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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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 속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 나는 평일이면 인디애나폴리스 북쪽에 위치한 화이트 리버 고등학교에 다니는 중이었고,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이 학교에서 나보다 훨씬 거대하며 정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힘에 의해 특정한 시간, 다시 말해 오후 12시 37분 부터 1시 14분까지 점심을 먹어야만 했다. - '첫 도입부' 중에서

 

 

마주보는 것은 누구하고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세상을 보는 사람은 흔치 않다.

 

저자 존 그린은 미국도서관협회가 수여하는 마이클 L. 프린츠 상과 에드거 앨런 포 상 등 여러 차례 권위 있는 상을 수상했으며, 타임지 선정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힌 베스트셀러 작가다. 첫 작품 <알래스카를 찾아서>로 일약 유명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한해 가장 뛰어난 청소년 교양도서를 선정, 수여하는 프린츠 상과 가장 뛰어난 미스터리에 수여하는 에드거 상을 동시에 수상한 것은 그가 뛰어난 재주꾼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는 글을 쓰는 재능에만 그치지 않고 다방면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어서 21세기형 지식인으로 불릴 만하다. 동생 행크 그린과 함께 운영하는 교육 채널 크러쉬 코스와 블로그브라더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온라인 동영상 프로젝트 중 하나이며, 블로그 '너드파이터'와 SNS로도 팬들과 활발히 소통 중이며, 특히 그의 트위터는 팔로어가 540만 명을 넘는다. 작품으로는 <알래스카를 찾아서>, <종이 도시>, <렛 잇 스노우>, <윌 그레이슨, 윌 그레이슨>,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등이 있다.

 

현대인들은 우울증, 강박증, 공황장애 등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공황장애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며, 불안증세와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도 점점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은 바로 저자 자신이 어릴 적부터 겪어 온 개인적인 경험, 즉 불안 장애를 바탕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현대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글이다.

 

줄거리는 정신 장애로 고통 받는 한 소녀, 에이자 홈스가 평범한 삶을 지탱해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겪는 우정과 사랑, 가족에 관한 이야기인데, 에이자가 친구와 함께 한 소년의 아빠이자 현상금(10만 달러)이 걸린 수배범 러셀 피킷을 찾아나서는 모험담으로 진행된다. 이런 행동에 나선 이유는 수배범이 어린 시절 에이자가 호감을 가졌던 데이비스 피킷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인디애나폴리스에 살고있는 16살의 고등학생 에이자 홈스는, 극도의 불안감과 강박적인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물론 에이자도 보통의 십대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관심사에 몰두하며 사춘기의 통과 의례를 겪고 있는 중이다. 즉 대학 진학 문제로 고민하고, 지나치게 염려 많은 엄마를 진정시키며, 불만 많은 단짝 친구를 달래는 동시에 남자친구와 설레는 사랑을 키워 가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모든 일상이 강박증과 불안 장애를 갖고 있는 에이자에게는 마치 전쟁과 같다는 사실이다. 


에이자는 자신이 세균에 감염되어 목숨을 잃게 될 거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실수로 손가락에 상처가 생기면 병균에 감염되어 죽지 않을까 몹시 걱정하고, 이런 불안감으로 인해 남자친구와 스킨십하는 것조차도 어려워한다. 심지어 증세가 심해지면서 키스로 세균이 감염됐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손 세정제를 마시기 시작한다. 

 

"집에 도착해 욕실로 가서 상처를 확인했다. 아까보다는 덜 부푼 듯했다. 아마도. 욕실 조명이 약해서 잘 안 보이는 걸 수도 있지만. 비누와 물로 상처를 씻고 잘 말린 다음, 다시 살균제를 바르고 반창고를 감았다. 늘 먹던 약도 먹고, 몇 분 뒤에는 공황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복용하라고 한 길쭉한 하얀색 알약도 먹었다. 혀에 알약을 올렸더니 희미한 단맛과 함께 녹아내렸고, 나는 약효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무언가가 날 죽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당연히 그렇겠지. 언젠가는 무언가가 날 죽일 것이다. 다만 그날이 오늘인지 아닌지 모를 뿐이다"(148 쪽에서) 


이처럼 주인공 에이자를 괴롭히는 것은 세균뿐이 아니다. 그녀는 때때로 자기 자신이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품는다. 자기가 스스로의 생각을 통제할 수 없다면 '나'를 움직이는 건 도대체 누구일까라는 의문 속에 빠진다. 이렇게 불안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이 소녀는 과연 자신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그냥 내 몸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게 싫어. 이게 말이 되는 소린지 모르겠지만. 난 그냥 산소를 이산화탄소로 바꾸려고 존재하는 도구 같아. 그리고 소위 내 '자아'라는 것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도 무서워. 예를 들어서, 너도 분명 눈치챘겠지만, 지금 내 손에서는 땀이 나고 있어. 땀이 나기에는 너무 추운 날씨인데도 말이야. 그리고 일단 땀이 나면 멈출 수가 없고, 땀을 흘리고 있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싫어.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선택할 수 없다면 어쩌면 나는 진짜가 아닐 수도 있잖아, 안 그래? 어쩌면 난 그냥 나 자신에게 속삭이는 거짓말일지도 몰라"(118 쪽에서)

 

사랑으로 극복하라

 

불안 장애를 가진 십대 소녀의 심리 변화, 정신적 문제, 그리고 심적 갈등 등을 읽을 수 있다. 이는 장애를 가지지 않았다고 해도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다. 갈수록 핍박해지는 현대인의 삶과 연동해서 불안감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장애를 극복하려면 결국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아닐까 싶다. 특히, 지금 장애를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너무도 놀랍고, 감동적이며 또 진솔해서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다!

