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 때 실컷 놀다가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내일을 다짐하고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도 퇴근하고 오시고 저녁을 먹기 전에 씻어야 엄마한테 혼나지 않는다. 여름 저녁에는 저녁만의 냄새가 있었다. 타오르던 해가 꺼지는 냄새, 집집마다 저녁을 만드는 냄새, 노을의 냄새, 논다고 흘린 땀 냄새. 그런 냄새들이 섞인 여름 저녁의 냄새가 있었다.


에어컨도 없었는데 어떻게 여름 저녁을 보냈을까. 집으로 들어가면 여름인데도 보글보글 끓은 된장찌개의 냄새를 맡으며 씻고 아버지가 오시면 계란 프라이를 잘라 된장찌개와 함께 맛있게 밥을 먹었다. 고작 선풍기 한 대로 어떻게 지냈을까.


요즘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잠을 자는데 어제는 더워서 푹 잠들지 못했다. 어릴 때 여름방학 때에는 토마토를 섬등섬등 썰어서 설탕을 넣고 얼음을 가득 넣어서 그렇게 자주 먹었다. 요즘도 매일 토마토를 먹고 있지만 방울토마토라서 그때의 그 느낌은 없다. 방학도 길어서 일주일 씩 외가가 있는 시골에서 보내기도 했다. 우리 집이 바닷가 근처라서 사촌동생들이 우리 집으로 와서 여름을 보내기도 했다.


복작복작 무척 더웠을 텐데 사진들을 보면 그렇게 더워 보이지도 않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때의 여름이라고 해서 덥지 않았을 리도 없다. 유튜브로 옛날 영상을 보면 여름은 똑같이 더워서 사람들이 더위에 허덕였다.


조깅을 저녁에 하다 보면 바람이 시원해졌다는 게 느껴졌다. 아직 이런 폭염이 일주일 정도 계속되겠지만 분명 8월에 접어들고 저녁에 조깅을 하다 보면 해가 짧아졌고 바람이 조금 시원해졌다. 무턱대고 숨이 막히는 그런 바람은 아니다. 조깅을 매일 나오다 보면 매일 마주치는 러너들이 있다. 항상 비슷한 시간에 달리고 있으면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러너와 인사를 주고받는다. 파이팅!이나 수고하십니다! 같은 인사를 주고받으며 스쳐 지나간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어디에서 오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다. 그저 저 사람도 매일 이 시간에 나와서 달리고 있구나,라는 마음으로 서로 지나칠 때 인사를 주고받는다. 겨울의 저녁과는 달리 여름의 저녁에는 하늘과 풍경이 경이롭게 보인다. 그런 모습이 매일 달라진다.

저기는 바다가 있는 곳으로 동해, 동쪽이라 노을은 아닐 텐데 워낙 더워서 일까. 아직 저 붉은빛이 남아서 아름다운 하늘을 만들어내고 있다.

며칠 전에는 서핑보드를 타는 사람을 봤다. 전문 서퍼같았다. 너무나 매끄럽게 저어어어기에서 여기를 지나 저어어어어어기로 그저 슈우우욱 가는 것이다. 물살은 반대인데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어떻게 물살과 역행하며 잘도 가는 것일까. 한참을 바라보았다. 멋있기도 했지만 참 시원해 보였다.


이 부분만 이렇게 금계국, 만수국들이 가득하다. 꽃들은 왜 예쁠까. 꽃은 봄에 대부분 피는데 그래서 조금 예쁘지 않은 꽃들은 봄에 외면받는다. 너무 예쁜 꽃들이 봄에 다 피어버리니까. 그렇기에 어쩌면 제일 예쁠 시기에 외면받아서 슬플지도 모르는 꽃들이 있다. 하지만 봄날만 피하면 이렇게 예쁨을 활짝 드러낼 수 있다. 하찮고 흔한 꽃인데, 그래서 더 예쁜 것 같다. 꽃들을 보고 있으면 인간과 다를 바 없다는 걸 느끼기도 한다. 설증매가 아름다운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동쪽하늘인데 붉게 물들어 있다. 분명 노을과는 다른 붉은 색감이다. 연분홍 같은 색감. 딱 이 시기에만, 그것도 이 시간에만 볼 수 있는 황홀한 색감이다. 며칠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볼 수 있을 때 실컷 보기 위해서는 이 시간에 이 자리로 조깅을 해서 나와야 한다.

