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위대한 여정 - 빅뱅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이유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인간은 의미를 찾는 정신적이며 영적인 동물이다. 나는 왜 사는가? 이 근원적인 물음은 우리 내면에 잠재해 있는 무언가를 일깨운다. 그것은 바로 이타심이다. 우리는 이것을 배우지 않고도 그 존재를 이미 알고 있다. 인간에겐 신적인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이타심이 인류를 혁신하다

 

책의 저자 배철현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인간 문명의 정수가 담긴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는 고전문헌학자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고대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부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창의인재혁신 학교 건명원(建明苑)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심연> 등이 있다.

 

우리는 인간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19세기의 서양인들은 계몽주의, 산업혁명, 그리고 실용주의 등의 영향으로 인해 스스로를 짐승, 즉 동물과는 전혀 다른 차별적인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과 맞먹을 정도라고 여겼던 것이다.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인 유발 하라리도 자신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호모 사피엔스 종은 이제 신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고 말한다.

 

3만 2천년 전 어느 날,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유일한 삶의 목적인 생존生存과는 전혀 무관한 행동을 시작했다. 횃불에 의지한 채 깊고 어두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늘 그랬던 일상과 단절된 그곳에서 이들은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몰입했다. 우주에 대한 경외심, 생명의 신비, 존재의 의미 등을 성찰하면서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알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의 흔적들을 동굴벽화에 고스란히 남겼다.

 

이 책은 원시 인류의 정신사를 추적한다. 흔히 우리들은 현생 인류가 기원전 1만 년 농업을 발견한 후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정착하면서 도시와 문화, 언어와 종교와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특징들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책에서 6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인류 문명 발전의 시나리오를 완전히 뒤집는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언제부터 지구에 생명이 살기 시작했을까? 이를 입증할 만한 충분한 증거물이 없기에 우리들은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45억 년 전, 우주에서 초신성이 폭발하면서 그 파편으로부터 새로운 별과 태양이 만들어졌다. 이 연대 측정은 달에서 가져온 돌이나 유성의 돌을 동위원소로 측정함으로써 가능했다. 이후 태양 주위를 돌던 행성과 커다란 유성이 부딪쳐 2개의 행성이 만들어졌는데, 이게 바로 달과 지구다.

 

지구는 5천만 년 동안 서서히 식어갔다. 내부는 뜨거운 용암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표면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육지가 되었다. 지구에 가장 먼저 등장한 생물은 삼엽충이다. 바다 밑 바닥에서 화석으로 발견된 삼엽충은 약 5억 7000만 년 전에는 바다를 지배하던 생물이었다.

 

나중에 현미경의 발명으로 인해 화석화된 세균의 세포를 발견하면서 학자들은 최초의 박테리아 화석의 연대를 약 35억 년 전으로 추정했다. 어떻게 생명이 만들어졌을까? 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왜 만들어졌는지도 아무도 모른다. 가설을 잘 세우기로 유명한 과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번개가 바다를 쳐서 생물이 등장할 수 있는 원시적인 화학 성분이 창조되었다고 말이다.

 

최근의 가설에 의하면 미국 옐로우스톤 지역의 지열 웅덩이에서 볼 수 있는 뜨거운 물방울에서 원형 세포가 등장했다고 한다. 이 방울은 탄소, 수소, 산소, 인, 유황, 질소로 구성되어 있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는 동일한 유전 정보, 즉 동일한 생화학 원소를 공유하기 때문에 생명체는 하나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후대 인류는 이런 가설을 '신화'라고 부르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이렇게 등장한 세포는 동, 식물로 진화해 6500만 년 전에 공룡으로 변모했다. 오랫 세월에 걸쳐 공룡으로부터 척추동물인 원시인류로 진화해왔다는 것이 과학계의 정설이다.

 

 

언제부터 인간이 되었나?

 

저자는 책에서 인간의 정의를 600만 년 전에 출현한 유인원이 440만 년 전 이족 보행을 시작한 이후 260만 년전에 최초로 도구를 제작하는 기획하는 인간을 시작으로 불을 다스리는 인간, 달리는 인간, 요리하는 인간, 배려하는 인간, 의례하는 인간, 공감하는 인간, 조각하는 인간, 영적인 인간, 묵상하는 인간, 그림 그리는 인간, 교감하는 인간, 더불어 사는 인간, 종교적 인간 등 연대순으로 설명하고 있다. 책 서두에 첨부된 연대표를 미리 숙지하는 것이 독서에 훨씬 용이할 것이다.

 

1859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 서문에 "자연은 이빨과 발톱이 피로 물들였다"라는 영국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구詩句를 인용하면서 인간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의 진화론은 그동안 믿어왔던 인간 본성에 대한 종교와 철학의 정의를 일순간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즉 그의 주장은 더 이상 인간은 신의 은총을 받아야만 구원받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법칙에 따라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고 선언한 셈이었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가? 저자는 이 해답을 찾고자 137억 년 전 우주의 탄생부터 1만 년 전까지, 인간 정신의 전개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이를 그는 '인간의 위대한 여정'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경쟁하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이기적인 동물일까? 인간의 이기심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을까? 진정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인간의 본성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일까?

