛봤다. 몇 년 동안 나온 한국 공포영화는 무서운 공포보다는 어이없고 실없어서 공포였다. 가장 최근의 옥수역 귀신 같은 영화는 다시는, 절대 나오지 말았음 한다. 보면서 이렇게 개킹받은 영화는 근래에 처음이었다.


여름에 쏟아지는 공포영화나 드라마 시리즈는 무섭다기보다 공포에 가깝다. 무섭다는 개념은 공포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있는 감정 같다. 그래서 일본의 공포 영화, 전설의 고향이나 도시괴담을 주제로 만들어내는 공포 영화는 무섭다기보다 징그럽거나 놀라는 공포에 가깝다.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점프 스퀘어나 흉물의 얼굴을 가진 귀신이나 괴물은 징그럽다.


이런 공포는 인간이 인간을 가지고 살해하거나 신체훼손을 가하는 무서움에 비해 좀 덜하다. 홍콩의 애비 최 사건이나 우리나라 진돗개교 사건(멍멍 짖는 진돗개를 믿는 신도가 자신의 3살짜리 딸이 개에게 소리를 질러 교주와 함께 자신의 아이를 죽여서 파묻은 사건이 2016년도에 있었다) 같은 이야기는 무섭다. 실제로 내 주위의 누군가가 하루아침에 조울증이 도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까지 사건을 당한 사람들 역시 자신의 주변인들이 자신에게 그렇게 해를 가하리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런 공포는 순수한 무서움이다. 정말 무서움.



이쯤에서 유튜브로 볼 수 있는 단편 공포영화 한 편을 소개해 본다. 코믹호러다. 핀리는 처키와 에나벨 그 어디쯤 위치하는 공포 인형이다. 주인공들이 사는 집에 오게 된 핀리는 사악한 선배 인형들처럼 주인공들을 하나씩 잡아 죽이려고 한다.


혼자 있게 된 여자 주인공에게 칼을 들고 캬캬캬 달려드는데 여주 주인공이 긴 다리로 핀리를 걷어차 버린다. 당황한 핀리, 아 이게 아닌데. 핀리는 또 다른 여주인공이 욕조에서 목욕을 할 때 전기토스트기를 물에 집어넣어 감전사시키려고 욕조에 빠트리는 순간 꺄아 줄이 짧아 코드가 빠져 버린 것.


그 뒤로 핀리는 비닐로 얼굴을 감싸서 죽이려고 해도 입을 막지 않아서 실패, 음식에 쥐약을 넣으려다 실패, 화살을 설치해도 실패. 핀리는 우울하기만 하다. 주인공들은 핀리를 놀리고 이제 그만 인간 사회에 적응하라고 한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핀리는 자신의 할 일이 없어져 다락으로 올라가 자신을 봉인한다. 그런데 그날 밤 강도들이 침입해서 주인공들을 죽창 낸다. 봉인되었던 핀리가 일어나 강도들을 잔인하게 죽인다. 주인공들에게는 씨도 먹히지 않았던 방법이 전부 통하는 것이다.


신이 난 핀리는 극악무도하게 강도들을 무참히 죽인다. 덕분에 평화를 찾은 주인공들이 핀리를 가족으로 받아주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 핀리를 위해 선물도 주고, 핀리도 기뻐한다. 핀리는 심부름도 하고 주인공들과 친하게 지낸다.


주인공들은 파티를 즐기며 음료를 나눠 먹는데 맛이 좀 이상하다. 모두가 핀리에게 맛이 어떠냐고 묻는데 핀리는 마시지 않으며 끝난다.


유튜브 단편 영화로 아주 삼빡하고 잘 만들었다. 아무튼 이렇게 숨은 영화들을 찾아서 보면 능력자들이 많음에 놀람. 핀리 얼굴 보고 놀람. 퀄리티 보고 또 놀람.


https://www.youtube.com/watch?v=A0641hHG1IQ

J. Zachary Thu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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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7-19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포영화를 꽤 보는 편인데, 일본이나 태국 공포는 보지 않게 되더군요. 미국식 공포는 한 번 보고 나면 끝인데 일본이나 태국은 뭐랄까요. 기분이 찜찜하고 더럽다(?)고 할까요. 어쩌면 그게 진짜 공포일지도 모르겠네요.

교관 2023-07-20 12:11   좋아요 0 | URL
공포를 느끼는 포인트가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여러 장르의 공포영화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