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탕을 먹은 지 십 년은 넘은 것 같다. 어제는 온도가 15도가 넘어서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오늘은 느닷없이 차가운 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더니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비가 하루 종일 내리나 싶더니 며칠 동안 비가 그치지 않고 쏟아졌다. 두꺼운 패딩을 이미 넣어 버려서 봄옷을 입고 나왔다가 추위에 머리통이 얼어 버릴 것만 같았다.

봄을 알리는 계절에 덮치는 이런 추위가 한파 때 몰아치는 추위보다 더 혹독하고 생각한다. 한파 때는 온통 뉴스에서 춥다고 하니 각오를 하고 옷도 여러 겹 입으니까 한파가 지금의 추위보다 더 추울지라도 몸으로 느껴지는 추위는 지금이 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추위는 알탕 속에 들어있는 고기 같다. 그 고기는 돼지고기다. 어울리지 않는다. 왜 알탕 속에 돼지고기 같은 게 들어 있을까. 하지만 또 먹다 보면 괜찮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이 세상이니까 먹다 보면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알탕도 괜찮다.

예전에도 이런 추위가 있었지. 이런 기묘한 추위가 몸과 마음을 잠식하던 추위가 시기에 맞지 않게 왔던 때가 있었다. 스무 살 적에 친구들과 자주 가던 알탕 집에서 알탕을 먹곤 했다. 그때는 알탕을 자주 먹었다. 좀 춥다 싶으면 알탕이었다. 알탕이 특별히 맛있는 건 아니었다. 알탕 집이라고 하지만 전문점이 아니었고 그 알탕 집의 알탕은 가격이 저렴했다. 푸짐했다. 조미료가 잔뜩 들어갔고 미나리도 별로 들어가 있지 않은, 어딘가 못 미더운 모양이지만 우리의 소울 푸드 같은 음식이었다. 알이 많고 국물이 떨어지면 바로 채워 주었다. 소주 안주에 딱 안성맞춤이었다.

무엇보다 기묘한 추위에 몸을 데울 수 있는 좋은 음식이었다. 친구들과 자주 찾았다. 작은 선술집으로 테이블이 네 테이블이 고작이었고 술집 이름도 그냥 [알탕]이었다. 알탕은 여러 안주 중에 그저 하나였다. 그래도 분위기만큼은 하라주쿠 저 뒷골목 이자카야 못지않았다. 술집은 작고 늘 오던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 그곳에 가면 단골들은 서로 인사를 했다. 알탕이 굉장히 맛있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맛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 안에는 돼지고기가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묘했다. 기묘했지. 돼지고기는 좋은 부위는 아니지만 푸짐해서 이게 알탕인지 뭔지 애매했지만 먹다 보면 그게 어울렸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어울렸다. 그 알탕 집의 알탕이 그랬다. 조금 식으면 가득 들어간 조미료와 소금 때문에 짰지만 그때 육수를 더 붓고 돼지고기를 더 넣어주었다. 재탕해서 먹는 알탕의 맛은 2차전의 맛이다. 처음에 끓였을 때와 다른 맛이다. 밥까지 주문해서 같이 먹곤 했다. 2차전의 알탕 맛은 배를 채우기에 딱이었다. 우리의 입맛은 그다지 고급스럽지 않았다. 그다지 맛이 있지 않아도 먹을 만하면 맛있게 먹었다. 그럴 때였다.

나의 입맛이라는 건 지금까지 그렇게 이어졌다. 못 먹을 정도가 아니면 그냥저냥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어딘가 여행을 가더라도 크게 맛없어서 못 먹는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 못 먹는 음식 빼고는 그저 다 잘 먹었다. 못 먹는 음식이라면 매운 음식이다. 예전에 친구들과 자주 찾았던 알탕은 매콤하지 않았다. 붉은색을 띠고 있지만 맵지 않았다. 오히려 달큼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알탕을 먹으러 다닐 때 같이 다니던 친구들은 전부 맛을 많이 따지는 사람들이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점심 한 끼에 피로를 풀고 시간을 즐기며 대화를 하는 것이 하루의 낙처럼 되어서 음식이 맛없으면 투덜투덜거렸다. 그 투덜거림이 뭔가 부하직원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져서 이제는 같이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지 않는다.