 

"진화는 '이기적 유전자'에 의해 이뤄지지 않았다"

 

종교학자인 저자는 문명과 문자, 종교 등 현상 이면에는 이를 움직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문법이 있다고 강조한다. 즉 문자와 언어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이미 인간은 남을 수용하고 배려할 줄 아는 '영적인 인간'이었고, 도시와 문명의 탄생 이전에 공동체를 생각하는 '더불어 사는 인간'이었으며, 종교가 생기기 전에 벌써 인간은 생사生死를 성찰하는 '묵상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궁극적인 조건은 바로 '이타적 유전자'이며, 인간에 내재된 이타심이 인류를 혁신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인간은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었을까? 흔히 인간의 뇌가 점점 커지면서 언어, 이성, 그리고 자기성찰과 같은 정신적인 활동을 하게 됐다고 그 이유를 말하지만 저자는 이미 이전에 이루어진 이족보행二足步行이 더 중요했다고 설명한다. 즉 두 발로 걷게 되면서 불의 발견이나 언어 습득과 같은 인간의 기본 습성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 다음의 혁명적 변화는 도구의 사용, 예술의 탄생, 종교의 기원 등에서 찾고 있다.

대부분의 동물은 오직 생존만을 추구하지만, 같은 동물로 분류되는 인간만은 취미라는 특별한 행위를 즐김으로써 생존 외에도 정신적, 미적 만족을 추구한다. 이를 통해 삶의 활력과 위안을 얻는데, 이는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다. 또 요리와 저장을 통해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됐고, 스스로 사고하고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됐다.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공동체로의 진화를 거듭해왔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책은 역사, 과학, 철학 등을 넘나들며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고 인간의 미래를 내다본다. 종교, 철학, 예술, 과학 등 모든 것이 어우러져 결국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놓이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목적이 바로 이것이며, 저자 또한 이를 의도하는 바이다. 갑자기 내리는 폭우의 소리가 세차다. '이타심'이라는 화두를 잡고 밤을 지새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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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와 사우나만 있으면 살 만합니다 - 하루하루 즐거운 인생을 위한 사소하지만 절대적인 두 가지 기준
사이토 다카시 지음, 김윤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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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불투명한 미래가 한없이 불안한 젊은 세대, 그리고 그들에게 행복한 삶이 과연 무엇인지 제시하지 못하는 부모 세대. 이 책이 그런 분들에게 '행복'의 의미를 생각할 기회, 그리고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한 행동의 지침이 되기를 바란다. - '프롤로그' 중에서

 

 

즐거운 인생을 위한 절대적인 기준

 

책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일본 메이지대학교 교수로 문학, 역사, 철학, 공부법, 비즈니스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는 식견과 지식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내어 한국과 일본의 300만 독자를 사로잡은 이 시대 젊은이들의 멘토다. 또 그는 니혼TV의 <세계에서 가장 받고 싶은 수업> 외 다수의 TV프로그램에도 출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일

 

 

 

 

 

 

 

 

얼마 전, 학생들과 '무엇이 행복일까?'라는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역시 사우나지!"라는 저자의 말에 무척 공감하던 남학생이 한 명 있었다.

"사우나 정말 최고죠! 저도 일주일에 서너 번 가거든요"
"나도 일주일에 서너 번 가는데! 나랑 똑같네"

 


우리들은 서로 공감하며 즐거워했다. 그때 문득, 그와 나는 인생의 경험이나 사회적 지위, 그리고 연소득까지 전혀 다른데도 사우나라는 행복의 기준은 똑같으며 그 행복을 얻는 데 드는 비용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질과 소양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오로지 자신에게 맞는 계획에 노력을 집중하고 자신에게 맞는 수행의 길에 힘쓰면서, 다른 모든 길을 피해 자신에게 꼭 맞는 지위와 직업, 그리고 삶의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 쇼펜하우어

 

"사람은 타고난 자질을 바꿀 수 없으므로, 부여받은 여건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발전해 나가야 한다" - 후쿠자와 유키치 

타고난 자질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자는 쇼펜하우어후쿠자와 유키치의 메시지는, 어떤 의미로는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다른 사람이 얼마나 잘나가든 나와는 관계없다. 자신이 어떤 자질을 타고났는지에 대해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할 때 가장 즐겁다. 반대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할 때는 괴롭기 짝이 없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맞는 일, 주어진 자질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일을 자연히 만나게 될 것이다. 

