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불면의 저주’는 공포 고어물입니다. 두 번째부터 징그럽고 지저분한 장면이기에 고어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넘기지 말기를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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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근간에 나온 아시아 고어물로, 징그러운 장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2016년 서울 드라마 어워즈 아시아 스타상을 수상했고, 2017년 부천영화제에서도 상영이 되었다. 감독은 92년도의 아시아 고어 쪽의 팬들을 확보했던 ‘팔선 반점의 인육 만두’의 구예도 감독이다. 팔선 반점의 인육 만두에서는 아이들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이전의 금기를 깨버리고 그대로 죽여 갈아서 만두로 만들어 버린다. 인간을 썰어버리고 잘라내고 깨버리는 장면이 여과 없이 나온다. 카니발리즘적인 장면이 무차별적으로 나오는데 ‘불면의 저주’에서도 여지없이 인육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럼에도 부천 국제영화제에 초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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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고어물을 좋아할까. 물론 전체에 비하면 소수가 그렇다. 그렇지만 소수의 마니아들이 어느 분야든 그 산업을 이끌어간다. 미국과 유럽에는 B급 고어물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 인간은 정말 알 수 없다. 먹고 죽을 것 같은 극한의 매운맛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극을 원한다. 잔인한 자극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쾌감을 맛보고 그 극치의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평소에는 할 수도, 생각도 못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 이유가 있고 가정과 설정이 개입을 하면 더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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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예도 감독이 92년도에 고어물을 만들었을 때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는 “녀락(여락)’이라는 고어물이 있었다. 25년 정도 된 영화지만 팔뚝을 뜯어 먹고 자신의 손을 기름에 튀기고 그것을 다시 먹고 눈에 그대로 포크를 찌르는 장면이 역시 거침없다. 그 영화는 지루하게 이어지지만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초현실주의적인 인간의 각성을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을 고어물과 접목시켰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에 배를 가르고 펄떡 거리는 그 속으로 기어들어가 새로운 세계에 접목하는 초현실주의를 보여줌으로 보는 이들을 더욱 의아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장면들이 징그럽다고 한들 1970년대에 이미 나치에 대한 이야기 ‘살로 소돔의 120일’ 같은 영화가 있었다. 나이 어린 남녀를 장난감 다루듯 가지고 놀고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데 음식이 인간의 똥이다. 그런 장면이 역시 여과 없이 나오고, 네크로필리아들의 고어물이 70년대부터 80년대로 이어지며 꾸준하게 쏟아졌다. 고어물을 대중화 시킨 게 쏘우 시리즈가 아닌가 싶다. 쏘우는 쏘우 3편부터 적극적으로 이야기보다는 화면에 초점을 맞추어 터지고, 자르고, 가르고, 갈리는 자극적이고 징그러운 장면이 가득하게 되었다. 욕을 하면서도 쏘우 시리즈가 지속적으로 나온 이유 역시 사람들이 찾기 때문이다. 욕을 하면서 매운맛을 찾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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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저주의 주인공은 92년도의 팔선 반점의 인육 만두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항추생이다. 그는 62년 생으로 아마도 홍콩을 제외한 타국의 사람들은 조연으로 영화에서 많이 봤을 텐데 조연보다 주연이 더 많은 배우이다. 무간도에서도 멋있었고 장국영과 금지옥엽에서는 코믹하게 나왔다. 하지만 90년대에는 주로 빌런으로만 나왔다. 빌런 중에서도 사이코패스나 무법 살인자 같은 사회적 소수로 늘 나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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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불면에 관한 영화다. 인간은 왜 잠을 자야만 할까. 왜, 어째서 잠을 자야만 하는 구조를 인간은 지니고 있는 것일까. 수면은 과하거나 부족하면 인간은 변이가 찾아온다.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이며 망가진 생활을 어떻게 이어가는 것일까. 누구나 한 번쯤 해 보는 생각이다. 이 영화는 초반에는 과학적으로 수면에 대해 접근하지만 유전적인 요인에 접신이나 저주가 달라붙으며 이야기가 고루하고 지루하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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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지루하다는 말은 담백하다는 말과도 같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한 것 같다. 이 불면의 유전, 불면으로 인해 카니발리즘적으로 변하는 것은 오래전 홍콩 역시 일본의 강점기에 있었을 때 홍콩의 여자들 역시 위안부 문제로 일본 군부에게 무참하고 처절하고 힘없이 당하게 된다. 