에이자처럼 불안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해도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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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디 나는 누구 - 오늘도 헤매고 있는 당신을 위한 ‘길치 완전정복’ 프로젝트
기타무라 소이치로 지음, 문기업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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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서 방향치가 완전히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자신이 방향치라는 사실에 콤플렉스를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나의 목표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방향치 극복을 위한 처방

 

책의 저자 기타무라 소이치로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40대 남성이다. 단 하나, 평범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면 '방향 감각이 매우 좋다는 것'이다. 이에 뛰어난 방향 감각을 더욱더 갈고닦아 세계 최초로 방향치를 개선하는 방법을 만들어, 스스로 방챵치 콤플렉스를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목표다. 일본에서 '길치 교정 강연'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일본에만 약 4천만 명. 이는 바로 방향치, 즉 길치 또는 길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들의 숫자다. 쉽게 말해 주변 사람들 5명 중 2명은 방향 감각이 매우 둔하다는 의미이다. 어쩌면 실제론 이보다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요즘 자가 운전자 대부분은 내비게이션을 이용함에 따라 이게 없으면 아예 목적지로 찾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문명의 이기利器가 오히려 우리들을 길치로 만드는 셈이다.

 

몇 번씩이나 놀러 온 집인데도 불구하고 찾아올 때마다 길을 묻는 친구

노래방에서 놀다가 금방 화장실 다녀온다더니 노래방 안을 헤매고 있는 친구

늘 약속 시간에 1시간 정도 늦게 도착하는 친구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방향 감각이 떨어져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단지 남보다 능력이 좀 쳐지는 정도로만 이해한다면 이는 절대로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방향치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왔고, 이런 그의 노력 덕분에 이 책이 탄생한 것이다. 방향감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지도를 '보는' 게 아니라 '읽는' 거다

 

방향치인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지도는 그림이나 사진처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도는 원래 그림이나 풍경처럼 감성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즉 지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그림 감상을 하듯 바라보는 게 아니라 지도에 담긴 의미를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지도는 정보의 전달 수단과 동시에 실재實在하는 특정한 광경을 축소해놓은 것, 즉 현실 세계를 모형처럼 스케일 다운하여 2차원으로 간략화한 것이기 때문에 '바라보지 말고' 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것이다. '바라본다'와 '읽는다'의 차이는 라디오에서 흐러나오는 뉴스나 정보 프로그램을 멍하게 듣고 있는지, 아니면 메모를 하며 경청하고 있는지의 차이와 같다. 

 

 

지도를 번역하라!

 

길치, 즉 방향치는 지도를 읽는 게 매우 어렵다. 이는 나이와도 상관없다. 마치 교차로에서 떨어뜨린 콘텍트 렌즈를 찾는 것처럼 절망감을 호소하는 어른들도 매우 많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도를 읽는 행동을 '번역 작업'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가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방향치는 지도에서 현실을 잘 번역하지 못한다. 지도를 읽는 행동은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지도를 보고 자신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추출한다.
2. 추출한 정보를 머릿속에서 시각화한다.
3.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의 행동을 시뮬레이션한 뒤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다.


1에서 2로의 이행 즉, 평면상의 기호나 명칭 등을 현실 세계에 있는 건물과 표식 등으로 바꾸는 작업을 특히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것은 2차원에서 3차원 또는 3차원에서 2차원으러의 '번역'이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 상태인 셈이다. 예를 들자면 전달하고 싶은 말을 상대의 언어로 바꾸지 못해 외국인 앞에서 쩔쩔 매는 그런 느낌이다.

 

 




뇌 속 지도: 지켜야 할 규칙은 세 가지 뿐이다!

 
1. 자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만을 그릴 것
2. 틀렸거나 불확실한 것이 있어도 신경 쓰지 말 것
3. 즐기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그릴 것

 

뇌 속 지도를 그릴 때 지켜야 할 규칙이 세 가지 있다. "그게 무슨 규칙이야?"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지도를 그려보면 그런 점들을 상당한 장벽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왜냐하면 '정확하게 그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작업 목적은 설정한 앵커의 기억을 '체감'하기 위한 것이다. 뇌 안엔 설정한 앵커가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기억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종이에 직접 그려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지리를 정확하게 지도 위에 재현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누구나 길을 헤맬 때가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방향을 헤매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가히 '방향 감각의 달인'이다. 여행사 직원이 가이드하는 해외 여행을 나갔을 때 자유시간을 즐기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경험을 한 사례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이 가이드가 있기에 길을 기억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케이스이다. 아무튼 자주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이라면 '길치 완전정복' 프로젝트에 동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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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라이프 - 내 삶을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최인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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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관한 책이면서도 제목을 '굿 라이프'라고 정한 이유는, 행복을 '순간의 기분'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성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행복은 순간의 기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행복이기도 하다. 좋은 음식이 좋은 맛 이상의 것인 것처럼, 삶의 행복은 순간의 행복 이상의 것이다. 행복이 좋은 기분과 좋은 삶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좋은 기분으로서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좋은 삶'으로서의 행복까지 균형 있게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책의 제목을 의도적으로 '굿 라이프'로 정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좋은 삶을 찾아서

 

이 책의 저자 최인철은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 대학에서 사회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를 지냈고, 국제 학술지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의 ASSOCIATE EDITOR를 역임했다.

 

2000년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래, 2010년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를 설립하여 행복과 좋은 삶에 관한 연구와 함께 초, 중, 고등학교에 행복 교육을 전파하고 전 생애 행복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행복의 심화와 확산에 매진하고 있다. 2017년 제8회 홍진기 창조인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40만 독자가 선택한 스테디셀러 <프레임>, 역서로 <생각의 지도>,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등이 있다.