 

 

행복을 움켜잡는 이치

사회는 그 사람의 자리나 지위에 따라 능력을 발휘하도록 움직이고 있다. 실력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조직의 일원이기에 급여를 받고 있는 것이다. 가령 1억의 연봉을 받고 있는 사람도 그 조직에서 나가면 얼마만큼 능력을 발휘해 일을 할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는 일이다.

 

저자도 안정된 직업 없이 연소득 약 2천만 원 정도였던 20대 무렵엔 생활이 불안정했고, 그로 인한 불안감도 심해서 행복을 느끼기 어려웠다. 아무리 능력이 있다해도 이를 발휘할 수 있는 지위가 뒷받침되지 않아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살면서 대부분 자신이 획득한 지위에 보호받으면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일은 능력이 아니라 지위에 따라 좌우된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지위에 있는 회사에 들어가는 것도 행복을 손쉽게 거머쥐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한다?

인류의 역사는 몇십만 년이나 이어져 내려오고 있지만 어느 시대나 돈이 있어야만 결혼했던 것은 아니다. 현생 인류는 20만 년 전부터 10만 년 전 무렵의 아프리카를 그 기원으로 한다. 그로부터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했지만, 결혼 생활은 돈과 관계없이 영위되어 왔다.

 

우리 세대는 역사상 드물게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돈이 있고 없고를 따지며 결혼을 결정하는 게 얼마나 잘못된 판단인지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돈이 있어야 결혼할 수 있고 돈이 없으면 결혼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는 반려자를 찾지 못하는 사람만 늘어날 뿐이다.

 

 

행복의 단초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스즈키 이치로 선수는 어느 한 시즌에서 3할 5푼 정도의 높은 타율을 기록해 미네소타 트윈스 소속의 조 마우어 선수와 타격왕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마우어 선수가 신경 쓰이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조절할 수 없는 일에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없는 일은 고심해도 소용없기 때문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무척 쉽게 공감 가는 사고방식 아닌가? 이처럼 자신의 능력으로 조절할 수없는 일로 고민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 재능은 얼마나 있는지 혼자 치열하게 고민한들 좀처럼 자신을 알 수 없다. 스스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되기 십상이다. 오히려 바깥 세계로 눈을 돌렸을 때 즐거움을 발견하고 작은 일에서도 기쁨을 얻는다. 그런 식으로 외부 세계에서의 만남을 늘려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이 버트런드 러셀이 주장하는 행복론의 중심이다.

 

 

행복 앞에 놓인 함정

물론 역사 전체의 흐름을 본다면 현재가 더 행복한 사회라고 여겨지겠지만, 더 나은 앞날을 위해 노력하는 재미와 보람이 지금은 다소 결여되어 있지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렇게 변화 없이 잔잔한 상태, 즉 지금 이대로 싼 음식을 먹고 싼 옷을 입으면서 이걸로 충분하다고 현재에 안주하는 심리가 버블시대 이후 지난 20년 동안 특히 강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살아온 젊은이들에게 의욕의 불을 붙이는 일이 현재 저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자극을 주는 존재가 있다면 행복하다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자극을 주고 계기를 만들어 주는 존재가 있다면 생활과 인생이 상당히 달라진다. 그런 사람과는 일 년에 한 번, 또는 3년에 한 번 정도 만나서 말 한 마디를 듣기만 해도 충분할지 모른다. 또한 '사숙(私淑)'이라는 방법을 택해, 실제로 가르침을 받지는 않아도 멀리서 보고 본받으면서 일방적으로 스승으로 우러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극이 되고 계기를 만들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그 존재가 사람이든 사물이든 상관없다"

 

몸을 따뜻하게 하면 행복도가 높아진다


밤에는 욕조에 들어가 땀을 흘리고 좋아하는 술을 한잔 마시든지,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잠자리에 들자. 그렇게 해서 '오늘은 몸도 따뜻하고 좋아하는 술도 마셨으니 플러스·마이너스로 따져보면 딱 플러스야' 하고 생각해 본다. 하루하루의 결산을 조금이라도 플러스로 마무리하고 하루를 마친다. 너무 유난스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고 하루의 신체적인 컨디션을 나은 방향으로 만드는 것에 투자를 아까워하지 않으면 손쉽게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의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신체의 상태다. 그러므로 먼저 몸 상태를 조절해야 한다.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면 기분도 달라진다"

 

빠쁘다는 생각에 욕조에 몸을 담그는 시간을 생략한다면 이는 분명 역효과다. 그랴서 저자는 바쁘고 힘들 때일수록 10분이라도 좋으니 욕조에 몸을 담그고 사우나에서 땀을 흘린다. 사우나탕에 도착해서 땀 흘리고 나올 때가지 총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래도 탕에 들어가기 전과 몸 상태가 완전 다르다. 몸이 따뜻하고 기분은 개운해진다.