환경은 그렇게 사람을 변하게 한다. 내가 일하는 곳의 환경과 회사 다니는 친구 주위의 환경은 너무 다르다. 회사 주위는 정말 맛있는 음식점들이 많다. 회사원들에게 음식이 맛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일하는 근처는 다운타운이라 주로 학생들이 많이 나오고 학생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점들이 많다. 내가 이 근처 음식이 마음에 드는 건 귀찮지 않은 음식들이 대부분이라서 그 점을 좋아한다.

회사원 친구들 근처의 식당은 찌개나 구이처럼 테이블 위에서 굽고, 끓이고, 찌고 뜯는 음식들이 많다. 내가 일하는 다운타운에 있는 식당은 테이블 위에 나오면 바로 먹으면 되는 음식들이다. 햄버거, 돈가스, 파스타, 쌀국수, 떡볶이 같은 음식들이다.

예전의 그 알탕 집의 알탕은 조리가 다 되어서 나오는데 테이블 위의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그래서 식으면 다시 재탕, 삼탕 해 먹었다. 알탕 집도 예전에 다운타운의 뒷골목에 있었다. 뒷골목에 술집들이 자리 잡고 옹기종기 있었다. 알탕 집, 빈대떡 주점, 선술집들이 꼬불꼬불 골목에 죽 붙어 있었다. 맛은 둘째치고 운치가 있었다. 봄이 다가왔지만 겨울의 끈을 놓지 못한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면 운치가 짙은 골목으로 들어가 알탕을 퍼먹으며 소주 한 잔이 그리워진다.

알탕의 붉은색은 매혹적이다. 그렇지만 맵지 않았다. 맵지 않은 음식의 붉은색은 붉은색이지만 붉은색처럼 보이지 않는다. 알탕에는 알 말고도 곤이도 들어가 있다. 곤이가 물고기 정액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알고도 맛있게 먹지만 몰랐을 때 곤이는 천상의 맛이었다. 정액과 곤이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어울렸다. 어울린다기보다 한 몸인 게지. 정액과 곤이라 한 몸이라니. 큭큭큭. 그런 게 바로 세상이지. 그런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곤이는 입안에서 그대로 녹아 없어지는 음식이 이렇게나 맛있다니. 봄이 되면 그제야 알탕 집에서 미나리를 많이 넣어 주었다.

알탕 집 이모님은 호호 아줌마 같았다.

작고 왜소하고 작은.

그래서 주방에서 알탕이 나오면 우리가 알탕을 테이블로 직접 들고 왔다. 웃으면 영락없는 호호 아줌마였다. 지친 마음을 달래기에 좋은 장소, 좋은 알탕이었다.

얼마 전에 그는 그 알탕 집이 있는 장소에 가봤다. 그곳에는 무인모텔이 들어섰다. 호텔 같은 모텔. 그런 모텔들이 세상을 점령하고 있다. 골목과 모텔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모텔이 들어서고 나니 떠 어울렸다. 이제 알탕 정도는 집에서도 밀키트로 간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맛이 없다. 맛있는데 맛없다. 세상에는 그런 음식이 존재한다. 세상은 넓기 때문에. 밀키트로 그저 끓이기만 하면 되는 알탕 역시 귀찮은 음식이다. 귀찮은 음식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지만 어울린다. 알탕은 나에게 그런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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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자신의 차 위에 누군가 떨어져서 차 지붕이 찌그러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적당히 흥미로우면서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볼 만해서 아주 괜찮은 영화다.

서울에서 인테리어 일을 하는데 일은 늘 있는 것은 아니고, 나이가 많고 적고 간에 적당히 반말을 섞어 하고, 사람들 눈치를 보는데 욱하면 눈치 없이 말이 튀어나오고, 상대방은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데 본인은 중요해서 다그치지지만 상대방 반응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나오면 또 곧바로 받아들이지만 혼자서 욕을 한다.

서울에 살지만 대구 사람이라 사투리를 쓰는데 그 사투리가 교묘하게 듣는 이로 하여금 아슬아슬하다. 여기서 듣는 이는 관객이다. 영화 속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

호감 있는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다가 안 좋은 말 들으면 또 그대로 포기를 한다. 관심을 보이는 방법은 역시 반말을 섞어서 하니까 여자는 그저 기분이 나쁘다.

주인공 주위의 사람들 역시 어딘가 기묘하니 묘한 구석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럴 것 같지 않은데 그렇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주인공과 주위 사람들은 어울려 지낸다. 아 그러고 보니 그게 세상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뒤섞여 살아가고 있는 게 이 세계니까. 영화 속에서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어울리는 것들이 잔뜩 나온다. 주인공이 사는 집의 부부가 그렇다. 부부는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같이 살고, 주인공과 노랑머리 여자는 가해자와 피해자이지만 같이 어울린다.

