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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길어지면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모호하게 된다. 전쟁에는 선과 악도 의미가 점점 빛을 잃어가고 그저 살아남거나 시키는 대로 테러를 하거나 테러를 하는 범인을 잡는 일에 하루, 한 달, 일 년 모든 날들을 보내게 된다.


미드 시리즈 홈랜드를 보면 너무나 잘 알 수 있다. 냉전이 지속되면 누가 누구를 믿어야 하고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나쁜 편인가.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인간이 살고 있는 모든 곳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소련의 전쟁도 오래 끌면서 젤린스키는 작년만큼 세계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외면받고 있다. 반도에 투척해서 전쟁을 멈추라며 지원받았던 엄청난 양의 무기를 젤린스키가 원하는 곳에 다 써버리고 전쟁이 길어지는 발단이 되면서 작년 초에 젤린스키가 1조에 가까운 돈을 빼돌렸다는 영국 비비씨의 보도가 있었다. 이번에 선거를 다시 해야 하지만 젤린스키는 전쟁 중이라 선거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전쟁은 점점 길어지는데 죽어나고 고통을 받는 건 불쌍한 국민들뿐이다.


전쟁이란 길어지면 이제 어떤 식으로 끝맺음을 해야 하는 건지 결말의 답이 사라져 버린다. 길어지는 과정에서 믿었던 대통령이 이상하게 보이면서 점점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건 그저 전투력이 없는 일반인들뿐이다.


이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만 봐도 그렇다. 2차 대전 후 영국과 미국에 속아서 팔레스타인의 지역이 이스라엘로 넘어가면서 혹독한 탄압을 받아왔다. 참다 참다못한 팔레스타인이 1987년에 인티파타가 일어났을 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량학살을 한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아이들도 싹 다 죽였다. 잔혹하게 인종 청소를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제사회 여론이 생겨났다. 이스라엘은 가자, 서안 지구든 뭐든 다 쓸어버리고 이스라엘 정작촌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물과 전기를 이스라엘이 통제를 하고 제대로 된 물을 마시지도 못하고, 그런 탄압을 팔레스타인은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서안지구의 온건파, 가자지구의 강경파. 파타와 하마스. 팔레스타인의 지지는 하마스 쪽으로 기울었다. 강경파 쪽으로. 가자지구에 폭격하는 모습을 보며 축하하는 극장도 이스라엘에 있는데, 그 모습을 아이언맨에서 오마주 하기도 했다.


장벽을 세워 24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가둬 버렸다. 가혹하게 봉쇄를 하고 인구 탄압을 했다. 만약 이스라엘 군인에게 돌 하나를 던지면 법으로 징역 20년을 살게 된다. 사람을 잡아서 임의 구금을 할 수 있는 시간도 400일로 법으로 정해놨다. 마음대로 팔레스타인 사람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미성년자도 잡아서 구금했다가 세계에서 들고일어나서 미성년자는 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누가 누구 편을 드는지가 여론을 통해 나오고 있지만, 고통을 받고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일반인들뿐이다. 아무 죄도 없는, 그저 하루를 보내고 싶은 그런 일반인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이 영화 바디 오브 라이즈를 보면 지금의 전쟁을 하는 국가들의 배경과 그들의 이유 같은 것들이 보인다. 영화 속에서 어째서 테러를 일으키는지, 자살폭탄이라는 것과 테러리스트의 우두머리를 잡기 위해 위험 속으로 들어가는 디카프리오의 모습에서 현재 전쟁의 실존하는 사실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실은 생각과 다르고 사실과도 다른 게 진실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로 아주 잘 만든 영화다. 명배우들의 현실 같은 액션과 연기를 볼 수 있다. 재래시장에서 터지는 폭탄은 실제 같고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보는 건 언제나 짜릿하다.


디카프리오가 나온 셔터 아일랜드를 보면 정신이 이상해서 아내와 자신의 아이들을 무참히 죽인다. 정신이 돌아와서 보니 너무나 처참하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에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무의식에서 너무 고통스러운 사실을 기억에서 배제시켜 버린다. 그리고 자신이 형사가 되어 아내를 죽은 범인을 찾아다닌다. 무의식이 방어기제를 펼치는 것이다.


완다비전에서도 완다가 그렇게 완벽한 마을을 만들어 버린 이유도 무의식 속에서 방어기제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너무나 사랑하는,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비전의 죽음을 인정하기 싫고 받아들일 수 없어서 완다는 완벽한 가정이 있는 마을을 만들어 버렸다. 그것이 틀어졌을 때 닥터스트레인지와의 결투도 서슴지 않고 하게 된다.