 

 

 

 

행복을 담는 그릇의 크기는 다르다

 

사람마다 행복을 담는 그릇의 크기는 제각각이다. 사소한 일로도 매우 행복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난이도가 엄청 높은 도전을 해야만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행복 욕구라는 그릇의 크기가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는 그릇의 크기가 엄청났기에 러시아 정복 원정에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영웅이 아니다. 우리들 앞에 놓인 상황에 만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저자는 욕실에 들어거 땀을 좀 빼고 나면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제 우리들도 스스로 스트레스의 양를 조절하고 원하는 일을 이루며 살 수 있는 리듬을 만들어 나가자. 단순히 자신의 마음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생활 패턴을 만들자.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전하려는 메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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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RAIN) - 자연.문화.역사로 보는 비의 연대기
신시아 바넷 지음, 오수원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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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 번째 저작인 이번 <비>는 물의 근원인 비와 인류의 관계를 지구가 형성된 시기부터 선사 및 역사 시대를 가로지르며 종횡무진으로 엮어나간 일종의 종합서다. 문제의식은 이어져 있으나 훨씬 더 다채롭고 흥이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물의 윤리'에 관하여

 

저자 신시아 바넷은 전 세계 여러 곳의 수질과 기후에 대해 탐사 및 보도 활동을 해온 환경 전문 저널리스트다. 그녀는 신문사 리포터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다 <플로리다 트렌드>에서 탐사보도 에디터로 일했으며 글쓰기 초창기부터 영향력있는 출판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며 꾸준히 언론의 주목을 받았

 

 

 

 

 

 

 

 

 

 

그렇지만 몬순은 위험을 몰고 오기도 한다. 중국, 인도, 네팔 및 그 주변 지역에서는 홍수 때문에 수백, 때로는 수천 명이 사망하고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다. 이와같은 홍수보다 더 나쁜 재난은 이따금씩 몬순이 오지 않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끔찍한 기아 중 일부는 몬순이 오지 않음으로 인한 가뭄 때문인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인도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전체 작물과 용수 공급량은 몬순의 규모에 달려 있다. 몬순이 오지 않으면 시장이 붕괴되고 식량 가격이 폭등하며 자살자가 속출하고 에너지 부족이 초래되어 총선의 향방까지 바뀐다.

 

 

두 얼굴을 가진 비

 

비가 오지 않았던 300년은 메소포타미아의 몰락과 강력한 하라파 문명의 소멸뿐 아니라 나일 강 유역을 따라 발달했던 고대 이집트 왕국의 붕괴와도 궤를 같이한다. 중국 과학자들은 수많은 신석기시대 인류의 소멸, 농업 기반의 문화에서 목축으로의 귀환, 그리고 양쯔 강과 황허의 저지대를 따라 분포했던 고고학 발견물의 뚜렷한 감소 추세에 주목한다.

 

홀로세 동안 되풀이되던 가뭄과 함께 문명들도 사라진다. 마야인들은 기원 후 900년경까지 1,00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중앙아메리카 저지대에서 번영을 구가했다. 인구 1,000만여 명에 육박했던 그들은 가뭄이 쉽게 일어나는 지형에서 정밀하게 물을 관리했다. 인더스 강,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나일 강, 황허의 위대한 문명들과 마찬가지로 마야 문명도 수년 혹은 심지어 수십 년 동안 지속된 가뭄을 극복해냈지만 300년간의 가뭄(호수 바닥에서 시추한 시료들은 이 가뭄이 750년부터 1025년까지 계속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은 견뎌내기에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날씨를 관찰하는 사람들

 

1831년, 뉴욕의 윌리엄 레드필드는 자신이 직접 관찰했던 거센 폭풍우에 관해 "비는 쏜살같이 얼굴을 때렸다. 말을 탈 때 바람이 세게 뺨을 스치는 정도의 압력이다"라고 기술했다. 해군 엔지니어인 그는 사이클론의 선회선회하는 성질을 알아보기 위해 스스로 이 폭풍을 맞아본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비 과학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일정 정도의 의도적인 애매모호함이다. 인명을 구하는 폭풍 경보 이외의 무수한 이유로 우리 인간은 비를 예측하려는 탐욕스러운 의지를 갖고 있다. 주요 도시의 물 공급을 관리하고, 겨울 밀을 심어야 할 시기를 파악하고, 야외 콘서트를 계획하고, 결혼식 날짜를 잡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대 기상학이 옛 예보보다 나아졌다 해도 비는 여전히 예측하기가 몹시 까다롭다. 비야말로 카오스 이론의 고전적 사례다.

 

"베이징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짓을 하면 센트럴파크에서는 비가 온단 말이죠"

 

나비 이론을 창안한 실제 과학자는 매사추세츠 공대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였다. 그는 먼 곳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계기로 인해 날씨가 수학적 모델로는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바뀔 수 있음을 인식한 최초의 과학자였다.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날씨 앱은 집 앞에 비가 쏟아질 것인지 알려주지 못한다. 뒷마당이 쨍하니 말라 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빗방울은 어떤 모양일까?