 

'굿 라이프'란 바로 좋은 삶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좋은 삶이란 뭘까? 이는 재미와 의미, 성공과 행복, 현재와 미래, 자기 행복과 타인의 행복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삶을 뜻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자신의 연구팀과 함께 해온 다양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마치 하늘의 뜬구름을 잡는 듯한 행복 개념을 재정의하고, 행복뿐 아니라 의미와 품격을 더한 '굿 라이프'의 구체적인 방법론과 굿 라이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깊이 있는 통찰을 현실감 가득하게 펼쳐놓는다.

 

저자는 행복에 관한 개인들의 생각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순간의 기분'으로만 이해하는 편향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행복은 '순간'이기도 하지만 '삶의 차원'에서 계획되고 실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즉 고요함, 몰입감, 유능감 등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이라는 특수한 감정을 느껴야 비로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경향, 자신이 불행한 것은 유전적 기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 행복을 가볍다고 여겨 이를 천시하는 경향 등 행복에 관한 오해와 염려들이 세상에 가득하다. 그래서 그는 행복에 관한 오해들을 바로잡고, 행복해지는 것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하나 짚어낸다.

 

 

행복은 가벼운 것이라는 오해

 

행복幸福이라는 한자어는 단일한 감정의 존재를 가정하게 하고, 그 감정은 피상적이고 얕은 것이라는 오해를 초래한다. 따라서 이는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추구할만한 감정이 아니라, 천박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안락함 정도의 감정이 행복이라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행복에는 행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만 알아도 마음이 편해진다. 행복을 가볍다고 경계하는 이유는 행복을 영감이나 관심 같은 상태가 아니라 아이스크림 먹을 때의 즐거움 정도라고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행복에 대한 피로감이 늘어난 이유는 행복이 일상을 벗어나야만 경험되는 '福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은 생각보다 훨씬 깊이 있으면서 동시에 지극히 일상적이다. 



유전이 행복을 결정한다는 오해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개인의 행복은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생각이 있다. 마치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쾌락이라는 감정은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일련의 연구를 통해서 지지를 받아왔다. 즉 행복한 사건을 경험한 후 일시적으로 행복감이 상승하거나 또는 불행한 사건을 겪은 후 행복감이 하락하더라도 이 사람의 정해진 행복 수준은 원위치로 돌아온다는 거다. 그래서 굳이 노력할 필요조차 없다는 해석이 된다.

하지만 이처럼 행복의 측면에서든 고통의 측면에서든 결국 원래의 감정 상태로 돌아갈 것이기에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냉소적인 태도다.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인간 실존의 한계를 감안하면, 우리 삶은 매 순간이 소중하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이유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무시하는 것은 삶에 대한 현명한 자세가 아니다.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삶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유전이 인간의 행복에 관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의 거의 모든 특성에 유전이 관여한다는 행동유전학의 제1법칙에서 보면 이는 그리 놀랄 만한 점은 아니다. 중요한 점은 유전이 행복에 기여하는 것은 맞지만 유전이 결코 행복을 운명 짓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전자 결정론, 특히 강한 유전자 결정론은 오류일 뿐만 아니라 행복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행복해지기 위한 개인과 사회의 노력을 과도하게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행복한 삶의 기술 - 좋아하는 일을 한다 

행복한 사람들의 '마음의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배우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같은 일상을 다른 마음으로 살고 있을 수도 있지만, 애초부터 서로 다른 일상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행복한 사람들의 마음보다 행복한 사람들의 일상을 분석해보려는 시도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부터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이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누구를 만나든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고, 지루한 일도 기쁘게 할 수 있는 마음의 비결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중 무엇을 우선적으로 할까? 좋아하는 일을 먼저 한다.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어른스러운' 조언이 들려올 때, 늘 잘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도 없다는 주문을 외워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행복한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되어야 하는 나보다 되고 싶은 나를 본다

비교하지 않는다

돈의 힘보다 관계의 힘을 믿는다

소유보다 경험을 산다

돈으로 이야깃거리를 산다


행복한 사람은 소유보다는 경험을 사는 사람이다. 소유를 사더라도 그 소유가 제공하는 경험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경험보다는 소유를 사는 사람이다. 심지어 경험을 하면서도 그 경험을 소유화, 혹은 물화해버리는 사람이다. 사는buy 것이 달라지면 사는live 것도 달라진다. 행복한 사람들이 다르게 사는live 이유는 사는buy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삶


인간만이 추구하는 행복을 좋은 삶으로만 설명하는 데레는 한계가 있다. 인간이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그 삶에 스토리를 부여하는 존재다.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계획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소위 'connecting the dots'라는 의미 창출 작업을 하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다. 이 작업은 삶의 순간순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삶 전체에 관한 것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이는 세계적인 희극 배우이자 명감독인 찰리 채플린의 말이다. 그렇다. 삶이란 해석과 재해석의 연속이다. 과거의 즐거움이 지금 생각하니 어리석은 일이었다고 후회하고, 과거의 고통이 지금 생각하니 축복이었다고 감사하는 것이 인간이다.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순간의 경험들은 그 순간에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평가된다. 따라서 순간 혹은 기분만을 가지고 좋은 삶을 이해할 수는 없다.


의미에는 무겁고 큰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고 가벼운 의미도 존재한다. 작은 의미란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를 뜻한다. 아침마다 아이들의 밥을 지어주는 것, 연로한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거는 것, 맡겨진 과제를 제시간에 해내는 것, 아이에게 구구단을 가르치는 것, 식사 기도를 하는 것,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것, 화초에 물주는 것, 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것 등 일상적인 일을 통해서 경험되는 의미다. 자기를 희생해야만 얻어지는 것이 의미가 아니다.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작고 확실한 행복 '소확행'이 있듯이, 작고 확실한 의미 '소확의小確意'도 있는 것이다.


