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상에서 멀어지기로 했다
편석환 지음 / 가디언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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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역으로 일상과 더 가까워지고 싶고 일상을 더 잘살고 싶은 절실함이었다. 일상의 성실함이 더 이상 무기가 되지 않는 세상에서 작지만 숨통이 되고 싶었다. 힘든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오늘의 세대에게 자그마한 위안이라도 되고 싶었다. 힘든 세상에, 모든 일상에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었다. ‘괜찮다.’ - '책을 펴내면서'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편석환은 43일 동안의 묵언 수행과 함께 일상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있기를 택했다. 그 이유는 너무 익숙함에 취해 있다보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다시 보일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말보다 고요함을, 속도보다는 느림을, 관계보다는 나 자신을 택했다.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광고쟁이와 대학에서의 강의로 30년을 보낸 일상이었다. 

총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은 일상에서의 단상斷想(1장), 일상에서 멀어지기(2장), 멀어진 일상에서의 하루(3장) 등을 통해 크고 작은 삶의 굴곡 속에서 흘러간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228가지 짧은 글귀로써 저자 본인의 느낀 바를 전하며 '괜찮다'는 위로의 말로 우리들을 보듬는다. 

이에 난 많은 짧은 글귀들 중에서 내 마음을 움직이거나 '옳다구나' 하고 내 무릎을 치게 만든 순간들을 요약해서 마치 필사하는 기분으로 옮겨 적고 내 나름의 감상평과 함께 적음으로써 서평에 갈음하려 한다. 물론 이에 동의하지 않고 다른 글귀를 더 좋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의 단상 

삶의 끝은 결국 일상과의 이별이다. 일상에서 멀어지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일상과의 이별, 곧 죽음이라는 근원적 공포가 우리 삶에 내재內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일상과 멀어지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결국 그것이 일상과 가까워지는 삶이기 때문이다. 

일상을 살다 보면, 빨리 가야 할 때가 있고 멀리 가야 할 때가 있다. 상황에 맞게 어떻게 갈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빨리 가려거든 최대한 가볍게, 멀리 가려거든 최대한 무겁게 가야 한다. 빨리 가려거든 혼자서 가고, 멀리 가려거든 여럿이 함께 가는 것이 좋다. 



(감상평) 현재 독거노인의 삶을 지내는 나는 과거의 익숙한 일상들과 어쩌면 담을 쌓고 지내는지도 모르겠다. 평소 사람들을 좋아했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어서 그렇다. 그저 빠른 삶을 추구했기에 나홀로 즐기는 마라톤에 빠지고 한꺼번에 두 개의 산을 넘는 그런 산행을 즐겼다. 가벼운 일상을 즐기며 사람만 좋아하는 호인이 되어 내 뒤통수가 깨지는 줄 모르고 살다보니 가진 재산 모두 내놓고 이젠 담을 쌓고 지낸다. 

일상에서 멀어지기

우리는 거의 매일 같은 공간 속에서 생활하며 살아간다.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은 그저 공간의 단순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자기 자신을 찾는 문제다. 정형화된 공간에서 벗어나 본인 스스로의 공간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일상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일상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일이 많다. 내가 무언가를 했을 때,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을 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럴 일이 아니다.(중략) 내 스스로 어떤지를 생각해야 한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내 안에 침잠해야 한다. 그것이 일상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감상평) 그렇다. 지난 내 삶을 되돌아보면 거의 기계 속의 톱니바퀴 같았다. 다람쥐 챗바퀴 돌듯 '집 - 일터 - 집'의 연속이었다. 자유 시간은 오직 주말 휴일 때 즐기는 마라톤 또는 산행이었다. 또 무리의 수장首長 생활을 자주 맡다보니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했었다. 

멀어진 일상에서의 하루 

일상에서 늘 이용하던 식당을 가다가 새로운 식당에서 새로운 맛을 찾았다. 새로운 맛, 그 자체로 하루가 맛있다. 맛았는 하루, 멀어진 일상에서의 하루다. 

눈이 왔다. 어느새 오대산 월정사에 있었다. 전나무 숲을 걷고 있었다. 그저 눈이 왔을 뿐인데, 새로 온 눈, 그 자체로 하루기 상쾌하다. 상쾌한 하루, 멀어진 일상에서의 하루다. 