김필영 박사에 의하면 인간은 무의식 세계 속에 수많은 성향 같은 것들이 있는데 의식의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에서 방어기제를 펼친다고 한다.


프로이트의 딸 역시 심리학 박사였는데 프로이튼지, 그의 딸인지 실험을 했다. 돌아가는 나무막대를 한 무리에게는 20달러를 주며 돌리라고 했고, 또 한 무리는 1달러를 주며 돌리라고 했다. 2시간 후에 20달러를 준 사람들에게 어땠었냐고 물어보니 괜히 했다, 재미없었다, 내가 왜 이걸 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한 반면, 1달러를 준 무리의 사람들은 재미있었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같은 반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왜 이런 반응일까. 그건 바로 무의식의 방어기제 때문이다. 1달러를 받고 2시간 동안 나무 막대를 돌린 자신이 너무 한심한 것이다. 그래서 무의식은 자신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괜찮아,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어. 그러니 형편없는 건 아니야. 같은 반응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런 실험은 흑백사진 시대 때부터 시도했는데, 어릴 때 놀이기구를 탄 기억이 없는데 어린 시절의 사진을 놀이기구와 합성을 해서 보여주면 자신도 모르게 기억이 심어지게 된다. 놀이기구를 탄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놀이 기구를 탔다고 기억을 만들고, 거기서 이야기까지 생성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후에 이건 합성이라고 해도 아니야, 그럴 리 없다며 자신의 기억이 맞는다고 한다.


평소에도 이런 사람을 경험하게 된다. 내 주위에 어르신들 중에 요즘이 원하는 꿈같은 세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어르신 아들이 과학분야 쪽에서 박사 생활을 하는데 요즘 거기가 지원이 줄어들어 힘들어졌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어르신은 욕을 하면서도 나라는 이전보다 아주 잘 살게 되었다, 좋아졌다고 말한다. 미국은 너무 싫어해서 욕을 엄청하지만 디즈니랜드는 너무 좋아서 돈을 왕창 써버리는 꼴이다.


김필영 박사가 한 말과 유시민 작가의 말이 일맥상통하는데, 현재 지지율이 30%가 넘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지만 2번을 찍은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 찍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방어기제가 나타난다. 내가 찍은 사람이 그럴 리 없다고 믿어 버리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기부정의 말을 한다. 지금 나라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경제가 좋아질 것이다, 일본이나 독도에 관련된 것은 가짜뉴스라고 해버린다. 방어기제가 단단하게 생겨 버린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 허트 로커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허트 로커는 전쟁에 중독되어서 전쟁의 현장에 서야만 살아있다고 느끼는 군인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모두가 충격 비슷한 것을 느꼈던 마지막 장면. 영화 두 시간 내내 마치 이라크의 그곳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던 허트 로커. 우리가 아침에 참새처럼 들리는 방앗간 같은 로컬 카페에서 커피를 사 먹듯 이라크의 그곳에서는 폭발물을 제거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분대장으로 제임스가 오는데 긴장과 두려움의 폭탄보다 더 위험한 행동으로 대원들을 미치게 만든다.


사막에서 이라크 병들과 대치 중인 장면은 그야말로 하이퍼리얼이다. 사막에서 내리쬐는 태양열 때문에 입술은 말라가고 눈에서는 물이 흐르고 그러면서 1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는 이라크 병들에게서 총구를 대고 있어야 한다. 목과 피부는 타들어가고 파리는 얼굴에 날아와 들러붙는다. 아차 하는 순간 데드포인트에 도달할 수 있기에 이 순간은 정말 군인들의 피를 말린다.