의미란 중요성이다

의미는 유용성이다

의미는 이해이다

의미는 정체성이다


의미의 중요한 원천은 자기다움에 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드러낸다고 느낄 때, 인간은 의미를 경험한다. 일이 잘되면 기분이 좋지만, 그 일이 자기다운 일이면 의미가 경험된다. 우리가 성공, 성취, 효용, 효율 등 무엇을 이루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면 순간적인 기분의 행복을 누릴지는 모르지만, 의미 있는 삶을 경험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의미 있는 삶이란 자기다움의 삶이다.



품격 있는 삶


행복은 모든 가치를 뛰어넘는 최상의 가치일까? 이에 우리들은 보다 품격 있는 삶의 필요성을 더 실감하게 된다. 즉 타인의 행복을 침해하면서까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행복 지상주의자가 아닌 이상 YES라고 답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행복은 타인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을뿐더러, 나아가 타인의 행복을 돕는 행복이어야 한다.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의 삶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아끼면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인간의 최고 덕목 중 하나가 타인의 행복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보면, 품격 있는 삶을 굿 라이프의 핵심 요소로 끌어안아야 하는 점이 더 분명해진다.


자기중심성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

여행의 가치를 아는 삶

인생의 맞바람과 뒷바람을 모두 아는 삶

냉소적이지 않은 삶

질투하지 않는 삶

한결같이 노력하는 삶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유혹을 이겨내는 삶

가정이 아름다운 삶

죽음을 인식하며 사는 삶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은 삶


품격 있는 사람은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해서 솔직하게 놀라는 사람이다. 모두가 빠른 진단과 대책을 앞다투어 내세울 때, 몇 년이고 그 문제를 집요하게 그리고 골똘히 생각해서, 그 문제로부터 마땅히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는 사람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든 아니든 모든 문제에 대해서 늘 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우리가 경계하는 이유는, 그에게서 자신의 지적 한계를 인정하는 격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격이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정의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인격은 도덕적 완성의 정도가 아니라 한 개인이 세상에 대하여 지니고 있는 가정들의 정확성과 품격의 문제다. 그러므로 인격 수양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정들을 점검하여 나쁜 가정을 좋은 가정으로, 근거가 없는 가정을 정확한 가정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을 뜻한다.



좋은 것이 많은 삶


굿 라이프란 '좋은 것이 많은 삶'이다. 물론 좋은 것의 기준이 주관적이긴 하다. 그렇더라도 웰빙과 행복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의 결과를 참조한다면 자기 자신만의 '좋은 것 리스트'를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지나치게 구속되는 것은 분명 저자가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스스로 좋은 것을 일일이 기록하거나 세지 않더라도 맘 속에 자연히 알려주는 신호를 찾아보면 된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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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 이덕무 청언소품
정민 지음 / 열림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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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그를 생각하면 나는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후리후리한 큰 키에 비쩍 마른 몸매. 쾡하니 뚫린 그러나 반짝반짝 빛나는 두 눈. 추운 겨울 찬 구들에서 홑이불만 덮고 잠을 자다가 <논어>를 병풍 삼고, <한서漢書>를 물고기 비늘처럼 잇대어 덮고서야 겨우 얼어 죽기를 면했던 사람. - '서설(지리산의 물고기, 이덕무 이야기)' 중에서

 

 

이 사람보다 글 읽기에 더 미친 이가 있을까!

 

이 책은 18세기 조선 후기 문인이자 대표적인 서얼庶孼 지식인 중 한 명인 이덕무李德懋(1741~1793년)의 청언소품淸言小品을 모아 엮은 것이다. 한양대학교 국문과 정민 교수가 이덕무의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전문과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일부를 우리말로 옮기고 이해하기 쉽도록 각 편마다 제목을 붙이고 평설을 달았다. 정민의 단상과 해설은 이덕무의 세상살이 이치, 자연의 아름다움, 군자의 면모, 선비의 길, 수신修身의 지혜와 자세, 책 읽는 즐거움 등 깊이 있는 내용을 독자가 다가가기 쉽게 풀어낸다.

이덕무는 정조 때 규장각의 검서관檢書官을 지냈다. 그는 지독한 가난과 서얼이라는 차별적인 신분을 천명으로 알고 살았다. 그래서 추운 겨울밤 홑이불만 덮고 잠을 자다가 <논어>를 병풍 삼고, <한서漢書>를 물고기 비늘처럼 잇대어 덮고서야 겨우 얼어죽기를 면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극히 빈곤한 환경에서도 그가 사랑한 것은 오직 책을 읽고 필사하는 일이었으며, 심지어 풍열로 눈병에 걸려 눈을 뜰 수 없는 중에도 실눈을 뜨고서 책을 읽던 책벌레였다.

<선귤당농소>는 풍경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과 옛사람의 향기로운 삶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산문집으로 고아한 운치와 따뜻한 감수성이 돋보인다. 그리고 <이목구심서>는 말 그대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글로 표현했기에 당시 박지원, 박제가 등이 여러 차례 빌려가 자주 인용했다고 한다. 이 글을 통해 우리들은 이덕무의 해박한 독서와 지적 편력, 사물에 대한 투철한 관심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단 한 사람의 지기知己

 

이덕무는 권세와 명예, 세상 사람들의 명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단 한 사람의 지기知己만 있다면 족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 사람을 위해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서 열흘에 한 빛깔씩 오색실로 물을 들여 친구의 얼굴을 수놓게 하여,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고옥古玉으로 축을 만들어 아마득히 높은 산과 강물 사이에 펼쳐놓고 서로 마주보며 말없이 앉아 있다가, 날이 지면 품에 안고서 돌아오겠다고 말이다.

 

 

해맑은 마음

 

따스한 봄, 모래톱에서 제멋대로 노는 물새들, 물 위에 솟은 바위 위에도 앉고, 물풀도 뜯어먹는다. 또 깃을 닦고 모래로 목욕을 하고 물에 자기 그림자를 비추어 보기도 한다. 이런 천연스러운 자태의 해맑음이 실로 사랑스럽다고 이덕무는 느낀다. 하지만 세상은 웃음 속에 칼날을 감춰두고, 마음속에는 남을 해코지하려는 만 개의 화살을 쌓아둔 듯하다. 이 얼마나 물새들과 비교되지 않는가 말이다.