(감상평) 책읽기를 좋아하기에 책 속에서 이와 비슷한 귀절을 자주접했다. 늘 같은 패턴을 반복하지 말고 다른 걸 선택하라고 말이다. 그러려니 했다. 난 식당도 한 곳이 정해지면 그 집의 단골이 되었다. 이런 나에게 큰 스승이 한 분 계셨다. 늦게 만났다. 믿었던 후배에게 투자자문사를 맡겼다가 쫄딱 망한 후에 만났다. 화병으로 잠도 이루지 못하는 사람 살리겠다는 심정으로 아내가 큰 스님에게 나를 인도했다. 참 많이 울었다. 참회의 눈물이었다. 


#에세이 #나는일상에서멀어지기로했다 #편석환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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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상에서 멀어지기로 했다
편석환 지음 / 가디언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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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멀어진다는 의미가 산 속으로 들어가는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사색의 삶임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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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 김부장의 늦지 않은 연금 공부 - 은퇴 후 500만 원을 만드는 연금 포트폴리오
이영주.배한호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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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김부장은 연금 초보자였지만, 뒤늦게 시작한 ‘늦은 연금 공부’를 통해 결국 은퇴 후 세후 월 400만 원의 안정적인 소득 구조를 넘어서 500만 원의 소득을 완성한다. 그 과정에는 수많은 충격, 혼란, 깨달음, 그리고 결심이 있었다. 그리고 이 여정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이영주는 연금박사상담센터 대표로 43만 구독자의 유튜브 채널 '연금박사'를 운영중인 국내 최고 연금 전문가이며, 공저자 배한호는 같은 상담센터 소속 연금 전문가로 12년 동안 금융업계 일선에서 일하며 '노후설계'를 해왔다. 

총 네 개 파트로 구성된 책은 깨달음의 순간(파트1), 숫자를 현실로, 연금 포트폴리오(파트2), 준비한 자에게 위기는 기회다(파트3), 새로운 삶의 시작(파트4) 등을 통해 서울에 自家를 소유한 50세 대기업 김부장의 연금 설계를 통해 우리들의 늦지 않은 연금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   

부족한 생활비 120만 원


(사진, 부족한 생활비)

매달 부족한 생활비 120만 원이 은퇴 후 30년간 누적되면 무려 4억 3,200만 원이라는 거대한 구멍이 된다. 이에 김부장은 한숨이 나왔다. 막연하게 괜찮을 거라고 자신을 다독였던 마음이 한꺼번에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상담사) “이제 막연한 걱정이 명확한 숫자가 된 겁니다. 이 120만 원은 극복하지 못할 벽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부터 ‘채워야 할 숙제’일 뿐이에요. 중요한 건 이 빈틈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하는 전략이죠.”

멍하니 모니터 속 숫자들을 바라보던 김부장은 그동안 가슴을 짓누르던 것은 ‘돈이 없다’는 사실보다 ‘얼마가 필요한지 모른다’는 막막함이었다.
‘그래,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목표가 정해졌으니, 이제는 어떻게 채울지만 고민하면 되겠구나.’ 김부장의 가슴 속에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사진, 김부장의 최종 연금 포트폴리오)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않는 연금

“지금 100만 원도 큰돈이 아닌데 수십 년 후에 100만 원 받으면 무슨 소용인가요?” 

이는 연금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다. 매년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상황인지라 화폐의 가치 하락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연금도 그렇지만 예금, 주식, 부동산 등 세상에 존재하는 금융투자상품 중에서 물가상승률을 반영해주는 그 어떤 상품도 없다. 그래서 물가상승률에 따른 화폐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별도의 대책이 필요할 뿐이다. 

첫째, 물가상승룰 이상의 수익이 발생해야 한다. 
둘째, 물가 상승분 만큼 정률定率로 납입해야 한다. 

연금저축 or IRP

(상담사) “김부장님처럼 55세 은퇴라면, IRP가 가장 구조적으로 맞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연금저축이 더 맞는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언제 퇴직하느냐가 기준이 되죠. 퇴직위로금을 일시금으로 받으면 퇴직소득세를 한 번에 전부 냅니다. 그게 가장 불리한 선택이에요.” 

반면 연금저축과 IRP는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 세금이 즉시 나오지 않는다. 둘째, 연금으로 받을 때 퇴직소득세가 감면된다. 즉 세금만 본다면 둘은 차이가 거의 없다. 결정적인 차이는 '55세 이전 인출 가능 여부'에 있다. 