 

비는 하늘에서 땅 아래로 낙하하니까 아마도 좌측 그림 모양일 것라고 우리들은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떨어지는 물방울은 대기로부터 압력을 받아 아래 부분이 평평해지고 찌그러지기 때문에 우측 그림의 모양이 된다. 사실상 우리들은 비에 대해 가장 기초적인 지식조차 부족한 셈이다.

 

작은 낙하산 모양으로 빗방울은 공중에서 땅으로 하강한다.

 

 

 

폭풍우를 사랑한 예술가

 

워싱턴 주에 위치한 애버딘의 벌목촌, 이곳은 커트 코베인의 출생지다. 그는 1987년 밴드 너바다를 조직한 리드싱어이자 기타리스트였다. 애버딘의 대기大氣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연간 최대 약 3,300밀리미터의 강우량을 자랑하는 애버딘은 미국 대륙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도시중의 하나다. 

 

코베인은 자신이 우울하고 음습한 고향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종종 말하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향은 또한 감미로운 '썸씽 인 더 웨이Something in the Way'처럼 그의 가장 풍요로운 노래 중 일부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이 노래는 애버딘에 있는 영스트리트브리지 밑,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는 젊은이의 비참한 심정을 담고 있다. 영스트리트브리지는 코베인이 10대 시절 잠을 청했다던 곳이다. 오늘날 이 다리의 콘크리트 아랫부분은 코베인이 27세에 자살한 이후 그에게 바친 스프레이 페인팅 헌사들로 가득하다.

 

비는 음악이나 다른 어떤 장르보다 운율과 은유에 적합하므로 시의 언어를 통해 말을 건넨다. 시를 모아놓은 선집들을 보면 '비'는 물론이거니와 4월의 비, 5월의 비, 8월의 비, 정오의 비, 밤비, 그리고 런던의 비 등등 제목에 비가 할애된 경우가 끝없이 등장한다. 소나기는 그곳에 들어설 틈조차 없다.

 

 

기후변화와 비의 역사

 

과거와의 연계는 원시인류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비와 가뭄을 견디고 살아남아 다른 호미니드보다 오래 생존했다. 인류 출현 이전의 동물들은 아프리카 동부의 극적인 기후변화에 적응하면서 상당한 크기의 뇌와 도구를 만드는 지능 및 그 밖의 다른 생존 기술을 진화시켰다. 인류를 현재의 모습으로 만든 요소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적응과 교정과 조정을 가능케 하는 유연함이다.

 

인류에게 유연함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동안 무심코 바꿔놓은 기후에 적응하는 일뿐 아니라 금성이 당했던 것(고삐 풀린 온실효과)을 지구의 대기가 당하지 않게 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일에 있어서도 희망적인 징조인 듯하다. 과거에 내렸던 비의 가장 좋은 교훈은 인류가 큰 뇌와 도구를 가장 잘 활용했던 시절로부터 온다. 극단적인 폭풍우나 가뭄이 기상학에 대한 투자와 과감한 연구를 촉발시켰던 시절 말이다.

 

 

아캄페 리기다(난초)

 

 

비를 고대하며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 현상이 이어지자 사무실의 업무 처리도 원활하지 못했다. 직원들의 휴가 일정이 수시로 변경되고 이로 인해 업무는 지연되기 일쑤였다. 더구나 사무실 환경이 칸막이 되어 있는 통에 마치 찜통을 연상케 하는 날이 이어지자 결국 단체 휴가를 결정하게 되었다.   

 

인류의 갈증을 풀어주었던 비는 이 밀림에 양분을 공급해왔고, 땅을 파 계곡을 만들었고, 폭포에 물을 댔고, 움시앙 강을 오늘처럼 비가 많이 오지 않는 때에는 상냥하게, 몬순 비가 오는 동안에는 맹렬히 흐르게 만들었으며, 아주 오래전 누군가로 하여금 하늘에 떠 있는 나무 길을 통해 이 강물을 무사히 건너도록 기원하게 만든 폭풍우를 만들었다. 이 다리를 만든 고무나무는 반얀 나무의 가족이며 비는 이 가족의 어머니가 내는 젖이다. 그래서 나뭇잎까지 심장 모양을 닮아 있는 것 같다.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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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사피엔스, 욕망의 바이러스인가?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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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그 위에 서식하며 살아온 다양한 생명체의 숙주이다. 호모사피엔스는 우주와 자연을 지휘하는 생명체가 아니라, 지구라는 숙주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적 존재이다. 지구에서 매년 3만종의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 호모사피엔스는, 기능적인 구조로 본다면 특별하지도 독립적이지도 않는, 그저 생명은 연속체의 일부분일 뿐이다. 지구의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거대한 인공물이 다량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배출시킨다. 대기권은 구멍이 뚫리고 오존과 미세먼지가 생명체를 위협한다. 자연파괴를 멈추지 않으면 호모사피엔스도 멸종한 종으로 기억될 수 있는 존재다. 호모사피엔스의 미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암울하다. - '서문' 중에서

 

 

호모사피엔스는 바이러스인가?