다음 날에도 비슷한 하늘의 색감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달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늘 생각한다. 이럴 때 좀 좋은 폰카메라였다면. 그러면 달의 모습을 좀 더 달답게 담을 수 있었을 텐데.

사진에는 저래 보여도 아주 근거리에 떠 있는 장면이다. 저어기 아파트를 지나면 공항이기 때문에 비행기들이 낮게 날아다닌다. 비행기 소리는 때로는 공포다. 특히 전투기 소리는 무섭게 들린다. 그런 소리가 도심지에서 분당 간격으로 들리면 사람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 것이다. 소리로 사람을 무섭게 하는 것 중에서는 단연 최고가 아닐까.

역시 동쪽 하늘에 연분홍빛이 발하고 있는 저녁이다. 세상의 시끄러운 사건사고와 동떨어진 평온하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그저 고즈넉하다. 고즈넉이라는 말은 고요하고 아늑하다는 말이다. 잠잠하고 아늑한 곳이 세상에는 분명 존재하고 우리는 그런 곳을 찾아서 여행을 하기도 한다.


조깅을 하는데 앞에서 노부부가 손을 잡고 함께 산책을 하는데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노년에 같이 손을 잡고 산책을 할 수 있는 부부가 몇이나 될까. 모르는 이들이 서로 만나 가족이 되면 쉬울 리가 없다. 내일도 행복하세요.

이날부터(한 이 삼일 된 것 같다) 비슷한 시간이지만 온통 그늘이다. 해가 짧아졌다는 말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시간에 아직 해가 비치는 곳이 있었는데 이제 온통 그늘이다. 서서히 여름이 빠져나가고 있다. 매년 그걸 느낀다. 자연은 절대 그럴 리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물러가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그 주기, 그 반복이 무섭도록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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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간이나 되는 이 영화를 멍하게 그저 푹 빠져서 봐 버렸다. 이 영화는 진정 놀라운 영화였다. 어떤 사람에게는 힐링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복수극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 드라마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공포 또는 코미디다.


아무튼 놀라운 영화였다. 아리 에스터의 전작들처럼 가족이라는 게 늘 평화롭게만 흘러가지 않는, 피로 이어져서 서로 행복하게만 보이지 않는다는 걸 이 영화에서도 여실히, 깡그리 보여주었다.


정신과 상담 의사가 보에게 엄마가 죽기를 바란 적이 있죠?라고 묻는다. 보는 깜짝 놀라서 그런 적인 없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이 영화는 경계가 무너진다.


사랑과 복수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편집증과 정상의 경계도 무너진다. 그놈의 거미는 눈앞에서 사라지나 없어지는 건 아니다. 모서리, 이 영화에서도 전작들처럼 모서리의 무서움을 보여주는데 인간 거미가 욕실의 모서리에 붙어서 나타난다.


세 시간이나 빠져서 보게 된 생각대로 흘러가는 장면이 1도 없어서다. 꿈에서 깨어났는데 다른 꿈인 거 같고. 만나는 사람들은 마치 각본에 의해 움직이는 거 같고. 진실이 알고 싶지만 진실이라는 게 너무 무서워서 기이한 형태로 앞에 나타나고.


나는 나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엄마를 사실 죽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인간이 단단하게 가질 정서가 연하디 연할 시기에 학대를 받게 되면 바로 이 영화의 보처럼 되는 것 같다.


보는 어른이 된 후 망가진 외모가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만난 일레인에게 나야 보. 그러나 일레인은 보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 너야 보, 얼굴과 몸은 너 아닌 것 같지만. 어린 시절에 정서적으로 학대를 받고 자라면 정신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보의 외모를 통해서 알 수 있듯 망가진다는 것이다.


정신과 몸이 망가진다.


보는 다행히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행동에서도 이타성이 발효된다. 토니가 페인트를 마시려고 할 때 막으려고 한다거나. 그러나 결국 억눌러왔던 분노가 엄마의 목을 조른다. 이 분노라는 건 억제할 수가 없다. 분노를 억누를 수 없는 사람들은 대체로 어린 시절에 정서적으로 학대를 받았을 가망성이 많다.


분노를 억누를 수 없는 것이다. 온 세상이 자신을 무섭게 보고 죽일 것 같다고 느낀다. 그래서 결국 칼을 들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다. 많은 정서적 학대를 받은 이들이 제대로 상담도 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서 시동을 걸고 있었을 뿐이다. 한 명이 칼부림 난동을 시작하니 너도나도 여기저기서 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버렸다.