바람이 없는 날 반영된 물속의 세상은 물 밖의 세상 같지만 전혀 다른 세계. 이 세계는 뒤틀린 세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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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와인은 잘 모르지만 영화는 꼭 묵직하고 진한, 쌉사름하고 짙은 와인을 마신 기분이다. 인상은 써지는데 끝 맛이 뭔지 모르게 괜찮네, 같은 기분. 영화는 내내 답답하고 우울하지만 잘 만들었다.

이 현실감 쩌는 이야기. 내가 사는 도시의 이야기다. 우리의 이야기. 서민의 이야기. 사람 이야기. 사는 이야기. 그러나 힘든 이야기. 삶을 살아가는 건 살아내야 하는 거야.

울산의 중추적인 별이 대한민국을 지탱하던 때가 있었다. 그 찬란한 울산의 별이 지면서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되었다. 지는 해와 뜨는 해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마찰을 겪고. 그러나 헌 별이 지면 새 별이 떠오른다.

영화 속 영화적 허용을 말하자면 윤화가 새마을금고에서 대출하려고 주소 적을 때 동구 전화동이라고 적는데 전화동은 없고 전하동이 있다. 윤화가 잘못 적었나 싶었는데 영화 속 윤화가 벽보에 쓴 글을 보면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주 디테일한 장면이었다.

영화는 방어진 전하동과 조선소가 배경인 것 같은데 전하동은 사실 전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지 오래되어서 영화 속 주인공들이 사는 집과 마을을 어디서 찾아냈는지 잘 도 찾아낸 것 같다.

윤화가 조선소에서 그 난리를 피우고 등대 같은 곳에 앉아서 소주를 마시는데 아마 슬도의 등대 같다. 실제로 조선소 내에서 슬도 등대까지 먼 거리다. 회사에서 걸어 나와 등대에 앉아서 소주를 마시기는 무리다.

딸과 연예인 지망생 친구가 서울로 가기 위해 공업탑에서 버스를 타려는 장면이 나온다. 조선소가 있는 방어진에서 바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거나, 공업탑과 방어진 사이에 있는 고속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되는데 굳이 끝과 끝의 공업탑까지 간 것을 보면 울산의 상징 같은 공업탑 로터리를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 장면에서 대문 옆에 청명길이라고 붙어있는데 전하동에는 청명길은 없다. 영화를 위해 만든 것 같고, 영화 속 조선소와 작업복을 역시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울산의 현대 조선소의 작업복은 전혀 저렇지 않은데 아마 현대 조선소를 직접적으로 영화에 나오게 하는 것이 안 되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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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 외에 초특급 게스트들이 깜짝 나오는 재미도 있다. 땅꾼으로 정우성이 나올 줄이야. 약사 엄혜란이 나올 때도 재미있다. 엄혜란과 유해진의 티키타카의 코믹이 딱 내 스타일이다.

딸, 진주로 나오는 정다은 배우는 진짜 활을 쏘았나? 뭐지 사냥개들에서도 활 들고 쏘잖아. 폼이 활 한 번 당겨 본 솜씨네.

이 영화는 뭐니 뭐니 해도 유해진의 특별한 연기가 빛을 발했다. 치킨집 쿠폰 보여주면서 일영이 한 번 보여 달라고 하니 안 보여주는 그런 묘한 연기.

차인표가 생양아치로 나오는데 나 요 근래에 긴 시간을 들여 ‘그대 그리고 나’를 봤는데 거기서 차인표가 생양아치로 나왔다. 그 드라마를 보니 최불암, 김혜자, 심양홍 같은 배우들은 모르겠는데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가 와. 뭐 그렇더라.

특히 차인표와 송승헌의 연기는 입을 꾹 다물게 만들었다. 차인표의 이번 양아치 연기가 거의 30년 전 둘째 영규의 양아치를 그대로 보는 것 같았다. 송승헌은 거기서 화나도, 짜증 나도, 맞아도 입 벌리고 어딘가 보는 그 연기가 너무 적나라해서.

만약 송승헌이 그런 어설픈 연기에서 벗어났다면 지금쯤 봉 감독이나 박 감독 등, 천재 감독들에게 불려 다니며 영화 주인공이 되었을 텐데.