 

 

거간꾼

 

이덕무는 앎과 실천이 하나되지 않는 삶을 경계했다. 즉, 표리부동한 삶을 경멸했던 것이다. 좋은 글을 익혀 머리론 알고 있더라도 이를 삶에서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면 죽은 지식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는 공명功名을 얻으려고 하는 독서는 진정한 독서가 아니므로 글을 비판적으로 읽어내고 실제 삶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선비가 글을 읽으며 공명에만 정신을 쏟고, 마음으로 환하게 비추어보지 않음을 경계했고, 그런 사람이라면 차라리 저잣거리에서 이문이나 챙기는 거간꾼이 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

 

 

책 읽는 마음가짐

 

글을 읽었다면서도 시정을 향한 마음을 지녔다면, 시정에 있으면서 능히 글을 읽느니만 못하다. 讀書而有市井之心, 不如市井而能讀書也

 

책을 앞에 두고는 있지만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책을 읽기 전에 어디에 써먹을까부터 궁리하는 셈이다. 몸이 비록 산속에 있더라도 그의 마음은 시정잡배와 다를 바 없다. 차라리 티끌 세상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아가더라도 그 속에 품은 마음이 가지런하고 책 읽을 여유를 가진 사람이야말로 군자라는 말이다.

 

 

한겨울의 공부방

 

이덕무는 단 한 사람의 지기를 원했다. 그럼에도 그런 지기가 없을 땐 어찌해야 할까? 그는 책을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친구로 삼는다. 그래서 풀벌레와 붓과 벼루에게 다정히 말을 건다. 붓과 벼루와 도서들은 마침내 자질子姪들이 나와 절하는 것만 같아서 면목이 좀 생소해도 아끼어 어루만져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마음의 거울

 

한번은 객이 혀를 차며 말했다.
"문 나서면 온통 욕일 뿐이요, 책을 열면 부끄러움 아님이 없네"
내가 말했다.
"참으로 명언일세. 그러나 작은 낟알처럼 마음을 모으고, 두터운 땅을 밟으면서도 마치 빠짐을 염려하듯 한다면, 무슨 욕됨이 있겠는가? 비록 엉뚱하게 날아오는 욕됨이야 있다 해도 내가 스스로 취한 것은 아닌 것일세. 책을 읽으며 매양 실천할 것을 마음으로 삼고, 골수에 젖어들게 하여, 바깥 사물의 일을 가지고 겉거죽으로 삼지 않는다면 무슨 부끄러움이 있겠는가? 다만 날마다 약간의 부끄러움은 있게 마련인지라 독서가 아니고서는 또한 사람이 될 수 없겠기에 공부를 하는 것일 뿐이라네"

 

 

가난

 

가장 으뜸가는 것은 가난을 편히 여기는 것이다. 그 다음은 가난을 아예 잊어버리는 것이다. 가장 낮은 것은 가난을 꺼리고, 가난을 호소하며, 가난에 짓눌리다가 가난에 부림을 당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아래는 가난을 원수로 여기다가 가난에 죽는 것이다. 太上安貧, 其次忘貧, 最下諱訴貧, 壓於貧, 僕役於貧, 又最下, 仇讐於貧, 仍死於貧

 

이덕무는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우리 대부분은 가난을 불편하게 여기지만 그는 이를 편하게 여긴다. 나아가서 이를 아예 망각해 버린다. 가난에 부림을 당하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사는 인생은 슬프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하수는 가난을 원수로 여기며 살다가 가난 때문에 죽는 사람이라고 일갈한다. 이제 가난하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싹 지워버려야겠다.

 

 

베푸는 마음

 

대장부가 비록 궁한 집에 살면서 하잘것없는 음식조차 대지 못하더라도 제 마음속에는 불쌍히 여겨 베풀기를 좋아하고 궁핍한 이를 구해주려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       

 

대장부라면 마땅히 궁한 집에 살더라도 마음속에는 항상 남을 불쌍히 여겨 베풀기를 좋아하고 궁핍한 이를 구해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보다 더 가난하게 사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두고 이런 사람을 돕고 베풀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지니고 살아야 자신의 가난이 결코 부끄럽지 않다는 거다.

 

 

밀봉

 

이덕무는 많은 호를 사용했는데 그중 즐겨 사용했던 것은 신천옹(해오라기)을 뜻하는 청장靑莊이다. 신천옹은 맑은 물가에 살며 제 앞을 지나가는 물고기만을 잡아먹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이는 신분상의 한계 로 인해 자신이 지닌 재주를 제대로 펼칠 수 없음을 애석해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책 속으로 내면을 더욱 넓혀가는 계기로 삼자는 다짐으로도 보인다. 이런 모습은 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즉 좋은 술은 주둥이를 밀봉해 여러 해를 묵혀두어야만 그 맛이 점점 좋아지니, 재주 있는 자도 이와 같다 하였다. 스스로 뽐내고 내세워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까 염려하는 자세, 타인의 칭찬이나 헐뜯음에 일희일비함이 다만 슬퍼할 일이라는 것이다.