그러나 이런 분노를 교묘하게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소위 잘 배운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무기인 머리와 돈, 지위를 가지고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려 공격하고자 하는 대상에 공격을 한다. 사회 구조에 대한 분노가 가득하지만 그 구조를 바꿀 수는 없으니 누군가 공격할 대상을 찾아서 공격을 하고 괴멸시킨다.


이 영화를 보면 요즘의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 영화는 현실이 환상인지 또는 악몽을 꾸는 건지 경계가 알 수 없는 곳에서 헤매게 된다. 가족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 단위는 엄마와 아빠다. 이 엄마와 아빠의 기본이 무너지고 정서에 타격을 받게 되면 어제오늘 끔찍하게 발생하는 사건의 결과물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공포 영화에 가까운 이유는 영화가 가족 이야기라서 그렇다. 가족에게 학대를 받고 자라지만 가족이라 연을 끊을 수도 없다. 뫼비우스처럼 끝나지 않고 관계가 이어지는 공포. 그 공포를 끝내는 건 사라져야 하는 것. 정서적으로 받은 학대가 기묘한 꿈으로, 망상과 환상과 현실이 모호하지만 경계가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는 걸 말하는 영화 같다. 정신분석한 공부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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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하루키는 2021년에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를 출간했다. 이번에 그 2편인 ‘다시,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를 출간하게 되어서 마이니치 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아직 한국에는 소설도 출간이 안 되었는데 이러다가 클래식 2편이 먼저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루키는 아무튼 그 두꺼운 클래식 북을 쓸 때 더 길게, 왕창 써버린 덕분에 2편이 나올 예정이다. 코로나 시기에 집에만 틀어박혀 여행도 가지 못한 하루키는 글이나 쓰자,라고 해서 음악에 관한-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를 쓰다 보니 2권도 써버렸다.


하루키는 2권에서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썼다고 밝혔다.


하루키: 좋아하지 않는 레코드도 왕창 있습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레코드를? 하는 것들이죠. 하지만 샵에서 바겐 세일로 100엔이나 50엔에 팔고 있으면 저는 그 유혹에 홀라당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골라온 것 들 중에는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소위 꽝도 있기 마련이죠.


하루키는 만 오천 장 정도의 레코드를 가지고 있고 그중 일부를 기증했다.


하루키: 기증한 레코드는 일부입니다. 주로 더빙판입니다. 제가 소설을 쓸 때 레코드가 쓰이기도 해서 아직은 레코드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죽고 나면 이것들이 흩어지는 것이 아깝다 생각이 들어 죽기 전에는 전부 기증할 생각입니다. 그동안에는 계속 듣고 싶습니다.


하루키: 10대에 음악적 체험은 오래도록 가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음악을 듣던, 그 무렵에 들었던 음악과 나와의 거리, 간격을 측정하면서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요컨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저는 고등학교 시절 글렌 굴드의 연주가 남아 있기 때문에 누가 연주를 하더라도 거리를 측정하게 됩니다. 그런 점은 제게는 고마운 점이기도 합니다.


학창 시절 친구들도 클래식을 좋아해서 서로 교환해서 듣곤 했습니다. 좋았습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것만 가지고, 좋지 않은 건 내팽개치는 게 아닙니다. 균형을 잡으려면 좋은 것도 좋지 않은 것도 같이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하루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유럽의 공연장에서 러시아 음악가가 추방되거나 러시아 작품이 중단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 작품까지 기피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입니다.


하루키는 소설에서 넌지시 말하는 것처럼 정치 시스템은 일시적인 형세일 뿐이지만 예술은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애초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1편, 즉 1권과는 다른 결의 클래식 북이 나오리라 기대를 하면서, 하루키 영감님 더위 잘 이겨내시고! 여기 조용한 독자들이 고요하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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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글 쓰는 스타일을 대부분 다 아실 텐데요. 2013년 동아일보를 보면 임경선 칼럼니스트가 하루키에 대해 쓴 칼럼이 재미있습니다. 저는 사실 임경선 작가의 도서를 한 권도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여하튼 임경선 작가는 고 2였던 87년, 일본에서 하루키의 [그 유명하고 전설의] 빨강 초록 커버의 노르웨이 숲을 만나고 빠져들었다고 하는데요.