제대를 한 제임스는 부인과의 대화에서도 일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 그저 군대에서 폭탄이 터지고 사람들이 흩어지는 이야기만 할 뿐이다. 우리는 제임스가 마지막 장면에서 수많은 시리얼 앞에서 그 하나를 고르지 못하는 모습에서 명령 없이는 혼자서 시리얼 하나 선택 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너무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전쟁이란, 전쟁중독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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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2005년에 ‘시나가와 원숭이’가 나오고 일인칭 단수에 그 후속 편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이 실렸다. 그동안 시나가와 원숭이도 나이가 들고 살고 있는 곳에서 쫓겨나서 허름한 여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시나가와에서는 대학교수 부부에게 귀여움을 받으며 잘 컸다. 그러면서 인간의 언어도 습득하게 되었지만 그 근처 원숭이들 틈에서 섞이지 못했다. 언어는 이상하고 행동도 원숭이들과 달라서 쫓겨나듯이 나오고 말았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사람의 이름을 훔쳤다. 특히 여자들의. 인간 여자들의 이름을 훔쳤다. 그러지 말아야 하지만 예쁜 여자를 보면 안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니까 시나가와 원숭이는 암컷 원숭이에게 성욕을 느끼지 못하고 인간 여자에게 성욕을 느끼는 저주 같은 것에 한탄을 한다.


가끔 이름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의 엄마나, 누구의 남편, 부장님, 208호 댁 등 이름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시나가와 원숭이가 이름을 훔쳐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을 잊어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고 시나가와 원숭이는 고백을 한다.


이 단편이 책자로 나오기 전 하루키는 뉴요커와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는 2020년 6월 8일에 진행되었다. 요약을 해서 올려봄.


[원숭이가 시나가와 출신이라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발음할 때 좋은 울림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요컨대 브루클린 원숭이도 꽤나 좋게 들린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2월 일본에서 이 이야기를 청중 앞에서 발표했었는데 모여 있던 사람들이 많이 웃으며 즐거워했습니다. 원숭이는 그대로 원숭이로 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원숭이는 1편이 나온 후 지금은 늙고 외롭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시나가와 원숭이입니다. 인간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고립의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브루크너 7번 교향곡을 여러 번 들었기에 원숭이가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좋아하는 것으로 집필을 했습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가지게 되는 것과 같다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요즘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일까요?라고 질문을 했고, 하루키는 – 매주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의 사랑: 시나가와 원숭이와 함께 저녁시간을? 인 공개 강의가 있다면 꼭 듣고 싶습니다.


원숭이의 이야기가 주제가 없다는 질문에, 제가 쓴 이야기들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대학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제 작품에 대해 토론을 하는데 학생들은 항상 제 작품의 주제를 찾을 수 없어서 혼란스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점들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신경 쓰이게 하지는 않는 답니다.]


인터뷰를 진행한 사람은 뉴요커에서도 하루키의 인터뷰를 자주 했던 편집자이다. 마지막에 하루키가 한 말은 아무래도 소설은 문제를 제기할 뿐이지 수학처럼 답이 명확하지 않다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주제가 모호하면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의 결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진과 비슷하다. 좋은 바닷가의 풍경을 담은 사진은 모두가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그 안에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는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바닷가에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상상력의 시간이 된다. 그래서 감탄보다는 감동이 나올 수 있다. 하루키는 그런 말을 한다고 나는 믿는다.


Bruckner: Symphony No. 7 - Jochum https://youtu.be/BElSWqYvCIo?si=Lrhsb9k8qOHN0a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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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급한 나의 탓도 있지만 주위에 물어봐도 대부분 나처럼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간 끌기 위해 반복된 장면을 너무나 싫어했다. 이 수박 씨발라먹을 것 같은 반복된 장면이 예전에는 세 번이었다. 그때에도 와 씨 너무 많이 반복하는 거 아니야! 젠장! 했는데 언젠가부터 반복된 장면이 여섯 번이나 나오는 것이다. 그 뒤로 예능은 바이바이다. 모든 예능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거기서 거기다.


언젠가부터 보는 스릴러 드라마나 영화가 전부 답답하다. 답답한 전개에 개연성이라고는 1도 없는, 갑갑한 캐릭터들이 보는 사람 속 터지게 한다. 영화를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갑갑한 경찰 캐릭터들은 답답하고 갑갑하다. 왜 여자 경찰 혼자서 전기충격기 하나 달랑 들고 사이코패스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가는지, 가서는 뭐 이렇다 할 방어나 공격 한 번 못하고 켁 기절해서 잡히기나 하고. 변호사는 왜 갑갑하게 아내를 겁탈하려는 점장의 말에 부들부들 떨기만 하고. 답답하게 만드는 고질병은 고쳐지지 않을 것 같다.