힘없는 여자를 묶어놓고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수 십 명의 일본 군인이 줄을 서 있고 차례가 되면 강간을 한다. 힘을 쓸 수 없는 여자를 묶어 놓는 그 잔인함에서 우리들은 아무래도 역사적 상처와 피해가 몸속에 싹튼 분노를 끓어오르게 한다. 그리고 일본 군부는 쓸모없게 된 여자들은 그대로 대형 구덩이에 버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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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난징사건과 한국의 일제강점기를 보면 당시 홍콩과 일본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꽤 있는데 거기에 경종을 울리는 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가장 짜릿한 장면은 황추생이 불면으로 인해 일본 군부의 대장을 묶어 놓고 고추를 그대로 자르고 그것을 입에 집어넣는 장면은 징그럽다기보다는 통쾌하기까지 했다. 성범죄를 저지르고 성폭력을 범하는 성 폭력범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성범죄자들은 고추를 잘라버리면 될 텐데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일까. 성범죄자들은 재범, 3범, 4범이 된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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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되었던 영화는 일본 군부와 홍콩의 처한 사회적 현실에서 주인공이 그 사이를 배회하며 홍콩 여자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아마도 이런 역사적인 문제를 다루어서 고어물임에도 불구하고 부천영화제에 초정을 받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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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중간중간 고어스러운 카니발리즘적인 장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게 흘러간다. 보는 사람에 따라 깊이를 느끼며 보는 이들이 있을 것이고 늘어지다가 말미에 가서 눈을 확 뜬 사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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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의 개들의 섬은, 많은 사람들이 감독의 일본을 향한 애정의 영화라는 말을 하는데 실은 애정이 아닌 애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들의 섬은 개독감이 도시를 덮어버린 날 시장인 고바야시가 모든 개를 쓰레기 섬으로 추방을 하고, 고바야사의 양자인-사고로 부모를 잃은 아타리가 자신의 경비견 스피츠마저 쓰레기 섬으로 버려져 찾으러 가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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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오프닝에서 ‘소년 무사와 머리 잘린 조상’의 이야기를 보면 개들의 섬이 탄생된 배경을 잘 알 수 있다. 수 세기 전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고바야시족은 들개를 길들여 애완견이 되었지만 인간의 변덕으로 개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 아직 반려견이 아니라 애완견, 장난감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때 어느 소년 장수가 개들을 벌레 취급하는 고바야시족 수장의 목을 베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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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고양이를 좋아한다. 소설, 영화, 만화, 드라마에 늘 개보다 고양이가 우선순위이다. 고양이는 영묘하며 영적이고 개와는 다르게 인간과 기이한 소통을 한다고 나온다. 웨스 앤더슨은 아마도, 어쩌다가 지구에서 오직 인간만을 바라보고 한 번 섬긴 주인의 모든 행동을 주시하며 오로지 주인의 눈빛을 따라다니는 반려견인 개가 버려지면 되려 인간을 공격한다, 그런 경우를 많이 봐왔으니까, 실은 개를 함부로 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니 애정이 아니라 애증 어린 눈으로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고 그저 개인적으로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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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들어서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몇 편 봤다. 웨스 앤더슨의 영상에는 독특하고 꿈같은 컬러가 있다. 색채가 몹시 기묘하지만 놀랍도록 고혹적이며 흐트러짐 없는 구성이 일품이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장르를 복합적으로 뭉쳐 놨는데 지저분하지 않다. 허술한 것 같은데 촘촘하고 탄탄하다. 마치 31아이스크림에 밥을 비벼 먹는데 이상하지 않고 맛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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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다큐영화 ‘히치콕 트뤼포’다. 두 거장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로 히치콕을 좋아한 트뤼포가 히치콕의 책을 얼마나 많이 보고 연구를 하는지, 그리고 현재의 거장이라 불리는 데이빗 핀처, 폴 슈레이더, 올리비에 아사야스 등 감독들이 나와서 히치콕과 트뤼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준다. 