 

 

 

 

가난을 아예 망각하고 살아라

 

이밖에도 '명실상부' 편에서는 내가 누구인가는 스스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달렸을 뿐 남이 나를 어찌 대접해주느냐에 있지 않기에 스스로 돌아봄을 귀하게 여기라고 말하고, '재물' 편에서는 허리에 돈을 두르고 강을 건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끝내 돈을 버리지 못하고 물에 빠져 죽고 마는 이야기를 통해 무엇이 진정 소중한 가치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덕무의 세상살이 이치, 자연의 아름다움, 군자의 면모, 선비의 길, 수신修身의 지혜와 자세, 책 읽는 즐거움 등은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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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24시간 살아보기 - 2000년 전 로마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생활 밀착형 문화사 고대 문명에서 24시간 살아보기
필립 마티작 지음, 이정민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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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삶이란 제국의 영광에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집세를 구하고 집과 일터에서 맞닥뜨리는 까다로운 지인들과 일상적 문제들에 대처하는 것의 연속이었다. 당시 로마가 아무리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라 해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길을 찾고, 이웃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시장에서 값싸고 신선한 식료품을 찾기 위해 애써야 했다. - '들어가며' 중에서

 

 

로마 14대 황제 하드리아누스 시절의 로마인들

 

책의 저자 필립 마티작은 옥스퍼드 세인트존스칼리지에서 고대 로마사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0년대 후반 아직 어렸을 때 부모님께 선물 받은 고대 로마 병사의 모습을 한 작은 인형이 그를 잡아끌었다. 그 이후 그리스 로마 시대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지난 40년 동안 이에 대해 읽고, 쓰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리스 로마 신화>, <로마공화정> 등이 있다.

 

당시의 로마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책에는 24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한번쯤은 서로를 스쳐 지나갔던 당시 로마의 이웃이다. 저자는 이들의 일상적 경험을 조합해 '한 사람'의 '한 시간' 형식으로 구성함으로써 시간별로 로마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등장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허구가 아니라, 유물과 문학작품을 비롯해 일화와 농담, 연설, 서신 등 가치 있는 자료들을 통해 학자들에 의해 고증된 고대 로마인의 실제 모습이다.

 

서기 137년 9월 초, 로마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로마제국의 영역이 메소포타미아와 다키아 지역에까지 이르고, 템스강부터 티그리스강에 이르는 광할한 지역에서 거대 제국의 명성을 떨치며 두려움과 존경을 동시에 샀다. 이 책은 서로 다른 24명의 눈을 통해 고대 로마 시대 어떤 하루로 우리를 안내한다.  

 

좀 더 나은 벌이를 위해 군중을 헤치고 좁디좁은 길을 달리던 수레꾼 비비우스
완성된 빵에 자랑스럽게 직인을 찍던 제빵사 미스트라티우스
수업료가 모이지 못하면 길바닥에서 수업을 해야 했던 선생 
공작새, 호랑이, 기린, 온갖 재료로 볼거리까지 제공하던 요리사 카이킬리우스 
취객의 난동에 회초리를 들고 다니던 술집 여주인 코파

토가를 입은 매춘부 마밀라 
체육관, 오락거리, 스낵바까지 갖춘 로마 목욕탕의 종업원 
최고의 권위를 누리다 후견인의 재력 앞에서는 꼭두각시가 되는 상원의원

 

 

 

아침식사를 책임지는 제빵사

 

시인 유베날리스로마의 서민들은 '파넴과 치르첸세스', 즉 '빵과 서커스'를 통해 권력에 예속된다고 지적했었다. 실제 로마인들은 밀을 배급받았지만, 화재에 취약한 주거지에서 누군가 불을 잘못 피우면 이웃들은 이에 분개하고 응징에 나섰다. 그래서 빈곤층은 배급받은 밀을 제빵사에게 가져가 약간의 수고비를 지불하고 빵을 구워온다. 밀 배급량은 가구당 하루에 빵 두 조각 정도이다. 제빵사는 이런 손님들로 인해 온종일 쉴 틈 없이 빵을 구워 내야만 했다. 당시 제빵사 길드는 로마의 상인 계급 중에서도 상당한 존경을 받았다. 심지어 상원에는 제빵사 출신 의원석이 따로 있었다.

 

집에서 만든 빵은 빵집의 빵에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는 반죽이 잘 부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맛있는 빵의 성패는 효모에 달려 있다. 당시 이를 몰랐던 제빵사들은 빵 반죽을 잘 부풀리기 위해 끊임업시 실험을 했다. 빵집 안은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구조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늘 빵을 굽는 열기로 빵집 안이 후텁지근한데 수레꾼을 기다리던 노예가 얇은 튜닉 한 장만 걸쳤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불빛이라고는 오븐에서 타오르는 장작불이 전부여서 마치 팬터마임 공연이 열리는 지하 극장 같은 분위기다.

 

출입문 양쪽으로는 상판에 단단한 현무암을 덧댄 큰 탁자가 있다. 그 위에는 거대하고 길쭉한 대야가 있는데 여기에 빵 반죽 재료를 붓는다. 그리고 원하는 빵의 크기에 따라 소금과 올리브유를 조절해 넣는다. 올리브유를 많이 넣을수록 빵은 말랑말랑해지고, 톡 쏘는 로즈마리 향이 풍기는 소금은 로마인이 음식에 곁들여 먹기 좋아하는 자극적인 소스와 빵을 서로 잘 어울리게 만든다.

 

 

 

주인마님의 머리를 손질하는 여종  

곱슬머리가 궤도를 벗어나기라도 하면 주인마님은 여종 프세카스에게 곧장 매질을 가할 기세로 가죽 채찍을 손에 꼭 쥔 채 묻는다. "이 머리는 왜 이렇게 뻗친 거야?" 당연한 일을 가지고 죄없는 여종을 탓하는 것일까? 이처럼 주인마님의 못생긴 코가 마님을 불쾌하게 만들어도 그 책임은 억울하게도 여종에게 있다.