발레리나에 대해서 다시 한번 말해보자


발레리나는 정말 요즘 한국에서 나올 수 없는 굉장한 영화다. 아마 이런 엄청난 영화는 앞으로 한국에서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니까 90년대 중경상림이 떠오르는 기기묘묘한 색감과 한국적이지 않은 한국의 공간이 전종서를 한껏 돋보이게 한다. 거기에 전종서 그 특유의 감정이 빠진 목소리가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카메라는 옥주의 눈동자, 전종서의 눈동자를 클로즈업한다. 카메라는 말한다. 영상을 통해서 이 영화는 말이야 전종서를 위한, 전종서를 위해, 전종서에만 어울리는 영화야.


한국영화에서 가장 미친년을 미친년답게 연기하는 전종서가 이번에 더욱 미쳤지만 이 미침에 전종서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잔뜩 색감과 카메라 움직임과 대사에 욱여넣었다.


김무열이 나오자마자 나불거리기도 전에 이마에 총구멍을 내며 죽이는 장면은 뭐야? 통쾌하잖아? 그리고 곧바로 전종서를 여자 존윅, 베아트릭스 키도, 졸트(포스터는 졸트를 따라한 것 같애) 화 시킨다. 얼굴에 튄 피 역시 마구잡이가 아닌 전종서의 얼굴이 드러나는 피튀김이다.


이 영화가 굉장한 이유는 감독이 여자 친구인 전종서를 위해 선물로 바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라이너의 말처럼 내가 감독인데 일반인들이 여친에게 해 줄 수 없는 기념일 서프라이즈로 너를 위한 영화를 만들게.


그동안 이런 굉장한 영화가 있었나? 생각해 봐도 없다. 여친을 위한 감독의 콘체르토. 헤어지더라도 이 영화의 잔상이 어디든 따라다닐지도 모른다. 영화적으로 답답하지 않게, 여배우들 중에 절대 하지 못하는 무자비한 액션이 아름답게 나올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돋보이는 영화, 똘기 있는 연기자와 천재 소리를 듣는 감독 커플이 펼치는 커플 꽁냥꽁냥 피칠갑 영화 발레리나다.


나는 요즘 안철수가 너무 좋다. 안철수 전에는 김행, 김행 님 - ’김‘은 빼고 행님을 너무나 좋아했다. 왜냐하면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달려가기 때문이다. 전혀 주위를 보지 않는다. 오직 앞만 보며 자신이 하고 싶은 말, 해야 하고자 하는 말만 한다. 이 험한 세상에 살아가는 방법을 안다. 작금의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을 덮기 위해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전혀 마음에 걸리적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것이다. 그 어려운 걸 글쎄 행님이 하고 있었잖아. 너무 좋아. 근데 끝까지 앞만 보며 달려갈 줄 알았는데 사퇴하겠데. 와 씨, 너무 실망이다. 끝까지 밀고 나가서 장관이 되어야 그 이후의 일들이 흥미롭게 진행될 텐데. 사퇴문에 국민에 대한 이야기는 1도 없고 누군가에게만 미안하다고 하네.


그런데 안철수가 나타났지 모야. 안철수는 정치가가 아닐 때에는 너무나 총명하고 인물도 좋았는데 정치를 하고부터는 바보가 된 것 마냥 헤헤 얼굴이나 인상도 기기괴괴해지면서 점점 바보가 되어간다. 이준석을 걸고넘어지면서 이번 선거 도우미를 그렇게 대대적으로, 어울리지도 않는, 자기도 어색해하며 “지랄하다, 자빠졌다”를 해 놓고선 이준석이가 예언한 표 차이를 자신도 예상했데. 안철수는 착한 바보라서 거짓말을 하면 너무나 티가 난다. 그 정도 표차이가 나는 걸 예상했다면 거기 가서 그렇게 유세를 펼치진 않았겠지.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안철순데 페북에 쓴 글에 맞춤법이 그게 뭐야. 훼손을 회손이라니, 그 짤막한 문장에 이런 오탈자가 도대체 몇 개야. 정말 손가락 잘렸나. 늘 잠잠하다가 뭔가 선거 때만 나타나서 권력에 무릎 꿇고 배신당하고 어딘가 번지수 잘못짚어서 허당질 하고 있는 안철수 보는 재미가 예능프로그램보다 훨씬 재미있잖아. 제발 팽 당하지 말고, 행님처럼 자진해서 뒤로 물러가지 말고 끝까지 버텨서 자주 안철수 당신을 볼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안철수랑 발레리나는 무슨 상관인데?라고 묻는다면 상관은 없다. 꼭 상관이 있어야 하나 싶다. 발레리나라는 제목도 영화 내용과 전혀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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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있으면 크리스마스고 해서(중간이란 없다. 여름 다음 바로 크리스마스다) 하루키의 크리스마스 송을 올려봅니다. 하루키 아저씨(라 했다가, 영감님이라 했다가, 소살가님이라고 했다가)가 무라카미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첫 시즌 크리스마스 특별 방송을 했었는데요.  