우리는 그저 듣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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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을 이야기하고, 거장의 이야기 속을 들여다보고, 거장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임에는 분명하다. 거장은 영화사에 남을 영화를 만드느라 인생을 보냈고 인간의 삶, 인간의 역사를 말할 때 영화사 역시 거기에서 절대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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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임파서블에서의 토끼발 같은 수많은 영화 속 맥거핀을 만들어낸 히치콕은 대단할 수밖에 없다. 히치콕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히치콕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한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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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처럼 영화 속 장치를 창조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많은 작가가 벽에 부딪히는 것이 창작에 있어서 창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대부분, 대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 창조란 얼마나 위험하며 대단하고 숭고한 일인지는 영화 프로메테우스와 에일리언 커버넌트에서 데이비드와 월터를 보면 알 수 있다. 데이비드와 월터가 피리를 부는 장면에서의 대화는 영화 마니아들에게 있어 회자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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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를 불 줄 모른다는 월터에게 데이비드는 네가 나보다 더 우수하게 만들었을지 모르나 나는 피리를 불 줄 알고 작곡을 할 줄 안다고 한다. 그것이 창조가 가능한 창조주가 가지는 능력이다. 바그너의 음악, 니벨룽의 반지가 영화 속에 나오는데 이 음악은 반지의 제왕의 이야기를 탄생시켰고, 음악 속에 나오는 두 거인 형제가 반지를 두고 싸움을 벌이는데, 데이비드와 월터도 그렇게 한다. 창조된 피조물은 창조주를 마냥 따르지 않는다. 자신이 새로운 창조주가 되려 하고 거기서 새로운 종, 인간과 다른, 인간의 몸속에서 배양된 이종을 탄생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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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트뤼포의 초기 작품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고 옛날 영화라 템포가 느리다. 하지만 트뤼포 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화면 톤을 만날 수 있다. 거기에 암시적인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는 건 아직 트뤼포를 따라갈 감독이 없을 지경이다. 분명 따분한 거 같은데 지겹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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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도 해변의 카프카에서 트뤼포를 유연한 호기심에 가득 찬, 구심적이면서도 집요한 정신이라고 했다. 호시노 상에게 대공트리오를 알려준 카페의 주인을 빌려 하고자 하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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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좋아한다면, 영화를 좋아한다면 교과서적이지만 공부에 교과서가 제격인 것처럼 히치콕과 트뤼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거장의 세계관이 빠져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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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가 고등학생 때, 60년대의 고교시절을 소설로 적었고 영화가 되었다. 류가 쓴 거 맞아? 하지만 그 속을 관통하는 흐름은 류가 맞다. 하루키와 류는 그들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전공투 세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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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사고 치고 학생부 선생님에게 두드려 맞는 게 일상인 야자키와 야마다 그리고 단정한 이와세는 늘 수업 후 운동장에서 매스게임을 연습하는 여학생들을 보며, 무엇인가를 강요 당하는 집단은 지겹다는 야마다의 말에 야자키는 이제 17세의 소녀들에 우울한 체육복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그녀들을 해방시키기로 하면서 소위 권력에 자기들 방식으로 저항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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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계관이 60년대를 바라보는 무라카미 류의 세계관이라 생각한다. 자유주의를 표방한 자본주의 속에는 집단주의와 단체주의가 가득하고, 여성들은 성적으로 핍박받고 성적이 최고로 우선시되고, 정치는 퇴행해 가는 일본 사회에 경종을(류의 대부분 소설에 그런 것이 나온다) 알리고 싶었다