연금저축: 55세 이전에도 인출할 수 있어서 돈이 필요한 이에게 유리(단, 중도 인출 시 감면 혜택 없이 퇴직소득세를 납부해야 함) 

IRP: 55세 이전 원칙적으로 인출 불가(연금으로 수령할 경우 퇴직소득세 30~50% 감면됨)

김부장의 두 번째 월급

퇴직 확정 통보를 받은 김부장은 인사팀으로부터 퇴직금 2억 원은 IRP로 자동이체, 퇴직위로금 2억 5천만 원은 일시금/연금저축/IRP 중 선택해 달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금액이 큰 퇴직위로금을 어떻게 수령하느냐에 따라 이후 15년의 현금흐름이 완전히 달라짐을 연금 공부를 통해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사진, 수령 방식 비교) 

비교를 통해 IRP는 돈을 묶어두는 통장이 아니라 속도를 조절하는 통장이며, 연금 수령 한도는 세금을 감면받으면서 인출할 수 있는 한도임을 확인한 김부장은 상담사로부터 "IRP는 조금씩, 오래 받을수록 세금이 줄어든다"는 얘기를 듣고 추가 수령하는 보너스가 결코 여유자금이 아님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 자금의 성격은 이렇게 요약되는 셈이었다. 

국민연금 전까지 15년을 버티는 브릿지 자산 
세금을 일시에 납부하지 않기 위한 시간 분산 자금 
퇴직 이후에도 월급을 유지하기 위한 현금흐름 엔진 

"중요한 건 얼마를 받느냐가 아니라 얼마씩 얼마나 오래 받느냐다"   

[입금] IRP 퇴직금형 3,386,000원
[입금] 연금저축 459,000원
[입금] IRP 적립형 196,000원
합계 약 4,041,000원

퇴직 후 첫 달, 김부장의 통장에 찍힌 금액이다. 이는 국민연금을 수령하기 전 구간의 소득이다. IRP 브릿지 월급은 69세까지 확정, 연금저축과 IRP 적립형은 기간과 금액이 정해지며, 국민얀금은 70세부터 평생 수령한다. 

퇴직 후 어느날, 예전에 함께 일했던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후베들을 위해서 은퇴 준비에 관한 강연 요청이었다. 강의가 몇 번 이어진 뒤 지역 커뮤니티 칼럼 기고나 사내 교육 요청 등을 통해 매달 30만~70만 원 정도의 수입이 생겼다. 이 돈은 여행 경비나 취미 비용, 아내와 함께하는 외식비로 사용되는 '삶의 보너스'였다. 연금이 그에게 준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었던 것이다. 경제적 기반이 안정되니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재테크 #연금공부 #연금포트폴리오 #50세김부장 #이영주 #배한호 #원앤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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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순간들 - 자동차, 아파트, 재벌, 도시에 관한 가장 현대적인 이야기
정몽규 지음 / 쌤앤파커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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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관점에서 보자면 글로벌 경기 사이클에 따라 가쁜 숨을 고르며 도시 개발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던 HDC그룹의 사사이고, 리더십 측면에서는 인프라 시공에 운영을 더해 더 넓은 포트폴리오를 그린 '보수적인 혁신가', 저 정몽규의 위기 관리 매뉴얼이고자 했습니다. - 결정의 순간이 있기까지' 중에서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은 포니 전성시대(1장), 도시의 탄생(2장), 결정의 순간들(3장)을 통해 HDC그룹의 성장사를 보여준다. 1장에선 정주영 회장이 종로에 '현대공업사'란 간판을 달고 수리 공장을 열었을 때부터 저자의 아버지 정세영 회장이 현대자동차의 리더가 되어 자동차 포니를 생산할 때까지의 일들을 추적한다.

2장에선 도시 개발의 역사와 현대산업개발의 기업사를 담아낸다. K건축의 새 모댈을 제시한 '아이파크' 프로젝트의 성공 사례와 함께 예싱치 못한 사고와 과오를 가감 없이 다루며, 마지막으로 3장에선 이런 과정에서 얻은 저자의 경영적 통찰을 공유한다.

서평을 쓰기에 앞서 난 현대건설에서 직장인 근육을 키웠던 현대맨 출신임을 먼저 밝힌다. 외환은행에서 근무하던 중 대학 선배의 권유로 현대건설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후 앞만 보고 달렸다. 새롭게 배우는 일이 재미도 있고해서 마치 회사 주인인 양 잠자는 시간마저 반납하고 항상 늦은 새벽에 퇴근했다. 그런 옛 추억에 잠기며 이 책을 읽고 있다.   