그래도 그대 그리고 나를 보면 최진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참 예쁘게 나오고 처음에 부잣집 딸내미에 자존감이 높아서 일 욕심이 강한데, 동규네 가족이 전부 자신의 집에 붙어살면서 전부 휘어 잡아간다. 최진실은 박상원과 하루도 편할 날 없이 가정사에 대해서 부딪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이놈의 가정사는 이리도 두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다. 최진실을 보면 연기를 하면서 행복해 한 것 같다. 화면 속 최진실은 울어도 말도 안 되게 예쁘다.

최진실의 죽음에는 졾피뎀이라는 수면제가 깊게 관여했다. 이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면 영혼과 육체를 분리할 정도로 사람을 구렁텅이로 몰아간다. 졸피뎀은 자꾸 자살을 강요하고 그건 아무렇지 않아 라고 타이른다. 졸피뎀은 의사 처방이다.

매니저가 타서 가져다주었다. 그 매니저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는 졸피뎀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약을 먹으면 바로 잠드는 게 아니라 점점 이상한 망상과 고통으로 시달린다. 그런데 후에 그 인터뷰를 했던 매니저 역시 졸피뎀을 복용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최진영 역시 졸피뎀의 영향이 컸다. 최진영이 죽고 나서 친구가 최진영이 괴로워하며 졸피뎀을 복욕한 것에 대해서 인터뷰를 했다. 최진영이 교통사고를 낸 적이 있는데 기억을 하지 못했다. 후에 이 친구 역시 졸피뎀 복용으로 4중 추돌사고를 일으켰는데 역시 전혀 기억을 하지 못했다.

우리의 챈들러, 매튜 패리 역시 의사 처방으로 시작된 진통제 바이코딘이 그의 몸과 정신을 먹어 버렸다. 프렌즈 촬영을 기억하지 못했다. 20년 전 제니퍼 애니스톤이 토크 쇼에 나왔는데 사회자가 매튜는 좀 어때?라고 물었는데 애니스톤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우리는 매튜가 그렇게 힘겨워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때가 20년 전이었다.

그대 그리고 나에서 최진실이 행복해하면 할수록 안타깝다. 차인표는 재능이 많다. 영화도 제작하고, 그게 방송을 타기도 했고. 또 차인표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소설 두 편을 전부 가지고 있는데 재미있다. 한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물론 인기는 없었지만.

달짝 지근해는 코믹 로맨스로 재미있는데 차인표가 김희선을 느닷없이 때리는 장면은 또 리얼하게 했는데 그건 좀 별로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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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2-21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글은 왔다갔다 하십니다.ㅋ
그러고보니 진짜 그대 그리고 나에서 차인표가 양아치로 나왔었네요. 이 영화에서 잘 나왔더군요.
최진실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비록 이혼은 했지만 전 남편까지. 근데 그 아들과 딸 환희와 완흰가? 언론에서 자꾸 심심하면 한번씩 건드리는 것 같아 좀 거시기 하더군요.
송승헌은 연기를 아주 못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열심히 안해서 그렇지. ㅋ 얼핏 들으니 결혼하고 은퇴할 거라고 하는 것 같던데...

교관 2024-02-22 11:18   좋아요 0 | URL
얼핏 들으면 안 됩니다 ㅋㅋㅋ 제대로 들어야 해요 특히 요런 연예인들은 ㅋ
 


사이비 종교에 대한 태국 영화를 한 편 봤다. 집을 세 주면서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를 믿는 신도들로 공포영화다. 사이비 종교는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나라든지 사이비 종교는 있고 그것을 다룬 방송이나 영화가 쏟아진다. 우리나라에서 사이비종교의 대표로 JMS의 정명석이 구속 기소되었고, 넷플릭스에서 [나는 신이다]를 제작해서 방송했다. 엄청났다.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방송 관계자들이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은 것 같은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도 사이비 종교에 관한 단편 소설을 한 편 썼다. 그 단편을 쓰기 위해 그 안에까지 들어가는 과정을 알아야 해서 직접 그들의 모임에 몇 개월 동안 참석을 한 적이 있었다. 몇 개월 잘 다니다가 그곳을 나올 때 소모임의 리더 같은 사람이 나를 엄청 붙잡았다. 그 속에서 만나고 이야기했던 사람들, 즉 신도들은 너무나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누구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심지어 나와는 다르게 욕 한 마디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사이비종교라는 걸 어떻게 명확하게 지정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인터넷에서도 신천지를 검색하면 그들이 하는 봉사활동의 소식이 밑으로 주욱 나온다. 실제로 신천지가 사람들을 향해 공격을 하거나 돌을 던지는 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신도들은 다른 종교처럼 선교활동을 하고 말씀을 전하는 행위를 할 뿐이다. 사이비 종교라는 걸 명확하게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코로나 초기 때 내가 있는 곳에 신천지 신도가 와서 최초 전파자가 되었다. 대대적으로 뉴스가 났고 그들이 들어갔던 가게나 음식점은 확진자가 다녀간 집이라고 펜스를 치고 2주 동안 영업정지였다. 그때 [확진자]라는 사건의 중심보다 [신천지]라는 변두리에 사람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결국 이 근방에 시에서 신천지 전수조사를 나왔다는 소문이 돌았고 아케이드가 쳐 있는 400미터 안에 신천지 건물 5곳이 나왔다. 그 건물들의 이름이 하나씩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사람들은 신천지에 대한 불신과 불안 그리고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신천지라는 건물을 몰랐을 때는 고요하게 지금까지 잘 지냈다. 그 사실(400미터 안에 신천지 건물이 5군데가 있다는)을 알았을 때와 몰랐을 때가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신천지는 사이비종교라서 사람들은 대단히 불안해했다.