그 이후의 크리스마스 때에는 크리스마스 방송을 하지 않았습니다. 뭐 전쟁도 있고, 코로나도 있고 이런저런 세계적인 일들 때문에 하루키 아저씨도 생각할 것들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클래식에 관한 방대한 에세이와 함께 벽 너머의 세계를 다룬 장편 소설을 발가락 꼼지락 거리며 열심히 썼지 싶은데요.


여하튼 크리스마스 그 방송이 무라카미 라디오 3회였고, 그때에만 해도 하루키 아저씨는 이거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8월 27일 방송분으로 53회까지 진행이 되었네요.


그때 방송을 들어보면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백화점과 상점가, 거리가 온통 캐럴이 흘러넘쳐서 한 상점에서는 사람들이 싫어해서 이곳에서는 캐럴을 틀지 않습니다,라는 라벨이 붙어 있다고도 했는데요, 그러면서 하루키 아저씨가 직접 고른 자신의 레코드와 시디를 들고 와서 55분간 확실하게 들려주겠노라고 했습니다.


길거리 캐럴이 사라진 이제는 그런 거리의 캐럴이 그립네요. 거리가 정말 온통 웸의 라스트 크리스마스가 흘러나오고, 카페는 온통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이었는데 말이죠.


하루키 아저씨가 첫 곡으로 리사 오노의 윈터 원더랜드를 들려줍니다.

오노 리사 씨가 2000년에 녹음한 보사노바풍의 크리스마스 앨범 중 하나입니다. [윈터 원더 랜드] 멋진 겨울 풍경. 포르투칼어로 부드럽게 스윙하는 점이 좋죠. 제가 애정하는 앨범 하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보사노바 풍으로 캐럴을 부른 것은 별로 보이지 않네요. 남미와 크리스마스의 조합이 없어서 일까요? 그런데 얼마 전에 적도의 나라 에콰도르에 다녀왔는데 크리스마스 분위기 준비를 한창 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보사노바와 크리스마스 캐럴을 음악적으로 꽤 가깝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떠신가요?


https://youtu.be/SubtQyaw1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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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are 2023-10-15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좋네요

교관 2023-10-16 11:29   좋아요 0 | URL
네, 참 좋습니다 ㅎㅎ
 


한 남자

잔잔하게 영화가 흘러가는데 지나고 보면 진폭이 커서 약간 숨이 가쁜 영화다. 마지막 장면은 오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강렬했다. 영화 속 한 장면이 한 남자를 온통 말해주고 있어서 감동을 했다.

마그리트의 그림, 이름을 버린 두 남자의 뒷모습 뒤에 서 있는 키도 역시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 같은 마지막 장면. 정말 강렬했다. 하루키의 단편소설 시나가와 원숭이에서도 사람의 이름을 훔친다. 이름을 훔치고 나면 그 사람의 대부분을 소유하게 된다. 의미적으로 그렇다.

이름을 버린다는 건 자신의 모든 것, 신분을 버리는 것이다. 신분을 버리게 되는, 버려야 하는 개인적인 엄청난 이유가 있다. 유전자처럼 따라다니는.

안도 사쿠라는 다른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연기가 뛰어나서인지 안도 사쿠라가 울면 몰입하게 된다. 이름을 버린 한 남자를 남편으로 알고 살았던 여자에게 변호사 키도가 찾아와서 남편이 남편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누군지 찾아가는 미스터리다.

영화는 아주 좋고, 몹시 좋다. 자신의 정체성, 바꿀 수 없는 유전자, 대중 속의 고립, 외도, 무시, 재일, 무시, 편견이 서서히 조여오듯 압박하는 게 영화 속 주인공들이 사실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어서 놀라게 된다.

우리는 사실 신분을 버리고 다른 사람으로 매일 살아간다. 가족과 있을 때, 일을 할 때, 그곳에 갔을 때, 인스타그램의 나, 모임에서의 나는 전부 다른 사람이다. 어떤 신분이 진짜 나인지 나 조차도 알 수 없다.

일본 영화계가 망했다 해도 수작은 계속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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