 

책의 저자 윤정은 시인이며, 심층심리분석가다. 법을 전공했던 그는 성직자로 있다가 사임하고, 월간기독 편집장을 한다. 다년간의 상담을 통해 가장 근본적인 생명의 활동이 감정이라고 확신한다. 그 감정의 혼란을 언어로 고백하면서 이성적 구조의 질서를 스스로 상실시키라고 한다. 그러한 것들이 바탕이 되어 해체심리학상실철학을 만들어낸다.

 

상실철학은 수용과 버림의 이해를 통해 분석하고, 분리하여 스스로의 존재를 소외와 결여 속에 박탈시키는 고백을 주장한다. 그 고백은 '무의 생명'이며 '무의미의 의미'이며, 우주가 지향하는 생명 의식이다. 현재 'I~WE심층심리상담센타'를 운영하면서 '자기소통상담'이라는 정신분석상담을 하고 있다. 매주 한 번 회원제로 운영되는 인성아카데미 강의를 맡고 있다. 또한 태교와 죽음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분석상담가를 양성하고 있다.

 

그는 '호모사피엔스'를 물리, 화학, 생물, 종교, 철학, 언어, 정신분석학적적인 다양한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파헤친다. 즉 우리의 시야를 우주의 시작점으로 끌고 가서 호모사피엔스가 137억년의 생명 역사의 산물이라는 것을 생생히 전달한다. 이를 통해 그는 죽음이 삶이 되는 무無적 생명의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한갓 바이러스에 머무는 삶에 집착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말한다.

 

 

 

책은 호모사피엔스의 생명 여정을 우주의 시작에서 현재까지 12가지 숙주를 갈아타고 오는 여정으로 구성되었는데, 전반부는 생명현상을 물리적 현상과 화학적 결합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 결합을 공생적 의미로 연결하면서, 유전자와 생물학적 진화를 통해 호모사피엔스의 등장을 들여다본다.

 

 

 

이어서 중반부는 신화와 종교, 그리고 철학과 언어를 통해 호모사피엔스의 기생적 사실을 성찰하고, 후반부는 기술 구조주의와 자본주의의 비판을 통해 호모사피엔스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상실철학에 의한 정신분석학은 기생적 바이러스의 삶이 아니라, 소외와 결여의 문제를 수용하고, 삶으로 상실시켜, 주체적 존재의 욕망으로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을 인류 문명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사실상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번식한 것은 인간, 즉 호모사피엔스가 아니다. 엽록체가 된 시안세균과 호기성박테리아였던 미토콘드리아는 우리 세포 속에서 공생共生하면서 에너지원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은 인체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생명체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인체는 단독의 구조물이 아니라 복합적인 구조물이다.

 

우리 장腸속의 수많은 미생물들은 비타민을 만들고, 음식물의 대사를 도우면서, 인간의 의식과 소통하고 있고, 생활 속에서도 미생물은 분해, 발효 등의 작용으로 생명의 기초를 만들어주고 있다. 인체는 다양한 선조의 후손들이 만든 자연의 공유재산이다. 이 공유재산의 운명은 다른 생물 종의 운명과 맞물려 있다. 따라서 생존을 위해선 항상 다른 종과 더 많은 공감을 형성하고, 더 많은 상호 작용의 상승을 유지해야 한다.

 

"7백만년 전 열대우림에서 우연히 조산早産으로 인해 발육이 부진한 원숭이가 탄생했다. 자궁 속에서 발육을 끝내지 못하고 세상 밖으로 나온 이 원숭이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었다"

 

조산은 인류 문명을 촉발시켰다. 유인원의 아기는 출생 후 처음 2년 동안에 두뇌의 무게가 350그램에서 1천그램으로 약 3배 가까이 증가한다.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과 천진발랄함으로 밀림을 누비다가, 밀림이 사라져가는 사바나의 평원에서 비로소 직립보행을 꾀하게 되고, 자유로워진 손으로 초근草根을 캐거나, 돌을 던지고, 나뭇가지 등을 도구로 이용해 이를 무기처럼 사용한다. 손의 사용이 발전함에 따라 지능 또한 점점 더 발달하게 되었다.

 

저자는 호모사피엔스가 완전한 설계자의 특별한 의미와 선택을 받은 종種이 아님을 강조한다. 즉 우주의 입자로부터 기원한 원시의 박테리아가 생존하기 위해, 우연과 선택의 과정에서 발생시킨 구조물이라고 말한다. 호모사피엔스의 몸은 다양한 생명체들(선조의 후손들)과 맞물려 살아온 자연의 공유재산이다. 저자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생명의 역사는 인본주의로 인해 왜곡되었고, 독선으로 인해 다른 생명체들하고의 공생을 상실한 것이 지금에 와서 재앙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현상에 대해 경고하면서 호모사피엔스의 욕망이 멈추길 희망한다.