사이비종교는 하느님을 믿지 않을 것 같고, 신도들은 영화 속처럼 기괴하거나 괴이한 행동을 하고 언어를 사용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타인에게 방해 주지 않으려 조심하며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면 사이비종교가 아닌 종교, 여러 종교 중에 개신교는 좀 어떨까. 흔히 말하는 교회에 나가고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대한예수교, 침례교 등 사이비종교가 아니라고 하는 종교가 있는데, 정통 개신교를 믿는 자들이 신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며 욕설을 하고 일반인들보다 더 욕심에 눈이 멀어 나쁜 짓을 많이 하기도 한다.


가장 최근의 예로, 박수홍 형은 정말 절실한 개신교 신자라고 한다. 법정에서도 검사와 변호사의 주장이 오고 갈 때마다 [하느님아버지]라고 계속 조그맣게 내뱉는다. 사실 이런 소리 정말 듣기 싫다. 이 박수홍 형의 웃긴 점은 그렇게 하느님 말씀을 듣는데 박수홍의 아내를 조사하기 위해 점을 보러 가서 거기서 부적인가, 그런 내용도 법정에 나왔다고 한다.


도대체 사이비종교라는 건 무엇을 근거로 결론을 내야 할까. [사이비종교인]라는 단어가 더 확실한 것 같은데 [아니야, 나 땡땡교회 다녀]라고 하면 사이비종교가 아닌 것처럼 되어 버린다. 교회 내의 이득경쟁도 치열하고 서열이나 다툼도 정치인들 못지않다. 나라에서 인정한다고 해서 그 종교를 사이비라 부르지 않는 것일까.


종교와 신도들에게 사이비라는 호칭을 붙이는 건 누가 정하는 것일까. 법으로 나와 있는 것일까.


많은 나라에서 사이비 종교 때문에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얼마 전에 케냐에서 사이비 종교에 속아서 굶어서 떼죽음 당한 사람들의 뉴스도 있었다. 일부 시신에서는 장기도 적출했다. 불과 일 년도 안 된 사건이다. 미국에서 70년대 짐 존스라는 희대의 사기꾼이 인민사원 교주를 하면서 900명을 집단자살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이 엄청난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디카프리오가 짐 존스로 분해서 다시 영화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2021년도부터 나오고 있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던 영화, 어두운 밤보다 환한 대낮의 공포가 얼마나 더 무서운지 잘 보여줬던 영화 [미드 소마] 역시 사이비종교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는 배경이 스웨덴이다. 사이비종교는 분명 존재한다. 사이비 종교는 신도들의 약한 마음에 투침하여 조금씩 시간을 들여 마음을 갉아먹는다. 마음을 다 갉아먹은 자리에 악마를 심어 놓는다.


사이비종교라는 건 순진하고 착한 신도들의 뒤에 숨어서, 마음에 숨어서 본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나도 결국 사이비종교야 같은 말을 들을 뿐 사이비종교를 결정짓는 어떤 선도 없어서 오늘이 지나면 다시 사이비종교는 활개를 펼칠 동력을 마련한다. 종교에 믿음이 빠지고 우리 아니면 전부 나쁜 거야,라는 분위기가 강하면 그게 사이비종교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생활의 여러 특징 중 눈에 띄는 하나는 아이 때부터 집단생활을 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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