포니 전성시대

포니(조랑말)은 고 정세영 회장이 현대자동차를 경영하던 시절 대한민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네이밍 공모 끝에 탄생한 브랜드이다. 당시 출품작은 아리랑, 도라지, 무궁화 등이 가장 많았으며 집안 성씨인 '당나귀 정鄭'에서 파생된 '포니'란 응모도 100여 편이나 되었다. 네이밍은 브랜드의 운명이자 회사의 방향임을 감안, 최종 '포니'로 결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정세영 회장은 '포니 정'으로 불리었다.

한국에서 탄생한 고유 모델 포니는 1974년 가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데뷔했다. 1975년 3월 방한한 영국 롤스로이스 회장이 울산 공장을 방문, 포니차를 시승한 후 "차가 꽤 좋네요!"란 반응을 보였다. 이후 포니는 1976년 2월 29일에 출고가 시작됐다. 이 해에 에콰도르에 5대의 해외수출이 성사되었고, 생산 2년 만에 50개국에 수출되는 성과를 올렸다.

1981년 11월에 미쓰비시로부터 전륜구동 기술을 도입하면서 현대차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모델 개발 작업에 착수했다.캐나다에서 혹한酷寒 테스트를, 미국에서 종합 성능 테스트(1984년 12월)와 배기가스 테스트(1985년 2월)를 거쳐'엑셀Excel'이란 새 모델을 선보였다. 1986년 일년 동안 18만 대를, 1987년엔 26만 대를 판매함으로써 미국 언론에서도 호평했다.

기아차 인수로 현대차의 글로벌 경쟁력은 높아졌다. 연간 250만 대 생산 체제를 갖추어 세계 10대 자동차 회사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현대차 회장으로 취임한 이듬해 IMF 사태가 찾아와 극심한 판매 부진을 겪었다. 구조 조정과 정리 해고로 위기 탈출을 모색했다. 이에 노동조합은 파업으로 맞섰다. 마치 전쟁터와 같은 살벌한 분위기 속에 노조 대표와 담판을 짓기 위해 나섰다. 정부의 개입으로 노조 파업은 일단락되었다.

당시 대기업의 젊은 회장이란 사회적 관심 때문에 노사 분규 뉴스가 나올 때면 저자의 얼굴이 방송에 송출되곤 했다. 어떤 결정은 원대한 목표와 계획에 따라 내려지기도 했고, 또 어떤 결정은 의도치 않았으나 순리대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후 가장 큰 변화는 경영진의 교체였다.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와 기아차의 대표이사 회장이 되었다. 저자는 부회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현대자동차와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몽구가 장자인데, 몽구에게 자동차 회사를 맡기는 게 좋겠어"(정주영)

새로운 일터는 현대산업개발이었다. 주택 건설 회사였다. 아버지 정세영 회장은 1957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이후 40여 년 만에 다시 건설 회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내가 현대에 근무하던 시절, 이 회사는 '한도개발'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참고로, 현대건설 주택사업부에서 분리되어 1976년 설립된 회사였다.

도시의 탄생

박정희 정부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으로 온 국민들이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향하는 '이촌향도離村向都' 시절이었다. 하지만 서울은 살 집이 턱없이 부족했다. 무허가 판잣집도 허다했다. 주거 환경의 안정이 시급했다. 이런 수요에 따라 현대건설과 한국도시개발은 한강변 압구정동 일대에 약 6천여 세대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성에 돌입했다. 대한민국 주택 문화사에 길이 남을, 강남 중산층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 형태를 선보였다. 나 또한 이곳에 위치했던 독신자 아파트에서 여러 해 동안 기거했었기에 이 단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정주영 회장의 아랫 동생 정인영은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중퇴하고 귀국해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영어를 전공했기에 한국전쟁 기간엔 미군사령부에서 통역 일을 하면서 미군이 발주하는 공사의 상당 부분을 현대건설에 연결해 주었다고 알려진다. 형보다 5살 아래로 전쟁이 끝나자 현대건설에 합류, 1969년엔 현대건설 사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독립하여 경기도 군포에 현대양행을 설립(1977년), 훗날 한라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현대양행에 이어 한라건설을 설립했는데, 정부의 중화학 투자 조정 과정에서 이 회사는 현대그룹으로 편입되었다. 일시 자금 지원과 연대보증 요청차 자주 방문했던 한라건설 자금팀 간부가 떠오른다. 한라건설은 화력 발전소, 시멘트 공장 등 대형 플랜트 공사와 중부고속도로 공사, 간척 사업, 산업단지 조성 등을 수행하며 토목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다 해외 건설 시장에도 진출해 약 25건의 해외 공사를 시행했다. 1986년 11월, 한국도시개발과 한라건설이 합병하여 현대산업개발로 재탄생했다.