 

프세카스의 손질과 동시에 그 왼편에서는 또 다른 여종이 주인마님의 머리채를 끌어당겨 빗은 다음 둥글게 말아 올린다. 마님은 머리 손질 서열 상위에 있는 여종에게 조언을 구할 것이다. 먼저 서열이 높은 여종의 의견이 반영되고, 나이와 기술에서 서열이 낮은 여종들의 의견이 나중에 반영될 것이다. 헤어스타일은 여종들의 명성,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어서 여종들은 헤어스타일의 완벽을 기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길바닥 수업이 싫은 남학생  

푸블리우스 펠리쌈의 선생인 리테라투스는 학생수에 따라 일당을 받는다. 학생수가 스무 명에 못미치면 본전치기도 안 된다. 그래서 수업을 재판이나 회의용으로 사용하는 회당 안에서 진행하지 못하고 야외에서 해야만 했다. 회당은 햇볕과 바람을 막아주고 학생들이 벤치에 앉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수가 적어서 선생은 회당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뇌물을 줄 수가 없으므로 푸블리우스를 포함한 학생들은 길바닥에서 수업을 받을 수밖에 없다. 

 

리테라투스는 학생들에게 '오르빌리우스'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오르빌리우스는 시인 호라티우스의 스승으로 '채찍쟁이'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학생들이 보기엔 리테라투스 선생도 이와 비슷하다고 느껴서 붙인 별명이다. 대부분의 선생처럼 오르빌리우스 역시 해방 노예로, 날씨가 따뜻해도 목에 스카프를 둘러 전 주인의 지시로 새겼던 문신을 가린다. 선생 중 상당수가 노예 출신이기 때문에 로마에서는 선생의 지위가 상당히 낮다. 오르빌리우스의 경우 하위 중에서도 최하위인데, 가르치는 과목의 난도로 지위를 평가받기 때문이다.

 

오르빌리우스는 기본 로마어 선생이다. 가르친 학생이 읽고 쓰고 기본 연산을 하고 고전 작품을 어느 정도 알면 성공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 과목의 성실한 선생은 연간 180데나리우스 정도를 벌어들이는데 다른 직종의 숙련노동자 임금의 절반 수준이다. 오르빌리우스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수사학 선생도 그보다 약간 더 벌 뿐이다.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법학자  

현재 회당에서 진행중인 재판은 이미 잘 알려진 스캔들로 비상한 관심을 몰고 있다. 한 노예 여성이 주인의 연인을 독살한 사건이다. 노예 여성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주인의 지시를 받고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건이다. 즉 그녀는 주인의 명령을 복종하지 않을 경우 끔찍한 처벌을 받는데 범행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주인이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

 

주인은 유명 상인이라 재판장에 수많은 구경꾼들이 몰려 들었다. 넓지 않은 회당에서 수업을 받던 학생들도 쫓겨나고 말았다. 집정관과 수행원단, 피고와 그의 친구들, 목격자들과 배심단원, 자백한 노예 여성과 그녀의 경비병 등만으로도 회당 안은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구경꾼들은 열린 문 넘어 거리 너머로 몰려들었다. 집정관의 부름을 받은 법학자 가이우스의 마차도 회당으로 느리게 향했다.   

 

날씨는 화창했다. 그럼에도 가이우스는 자신의 전임자들 중 무키우스 스카에볼라 같은 부유한 귀족들이 부럽다. 법을 학문적으로 순수하게 대했을 테니 말이다. 그들은 자신처럼 다급한 통보를 받고 학문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진짜 사람들이 연관된 실제 재판에 관여할 필요가 없다. 가이우스는 법을 사랑하지만 법의 적용을 받는 실제 사람들과는 가능한 한 접촉을 피하고 싶다. 서로 팔꿈치로 쳐대고 그가 가진 두루마리를 떨어뜨리려 하는 사람들 사이를 겨우 헤치고 다니는 데 가이우스는 분명 취미가 없다.

 

 

회초리를 든 술집 여주인

미르탈리스는 술집 여주인인데, 대부분 이름 대신에 '코파'라고 부른다. 코파는 '술집 여주인'이란 뜻이다. 코파는 자신의 술집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술집은 보통 자정까지 장사하는데, 안찰관의 기분에 따라 더 늦게까지 장사를 하므로 아침식사 시간에는 문을 열 수가 없다. 코파가 내놓는 와인은 향이 진하고 잡내가 없어 인근 와인 술집의 와인들은 상대가 안 된다.

 

이런 코파에겐 '우람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시리스카의 얼굴이 와인으로 벌겋게 달아오르고 머리에 그리스풍 헤어밴드를 한 채 춤을 추기 시작하면 손님들이 일제히 주목한다. 뒤편 값비싼 소파 위에 앉아 있는 장미 화관을 쓴 부자 손님들조차 일몰까지 와인을 따라줄 바로 옆의 코파는 안중에도 없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넋을 놓고 시리스카의 춤사위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의 음흉한 눈빛은 '저 여자 위에 눕고 말겠다'는 의지로 빛난다. 코파의 팔꿈치에는 히코리나무 재질로 만든 회초리가 달려 있다. 시리스카의 춤을 지금의 수직적 형태 에서 수평적 형태로 바꾸려는 남자가 있다면 바로 코파의 손목만 한 굵기의 이 회초리 맛을 기어코 보고 난 뒤 이내 쫓겨나고 말 것이다.

 

 

손님맞이 준비를 하는 목욕탕 종업원 

목욕탕은 로마 문명의 주요한 산물이다. 로마군은 어딘가에 1년 넘게 주둔해야 할 경우 가장 먼저 짓는 건축물 중 하나가 바로 목욕탕이었다. 그리고 목욕탕을 중심으로 신도시가 형성되기도 했다. 따라서 로마제국의 개척지에서 목욕탕을 볼 수 있다. 다뉴브 강변의 파노니아 평원에 있는 아퀸쿰이나 브리타니아의 아쿠아술리스가 그 예다. 