 

특히 과학기술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독선이 가속화되면서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류의 욕망은 원시림을 파괴하고, 공기를 오염시키고, 다른 생명 종들을 멸망시키면서 생태계를 교란시켰다. 대기 오염으로 뒤엉킨 화학 물질이 자외선과 결합하여 생성된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는 더 강한 내성을 가지고, 호모사피엔스의 유전자를 위협하고 있다.

 

생명의 질서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 호모사피엔스는 이제 지구의 암적 요소가 된 채 거꾸로 지구의 보복을 받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기상이변 같은 재해가 가해자인 호모사피엔스를 공격하는 구조로 볼 수 있다. 이대로라면 인류는 멸종이라는 비극을 피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가 최근에 발간한 <인간의 위대한 유산>의 내용에는 인류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이유는 종의 선택에 의한 진화가 아니라 바로 이타적 유전자 때문이라고 갈파한다. 사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정의한 이래 후대의 학자들은 이에 보조를 맞추어 여러 이유로 인간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호모 파베르~ 도구를 사용

호모 폴리티쿠스~ 정치적 성향

 

하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이와같은 주장은 근거가 부족함을 보여준다. 미국의 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드 발 교수<침팬지 폴리틱스>(1982년)에서 동물에게도 인지능력이 있으며 침팬지 사회에도 정치적 행위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도구의 사용도 인간만의 능력이라는 주장은 오만스럽기 그지 없다.

 

뉴칼레도니아 까마귀는 좁은 원통형 물병 속 물 위에 떠 있는 먹이를 먹기 위해 도구를 사용한다. 즉 물병 옆에있는 자갈돌을 병속에 집어넣어 수위를 높여서 부리로 먹이를 낚아챈다. 비숫한 실험을 네살짜리 아이에게 해보았다. 겨우 8%만 성공했다. 인간에게도 어려운 문제를 까마귀는 자갈돌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해결했던 것이다.

 

 

공생이라는 욕망에 의미가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상호간의 혹독한 경쟁 속에서 공생할 줄 아는 타협으로 살아오면서 더욱 지혜로운 존재로 거듭났다. 소위 자연로봇인 호모사피엔스는 문명을 고도로 발전시키면서 지능을 지닌 기계로봇의 시대를 열었고, 이제 기계와 공생하며 공진화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호모사피엔스는 어디로 가야 할까? 우주와 자연은 호모사피엔스에게 질서를 옥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빅데이터 통계에 의존하면서 완전한 질서에 대한 욕망을 감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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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독서 -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사람은 일단 쓰러져버리면 빨리 일어서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 일어서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지가 결국은 절망을 극복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칩니다. 깊은 절망의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무리하게 빨리 위로 올라가려 하면 오히려 나쁜 결과를 초래합니다. 마치 바다 깊이 잠수했다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수면 위로 갑자기 올라가면 잠수병에 걸리는 것처럼 말이지요. - '프롤로그' 중에서

 

 

삶이 우리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줄 때

 

저자 가시라기 히로키쓰쿠바대학 재학 도중 난치병을 선고받고 13년간 투병 생활을 했다. 그는 이 절망의 시기를 책과 이야기를 통해 견뎠으며,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현재 문학소개자의 삶을 살고 있다. 카프카, 괴테의 문장을 엮어 옮긴 <절망은 나의 힘>, <희망의 달인 괴테와 절망의 달인 카프카의 대화> 등의 책을 출간했다.

 

누구나 살면서 절망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따뜻한 위로의 말, 따스한 손길, 격려, 허그 등이 떠오를 것이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일시적인 위로나 조치들보다 오히려 절망의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절망이란 현 상태에서 정신적으로 일어서지 못하고 쓰러진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사람에 따라 이에 대응하는 속도가 제각각일 것이다. 즉 바지에서 먼지 털어내 듯 금방 툴툴 털고 일어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몇  년이고 그 자리에서 머문 채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에 저자는 본인이 직접 겪은 13년 간의 절망의 시기에 꼭 필요했던 그런 책을 우리들 앞에 내놓았다.

 

책은 모두 2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절망의 시기, 어떻게 보내야 할까?)에선 절망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2부(다양한 절망과 마주하기)에선 절망했을 때 자신의 곁에 다가와주는 이야기들을 책,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어설픈 위로 대신에 공감의 독서를 권하고 있는 셈이다.

 

 

 

 

"신기할 정도로 '이건 내 얘기를 쓴 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또한 책은 어떠한 절망의 순간에서도 우리에게서 멀어지지 않습니다.