칼럼에서 하루키에게 글쓰기란 고상한 문학적 취향이나 자유분방한 풍류라기보다 차라리 노동과 수행에 가까웠다. 탈권위주의적인 태도는 그의 문장에서도 확인된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이 정도는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자신의 이런 글 쓰는 생활방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레이먼드 카버의 에세이에서 카버는 ‘시간이 있었으면 좀 더 잘 썼을 텐데 – 나는 소설 쓰는 친구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아연해진다. (중략) 만일 그가 써낸 이야기가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소설 따위를 쓰는가. 결국 우리가 무덤까지 가져갈 것은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 힘껏 일했다는 노동의 증거, 그것뿐이다. 나는 그 친구를 향해 말하고 싶었다. 제발 부탁이다, 지금 당장 다른 일을 찾아봐라,라고. 똑같이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번다고 해도 세상에는 좀 더 간단하고 아마 좀 더 정직한 일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너의 능력과 재능을 최대한 쏟아부어 글을 써라. 그리고 변명이나 자기 정당화는 안 돼. 불평하지 마. 핑계 대지 말라고' 레이먼드 카버 - 글쓰기에 대하여


또, 하루키는 자신과 비슷한 방식의 작가도 예를 들었지요.


이를테면 엔서니 트롤럽이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19세기 영국 작가로, 수많은 장편소설을 발표해 당시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는 런던 우체국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어디까지나 취미로서 소설을 썼지만 이윽고 작가로 성공을 거둬 일대를 풍미하는 유행 작가가 됐습니다. 그래도 그는 우체국 일을 끝까지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출근하기 전에 새벽같이 일어나 책상 앞에서 자신이 정한 양의 원고를 부지런히 썼습니다. 그런 다음에 우체국에 갔습니다. 유능한 공무원이었는지 관리직으로 상당히 높은 자리까지 출세했습니다. 런던 거리 곳곳에 빨간 우체통이 설치된 것은 그의 업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그때까지는 우체통이라는 게 없었다는군요). 우체국 일을 좋아해서 집필 활동이 아무리 바빠져도 그 일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될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 꽤 특이한 분이었던 모양이에요.


그는 1882년에 67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유고로 남겨진 자서진이 사후에 간행되면서 그야말로 로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의 규칙적인 일상생활이 처음 세상에 공표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트롤럽이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했었는데 실상이 드러나자 평론가도 독자도 너무 놀라고 낙담 실망해서 그때를 경계로 영국에서는 작가 트롤럽의 인기와 평가가 완전히 땅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은 그런 얘기를 들으면 ‘와아, 대단하다. 진짜로 훌륭한 사람이네’라고 순수하게 감탄하고 트롤럽 씨를 존경해 마지않았을 텐데 그 당시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뭐야, 우리가 지금까지 이런 따분한 작가의 소설을 읽었어?” 하고 진심으로 화를 낸 모양입니다. 어쩌면 19세기의 영국 보통 사람들은 작가에 대해 - 혹은 자기의 삶의 방식에 대해 - 반세속적인 이상상을 원했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도 이런 ‘범속한 생활’을 하다가 혹시 트롤럽 씨와 똑같은 일을 당하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면 저절로 움찔움찔합니다. 하긴 트롤럽 씨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재평가를 받았으니까 그건 잘됐다고 하면 잘된 일이지만.


그러고 보니 프란츠 카프카도 프라하의 보험국에서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틈틈이 꼬박꼬박 소설을 썼습니다. 그도 꽤 유능하고 성실한 공무원이었는지 직장 동료들이 상당히 높은 평가 해줬습니다. 카프카가 결근하면 보험국 일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트롤럽 씨와 마찬가지로 본업도 빈틈없이 잘하고 부업인 소설도 진지하게 써낸 사람입니다(단지 본업이 있었다는 게 그의 많은 소설이 미완성으로 끝난 데 대한 이유가 되는 듯한 느낌은 들지만). 하지만 카프카의 경우는 트롤럽 씨와는 다르게 그런 반듯한 생활 태도가 오히려 훌륭한 장점으로 평가되는 면이 있습니다. 어디서 그런 차이가 생겼는지, 좀 신기하지요. 사람들의 훼예포폄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라고 하루키는 말했죠.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30723/566079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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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약국에서 박카스 두 박스를 사들고 왔다. 박카스는 두 박스짜리는 패키지로 판다. 들고 가기 편하게 만들어놨다. 하지만 무겁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한 사백미터 정도를 들고 왔다. 그랬더니 어떤 놈이 왜 무겁게 멀리서 들고 오냐면서 요즘은 편의점에도 박카스며 약도 다 판다고 했다.