그들은 결국 교장의 책상에 똥을 싸지르고 그것에 사상을 붙인다. 영화와 소설을 뒤덮은 정신적 세계의 바탕은 보브 딜런, 롤링 스톤즈, 제니스 조플린이 있다. 가장 직설적이고 정확하고 몸에 닿을 수 있게 저항할 수 있는 것이 음악이었고 당시는 전 세계에 음악으로 전쟁과 기근, 기존 기득권에 저항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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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키가 좋아하는 레이디 제인(은 롤링 스톤즈의 노래다)도 셰익스피어보다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가사가 훨씬 쉽게 이해된다고 한다. 주인공들이 밤새 똥을 싸지른 난장판 중에서도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와 당하고 있는 야자키를 돌려 달라며 상상력으로 권력에 대항을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정말 멋진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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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들의 이야기를 보며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나면 나에게는 아직 손상받지 않은 하루가 남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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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수작이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고 농밀하고 무겁고 깊은 밀도가 영화 내내 흐르고 있다. 그 흔한 작위적인 내용의 전개도 없고 길게 설명을 하지도 않는다. 수작이라는 평을 듣는 것에는 촘촘한 각본의 테일러 쉘러던과 짜임새 있는 드니 빌뇌브의 연출에 있다. 그리고 케이트, 멧, 알레한드로의 주인공들이 다른 목적으로 모여들어 다른 행동 원리가 부딪히면서 상황과 상황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이뤄내는 모습에는 한없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 두 시간 동안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둔탁한 긴장감이 관객의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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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황한 설명 없이 공간이 주는 무한정성과 주인공들의 움직만으로 서스펜스를 보여준다. 멕시코 사막의 황량한 공간과 은밀한 지하 공간에서의 펼쳐지는 암살자들의 임무. 긴 대사를 통하지 않고 상황을 주인공들은 관객에게 전달한다. 늘 중반이나 마지막에 늘어지는 영화를 보아왔던 우리들은 마지막, 끝까지 긴장감이 이어지는 흔하지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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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한 현실의 상황과 그 속에서 인간이 가지는 고뇌를 다루는 방식은 멕시코와 미국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손색이 없다. 훌륭하다. 예측이 불가능하다. 예측이 불가능한 영화가 좋고 예측이 가능한 영화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예측이 가능한 장면이 괜찮으려면 설득력이 있어야 하고 이전 장면과의 개연성과 의미가, 당연하지만 확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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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처처럼, 욕심 많았던 검사 나리군,이라는 대사에서 관객은 이미 엄청난 긴장감을 몸에 둘렀는데 거기에 상상을 하게 만든다. 암살자가된 알레한드로에 대한 설명을 일절 빼버렸다. 이런 모습은 터미네이터 2에서 T1000이 정보처리 기능을 어떻게 하는지 길게 촬영을 했지만 제임스 카메론은 빼버렸다. 관객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은 남겨두는 것으로 하려고 했다.
알레한드로는 CIA 출신도 아니고, 특수부대의 출신도 아니다. 그런 검사였던 알레한드로가 가족의 죽음을 맞이하고 암살자가 되기까지, 이렇게 잔인하고 표정 없고 절제된 행동과 치밀한 타격을 하는 암살자로 재탄생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나, 어떤 훈련을 거친 것일까-케이트에게 총을 쏘며 나에게 총구를 겨낭하지 마라는 장면에서-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이런 상상을 개무시하게 만든 것이 시카리오의 2편에서 영화가 산만해지면서 개연성이 떨어지는 대사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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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빌뇌브의 철학적 고뇌가 돋보였던 블레이너 러너 2049와 현실감이 가득한 이종과의 만남을 다룬 컨택트 역시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수작이라 생각한다. 드니 빌뇌브의 영화는 선과 악이 굉장히 모호하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역시 현실의 미국 상황을 다룬 선과 악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미국 국경을 두고 멕시코와 미국의 부패한 경찰이 멕시코 카르텔만큼 멕시코와 미국의 사회를 좀 먹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끌려가는 케이트에 관객들은 이입이 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 총을 들고 알레한드로에게 겨냥을 할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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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수많은, 음식을 먹어, 먹어, 하는 대사가 많았지만 이토록 긴장해야 하는 먹어, 먹어는 보지 못한 듯하다. 잔인하고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섬뜩한 리얼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영화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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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그랬다#드니빌뇌브가보는인간세상은#그을린사랑#의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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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 되어 돌아온 자리를

공포 대신 공허와 슬픔이 대신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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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공허와 슬픔에 영화를 보는 이가

같이 결락으로 녹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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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롱테이크와 사각 비율의 화면으로

이별을 당한 사람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령

상실이 시가 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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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의 틀 속에 갇힌 반복되는 일상이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된다

결락을 글이 아닌 화면으로 끌어다 놓은 것 같아서

닭살 돋았음

2분 이상 가는 긴 테이크를 끌어가는 건 대사 없는 

주인공들의 표정 연기뿐

그 속에서 화산처럼 나오는 슬픔이 보였다

아 굉장한 느낌

영화가 주는 충격을 오랜만에 느껴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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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영화이야기#영화그램

#어#고스트스토리

#그리고#중간을흐르는#영화음악

#이로써#케이시애플렉#은먼저떠버린절친

#멧데이먼#과#벤에플렉#을따라잡을것인가

#쪽지에는뭐라고써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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