곁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책은 늘 함께 있어줍니다"

 

 

누구나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다

 

"대체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 책을 읽는가? 자네 말처럼 행복해지기 위해서? 맙소사, 책이 없어도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네. 들어보게, 우리에게 필요한 책은 고통스러운 불행처럼, 자신보다 더 사랑한 사람의 죽음처럼, 모든 이들로부터 떨어져 숲으로 추방된 것처럼, 자살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라네. 책이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해" - <변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가 친구 옷카 폴락에게 보내는 편지

 

우리들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인생 각본을 고쳐 써야 할 때가 생긴다. 특히 절망적인 일 때문에 이를 수정해야 할 때는 정말 곤란한 지경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살면서 자신에게 익숙한 그런 삶이 마치 일시에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들고, 또 바닥으로 추락한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수용하기에 너무나도 두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든 각본을 수정해 이후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선 이에 참고가 될 만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카프카가 말하는 "필요한 책"이며, "고통스러운 불행처럼, 숲으로 추방된 것처럼, 자살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 아닐까? 지금껏 살면서 익숙해진 그런 상황과 마음 자세를 깨부수는 도끼로 활용해 새롭게 무장할 수 있도록 말이다. 

 

 

구원은 공감에서 온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는 일본의 전국시대, 계속된 전란 탓에 자생적으로 생긴 산적의 횡포에 민초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을 그려낸 영화이다. 황무지에서 어렵사리 수확한 식량으로 연명하는 빈촌에 보리 수확이 끝나면 마치 연례 행사처럼 산적들이 찾아와 식량을 모조리 약탈해 간다. 이에 촌장은 사무라이들을 모집하는데, 이들은 풍부한 전쟁 경험을 가진 감병위勘兵衛를 포함한 7명이었다. 감병위의 지휘하에 마을은 방위태세를 갖추고 꾸준히 전투훈련도 한다. 마침내 산적들과의 치열한 전투에서 산적들이 전멸하지만 수많은 빈촌민과 4명의 사무라이도 목숨을 잃는다.  

 

이 영화에서 기쿠치요라는 인물이 고아가 된 갓난아기를 껴안으며 "이 녀석은 나다!"라고 절규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마찬가지다. '이것은 나다'라는 생각이 드는 책과의 만남, '이 책만이 지금의 내 기분을 이해해준다', '지금의 나만이 이 책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책과의 만남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매우 큰 구원이 된다.

 

 

함께 울어주는 이야기

 

내 인생이 밝았을 때,

세계는 친구로 가득했다.

지금 안개가 자욱하니

이제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중략)

산다는 것은 고독이다.

아무도 다른 이를 알지 못한다.

모두가 외톨이다.

 

- 헤르만 헤세, 시 <안개 속> 중에서 

 

이렇게 앞이 캄캄해 보이지 않고 마치 외톨이가 된 것처럼 고독감이 밀려올 때, 책은 "내 기분은 아무도 몰라!"라고 외치는 절망적인 마음을 고맙게 도 알아준다는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조차 잘 모르는 석연치 않은 감정까지 "바로 이거야!"라며 감동할 정도로 훌륭하게 말로 표현해준다.

 

미국 UCLA대학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스트레스가 높은 상황일 때 이를 표현해주는 말이 있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의 방출이 억제되어 스트레스가 가라앉는다고 한다. 절망하고 고독에 빠졌을 때, 그런 기분을 말로 표현해주는 책을 읽으면 그것만으로도 절망이나 고독이 어느 정도 치유되는 것이다. 치유의 독서인 셈이다.

 

 

삶이라는 슬픔과 마주하기

 

작은 일이 쌓여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것이 되어버렸을 때, 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는 작지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저는 작은 일을 조금 더 곰곰이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무릇 일이란 비록 작더라도 이것이 가진 의미가 매우 중요할 수도 있다는것을 깨우쳐주는 말이다. 

 

TV 속의 일일드라마는 그냥 지나칠 법한 일상을 연출해낸다. 물론 지나치게 부풀린 스토리가 때때로 식상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우리의 일상은 이러한 작은 일들이 쌓여서 지나가고, 우리는 큰일보다 오히려 이런 작은 일에 의해 움직이며 살아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일본의 TV 드라마 <강변의 앨범>의 작가 야마다 다이치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예전에 한순간 스쳐 지나간 사람의 미소만으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과는 이후로 만나지 못했지만, 그런 작은 일로도 인간은 구원받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합니다" 

 

 

극복을 지나치게 서두르지 말라

 

이 책을 읽는 분 가운데는 지금 그야말로 절망의 한가운데에 있는 분도 계시겠지요. 절망을 극복하는 길이 전혀 안 보이고, 갇힌 동굴 속 어느 방향에서도 조금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으며, 어디로 향하면 좋을지도 알 수 없는 막막한 심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극복의 길을 빨리 찾는 일이 아닙니다. 그 부분을 부디 서두르지 말아주세요. 중요한 건 이 책에서도 몇 번이나 말했듯, '절망의 기간'을 잘 보내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절망 독서'는 반드시 당신의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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