1980년대 초 정부의 주택 2백만 호 건설 계획과 함께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필두로 한강변에서 시작된 새로운 주택 문화는 강남 곳곳을 물들였다. 강남은 새로운 주택 문화를 대표하는 최신식 아파트들의 각축장이었던 것이다. 현재 양재역 4,5번 출구에서 도곡동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목이 과거 역사엔 '말죽거리'로 불리던 곳으로 이는 말에게 죽을 먹이던 거리란 뜻이었다. 조선시대엔 역참이 있던 곳으로 논밭 일색이었던 땅이다. 나의 대학 시절 이 근처에서 신혼집을 시작한 사촌 누나를 만나러 갈 때면 진흙길을 밟아야 했다. 이런 불편 때문에 이사를 선택한 사촌 누나는 이를 엄청 후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현대그룹이라는 커다란 우산에서 벗어나 저자는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하기로 용단을 내렸다. 강남에서 아파트 단지 조성은 단순히 몇 채의 건물을 올리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단지의 구조, 조경, 커뮤니티 시설, 학군과의 거리, 교통 접근성, 상업 시설 등 모두가 중요한 경쟁 요소였다. 같은 지역 안에서도 어느 단지에 사느냐가 중요해졌고 건설사들은 점점 아파트 단지의 고급화, 명품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이파크'라는 브랜드로 승부를 걸었다.

결정의 순간들

가장 막심한 후회는 ‘어떤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이다.(238쪽)

사업을 하면서 새삼 깨닫게 사실은 어떤 사람 혹은 어떤 일을 책임지면 반드시 인연이 따라온다는 거다. 책임을 진다는 것이 당장 눈앞의 보상을 바라지 않더라도 다음 인연을 소중히 하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연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도 바로 '인연'이다.

라이언 홀리데이의 <에고라는 적>이란 책 내용 속에 장난감 회사 CEO 타이 워너의 사례가 실려 있다. 한 직원의 반대를 무효화시킨 후 "변기통에 내 이름 태그만 붙여도 사람들은 그걸 살거야!"라고 자만했다고 한다. 모든 조각들이 잘 맞아떨어져서 성공한 사업을 자기 능력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오만에 빠져 일을 그르치기 쉽다. 이 장난감 회사는 '비니 베이비스'를 히트시켜 유명하지만 CEO가 10억 달러 회사를 망치고 말았다. 책의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는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라고 경종을 울린다.

겸손을 통해 자신보다 더 잘하는 사람과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을 거쳐야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있을 때는 과감하게 승부를 걸어야 한다. 포스코와 맞붙었던 용산 정비창전면 제1구역 재개발은 단순히 시공권 경쟁이 아니라 서울 도심에서 누가 대규모 도시 정비 사업을 제대로 하는지를 두고 벌이는 한판의 시험대였던 것이다. HDC는 공사비 줄이기, 공기 단축 같은 1차원적 제안이 아니라 최고급 호텔, 오피스, 상가 등이 포함된 복합 개발 노하우를 어필했다. 조합원들은 미래 자산 가치 상승에 지지표를 보냈던 것이다.


HDC그룹의 성장사

1976년에 설립한 한국도시개발이 창립 50주년을 맞이했다. 무엇보다 나의 대학교 한참 후배인 정몽규 저자가 이미 나이 육십을 넘겼다는 사실에 '참 세월 빠르다'는 걸 또 한 번 느낀 독서였다. 또 이명박, 심현영, 이방주 등 익숙한 이름에서 내 과거 직장 생활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처음은 미미할지라도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귀절처럼, 내 젊은 시절의 한도개발이 이렇게 성장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경영학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경제경영 #결정의순간들 #기업성장사 #현대산업개발 #HDC그룹 #정몽규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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