이 바보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군.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파는 박카스는 박카스  에프다. 약국에서 파는 것만 박카스 디다. 그 바보가 그게 그거지라고 하는데 그게 왜 그게 그거냐. 박카스 디랑 박카스 에프랑 엄연히 다르다. 둘을 찾아보면 아마 의약외품 뭐 이런 문구가 다르다.


가장 다른 점은 편의점의 박카스 에프에는 타우린이 1도 없다. 보통 제약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건 약이 아니다. 약 개발에 어마무시한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약 팔아서는 어지간한 제약회사를 든든하게 배부르게 할 수 없다. 그럼 뭐냐? 바로 제약회사에서 만들어내는 음료가 효자들이다.


박카스를 비롯해서 오로나민 씨, 비타 500 같은 음료가 효자들이다. 박카스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면 놀랄걸. 내가 어릴 때에도 어른들은 박카스 한 박스를 선물로 주거니 받거니 했다. 박카스에는 보통 각설탕 10개 정도의 설탕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마시면 당이 충전되면서 약간 기분이 괜찮다.


아주 옛날, 60년대에는 설탕이 귀해서 여름에 설탕물을 타주면 그게 최고였다. 성석제의 소설 투명인간을 읽어보면 그런 부분이 아주 잘 나온다.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했을 때 설탕물을 대접했다. 소설 속에는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군들이 고엽제가 살충이나 멸균에 좋다고 머리에 부어서 털고 얼굴을 씻고 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나온다. 굉장히 좋은 소설이었다.


여하튼, 그런데 약국의 박카스 디에는 타우린이 듬뿍(까지는 아니겠지만) 들어있지만 편의점 빅카스 에프에는 1도 없다. 그냥 설탕물을 돈 주고 사 마신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게 몇 가지가 있다. 타이레놀도 약국과 편의점은 좀 다른데, 성분이 다른 건 아니고 편의점 타이레놀이 두 알 인가 더 적게 들어있고 더 비싸다는 사실이다.


박카스를 그냥 마시면 개인적으로는 너무 달기 때문에 텀블러 같은 큰 컵에 얼음과 물을 넣고 사이다를 조금 부어 마시면 끝내준다. 빅카스는 어디에 섞여도 맛있다. 소주에, 맥주에 섞여도 맛있다. 빅카스의 미쿡 버전이 레드불 같은 음료일 텐데, 레드불은 아직 한 번도 안 먹어봤지만 레드불도 카페인이 많아서 어디에 섞으면 맛있을 것이다.


박카스는 택배 아저씨들에게 한 병씩 드리기 괜찮다. 뚜껑을 직접 따니 의심 살 필요도 없고 제일 좋다. 박카스 하면 광고가 유명하다. 박카스 광고로 스타의 반열에 오른 배우들도 많다. 2022년 박카스 광고는 제9회 박카스 29초 영화제 청소년부 대상을 차지한 구본비 감독의 ‘[엄마예요?]와 [누나예요!] 사이, 박카스가 필요한 순간’이다. 기억이 날 것이다.

마지막 장면을 잘 보면 민철이가 누나에게 내미는 박카스는 박카스 에프다. 병도 박카스 디보다 좀 더 길쭉하고 에프라고 쓰여있다. 편의점에서 구입했기 때문이다. 박카스 광고 재미있는데 후속 편은 아직 안 나오는 것 같다. 요즘 광고 중에 아주 좋은 광고는 한화 광고다. 아무튼 콜라, 사이다, 환타 보다 박카스가 더 낫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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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3-08-03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박카스 d 애호가입니다. 고시공부할때 많이 먹었고 지금도 50병씩 쟁여두고 출근하며 마시지요 ㅎㅎ

교관 2023-08-04 11:58   좋아요 0 | URL
오 박카스 마니아셨군요 ㅎㅎ

잉크냄새 2023-08-04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앞으로 박카스는 약국에서

교관 2023-08-04 11:58   좋아요 0 | URL
편의점 박카스는 새벽에 사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