 

시인 마르티알리스"그 무엇이 네로보다 더 나쁘고, 네로의 목욕탕보다 더 좋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실제로 네로의 목욕탕은 타락한 독재자의 감각을 반영한다. 빨간 화강암과 하얀 대리석이 기본 배경을 이루며 벽을 따라 이어지는 프레스코화가 에로틱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가능한 한 최고로, 그리고 극단을 추구할 것'이라는 네로의 신조 덕분이다.

 

9월인 어느 날, 목욕탕 종업원은 오늘은 2,000~5,000명 정도의 손님들이 다녀갈 것이라 예상한다.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면 지름만 6미터가 넘고 분수까지 뿜는 거대한 욕조가 보이는데, 붉은 대리석 하나를 통째로 조각해 만든 것이다. 지금은 손님들이 목욕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일단 오전 영업이 끝나면 탕의 물을 모두 빼내 청소를 하고, 지하에서는 탕의 온도를 올리기 위해 노예들이 질식하기 직전까지 땀 흘려 가며 용광로에 불을 지핀다. 칼다리움(고온욕탕)은 목욕탕에서 가장 뜨거운 곳으로, 차가운 상태에서 적당한 온도로 데우는 데만 며칠이 걸리기 때문에 불을 완전히 꺼트리는 일은 드물다.

 

 

 

암모니아 냄새에 익숙해진 세탁부 

슬픈 사실은 무두장이의 작업장을 제외하면 세탁소보다 악취가 심한 곳은 몇 군데 없다는 사실이다. 무두장이의 작업장은 티베르강 서쪽 트라스테베레 구역으로 쫓겨났지만, 세탁소는 전문 직종인 데다 옷을 직접 세탁하는 로마인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한 구역 건너 하나씩 있다. 결국 그 악취를 피할 방법은 없다.

 

로마인들은 오줌으로 세탁하면 하얀 옷은 더 하얘지고 색깔 옷은 더 선명해지며 심지어 찌든 때까지 제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들은 옳았다. 모든 안주인들은 남편의 하얀 토가를 더 빛나게 하고 자신의 얇은 잠옷을 더 아찔하게 만드는 데 오줌이라는 마법 같은 재료를 이용했다. 두 번의 밀레니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제에 쓰이는 암모니아가 바로 오줌의 성분이기 때문이다. 인공적으로 생산하기 전에 암모니아를 구하는 최고의 방법은 값싼 자가 동력발전소, 바로 인간의 방광에서 얻는 것이었다.

 

'냄새의 습관화'라는 말이 있다. 대장간 옆에 사는 사람들이 망치로 금속을 두들기는 소리에 너무 익숙해져 이에 개의치 않는 것처럼 세탁부 타이스의 뇌 역시 암모니아로 무장한 오줌 냄새가 자신의 일상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처럼 무시하는 법을 이미 오래 전에 터득했던 것이다. 흔히 도시인들이 시골 냄새라고 여기는 '인분' 또는 축사의 냄새를 시골에 사는 농부나 목축인들은 심지어 구수한 냄새라고 말한다.

 

 

 

채찍질 당하는 요리사  

네로 황제의 측근 그룹 중 한 명이었던 소설가 페트로니우스가 쓴 가장 오래된 소설 <사티리콘>에도 곤욕을 치르는 요리사의 삶이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다. 거대한 돼지를 지탱하는 쟁반이 식탁 위에 올랐다. 요리가 완성된 속도에 감탄하면서 보통의 가금류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구울 수는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이 돼지는 바로 전에 나왔던 멧돼지보다도 거대했기에 훨씬 인상적이었다. 얼마 후 고기를 맛보려고 안간힘을 쓰던 해방 노예인 졸부 트리말키오가 소리쳤다.

 

"아니, 이런! 내장 제거는 된 거야? 아니잖아! 내장이 그대로 있어. 요리사 데려와!"

 

요리사가 소환되었다. 슬픈 태도로 그는 내장 제거를 까먹었다고 시인했다. 깨끗이 잊어먹었다는 것이다. "까먹었다고?" 트리말키오가 소리쳤다. "한다는 소리하고는! 누가 들으면 후추나 쿠민 따위를 까먹은 줄 알겠군. (채찍질을 위해) 이 자의 옷을 벗겨!" 잠시 후 요리사는 발가벗겨졌다. 트리말키아의 두 심복 사이에 선 그는 극도로 비참해 보였다. 모두가 요리사를 옹호하기 위해 끼어들었다.

 

"가끔 이런 일이 있잖아요.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고 혹시 이런 일이 또 생기면 그땐 저희도 가만있을게요"

 

 

환호 속에 검을 뽐내는 검투사 

세르기우스는 호구지책으로 어쩔 수 없이 싸우는 대부분의 검투사와는 달리, 스스로 원해는 싸우는 검투사이다. 이런 사람을 '아욱토라투스'라고 부른다. 그는 본래 강도죄에 대한 처벌로 경기장에 투입되어 싸우기 시작했다. 15년 전, 콜로세움에서 유명한 상대 검투사를 죽이면서 잠시 큰 명성을 얻었다. 현명하게도 이때 받은 돈으로 목검 루디스를 손에 넣고선 자유민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 자유민이지만 180센티미터가 넘는 근육질에 고도로 숙련된 이 거구는 여전히 일자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세르기우스는 병사의 방패와 팔뚝만 한 길이의 단단한 검을 휘두르는 검투사, 이른바 머르밀로로서 계속 경기에 참여했다. 경기 중 갑옷도 입지만 그의 진정한 자랑이자 기쁨은 트라키아산 철로 만들어진, 넒은 테두리에 소용돌이무늬가 새겨진 황금빛 투구다. 안전망이 얼굴을 보호해주고, 투구 위에는 생선 지느러미 모양의 넓은 문장이 있어 머르밀로의 이름을 알린다. 세르기우스의 문장에는 그가 명성과 자유를 획득한 경기 장면들이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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